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이사오(245)
(26/118)
26. 이사오(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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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사오(245)
2022.07.28.
“널 보낸 놈한테 가서 전해.”
「끄어어억…….」
“서강은 내 거야.”
「……!」
귓가에 흘러드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집적대다 잡히면 곱게 못 죽을 줄 알아.”
칼날처럼 박혀 들었다.
쿠당탕!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놈의 얼굴에 구둣발이 올라오더니, 뒤로 꺾인 팔 한쪽이 곧장 팽팽하게 당겨졌다.
「자, 잠깐…… 아악! 으아악!」
애원할 새도 없이 팔 하나가 뜯겨 나가고,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선혈이 낭자하게 주변을 물들였다.
「으아아악!」
놈이 너덜대는 어깨를 감싼 채 게거품을 물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사지를 날려버리는 산의 난폭함에 기겁한 모양새였다.
이이…… 괴물 같은 놈! 잔인한 놈!
학을 떼며 도망치려던 놈의 옆구리를 향해 발이 날아들었다.
뻐억!
「칵!」
복부를 걷어차인 녀석은 비명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튀어나온 기둥에 부딪혔다가 떨어졌다.
걸레짝이 된 놈은 반쯤 남은 심장을 움켜쥔 채, 필사적으로 자신이 나온 구멍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제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였다.
「학……! 하악!」
이러다 죽겠어! 저놈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해……!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여가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산이 느리게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 안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가 팔을 휘감듯 피어오르더니 기다란 검의 형상을 띄었다.
말을 전하라고는 했지만, 그것도 놈이 살아 돌아갔을 때의 일일 것이다.
이내 화살처럼 날아간 검은 칼날이 번개처럼 녀석의 가슴을 관통했다.
「크아아아악!」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치던 그것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고꾸라지듯 블랙홀 안으로 사라졌다.
그는 곧 바닥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던 강을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피가 묻은 손끝으로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져주었다.
“다 끝났어.”
“…….”
“집으로 가자.”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
.
.
잠에서 깨어난 강은 곧 커다란 압박감에 눈을 크게 떴다.
간신히 고개만 돌려보니 산의 커다란 팔이 제 목 언저리를 누르고 있는 게 보였다.
“……너 뭐해?”
그 말에 감겨있던 눈을 느리게 밀어 올린 그가 몽롱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꾸도 하지 않는 산의 얼굴이 어딘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피곤해 보인달까?
뭔가 물으려고 했지만, 그보다는 우선 제 몸을 짓누르는 커다란 팔을 치우는 게 먼저였다.
“일단 이것 좀……!”
강이 그의 팔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산은 비켜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되레 힘을 주어 버티고는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오늘은 지우지 말 걸 그랬나 봐.”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기억을 못 하니까 억울하잖아.”
“……?”
“내가 어떻게 널 구했는지 알면 조금이라도 고마워했을 텐데.”
“내 꿈에 들어왔었어?”
산이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강이 제 가슴 위에 얹어진 그의 팔을 두 손으로 힘껏 들어 옮기며 말했다.
“알았으니까, 일단 이것 좀 치우고 얘기하자고.”
산이 못 이긴 척 비켜주자, 강이 벌떡 일어나 침대에 바로 앉았다.
“자. 이제 얘기해 봐.”
“…….”
“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지만 산은 일어날 생각까지는 없는 듯 반쯤 엎드린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얼른 안 일어나?”
강이 채근하자, 그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잡혔다.
“옆자리 비워준다며.”
반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가 조금 황당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뭐?”
“네 옆에서 엎드려 자는 거 미안해서 다음엔 옆자리 내준다고, 네가 그랬잖아.”
뒤늦게 말뜻을 이해한 강이 외쳤다.
“야! 그건!”
얼굴에 열감이 확 느껴졌다.
“방 하나 내어준다는 뜻이었지! 누가 옆에서 끌어안고 있으래?”
“닿아 있지 않으면 네 꿈을 먹을 수가 없는데?”
