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4. 시선이 닿으면 (4/118)


#04. 시선이 닿으면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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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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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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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받아야 나도 집에 가든가 하죠.”

멋대로 찾아왔지만, 집 안까지 들어올 심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케이크만 받아주면 순순히 돌아가겠다는 듯 무구하게 웃었다.

머뭇대던 강은 마지못해 케이크 박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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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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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말씀을.”

가볍게 화답한 그가 자연스럽게 걸음을 물리며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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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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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렇게 간다고?

요란하게 문전박대했던 게 민망해질 만큼 담백한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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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잠시만요.”

돌아서려던 그를 그녀가 저도 모르게 불러세웠다.

하지만 막상 산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자, 도로 입이 붙어버리고 말았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던 강은 머뭇대던 입술을 어렵게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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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시면…… 차라도 한잔하고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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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별다른 대꾸 없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산은 늘 반응이 느렸다.

어려운 질문을 던진 것도 아닌데 마치 속을 꿰뚫어 보려는 것처럼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는 버릇은 또 어떻고.

맞닿은 시선이 조금 버겁다고 느껴질 때쯤, 그의 얼굴이 풀어지며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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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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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요?”

현관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온 산이 문턱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과 마주 섰다.

그러더니 마치 보이지 않는 금이라도 넘듯이 걸음을 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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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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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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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빨리 친해져도 될까 싶어서.”

내뱉는 말과 달리 그는 거침없이 그녀의 공간을 파고들었다.

스쳐 가는 남자에게서 시린 새벽바람이 느껴졌다.

낯설지 않은 체취가 불러온 기억에 강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어젯밤 악몽에서 깨어나 그의 흔적을 느꼈을 때만 해도 당장 만나 정체가 뭐냐고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성을 되찾고 나니, 현실이 바로 보였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이었는지 이제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고요한 산의 시선이 느리고 꼼꼼하게 집 안을 훑었다.

집 안은 대체로 깔끔했다.

가뜩이나 넓은 집이 넓다 못해 황량하게 느껴질 만큼.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작은 소품조차 두지 않는 것 같았고, 그나마 인테리어라고 부를 만한 거라곤 강의 얼굴이 담긴 커다란 흑백 액자뿐이었다.

액자 속 강은 왼쪽으로 앉아 고개를 튼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잔머리가 흘러내린 내추럴한 헤어스타일과 검은 목폴라 티.

까맣게 찬 눈동자엔 심연 같은 외로움이 고여 있는 듯 보였다.

산은 말없이 팔짱을 끼고 선 채 사진 속 그녀를 세심히 바라보았다.

짙은 시선이 눈과 코와 입술을 차례로 훑듯이 내려갔다.

한 폭의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저도 모르게 감상 모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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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네.”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속삭임은 이내 바람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강은 뒤늦게 그의 의사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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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제가 너무 갑작스러운 요청을 했죠?”

지금 와서 물어볼 얘긴 아니었지만, 궁금한 게 많아서 마음이 급했다.

내내 잘만 나타나던 산이 나타나 주지 않는 바람에 악몽에 호되게 시달린 것도 한몫했고.

그녀의 말에 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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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어차피 오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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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려고 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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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렇게 빨리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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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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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차 정도라고 해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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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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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범죄는 상식이 안 통하잖아요.”

부드러운 미소와 달리 내뱉는 말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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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고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지.”

순간 오싹해진 강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걸 본 산이 조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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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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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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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발 뻗고 자게 해줄 테니까.”

걱정을 덜어주려고 건넸을 그 말에 그녀는 방금보다 더 심장이 덜컥거렸다.

발 뻗고 자게 해주겠다는 그의 말이 꿈속의 그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덩달아 산이 말하고 있는 상황이 물리적 현실이 아닌 뭔가 다른 위험을 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예를 들면, 악몽 같은 것들로부터 말이다.

사실 인사 따위나 더 나누자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집까지 불러들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묻자니 뭐부터 물어야 할지,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20년이 넘게 악몽을 꾸고 있고, 당신이 꿈에 나타나 나를 안아줄 때마다 그 꿈에서 빠져나오곤 하는데…… 혹시 이에 관해 내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없냐고 묻는다면, 나를 이상하게 보려나?

만일 그와 상관없는 이야기라면 충분히 이상하게 보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어떻게 포장을 해도 그럴듯하게 떠볼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산을 붙들어 놓고도, 막상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래서였다.

어젯밤의 일부터 그가 자신의 인생에 존재한 모든 기억이…… 어쩌면 제 간절한 바람이 보여준 환상은 아닐까 해서.

생각이 복잡해진 그녀를 앞에 둔 채 산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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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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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강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그가 소파에 앉았다.

손님 불러놓고 뭐 했던 건가 싶어, 걸음이 분주해졌다.

하지만 냉장고를 열어보니 있는 거라곤 죄다 커피 아니면 물뿐이었다. 티백 하나 있을 법한데 워낙에 집에 사람 들일 일이 없다 보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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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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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건넨 말에 흔쾌한 대꾸가 돌아왔다.

그녀는 커피 두 잔을 내려 거실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인 커피잔을 본 그가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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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 시간엔 커피 잘 안 찾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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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커피 좋아하거든요. 없으면 못 살 정도로요.”

