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9. 이름을 부르면 (9/118)


#09. 이름을 부르면
20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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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노렸겠지.”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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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깨는 일보다 식욕을 참는 게 더 어려운 하급 잡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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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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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놈의 정체였으니까.”

느른하게 떨어진 목소리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손끝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강은 마치 눈 뜬 채로 가위에 눌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굳어버린 그녀를 앞에 두고, 그가 몸을 바로 세웠다.

닿을 듯 가까웠던 간격이 멀어지고, 산은 놀람과 혼란에 정처 없이 떨리는 강의 눈을 고요히 내려다보았다.

이럴 줄 알았지.

피차 모르고 지내는 게 서로한테 더 좋을 일이었다.

판단을 마친 그는 이쯤에서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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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되겠어요?”

잔재처럼 남아 있던 미소가 걷힌 자리엔 서늘한 그늘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황 파악이 덜된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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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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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답은 정해져 있고, 나는 그럴듯한 답만 들려주면 되는 거였잖아.”

그제야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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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많이 아픈 것 같은데, 이참에 조금 더 쉬는 게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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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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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김에 제대로 치료도 좀 받고.”

산이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고 있다는걸.

그러니까 방금 한 말은 그냥 미친 인간 장단에 맞춰 미친 소리 좀 해봤다는 뜻이다.

물론 그런 것치곤 너무 구체적이었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아마 개의치 않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홀리듯 넘어가버린 주변인만 봐도 산이 어떤 식으로 이 상황을 수습할지 알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그게 어떤 비밀이든, 그는 지금 그것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는 중이라는걸.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녀는 마음을 뒤흔들던 혼란을 빠르게 다잡고 냉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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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 잡아뗄 생각이면 그만둬요.”

벼랑 끝에 서 있는 게 비단 자신만은 아닐 것이다.

저쪽도 분명 원하는 게 있어 접근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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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아주 확실히 알았으니까.”

그 말에 산이 내리깐 눈꺼풀을 느리게 밀어 올리며 다시 시선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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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니면?”

붉은 입술 사이로 바람 같은 웃음이 흩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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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눈엔 내가 뭐로 보이는데?”

부드럽게 미소가 덧그려졌지만, 그것은 사실 협박에 가까웠다.

더는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아무것도 알려 들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

하지만 그런 협박은 이제 통하지 않았다.

멀어지려는 그의 검은 타이를 움켜쥔 손이 빠르게 그것을 당기며 도로 두 사람의 거리를 좁혔다.

코끝이 닿을 듯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강은 날카롭게 눈을 뜨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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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서워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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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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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 정체를 까발리기라도 할까 봐?”

지척에서 바라본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언제 겁먹었냐는 듯이.

그런 강을 가만히 마주하던 산은 그녀의 하얀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덮었다.

그러고는 조이듯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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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서운 건 하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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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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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못 지켜내는 거.”

첨예하게 마주한 두 사람의 시선이 한치의 물러남도 없이 대립했다.

무겁게 밀도를 높이던 공기의 흐름은 자리를 비웠던 삼영이 돌아오면서 원래의 자리로 흩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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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게 얼마 만이야!”

강의 메이크업을 전담하고 있는 원장이 반갑게 그녀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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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잘 지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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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잘 지냈지. 자기는 이제 괜찮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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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괜찮아요.”

창백할 만큼 하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원장이 안쓰럽다는 듯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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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얼마나 놀랐을 거야. 미친놈이 왜 이렇게 많은지. 하여간 그런 놈은 아주 제대로 콩밥 먹여야 해.”

열변을 토하던 원장이 뒤늦게 산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도 모르게 ‘어머.’ 하고 감탄을 뱉은 그녀가 얼른 다가와 속삭이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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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뒤에 포스 쩌는 오빠는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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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경호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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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원이라고? 정말? 난 또 신인인 줄 알았네. 너무 잘생겼다.”

원장은 저런 미모로 왜 연예인을 안 하냐며 호기심 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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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사심 그만 드러내고 얼른 일해요. 이러다 복귀 첫날부터 늦겠네.”

곁에 있던 삼영이 적당히 그녀의 관심을 차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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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내 정신 좀 봐! 미안, 미안. 매니저님도 잘 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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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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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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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산을 바라볼 때와 확연히 달라진 온도 차와 영혼 없는 미소에 그도 기계 같은 웃음으로 화답해주었다.

원장은 곧 처음 보는 디자이너 한 명을 소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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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쪽은 새로 온 우리 헤어쌤.”

그녀가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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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은입니다.”

붉은 오렌지 톤의 짧은 커트 머리와 보랏빛 립 컬러가 인상적인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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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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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이 훨씬 미인이시다. 저 진짜 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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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감사합니다.”

꽤 친화력이 좋은 그녀가 살갑게 인사를 건네곤 강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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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푸 먼저 해드릴게요. 2층으로 오시겠어요?”

직접 샴푸를 해주겠다는 지은의 말에 곁에 있던 원장이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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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은 쌤 두피 마사지 한번 받아봐. 어디서 그런 기술을 배워왔는지 손맛이 아주 야무지다니까?”

작게 웃어 보인 강이 그녀를 따라 2층에 있는 샴푸실로 이동했고, 삼영은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산이 멀어지는 두 여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2층에 도착한 그녀는 늘 앉던 자리에 누웠다.

