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2. 흔적 (2/118)


#02. 흔적
202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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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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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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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잡아먹히는 게 느껴질 만큼 남자는 압도적인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시선이 묶여버린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신과 달리 모든 게 느긋했고, 여유로웠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고, 이 만남조차 운명이라 예견한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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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인사는 그쯤하고 이쪽으로!”

숨 막히는 침묵을 깨며 황 대표의 쉰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강은 저도 모르게 놓고 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시에 제 손을 붙들고 있던 커다란 손의 악력도 느슨해졌다.

그의 길고 차가운 손가락이 손바닥 안쪽을 스쳤을 땐, 마치 드러내지 않은 몸의 어딘가가 쓸리는 듯한 착각이 들어 작게 소름이 일었다.

의도적이었나?

멀어지는 산의 뒷모습을 그녀가 망연히 바라보았다.

남자의 존재만큼이나 지금 자신의 기분도 이상했다.

이 모든 상황이 선뜻 와닿지 않아 당혹스러운 가운데에도 막연한 기대 한 줄기가 마음속에 불씨를 피우는 걸 보면 말이다.

아마 근래 꾸었던 끔찍한 악몽 속에서 언제나 자신을 구해준 남자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존재로 인해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이 현실이 어떤 전환점을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기대. 혹은 바람.

어둠 속에서 작은 촛불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결의 불안이 뿌리를 내렸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 * *

그가 황 대표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른다.

이후에 뭘 했고, 어떻게 인사를 했는지.

일은 언제부터 하기로 한 건지.

정신 차려보니 그저 짐짝처럼 실려 가고 있을 뿐이었다.

에휴우우우우우.

삼영이 운전을 하며 내뱉는 한숨이 땅을 꺼트릴 듯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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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참 불공평해.”

그는 아까부터 줄곧 산에 대해 떠들어대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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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사기 수준이면 키라도 작든가. 아니, 그보다 다리가 그렇게 길 거면 허리도 같이 길어야 하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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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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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못 해 어깨라도 좁든가. 그것도 아니면 인간적으로 배라도 조금 나와주든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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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해, 오빠.”

강이 달래보려 했지만, 삼영은 단단히 심통 난 듯 말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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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제일 열 받는 건 또 따로 있어. 그게 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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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예의상 물어봐 준 말에 그가 분하다는 듯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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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숱마저 풍성하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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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스타일링이 잘된 걸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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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소리.”

서툴게 건넨 위로에 삼영이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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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풍성함엔 거짓이 없었어. 내가 딱 보면 알아.”

공들여 드라이해도 힘없고, 연약한 모발은 오래 버티질 못한다. 그저 바람 앞의 등불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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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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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알고 싶지 않았어.”

그가 애써 울음을 삼키며 대답했다.

섣불리 위로를 건넬 수가 없었던 그녀는 이쯤에서 적당히 화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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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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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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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일은 언제부터 하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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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경호원을 고용했다는 건, 곧 활동을 재개시키겠다는 신호일 거고, 아마 바로 합류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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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일정은 언급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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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잖아. 황 대표 일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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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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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금방 연락 올 거야.”

대답이 없어진 강은 물끄러미 창밖만 응시했다.

안개처럼 퍼진 어둠이 사방을 까맣게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태운 밴이 모퉁이를 지나 언덕으로 접어들었다.

집이 가까워지자 삼영이 당부하듯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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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다가 일하려면 많이 힘들 거 각오해야 해.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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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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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몸 좀 챙겨. 저번처럼 또 픽 쓰러져서 사람 간 떨어지게 만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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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걱정 마.”

강이 가볍게 웃었다.

스케줄이 늘기 시작한 건 화보 촬영과 광고가 일의 대부분이었던 그녀의 첫 드라마 ‘바람이 머문 자리’가 대박 나면서부터였다.

정확히는 모델 서강이 배우 서강이 되면서부터.

사실 오픈 전까지만 해도 기대가 크지 않았다.

호불호 뚜렷한 누아르에 신인 감독의 작품이었고, 18세 등급 판정까지 받는 바람에 감히 대박을 바라기가 여러모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은 OTT(Over The Top)로 방향을 튼 게 신의 한 수였다.

