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8. 내가 먹었어 (8/118)


#08. 내가 먹었어
2022.05.26.


165837932188.jpg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떠올라버렸다.

자의로 이걸 떠올리게 될 날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바로 어제 겪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지려는 장면을 온몸으로 거부하듯,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그 모습을 말없이 응시하던 그가 물었다.

16583793218805.jpg

“혹시 그날.”

16583793218809.jpg

“…….”

16583793218805.jpg

“그 사람이 뭔가 이상한 말을 하진 않았어요?”

마치 기억을 파고든 사람처럼 지적해온 부분에 강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사실 처음엔 이제 와 지난 이야기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조사는 충분히 마친 상태였고, 범죄자는 이미 그에 따른 법의 심판을 받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꾼 건, 그 끔찍했던 기억이 필시 자신의 꿈과도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쳐서였다.

어쩌면 산은 그날 그것을 묻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단은 그가 묻는 말에 성심껏 답을 들려줘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16583793218809.jpg

“그날…….”

그녀는 묻어둔 기억을 더듬으며 어렵게 그때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강이 ‘미연’ 역으로 출연한 드라마 ‘새벽이 머문 자리’가 흥행한 뒤, 스케줄은 높아진 인기에 비례해 확 늘어났다.

광고와 인터뷰는 물론 줄줄이 들어오는 시나리오까지.

예능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일을 했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방에서 열린 행사에 초청을 받아 다녀오는 길이었다.

사고는 휴식을 위해 잠시 머물렀던 휴게소에서 벌어졌다.

범인은 매니저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운전석에 올랐고, 뒷좌석에 타고 있던 그녀를 그대로 납치하려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와 추격전을 오가던 밴은 가로수를 살짝 들이받은 뒤에야 멈춰 섰다.

경찰이 강제로 문을 열고 그를 끌어내리기 전까지 남자는 뒷좌석으로 넘어와 강의 목을 졸랐었다.

아주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지만, 억겁처럼 느껴질 만큼 공포스러웠다.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인 것도 그때였다.

16583793218821.jpg

‘너한테서는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 그러니까 한입만…… 제발 한입만 먹게 해줘.’

16583793218809.jpg

‘이거…… 놔……!’

16583793218821.jpg

‘한입만 제발, 응?’

16583793218809.jpg

‘으으윽!’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정신적 충격으로 한동안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그때 잡혔던 남자는 정신질환이 있지도 않았고, 술이나 약에 취한 상태도 아니었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연행되는 내내 경찰에게 헛소리를 지껄였다.

16583793218821.jpg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서 그만…….’

16583793218821.jpg

‘뭐요?’

16583793218821.jpg

‘괴로웠습니다.’

16583793218821.jpg

‘…….’

16583793218821.jpg

‘그렇잖아요.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는데, 냄새만 맡으라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요.’

16583793218821.jpg

‘어허! 이 사람이 진짜!’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던 그는 이내 정신이 돌아온 듯 용서를 빌며 선처를 구했다.

그러나 황 대표는 당사자인 그녀보다 더 길길이 날뛰며 선처는 꿈도 꾸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소속 배우가 곧 자산이었기에 돈 욕심 많은 그에게는 재물손괴나 다름없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하필 그날은 삼영이 개인 사정으로 자리를 비운 날이었다.

그를 대신해 출근했던 매니저는 그 길로 잘려나갔고, 대표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삼영을 쥐잡듯 잡았었다.

그에게는 가뜩이나 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대표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사건이었고, 그녀도 그저 사고일 뿐이었다고 말했지만, 삼영은 제가 없을 때 그런 일을 당한 강에게 괜히 죄지은 듯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대표는 그길로 곧장 그녀를 위한 개인 경호원을 고용했다.

그게 도망치듯 제 곁을 떠나는 경호원들을 바라만 봐야 했던 일의 시작이었고, 일곱 번째 경호원으로 산을 만나게 된 이유였다.

이야기를 마친 강은 덤덤해 보였지만, 저도 모르게 떨리는 어깨를 감쌌다.