반은 진실이었고, 반은 거짓말이었다.

살기 위해 먹는 거나 다름없는 커피를 음미하면서 마셔본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산은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곧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커피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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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마실게요.”

강도 거기에 맞춰 조용히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러고는 잠시간의 틈을 둔 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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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용기 내어 건넨 말에 그가 시선만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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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을까요?”

나를 아느냐는 질문보다는 나을 것 같아 던진 말에 산은 가만히 질문을 곱씹는 듯했다.

그러더니 모호한 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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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늘 그랬듯, 시선을 지그시 맞춰오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 그가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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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본 적이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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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본 것 같아서요.”

대꾸하기가 무섭게 추가 질문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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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요?”

……꿈에서요.

이번에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대답들이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았다.

강이 섣불리 대답을 내놓지 못하자, 산은 제 아래턱을 손으로 쓸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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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강 씨를 TV에서 본 기억밖에 없는데.”

그의 대답에 그녀는 망연자실했다.

도화지에 당장이라도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선명하다고 생각했던 꿈속의 남자가 어쩌면 산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실망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강의 휴대폰이 울렸다.

삼영이었다.

화들짝 놀란 강이 얼른 전화를 받아들었다. 잠시 그의 존재를 깜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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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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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아. 오빠 다 왔는데, 들어가도 돼? 너 메시지 안 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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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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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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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이라고? 아! 자, 잠깐만! 기다려! 금방 문 열어줄게!”

당황한 그녀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일단 소파에 앉아있던 산의 손목을 무작정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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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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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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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오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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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숨을 게 아니라 인사를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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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오해의 소지는 만들지 않는 게 좋으니까요! 일단 시키는 대로 해요!”

오해의 소지는 서강 씨가 만들고 있는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산은 강이 떠미는 대로 순순히 밀려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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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강은 드레스룸의 문을 열고, 산을 거의 쑤셔 넣듯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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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지 말고 얌전히 있어요, 금방 꺼내줄게요.”

정신없는 와중에 얕은 웃음소리가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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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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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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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는 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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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덕스럽게 농담이나 건네는 그를 슬쩍 흘겨본 그녀가 가차 없이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커피잔을 치우고 곧장 현관으로 달려가 산의 신발을 신발장에 넣은 뒤,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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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왔어?”

잠깐 사이에 땀이 배어 나온 이마를 쓸며 강이 말했다.

삼영이 그런 그녀를 한번 흘깃 쳐다보고는 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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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헉헉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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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운동하고 있었어.”

대충 둘러댄 말에 삼영은 별 의심 없이 넘어가 주었다.

그러고는 집에 들어오기 무섭게 냉장고를 정리하고, 양손 가득 새로 사 온 음식들을 채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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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그냥 두고 가. 내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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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이나 하겠다, 네가.”

손질이라도 해두면 제 성의를 봐서라도 먹는 걸 알기 때문에 삼영은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칼과 도마를 꺼내 씻어둔 채소를 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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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놈의 칼은 칼인지 몽둥인지 하여간 듣지를 않아. 조만간 가져가서 갈아오든가 해야지 영 못 쓰겠…… 아얏!”

구시렁대던 그의 입에서 별안간 새된 신음이 터졌다.

그 소리를 들은 강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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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다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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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야. 괜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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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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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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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긴 뭐가 괜찮아! 피 나잖아! 어디 다친 거야?”

하필이면 그녀가 썰어버린 손가락을 움켜잡는 바람에 삼영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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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피범벅이 된 손을 부르르 떨던 그가 반대쪽 손으로 강의 어깨를 찰싹찰싹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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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거기! 네가 쥐어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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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친 데가 여기였어? 미안. 피 때문에 잘 안 보였어.”

그녀는 급히 사과하며 냅킨을 가져와 삼영의 손을 둘둘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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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쥐고 있어. 내가 금방 구급상자 가져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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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괜찮아, 강아…… 정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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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나 닦고 말해.”

강이 무정히 일갈하곤 돌아섰다.

그는 결국 항변을 멈추고 그녀가 하자는 대로 순응하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이 다치는 것에 대해 강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삼영이었기에 그랬다.

그렇게 5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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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저번에 분명 여기 어디 둔 것 같은데…….”

구급상자가 보이질 않는다.

영혼 없는 미소로 상황을 지켜보던 삼영의 버석한 입술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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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 오빠 정말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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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내가 금방 찾아볼게. 잠깐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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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과다출혈로 먼저 죽을 것 같아서 그래……. 보내 줘.”

소심하게 놓아 달라 호소해봤지만, 그녀는 구급상자를 찾는 일에 혈안이 되어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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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좀 같이 찾아볼까?”

다시 한번 물어도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삼영은 조용히 일어나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필요한 잡동사니는 대부분 드레스룸 안쪽에 있는 서랍에서 나오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가 드레스룸의 손잡이를 잡아 돌렸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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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뒤늦게 그 모습을 본 강이 외쳤지만, 이미 문은 열린 뒤였다.

막 안으로 들어선 삼영은 제 옆으로 드리워진 긴 그림자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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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실장이 왜 여기 있습니까?”

그의 말에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산이 비스듬히 고개를 돌렸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공간 속.

두 남자의 시선이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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