진흙 속에 파묻혀 있던 진주 같은 배우들과 탄탄한 시나리오가 발 빠른 시대의 흐름까지 탔으니, 새로운 국면을 맞기엔 충분한 조건이었다.

강은 극 중 연쇄살인 사건의 희생자 중 한 명인 ‘미연’을 연기했다.

세상에 홀로 남아 몸이 부서지도록 일했고, 발 뻗고 자는 일조차 쉽지 않던 미연은 늘 외로운 삶을 살던 인물이었다.

강은 그런 미연을 연기하며 그녀의 삶이 자신이 살아온 길과 참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미연의 마지막 대사는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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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을지 모른다.

촬영이 끝나고도 후유증에 한참을 앓았던 기억이 난다.

아등바등 살아온 노력의 대가가 결국 허망한 죽음이었다는 결말이 어쩐지 자신의 미래를 비춘 것만 같아서.

하지만 이내 그럴 리 없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미연을 연기했지만, 미연처럼 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강은 그렇게 주연 못지않은 관심과 주목을 받으며 빠르게 스타덤에 올랐다.

역주행한 음원이 대박나듯, 그녀가 걸어온 모든 길이 재조명된 것이다.

황 대표가 강을 부담스러울 만큼 극진히 모시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황금알을 낳는 암탉을 가졌으니, 물욕 넘치는 그가 금이야 옥이야 그녀를 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연이은 강행군에 강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한 건 오직 매니저인 삼영뿐이었다.

그녀가 악몽을 꾸기 시작한 아주 오래전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잠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 * *

귀가한 강은 샤워를 한 뒤 거실로 나와 습관처럼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향했다.

버튼을 누르려던 손끝이 우뚝 멈추었다.

도와줄까?

산이 늘 꿈속에서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그렇게 그녀는 불도 제대로 켜지 않은 어둑한 주방에서 한동안 멍하니 자리를 지켰다.

무겁고 흐릿한 머릿속. 느리게 감겼다 떠지는 눈꺼풀.

온몸의 신경세포에 수백 개의 추를 달고 살아가는 기분이라, 흐르는 시간은 늘 두 배는 길게 느껴졌다.

버튼에 살짝 닿았던 손가락이 망설임 끝에 거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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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라면 극도로 잠자기를 꺼렸겠지만, 오늘은 달랐기 때문이다.

믿는 구석이 생겨서 그렇다기엔 이른 감이 있었고, 한번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오늘도 그가 꿈속에 나타나 자신을 구해줄지를 말이다.

그리고 꿈에서 산을 만나면, 아까는 미처 묻지 못했던 말을 묻고 싶었다.

혹시 이 지옥 같은 악몽 속에서 나를 꺼내줄 수 있는지.

아니면 이참에 아예 내가 꿈을 꾸지 않게 될 방법은 없는 건지.

당신이라면 뭐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누군가 듣는다면 정신 나간 소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늘 꿈에서만 보던 그를 실제로 마주한 오늘이었기에 그랬다.

부디 꿈속의 한산이, 오늘 만난 한산과 동일 인물이길 바랐다.

안방으로 향한 강은 슬리퍼를 가지런히 벗어둔 뒤 커다란 침대에 몸을 맡겼다.

잠드는 순간은 늘 두려웠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두려움보다 기대가 앞섰다.

그렇게 그녀는 곧 쏟아지는 잠기운에 순응하듯 눈을 감았다.

어딘가로 둥실 몸이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며, 의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꿈은 늘 그렇듯 지독했다.

아니, 평소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그리고 굳게 믿었던 그는 끝내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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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악!”

배는 긴 시간을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나야 했다.

심장이 격동했고, 몸의 감각이 발작이라도 일으키듯 엉망으로 날뛰었다.

통제가 불가한 팔과 다리는 이불 위에서 멋대로 몸부림을 쳐댔다.

식은땀에 범벅이 된 채 간신히 몸을 일으킨 강은 허공을 향해 거친 숨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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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하아……!”

목적지를 잃은 원망이 공포감과 뒤섞여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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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웃긴 일이라는 걸 알지만 눈앞에 산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쏟아붓고 싶었다.