산의 시선이 그 작은 몸짓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주시했다.

16583793218809.jpg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했다고요.”

16583793218805.jpg

“네.”

경찰은 그 발언을 성희롱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사람한테 맛있겠다는 둥, 한입만 먹게 해달라는 둥의 말을 한 게 정말로 식사를 뜻한 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아직도 제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미친개처럼 침을 흘려대던 모습이 선명하다.

16583793218809.jpg

“별로 유쾌한 주제도 아닌데, 더 듣고 싶은 얘기 없으면 이쯤에서 끝내죠.”

강의 말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16583793218805.jpg

“알겠습니다. 말씀해주신 부분은 참고하죠.”

16583793218809.jpg

“참고하고 말 것도 없어요. 그 사람 지금 감방에 있으니까.”

센 척은.

솔직한 몸의 반응과 달리 무심한 척하는 그녀의 대꾸에 산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위로하듯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었다.

16583793218805.jpg

“피곤했을 텐데.”

16583793218809.jpg

“…….”

16583793218805.jpg

“눈 좀 붙여요.”

그 말에 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여태 그 떠올리기도 싫은 사고 이야기를 실컷 떠들게 해놓고 이제 와 자라고?

아니, 절대.

꿈에서 또 그 미친놈의 얼굴을 보는 일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그 일을 겪고 나선 한동안 꿈속까지 찾아와대는 바람에 죽을 만큼 고생했었으니까.

16583793218809.jpg

“됐어요. 실컷 떠들고 잠들었다가 괜히 꿈에라도 나오면…….”

16583793218805.jpg

“손잡아 줄게요.”

대뜸 튀어나온 말에 황당해서 산을 바라보았다.

16583793218809.jpg

“……뭐라고요?”

그러자 그가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끔 내밀며 웃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삼영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냅다 끼어들었다.

165837932544.jpg

“왜 그런 이야기가 있잖아. 기가 센 사람이랑 손을 잡고 자면, 오던 귀신도 도망간다는 얘기.”

그가 거들자, 산이 내밀고 있던 손을 까닥였다.

어서 잡지 않고 뭐하냐는 듯.

16583793218805.jpg

“속는 셈 치고 해봐요.”

16583793218809.jpg

“…….”

16583793218805.jpg

“사람이든 귀신이든 아무도 못 오게 할 테니까.”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의 일은 의식을 가위로 자른 듯 날아가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기절하듯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 후.

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16583793218809.jpg

“……!”

숨도 내뱉지 못한 채 묵직한 정적이 흘렀다.

사방은 고요했고, 시동이 꺼진 차 안에서 누가 덮어줬는지도 모를 담요를 덮고 있는 제 모습이 낯설었다.

그러니까 이게 지금,

16583793218809.jpg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16583793218809.jpg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당혹스러운 상황에 연신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손에는 얼마 전 밤에 느꼈던 묘한 온기가 느껴졌다.

누군가 손을 잡아주었던 것 같기도 하고,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들어 깍지를 꼈던 것 같은 느낌.

기시감이었다.

그녀는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개운하면서도 매일 꾸던 악몽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두렵게 다가오는 아이러니.

두려움을 동반한 건 필시,

16583793218805.jpg

“잘 잤어요?”

눈앞의 이 남자 때문이리라.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한 강을 고요히 바라보며 산이 말했다.

16583793218805.jpg

“피곤했나 봐요. 내가 여러 번 깨웠는데.”

16583793218809.jpg

“여기가…… 어디죠?”

16583793218805.jpg

“숍 지하 주차장이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덮고 있는 담요만큼이나 포근하게 그녀의 전신을 감쌌다.

16583793218805.jpg

“너무 곤히 자길래, 잠깐 자게 뒀어요.”

커다란 눈만 깜빡이던 강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술을 뗐다.

16583793218809.jpg

“삼영 오빠는요?”

16583793218805.jpg

“샌드위치 사러.”

16583793218809.jpg

“…….”

16583793218805.jpg

“곧 올 테니까, 그때 같이 나가죠.”

