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 제가 알아야 할 분입니까? (68/151)


68. 제가 알아야 할 분입니까?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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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리나.”

품 안의 초록빛 눈동자가 물기를 가득 머금고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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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지켜줄게.”

리나.

리나.

그래. 무언가 입에 익숙한 듯한 발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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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온 님.”

저를 마주 끌어안은 리나의 어깨가 흐느끼며 흔들렸다.

리나.

너는 나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잖아.

난 언제까지나 널 지킬 거야.

지킬 거라고…….

흐릿한 기억들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 오를 듯, 말 듯 또렷해졌다 흐릿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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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관없어.’

리나가 돌아왔으니까.

다른 건 모두 하찮게 여겨졌다.

일레온은 기운이 빠진 여인을 보듬으며 저택을 향해 발을 돌렸다.

***

이른 새벽녘, 대공저는 발칵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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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분은 누구십니까.”

주인의 시중을 들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있던 집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레온이 낯선 여인을 거의 품에 싸안듯 안아 들고 저택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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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양이다. 그것보다는 의사를 불러 줘.”

게다가 일레온은 그 여인을 대공비의 방으로 데려다 눕혔다.

베르나르는 혼란스러웠다.

엊그제 엘리시아를 보았을 때보다 지금이 몇 배 더 충격이었다.

엘리시아가 ‘로나’로 대공저에서 일할 때, 그녀의 면접을 보았던 집사는 그녀가 사고로 기억을 잃은 상태로 의탁할 곳이 없어 헤매다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 곳에 취직을 원해도 신분증명을 제출해야 하는데, 예전 자신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그래서 대공저에 일할 사람을 아무 조건 없이 채용한다는 점 때문에 오게 되었노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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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주신과 오데르의 축복이 함께하길.」

 
그랬던 엘리시아가 신관들이 입는 것과 비슷한 로브의 후드를 눌러쓴 채, 제게 인사를 건넬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잘 아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

반년은 그와 무언의 황태자 욕도 독순으로 나눌 정도로 친근하게 지내던 아가씨의 속 알맹이가 쏙 빠져나가 다른 것으로 바뀐 것 같은 낯선 느낌.

그런 엘리시아와 함께 돌아온 일레온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눈이 잘못된 게 아닌지 병원에 가보라’는 말까지 들으면서도 내심 그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던 베르나르는 주인의 상태가 보통 염려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찌나 집안 분위기가 칙칙한지, 지난 몇 년간 행방을 모르던 전 대공비, 큰마님인 레브 황녀가 귀환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영 만찬을 생략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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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비의 방에 데려가시다니.”

그 방이 엘리시아를 위해 깨끗하게 치워져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저택 후원에서 일레온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다 사라졌던 아가씨가 ‘신관’이 되어 돌아온 후로 손님방에 머무르고 있어 비어 있던 것도 맞았다.

하지만 낯선 아가씨를 수많은 방을 두고 선뜻 대공비의 방으로 데려가는 일레온이 베르나르의 눈에는 가장 이상했다.

잘 아는 것이 궤도를 벗어날 때는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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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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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금 당장 불러오겠습니다.”

베르나르는 의사를 모셔올 심부름꾼을 부르러 가다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이름 모를 여인의 곁에 앉아 손을 붙잡고 있는 일레온의 모습이 너무나도 괴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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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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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나!’

일레온이 품에 기절한 건지 잠든 건지 알 수 없는 여자를 안고 나타났을 때, 엘리시아는 그것을 2층 복도 끝에서 난간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망설이지 않고 카리나를 안고 대공비의 방으로 향한 것도.

지끈.

가슴에 작열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눈앞이 점멸하듯 캄캄해졌다가 다시 숨이 쉬어졌다.

엘리시아는 겨우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나서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쿵, 쿵.

심장이 불온한 소리를 내었다.

엘리시아는 크게 충격받은 듯한 자신을 보며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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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지?’