오늘은 어째서 나타나지 않았느냐고.

왜 나를 구해주지 않은 거냐고.

물론 그게 그의 의무는 아니었지만, 폭발하는 서러움과 공포심 때문에 마음은 갈 곳을 잃은 지 오래였다.

꿈속에서 괴물로 변한 보육원 원장에게 맞았던 곳의 통증이 너무나 생생했다.

여린 살갗에 착착 감기던 가죽 벨트의 감각은 의식적으로 묻어두었던 기억을 난폭하게 끄집어내기 충분했다.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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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파.”

강은 천천히 눈을 감고는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제 어깨를 감쌌다.

이리 와. 내가 구해줄게.

손을 내밀던 산의 모습이 어룽거리며 나타났다.

이토록 선명한데.

이제 그의 얼굴은 그려낼 수 있을 만큼 또렷한데.

꿈속의 그는 현실의 그의 등장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비틀대며 침대를 벗어났다.

그러고는 곧장 주방으로 가 디스펜서에서 얼음을 가득 받은 뒤 물을 받고, 반쯤 줄줄 흘리며 그것을 마셨다.

뇌가 깨질 듯 시린 차가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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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손등으로 젖은 입술을 훔친 강은 소파로 가 쓰러지듯 몸을 누였다. 침실까지 걸어갈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서였다.

어떻게든 이겨내려 발버둥 치고 있지만, 이미 한계라고 느낄 만큼 그녀는 지쳐 있었다.

악몽을 쫓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황 대표는 강이 겪고 있는 현실을 불면증이나 수면장애 정도로 치부하면서도 직접 무당을 찾아갔다. 그러고는 큰맘 먹고 굿에 부적까지 적어주었었다.

당연히 그런 것들은 하등의 도움도 되지 못했다.

주사도, 약도, 민간요법도, 미신도.

돈만 날렸다고 생각했는지 폭발한 황 대표가 점집을 엎어놨지만, 강에게 화풀이를 하지는 못했다.

그저 ‘너는 마음을 좀 단단히 먹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멘탈이 약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겠냐.’ 하고 에둘러 타박할 뿐.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독하게 마음먹어 벗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진작 벗어났어야 했으니 말이다.

죽음의 고비에서 무려 세 번이나 살아 돌아온 게 바로 그녀였다.

날 때부터 따라다닌 불행에 보란 듯이 맞서고 있는 자신이었는데, 여기서 뭘 어떻게 더 마음을 단단히 먹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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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같아.”

생각하기 싫은 일이 떠올라, 기분만 더 잡치고 말았다.

분노와 함께 차오른 눈물이 얇은 수막을 만들어냈다.

손등으로 뜨거워진 눈시울을 누르던 그녀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 와중에도 잠이 쏟아진다는 게 가장 견딜 수 없이 열 받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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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잘만 나타났으면서, 왜 오늘은 안 나타난 거야. 그냥 손만 뻗어줬으면 됐잖아.”

원망 어린 혼잣말이 어둑한 거실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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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손만 잡아줬어도 됐을…….”

그 순간.

소파 끄트머리에 걸쳐져 있던 손가락 사이로 시린 기운이 얽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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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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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게 적막을 가른 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손가락 끝에 입술을 누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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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 그녀가 제 손을 황급히 감싸 쥔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이 점령한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데, 혼자가 아닌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들었는데.

분명히 기척이 느껴졌다.

손만 잡아줬으면 됐을 거라는 자신의 투정에 똑똑히 화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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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치 아이를 달래듯.

늦게 와서, 혹은 구해주지 않아 서운하고 아쉬웠냐고 묻듯이 말이다.

제 손을 미끄러져 들어와 깍지를 낀 느낌도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이 넓은 집엔 자신 혼자뿐이었다.

그녀가 조용히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떨리는 시선이 서서히 손가락 끝으로 미끄러졌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산이 남기고 간 입맞춤의 열기는 금세 온몸으로 번져 그녀의 모든 감각을 통렬히 뒤흔들었다.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한 그의 흔적을 마주한 순간.

강은 확신했다.

한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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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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