소설리스트

47. 고백 (47/151)


47. 고백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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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못 받은 상. 지금 받아도 되지? 엘리시아.”

베개 옆, 침대가 꾸욱 눌리며 안정되게 누워 있던 몸이 기울어지는 느낌이 났다. 제 얼굴을 더듬는 손끝이 도톰한 입술에 닿는 감촉에 엘리시아는 눈을 번쩍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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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레온 님.”

비좁은 침대에 걸터앉은 일레온이 그녀의 머리 옆에 손을 짚고 조심스레 얼굴을 더듬으며 입술을 아련하게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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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

허공을 보던 초점 없는 회색 눈동자가 소리를 따라 그녀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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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놀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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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여기에 왜, 왜…….”

엘리시아는 얼른 몸을 세워 벽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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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를 가기로 했잖아. 한참 문을 두드려도 일어나지 않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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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방문을 잠갔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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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건 어쩔 수 없었어.”

일레온의 말에 방문을 보니 잠금쇠의 경첩이 가차 없이 부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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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금보다 귀한 것이 아닌가. 잠금쇠 따위야 새로 달면 되는 거고.”

엘리시아는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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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네가 쓰는 방이군.”

일레온이 코에 집중하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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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에서는 네 향기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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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저는 대공저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잠이 깨고 나니 엘리시아는 새삼 긴장이 되었다.

비좁은 침대에 걸터앉은 그와 물러날 데도 없는 침대 구석에 쪼그려 앉은 나.

그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널찍한 대공의 침대와는 느낌이 너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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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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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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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어젯밤에 상을 주지 않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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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엘리시아는 일레온에게 로나로 잘 대해주면 자기 전에 상을 주겠다고 했었다. 산책을 마치고 방에 바래다주자 어쩐지 말수가 적어진 일레온이 그만 올라가보라고 해서 깜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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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겨우 두 번짼데 이렇게까지 따질 일인가.’

일레온은 하루 한 번 그녀의 볼뽀뽀를 꼭 받아야겠다고 벼르는 사람 같았다.

엘리시아는 느슨한 잠옷을 가슴 앞에서 모아 그러쥐고 그에게 다가갔다.

가볍게 일레온의 뺨에 입술을 대자 눈을 감고 기다리던 남자가 그제야 만족한 듯 미소지었다.

그 얼굴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엘리시아는 숨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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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준비하고 내려와.”

일레온이 몸을 일으켜 방 밖으로 나간 후에도 엘리시아는 꿈을 꾼듯한 기분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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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레온이 여기는 처음 왔을 텐데.”

방금 방 밖으로 사라진 그의 걸음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저 정도로 편히 일레온이 걷는 건, 그의 방 안의 정해진 위치에 기물이 놓인 장소나 자주 산책을 나갔던 1층 로비 홀, 현관, 계단 일부 정도였다.

그런데 조금 전에는 마치 눈이 보이는 사람 같이 편안한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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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뭐래. 방이 좁아서 몇 걸음 되지도 않으니까 그랬겠지.”

엘리시아는 고개를 흔들고 얼른 침대에서 벗어났다.

***

한 시간쯤 마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꽤 너른 강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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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진짜 예쁘다!”

엘리시아는 이 세계의 지리에 대해서 잘 몰랐다. 처음에 자신이 눈을 뜬 곳이 로렐 호수라는 것은 알지만 숲지기 부부가 데려다주었던 영주성은 이름조차 가물가물했다. 거기서 물어물어 짐 수레를 얻어타고 무작정 수도로 향했다. 보통 이야기의 중심은 보통 황제나 귀족이 나오고 수도를 배경이 아닌가! 누가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빙의자 생존 수칙인 양 막무가내로 상경한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생각은 크게 틀리지 않아서 제국 수도 콘스탄스 에비뇽에 와서 눈, 비를 피하고 허기를 면할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마침 일하게 된 곳이 일레온의 곁이어서 원작 엔딩을 보고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도 가질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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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 생각 정말 오랜만에 한 것 같아.’