그런데 담요 밖으로 삐져나와 있던 팔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뒤늦게 그의 손이 제 팔에 얹어져 있다는 걸 알았고, 그녀는 다소 거칠게 그의 손을 쳐냈다.

아마 저를 깨우려던 와중에 살짝 얹어져 있던 걸지도 모르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냥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산은 허공에 붕 떠버린 제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시선을 굴려 강을 응시했다.

16583793218805.jpg

“혹시 내가 뭐 실수한 거 있어요?”

16583793218809.jpg

“…….”

16583793218805.jpg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까칠할 이유가 있나 싶은데.”

그의 얼굴엔 작은 미소조차 없었다.

그래. 그럴 법하다.

한산이 정말 제 꿈과 관련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면.

함께 일하기로 한 첫날부터 잔뜩 날을 세우고 있으니,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겠지.

하지만 이 순간. 그녀는 확신했다.

꿈속의 남자도, 지금 악몽을 꾸지 않은 이유도 전부 ‘그’라는 걸.

밴에 둘만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강이 물었다.

16583793218809.jpg

“정체가 뭐예요?”

16583793218805.jpg

“…….”

16583793218809.jpg

“둘만 있을 땐, 좀 솔직해져도 괜찮잖아요.”

거듭된 채근에 그가 실소하듯 웃었다.

16583793218805.jpg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16583793218809.jpg

“거짓말하지 마!”

답답한 마음에 언성이 높아졌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이 미묘한 거리를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16583793218809.jpg

“내 꿈에 나타나서 늘 나를 구해주고, 지금도 지켜준 거.”

16583793218805.jpg

“…….”

16583793218809.jpg

“전부 당신이 한 일이라는 거 알아.”

가뜩이나 적막하던 주변이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작은 소음마저 사라져버린 공간엔 긴장감만 맴돌았다.

강이 산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16583793218809.jpg

“말해줘요. 내 꿈. 어떻게 한 거예요?”

그 모습이 마치 다그치는 것 같기도 했고, 간절히 애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동안 이렇다 할 대꾸가 없던 그는 피곤하다는 듯 손끝으로 제 미간을 문지르다 마지못해 답했다.

16583793218805.jpg

“잘 잤으면 됐잖아.”

16583793218809.jpg

“…….”

16583793218805.jpg

“굳이 이유를 알아야 직성이 풀리겠어?”

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1초가 1년처럼 늘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

놀라서 붙어버린 입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던 산이 곧 안타깝다는 듯 실소했다.

체념처럼 흘러나온 웃음과 함께 잠잠한 고백이 이어졌다.

16583793218805.jpg

“그래. 내가 먹었어.”

16583793218809.jpg

“……뭐?”

16583793218805.jpg

“맛있더라. 네 꿈.”

그의 붉고 야살스러운 혀끝이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것처럼 제 입술을 훑었다.

16583793321003.jpg

 

16583793218805.jpg

“아직도 모르겠어요?”

엄지로 젖은 입술을 가볍게 훔친 산은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16583793218805.jpg

“지금 감방에 가 있는 그 남자가 했던 말을 떠올려봐.”

그 말에 애써 묻으려던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재생됐다.

16583793218821.jpg

‘너한테서는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 그러니까 한입만…… 제발 한입만 먹게 해줘.’

16583793218821.jpg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서 그만…….’

16583793218821.jpg

‘그렇잖아요.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는데, 냄새만 맡으라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요.’

난폭하게 기억을 끄집어낸 그가 마침내 도출한 사실을 들려주었다.

16583793218805.jpg

“그건 전부 당신 꿈에 대한 거였어.”

발끝에서 시작된 섬찟함이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도달한 느낌이었다.

……그 남자가 했던 말이 전부 내 악몽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16583793218805.jpg

“목숨을 노렸겠지.”

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16583793218805.jpg

“금기를 깨는 일보다 식욕을 참는 게 더 어려운 하급 잡귀.”

16583793218809.jpg

“…….”

16583793218805.jpg

“그게 놈의 정체였으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