“……!”
아. 그러면 할 말이 없어지는데.
말문이 막힌 강을 빤히 쳐다보며 산이 말했다.
“꿈에서 뼈까지 씹어 먹힐 뻔한 거 구해놨더니, 타박이나 하고.”
“뼈까지…… 씹어 먹혀?”
“나도 어디 하나 부러져서 나올 걸 그랬나 봐. 그러면 네가 미안해서라도 이렇게 타박 안 할 텐데.”
계속되는 그의 말에 강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오늘따라 꿈의 스케일이 어마어마했나 보다.
그곳에 나타난 산이 늘 그랬듯 저를 구해줬던 것 같고.
근데 꿈에는 대체 왜 들어왔던 걸까?
깔끔하게 악몽만 흡수해가면 될 텐데.
아니. 그보다 누구한테서 자신을 구해냈다는 거지?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그중 가장 급한 질문이 먼저 튀어나왔다.
“네가 내 꿈속에서…… 다칠 수도 있다는 얘기야?”
“네가 꿈을 꾸는 거지. 내가 꿈을 꾸는 게 아니니까.”
그녀의 눈동자가 급히 흔들렸지만, 그는 남 얘기라도 하듯 평온히 말을 이었다.
“너는 꿈에서 죽어도 죽지 않겠지만, 나는 아니야.”
“…….”
“꿈속의 내가 죽으면, 현실의 나도 죽어.”
산의 말에 강은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죽는다고?”
“응.”
“진짜 죽어?”
“그래.”
“…….”
“재가 되어 영원히 사라지겠지.”
아무렇지도 않게 제 죽음을 말하는 산을 보며 강의 충격은 최고점을 찍었다.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굳은 듯 그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서 커다란 물방울이 만들어졌다. 그러더니 이내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내내 표정의 변화가 없던 산의 얼굴에도 균열이 일었다.
“뭐야.”
벌떡 일어난 그가 당황스럽다는 듯 물었다.
“너 지금 울어?”
고집스럽게 입술을 물고 있던 강의 눈에서 눈물이 샘처럼 퐁퐁 솟아났다.
그러다 결국 흐느끼는 소리가 새고 말았다.
“흑…….”
“왜 울어.”
“흐응…….”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산에게 말했다.
“너 죽으면 나는 어떡해.”
“뭐?”
“너 죽으면 내 악몽은 누가 먹어주고, 나는 누가 지켜주냐고. 흐윽…… 이제 좀 사람답게 사나 했는데, 네가 없어지면 내 삶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거잖아아아.”
서러움을 토해내던 강이 엉엉 운다.
그 모습에 그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만 같은 충격을 느껴야 했다.
그러다가 이내 완전히 그녀의 말을 이해한 듯 되물었다.
“……내가 걱정돼서 한 얘기가 아니라, 네 걱정하느라 그런 거였어?”
“으흑. 그럼 내가 그새 너한테 정이라도 들어서 이러는 걸까 봐?”
“…….”
“꿈도 야무지네! 흐어엉!”
산은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 애써 상황을 부정해봤다.
“너 지금 내 걱정한 거 괜히 민망해서 이러는 거지?”
“내가 죽게 생겼는데, 민망은 무슨 민망!”
꽥 소리친 강이 꺼지라며 발버둥을 쳤다.
그녀가 막무가내로 휘두른 주먹에 어깨를 얻어맞은 그가 멍하니 강을 바라보았다.
맞은 건 어깬데, 왜 뒤통수가 얼얼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러다 곧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생각보다 매정한 서강의 대답이 역시나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마터면 감동이라도 받을 뻔했지 뭔가.
그는 가만히 강이 삼영이나 반을 대할 때와 자신을 대할 때를 비교해보게 되었다.
딱히 자신에게 못되게 굴거나 차갑게 굴진 않지만, 확실히 측근인 인간들을 대할 때와는 달랐다.
그 모든 게 그저 필요에 의한 비즈니스였다고 생각하니 뭐랄까.