원작대로 나타나지 않는 카리나를 애타게 기다린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카리나가 와주지 않아서, 일레온이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아서 애쓰고 애쓰다 여주를 여기로 데려오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았던가.

그런데 일레온이 카리나를 이 집으로 데려온 게 왜 놀랄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떠나면 일레온과 카리나가 이어지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바랐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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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엘리시아는 무릎을 세우고 그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일레온과 한 집 안에서 그를 피해 다니느라 내내 힘들었다.

그는 엘리시아를 마주칠 때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엘리시아는 사비엘의 마수에서 이미 도망쳤다. 언제 강제력이 작동해서 위험해질지 몰랐다.

해결책은 마리엘라가 내놓았다.

신의 후손인 오데르의 곁에 머물면 강제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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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까지는 레브 전하께서 도와주시기로 하셨어.」

 
마리엘라가 그 말을 할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단순히 레브와 당분간 지내게 될 거라는 정도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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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어째서 대공저에 머물러야 하는지요?」

 
당분간 지낼 곳이 레브 황녀의 저택이 아니라 클레벤트 대공저라는 걸 알고 나서 엘리시아는 당혹스러웠다.

대공저에 가보면 뭔가 기억이 날지 모른다고 자신을 다그치다, 매달리다, 애원하던 일레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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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텍이란 자가 그대를 노릴 것 아닌가. 마리엘라의 말에 따르면 ‘오데르’의 보호 아래 있으면 그가 손을 쓸 수 없을 거라 하니 여기서 지내는 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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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황녀 전하의 저택이 아니라 왜 대공저인지…….」

 
그 말에 레브는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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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르’의 보호를 받는다면 기왕이면 둘이 좋지 않겠나.」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엘리시아는 손바닥 안처럼 훤한 대공저 안에서, 저택의 주인을 피해 다니느라 본의 아닌 감금 생활 중이었다.

일레온은 시시때때로 다른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어떤 때는 그를 잊은 그녀를 탓하고 원망하는 눈빛이었다가, 가슴이 아파서 죽을 것처럼 힘들어했다가, 엘리시아를 물어뜯고 싶어 하는 사나운 기세를 숨기지 못하다가, 짐작할 수 없이 늪 같은 눈으로 보기도 했다.

그중 무엇에도 그에게 답해줄 수 없다.

엘리시아는 자신이 떠나야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었다.

그게 최선일 거라고.

결국 일레온이 괴로운 건, 자신이 대공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엘리시아는 밤을 새웠다.

동이 환하게 터 오르고, 해가 꽤 높이 자리할 때까지 방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방 밖에는 일레온과 카리나가 있다.

새벽에 본 둘의 모습이 잔상처럼 엘리시아를 괴롭혔다.

그랬다.

정말로 괴로웠다.

자신이 바랐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스꽝스럽게도 가슴이 아팠다.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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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엘리시아가 힘없이 대답하자 집사가 그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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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아 님. 아침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여태 대공저에는 일하는 사람이 줄어 있었다. 일레온이 제게 눈이 멀었다고 거짓말을 할 때 모두 내보내고 그대로였다. ‘로나’가 일할 때 있던 그 인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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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금 갈게요.”

제때 식사하고, 제때 치우게 해주는 게 집사를 돕는 일이다. 그가 여러 번 자신을 찾으러 방으로, 식당으로 오가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 건 다 핑계고, 일레온과 카리나가 어쩌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보고 싶지 않으면서도, 새벽에 카리나를 저택으로 데려오게 된 연유가 어찌 된 일인지 알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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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는 거야.’

그런 게 대체 왜 궁금해?

떠나기로 마음먹은 단계에 묻거나 따지거나 궁금해할 자격도 모두 스스로 포기한 것 아닌가.

남주와 여주는 행복해질 테니까.