엘리시아는 방금 한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니. 어쩐지 머릿속에서 아예 가능성이 사라진 것처럼 염두에 전혀 두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속으로 떠올렸을 뿐인데도 너무 생뚱맞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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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너무 변했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봐.’

일레온의 눈을 뜨게 한 것도 엘리시아였고, 그의 마음을 얻은 것도, 그로부터 청혼을 받은 것도 그녀였다.

그러면서도 쉽게 원작의 비틀림을 받아들일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마리엘라의 말 몇 마디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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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진실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도 없는 이야기인데.’

뭔가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마리엘라에게서 알고 싶은 것을 확인할 방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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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가 마음에 드나?”

일레온의 말에 감탄사 한마디만 뱉고 멍하던 엘리시아는 그에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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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기 정말 멋져요. 오늘 날씨가 화창하고 하늘이 파래요. 그래서 물에 하늘색이 비치고 주변에는 초록 잎사귀가 우거진 나무들이 쭉 강가에 늘어서 있어요.”

엘리시아는 열심히 그의 눈이 되어 입을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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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인가 봐요. 흰 꽃이 포도송이처럼 탐스러워요. 그게 강변에 여기저기 떨어져서 무척 예뻐요. 그리고…… 여기는.”

엘리시아는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 분위기가 이상했다. 남녀가 짝을 지어 둘이 온 이들뿐이었다.

커플로 보이는 이들은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양산 하나를 나눠 쓰고 강변을 거닐거나, 요란스레 리본과 레이스 차양이 달린 자그마한 보트를 타고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찬란한 햇빛을 제대로 가려주지도 못하고 보트 위의 인영을 고스란히 드러내 있으나 마나 한 차양들 안에 얼핏 보이는 이들이 죄 키스라도 하는 듯 몸을 밀착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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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다들 데이트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차마 이런 광경을 솔직히 서술형으로 고할 수 없었던 그녀가 조용해지자 일레온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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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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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으음. 데이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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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오늘 엘리시아는 일레온이 준비해준 외출용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전에 유명 의상실 르발레인에서 옷을 맞추었으니, 가게에 완성되어 있는 옷 중 몇 벌을 엘리시아의 치수대로 고쳐오게 했다.

엘리시아는 일레온을 힐끗 쳐다보았다.

강바람 탓인지 일레온의 이마가 시원스레 드러났다. 그 아래로 단정한 눈썹과 눈매가 자리했다. 초점이 없는 회색 눈동자를 보는 순간에는 잠시 가슴이 아릿하게 저리듯 아팠지만, 오뚝하고 날렵한 콧대와 그 아래 자리한 입술이 그의 기분을 드러낸 듯 호선을 그리자 잠시 세상 시름이 또 잊혔다.

일레온은 외출용 정장 차림이었는데, 격식을 갖춘 자리가 아니어서인지 깃과 소매에 자수 장식이 된 얇은 소재의 프록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테르 공작가에 찾아올 때의 단정한 차림과 또 다른 화사한 분위기가 있어서 대단히 세련되고 근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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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렇게 보일까?”

일레온이 물었다.

그제야 엘리시아는 일레온이 왜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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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구나. 우리도 첫 데이트네.’

카페 카르디날에서 함께 차를 마셨던 날도, 트라펠 공원에 같이 갔던 때에도 그가 자신을 여자로 생각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에게는 예정된 운명의 상대가 있으니까.

대공의 충실한 메이드로 밖에서도 시중을 들며 어떻게 하면 카리나를 한번 만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느라 바쁘던 때였다.

그 밖에 일레온과 둘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시간을 보내본 건 유테르의 낙원 안에서 산책하거나 차를 마신 게 다였다. 집 안의 정원에서, 물론 그 정원이 마리엘라에 대한 질리언의 애정만큼 드넓었지만 ‘데이트’ 개념이 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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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타고 온 마차와 호위들을 물리더니.’

일레온은 분명 이곳이 무얼 하러 오는 곳인 줄 알고 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삼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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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데이트하는 거로 보이겠죠.”