머릿속이 차가워진다.
생각해보면 저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입장인데, 그녀가 우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다른 걸 기대하기라도 한 걸까?
어이가 없어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 그를 강이 흘겨보았다.
“넌 웃겨, 이 상황이? 남은 인간이야 어떻게 살든 너만 죽으면 다 끝이다, 이거야?”
“그럼 내가 죽게 생긴 마당에 네 걱정까지 해야 해?”
“해!”
그녀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지른 대답에 산은 오늘 여러 번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냐?”
“그래야 안 죽을 거 아니야!”
“…….”
“어쨌든 절대 죽지 마. 절대로, 절대로 죽으면 안 돼.”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그녀가 당부했다.
“예고도 없이 죽지도 말고, 내 앞에서 갑자기 사라지지도 말고, 내가 부르면 무조건 와.”
“나 좀 헷갈리는데.”
“헷갈릴 게 뭐 있어? 내가 그냥 너 없으면 안 되겠다는데! 필요하다는데! 죽지 말라는데!”
산은 그런 강을 무연히 바라보다가 이내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저한테 일말의 애정이라도 생긴 건가 싶다가도, 아니면 또 그만일 일인데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 안 죽고 오래오래 버텨볼게.”
“진짜지?”
“어. 그러니까 너도 죽지 말고 살아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가 손가락을 걸어온다.
“약속한 거야. 나보다 먼저 죽지 마.”
“막무가내의 끝판왕이군. 너 죽으면 나는 뭐 먹고 살라고.”
“내가 죽으면 넌 다른 꿈이라도 먹고 살 수 있잖아.”
“고기만 먹다가 흙 퍼먹고는 못 살 것 같은데.”
그가 단호히 대답했다.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강은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
“한날한시에 죽는 거야, 우리.”
“…….”
한날한시.
함께.
산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를 말없이 곱씹었다.
그러다 보니 어쩐지 조금 웃음도 났다.
짧디짧기만 한 인간의 수명과 불멸도 가능한 몽마의 수명을 어떻게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볼 수가 있겠냐만.
지금은 딱히 그런 걸 따지고 들 때는 아닌 것 같았다.
중요한 건.
“그래. 그러자.”
지금 우리는 서로가 죽지 않길 바란다는 점에 있으니까.
두 사람은 그렇게 약속했다.
한날한시에 같이 죽자고.
올무처럼 서로를 옭아매며 손가락을 걸었다.
.
.
.
「학…… 하악!」
간신히 목숨을 건진 놈은 연기 같은 검에 심장이 꿰뚫린 채로 끝도 없는 어둠을 헤맸다.
끈적한 검붉은 피가 넝마가 된 녀석의 입과 코, 어깨와 가슴에서 뚝뚝 흘러내렸다.
출구가 없는 터널 같던 어둠을 걷고 또 걷던 놈의 발치에 빗장뼈 하나가 밟혔다.
다른 발끝에 챈 해골이 데구르르 굴러 어딘가에 부딪혔다.
붉은 눈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곳엔 인간의 뼈가 끝도 없이 쌓인 거대한 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검은 슈트 타입의 제복을 걸친 남자가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남자는 단추를 모두 연 재킷과 검은 타이를 한 방향으로 흩날리며 말없이 아래를 주시했다.
“…….”
아득히 먼 아래에 무릎을 꿇고 간신히 버티고 있던 놈이 그 엄청난 중압감을 견뎌내며 이를 악물었다.
「크…… 커윽!」
울컥 올라온 무언가가 입 밖으로 후두둑 쏟아졌다.
검은 손등 위로 붉은 피가 낭자했다.
눈을 마주치고 있지 않은데도, 공기가 모조리 사라져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숨이 막혔다.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어마어마한 공포심이 가시덤불처럼 몸을 감고 올라와 온몸을 조이고, 독이 발린 가시가 뼛속까지 박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해봤지만, 마음대로 죽기에도 이미 늦은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