엘리시아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머리를 흔들며 세수를 하고 옷만 재빨리 갈아입었다. 아무런 장식도 무늬도 없는 면으로 만들어진 수수한 로브였다. 신관이 되기 전, 수련할 때나 입는 옷과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한데 묶고 후드를 눌러쓰고 엘리시아는 식당으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식당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더 빨리 뛰었다.

하지만 식당에 도착한 엘리시아는 맥이 탁 풀렸다.

식당 안에 레브 혼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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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주신과 오데르의 축복이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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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서 앉도록 해.”

레브가 주방장 슈발리에가 날라주는 접시에 시선을 두다 집사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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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온은?”

그때 문득 집사의 저어하는 듯한 눈빛이 엘리시아 자신을 향했다. 엘리시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평정을 가장하자 레브에게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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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손님을 모시고 오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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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라고? 그 시간에? 누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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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해링턴 백작가의 영애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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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해링턴?”

집사의 간략하고 정확한 설명을 들은 레브가 제 귀를 의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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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에 백작가 영애를 왜 대공저로 데려 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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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저도 잘…….”

그때 일레온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엘리시아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에게 손을 모으며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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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주신과 오데르의 축복이 함께하길.”

잠시 엘리시아를 본 일레온이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레브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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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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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서 앉도록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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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식사는 따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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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에 집으로 손님을 모셔왔다더니.”

레브의 말에 일레온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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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리나가 몸이 불편해서 식당으로 내려오기 힘드니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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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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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해링턴 백작가의 영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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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온 네가 그 아가씨와 단둘이 식사를 하겠다는 뜻이니?”

엘리시아가 나타나기 이전, 수도 귀족 영애들이 모두 일레온과 차 한잔 마시지 못했다고 집사가 열변을 토하던 그 정보가, 레브에게도 여태 정정된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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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혼자 드시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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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희한한 일이구나.”

그때 일레온의 눈이 엘리시아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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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누구십니까?”

레브는 홍차에 설탕을 넣으려고 가볍게 집어 들었던 자그마한 슈거 스푼을 떨어뜨렸다.

파스스.

깨끗한 원목의 탁자 위로 자그마한 설탕 알갱이가 사방으로 튀며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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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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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레브가 스푼을 떨어트린 그대로 황당하게 자신을 쳐다보자 일레온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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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야말로 괜찮은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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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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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는 거니?”

일레온이 눈을 가늘게 뜨며 엘리시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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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모셔오신 신관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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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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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아야 할 분입니까?”

레브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손짓해서 집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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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엘라. 아니 유테르 공작부인께 사람을 보내서 좀 모셔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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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황녀 전하.”

베르나르는 입을 벌린 채 일레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더니 곧 창백한 얼굴로 식당에서 물러났다.

그로서는 얼마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오늘이 그중 가장 충격적인 날이었다.

***

레브의 부름에 마리엘라는 한걸음에 달려왔다.

대공저의 응접실에 둘러앉자 레브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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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가 가게 설명을 해줘야겠어.”

레브는 평소처럼 한쪽 입가를 끌어올려 언뜻 웃는 것처럼 보였지만 눈이 전혀 웃고 있지 않아 조금 무서운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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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께서는…… 기억을 잃으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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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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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리엘라는 차분히 설명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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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텍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보통 많이 쓰는 것이 암시입니다. 최면에 가깝게 암시를 걸어두면,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책에 적힌 대로 말과 행동을 하게끔 유도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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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데르는 암시에 걸리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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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죠. 그래서 전하의 피를 뽑아 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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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를?”

마리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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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르를 통제하고 해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매개체로 오데르의 피를 써야 합니다. 아마도 눈을 멀게 했을 때처럼, 전하의 피로 대공께서 저주를 당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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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 보자 하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군.”

레브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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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내 아들에게 이런 짓을 해?”

마리엘라와 레브의 목소리가 엘리시아의 귓바퀴에서 헛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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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온이 나를 잊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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