디자이너는 강의 얼굴에 물이 튀지 않도록 수건을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물 온도를 확인한 뒤 머리를 감겨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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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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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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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은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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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괜찮아요.”

손맛이 좋다는 원장의 말이 빈말은 아니었던 듯, 그녀는 정말로 손이 야무졌다.

경직된 근육이 노곤하게 풀어지며 저도 모르게 잠이 들 것 같았다.

그런데 말없이 두피를 지압하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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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아픈데?’

두피에 손톱이 박히는 것만 같은 통증에 미간이 살짝 좁아질 때쯤.

몽롱하게 눈이 풀려 있던 디자이너의 숨이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향기를 들이마시듯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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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벌어진 입술 사이엔 고인 침이 흐를 것처럼 흥건했고, 반쯤 눈이 돌아간 그녀는 이내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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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냄새.”

강의 목을 주무르던 오른손이 어느덧 느리게 빠져나왔다.

까맣게 칠한 손톱이 허리에 매고 있던 툴 벨트로 향했고, 날카로운 미용가위가 그녀의 손에 들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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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어…….”

먹을 거야. 먹을래…….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치켜든 가위의 날이 예리하게 빛났다.

차가운 날붙이가 빠르게 강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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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

뒤에서 목덜미를 스치며 나타난 커다란 손이 벌어진 입을 틀어막았다.

순식간에 디자이너의 몸이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작은 소리 하나 없이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고, 그 모습은 너무 빨라 마치 어둠에 통째로 몸이 빨려 들어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강은 여전히 얼굴에 수건을 덮고 뜨겁게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었다.

물소리 때문에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말은 듣지 못한 상태였다.

묘한 한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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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조용히 디자이너를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한참이나 움직임이 없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뭐 가지러 가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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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디 계세요?”

강이 재차 불러봤지만, 여전히 고요했다.

그 시각.

불도 켜지지 않은 어두운 비품실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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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지르면, 죽일 거야.”

부드러운 목소리가 선득한 살기를 드러냈다.

손에 들고 있던 가위는 어느덧 제 목을 겨누고 있었다.

잘 벼려진 날의 끝이 금방이라도 펄떡이는 경동맥을 꿰뚫고 들어갈 듯 아슬아슬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선 건 본능적 직감에 가까운 거였고, 온몸을 압박해오는 위압감에 몸이 굳어 손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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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울음에 가까운 신음과 함께 사정없이 떨려오던 여자의 눈동자가 제 왼쪽을 향해 움직였다.

턱뼈를 으스러뜨릴 듯 압박하고 있던 커다란 손 뒤로 어둠에 잠겨 있던 얼굴이 반쯤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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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것들은 이래서 싫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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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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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도 모르고 아무거나 먹으려 들잖아.”

붉게 빛나는 눈동자가 그녀를 지그시 응시하며 귓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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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겁에 질려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의 눈에 새빨간 핏발이 섰다.

잠시 후.

다소 상기된 얼굴의 디자이너가 비품실을 빠져나와 강에게 다가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기는커녕 한 발 내딛는 것도 힘들었지만, 뼛속까지 새겨진 공포심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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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푸, 마저 해드릴게요.”

시야가 차단된 강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저 서두르는 손길에서 알 수 없는 조급함이 느껴졌을 뿐.

* * *

황 대표는 복귀 첫날이라고 봐주는 일 따위 없었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그녀의 활동 중단으로 인해 미루거나 포기해야 했던 일들의 손해를 메우기 급급했다.

숍을 나온 강은 잡지사 인터뷰로 첫 스케줄을 시작했다.

곧바로 회사로 돌아가 간단한 미팅을 가졌고, 저녁엔 황 대표와 업계 관계자의 선약 자리에 동행해야 했다.

꽤 긴 하루였다.

낮에 잠시나마 눈을 붙이지 못했다면, 진작 차에서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삼영은 무사히 스케줄을 마친 그녀를 격려하며, 빠른 귀가를 위해 서둘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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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 냉장고 비었지?”

그가 간단한 먹을거리라도 사다 주겠다는 걸 산이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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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오늘은 빨리 쉬게 해주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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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편이 좋겠지?”

그 말 한마디에 삼영이 깔끔히 포기하고 돌아섰다.

이제 이런 상황이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아 강은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그렇게 그가 떠나고, 두 사람은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카드가 인식된 뒤, 위아래로 위치한 층의 버튼이 차례로 눌렸다.

오늘따라 폐쇄된 공간의 고요가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먼저 침묵을 깬 건 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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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내가 부르면 온다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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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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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제가 어떤 방법으로 부르면 될까요.”

다소 이상한 질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산은 개의치 않고 대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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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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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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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부르면 난 올 수밖에 없으니까.”

이상한 질문만큼이나 이상한 대답이었다.

이름을 부르라니.

띵-

도착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천천히 그곳을 빠져나온 강이 고개를 돌려 산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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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당신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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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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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당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을 만큼,”

외계인이든, 도깨비든, 하물며 상상도 못 한 정체라고 해도.

자신의 간절함이 닿기를 바랐다.

물론 한산이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그저 헛소리에 불과할 이야기들이겠지만,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그저 고요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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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든 그쪽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는 내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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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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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놓치지 않기를 바라.”

강의 당부에 산은 그림처럼 유려한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굳게 다물려 있던 붉은 입술을 열어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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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서서히 늘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완전히 문이 닫힐 때까지 서로를 묶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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