엘리시아는 일레온이 놀라지 않도록 그의 손등, 팔목, 팔을 툭툭툭 손끝으로 치며 일레온의 팔을 타고 올라가 그대로 팔짱을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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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더 자연스러울 거고요.”

일레온의 단단한 팔에 제 손을 감으며 엘리시아는 얼굴이 조금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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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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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손을 거둘 것처럼 하자 일레온이 자신의 손으로 엘리시아의 손을 팔에 꼭 눌러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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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우리도 좀 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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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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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온과 팔짱을 끼고 은물결이 이는 강가를 걷고 있자니 엘리시아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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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정말 운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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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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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주변에 보이는 색들이 다 예쁘거든요.”

파란 하늘 아래 초목을 배경으로 한가롭게 떠 있는 파스텔색 리본과 차양으로 꾸며진 작은 배들은 흡사 물 위에 떨어진 꽃송이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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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온 님도 같이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딘가에서 사랑하는 사이는 서로를 마주 보는 게 아니라,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보는 거라는 말을 들었다.

어쩐지 그 말뜻을 이제야 이해한 것 같았다.

제가 설명해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레온을 보다 보면 자꾸만 예전 기억이 선명해졌다. 유테르의 낙원을 걸을 때 제가 손짓하는 대로 미소를 지으며 따라와 주던 붉은 눈동자를 가진 눈부신 남자의 모습이 말이다.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잘잘 흐르는 물소리에 멀리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섞였다. 새 소리와 왁자하게 떠드는 목소리가 한참 지날 때까지 일레온도 엘리시아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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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했어.’

엘리시아는 난처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는 내심 일레온의 눈이 다시 보이지 않게 된 게 제 탓도 있는게 아닌가 자책하는 상태였다. 수상하게 제조되었던 약 때문이라고.

그런데 풍경에, 분위기에 홀려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게 진심이었다는 데 있었다.

그와 같이 보고 싶었다는 말을, 그냥 해본 말이라고도 아무것도 아니라고도 흐지부지 덮을 수가 없었다.

엘리시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일레온이 팔짱을 끼고 있던 그녀의 손을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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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레온 님.”

그 손을 그대로 그가 잡아당겨 엘리시아를 안았다.

일레온의 조심스러운 손길에는 그녀를 탓하는 화가 실려있지 않아서 겨우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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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배를 타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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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그가 자신의 실언을 모른 척 넘어가주자 엘리시아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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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야지. 바보야.’

첫 데이트라고 너무 들떴나보다. 로나는 이러지 않았는데, 엘리시아는 하여튼 좀 말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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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말썽이라고 하기엔 문제도 너무 많고.’

엘리시아가 감당해야 할 산적한 문제가 스멀스멀 떠오르려 하자 그녀는 도리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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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일레온에게 집중해.’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제 기척에 더 기민하게 신경을 쓰는 남자였다. 엘리시아는 일레온과 손을 잡고 선착장에서 배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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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 생각보다 더 작아요.”

멀리서 봤을 때는 둘이 타고 여유 공간이 꽤 있어 보였는데, 막상 타보니 왜들 그렇게 붙어 있었는지 알법했다. 그렇게 붙어 앉게끔 좁은 좌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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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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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일레온이 노를 젓자 배는 너른 강의 복판을 향해 잘도 나아갔다. 주변을 살폈지만 부딪힐만한 배는 없어 할 일이 없어진 엘리시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분위기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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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아.”

일레온이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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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여기서 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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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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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엘리시아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그는 무릎 위에 놓여있던 그녀의 손에 손깍지를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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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은 고백을 하게 되었군.”

갑자기 심장이 쿵쿵거렸다. 청혼도 좋지만, 고백도 좋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건 이런 곳에서 제게 예쁜 추억을 남겨주려고 프러포즈 계획을 세웠다는 일레온, 눈앞에 마주 앉아 제 손을 맞잡은 남자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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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이 멀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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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엘리시아는 일레온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그런 말을 들을 줄 알고 설레던 마음에 찬물이 끼얹어진 기분이었다.

내내 초점이 맞지 않는 듯, 허투루 시선이 맴돌던 그의 눈동자가 어느새 똑바로 엘리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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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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