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범인 색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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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범인 색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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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범인 색출
2022.08.11.
“강아.”
“왜.”
“오빠는 여기 절대 뜰 생각 없어.”
“그러니까 왜?”
“…….”
저것 봐. 또 웃기만 하지.
결국 또 도돌이표다.
체념한 그녀가 이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오빠, 그럼 이번 생일 때 내가 차라도 바꿔줄게.”
“야 인마. 돈이 썩냐? 차를 왜 바꿔.”
“목숨이랑 바꾸는 것보단 낫잖아.”
깜빡이도 없이 들어온 팩폭에 삼영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하지만 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도로 위에서 몇 번이나 퍼졌었다며. 가지고 있어봤자, 유지비만 더 나온다고.”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사실 딱히 차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강의 말처럼 수명을 거의 다한 차라 조만간 처분하려고도 생각하던 참이었고.
“회사 차 타고 다니고, 쉬는 날은 대중교통 이용하면 돼. 일단 나갈 일도 거의 없고.”
“진짜 이상해. 왜 해준대도 안 받아?”
“필요 없으니까. 나 진짜 괜찮아, 강아.”
“이참에 황 대표님한테 욕심부리는 법 좀 배워보는 게 어때?”
“야. 배울 게 없어서, 그런 걸 배우냐? 그것도 그 놀부 같은 인간한테?”
“……하아.”
노총각으로 죽을 팔자인 오라비 보듯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식은땀을 흘리던 삼영이 마지못해 대꾸했다.
“아이, 알았어! 알았어! 정 그러면 나중에 나 장가갈 때, 그때 좋은 거 해줘. 됐지?”
“여자친구는 있고?”
“어허! 이 오라비를 뭐로 보고! 마! 내가 바빠서 안 만드는 거지. 작정하고 멋 부리면 끝장난다, 진짜?”
“말이나 못 하면.”
강의 애정 어린 타박에 실실 웃던 그가 열심히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우리 주인집 아줌마 정육점 하는 거 알지? 고기가 진짜 최고야. 이거 봐. 때깔 죽이지?”
“여기서 먹는 고기는 항상 맛있어.”
“그거 봐. 우리 집만 한 곳이 없다니까?”
신이 난 삼영이 빨랫줄에 걸어놓은 앵두 전구의 불을 밝혔다.
밤이 되니 화려한 도시의 야경이 옥탑 아래로 멋지게 펼쳐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대가 높다 보니 풍경 하나만큼은 최고였다.
“산아. 너도 빨리 와!”
달궈진 불판에 고기를 올리며 삼영이 외쳤다.
야경이 가장 잘 보이는 옥상의 한구석에 서 있던 산은 그 소리를 듣고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딴생각을 하느라 듣지 못한 듯 보였다.
“산이 오늘 이상하네.”
“왜?”
“그냥. 좀 생각이 많아 보여서.”
삼영의 말에 강도 고개를 돌려 산을 바라보았다.
표정이 없는 얼굴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정말로 생각에 골똘히 잠긴 사람 같기도 했다.
“산아.”
그녀가 불러보았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다.
“한산!”
조금 더 큰 소리를 부르자, 그제야 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빨리 와. 고기 다 식겠다.”
“그래! 고기는 뜨거울 때 먹어야 해!”
강과 삼영이 나란히 손짓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의 입가에 곧 옅은 미소가 번졌다.
불어오는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넘긴 산이 걸음을 돌려 다가왔다.
“어휴! 옥탑방도 아주 그냥 런웨이로 만들어버려!”
진저리를 치던 삼영이 집게로 고기를 뒤집으며 외쳤다.
“지겨워, 정말! 너의 잘생김!”
“죄송해요.”
딱히 할 말이 없어 건넨 사과에 강이 깔깔 웃으며 넘어갔고, 삼영은 얼굴이 더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사과하지 마, 인마! 미안하면 머리숱이나 좀 나눠 주던가!”
분노한 그의 샤우팅과 배를 잡고 웃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치이이익-!
달궈준 불판에 올려진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어갔다.
삼영은 덜어온 약고추장에 된장을 섞은 뒤 청양고추 다진 것을 넣어 내놓았다.
그리고 강은 접시에 놓인 갖은 장아찌와 정체 모를 나물을 보며 물었다.
“얘네는 다 뭐야?”
“그거 내가 봄에 받아서 말려뒀다가 데친 거야.”
“이름이 뭔데?”
“민들레도 있고, 방풍나물도 있고, 곰취도 있고.”
“그럼 이 생강같이 생긴 장아찌는?”
“돼지감자.”
주인집 아저씨가 당뇨 때문에 직접 길러 먹는 채소라 한 바가지 받아뒀다가 장아찌로 담가둔 거였다.
하여간 삼영의 집에 오면 없는 게 없었다.
“오빠.”
“응?”
“내가 할머니는 없지만, 만약에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가 계셨다면 딱 이랬을 거 같아.”
“밥상머리에서 말 많이 하는 거 아녀. 얼른 먹어.”
그가 놀림의 싹을 자르고는 잘 구워진 삼겹살 한 줄을 집게로 들었다.
그러고는 큼지막하게 잘라 강과 산의 앞접시 위에 가져다주었다.
접시에 놓인 삼겹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산이 말했다.
“형.”
“왜.”
“제가 할머니는 없지만-”
“시끄럽다.”
이것들이 이제 쌍으로 어른을 놀린다며, 그가 성을 냈다.
“잘 먹을게, 오빠.”
강이 웃음을 꾹 참고 젓가락으로 그가 놓아준 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산도 따라서 젓가락을 들었다.
삼영은 아기새를 먹이는 어미새의 심정으로 더욱 열심히 고기를 구웠고, 바쁘게 굽다가 집게로 고기 두 점을 겹쳐 제 입에 넣기도 했다.
“허뜨, 허우 뜨거……!”
입천장이 홀라당 까진 그가 눈가에 눈물방울을 매단 채, 고기를 구워 날랐다.
그러다 채소는 일절 건드리지도 않고 있는 산의 입에 직접 나물이며 쌈을 싸서 들이밀기도 했다.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어허. 그 입 벌리지 못할까.”
“…….”
“우리 집에선 편식 안 통해.”
부담스러울 정도로 들이미는 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먹어야 했다.
이게 무슨 맛인가.
말린 나물 특유의 쿰쿰하고 쌉싸래한 향에 씹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필요에 의해 인간의 음식을 주식처럼 먹으며 지내 온 세월이 있지만, 이런 건 먹어 본 적도 없었고, 먹어 볼 기회도 없었다.
그는 씹기를 포기한 쌈을 입에 문 채 옆에 앉은 강을 바라보았다.
손톱만 하게 자른 고기를 장아찌며, 쌈에 싸서 잘도 먹는다.
……생긴 건 세상 까칠한 편식대마왕 같이 생겨서.
입 짧은 서강이 그나마 삼영의 집에 올 때만큼은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는 게 무슨 뜻이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의 음식엔 애정과 정성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서강은 어쩌면 배가 고팠던 게 아니라, 애정이 고팠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고야 이 맛도 없는 게 자꾸 들어갈 리가 없다.
“어때. 맛있지?”
삼영이 물어왔다.
산은 조용히 그의 왼손에 들린 쌈 채소 무더기를 바라보았다.
맛있다고 했다가는 또 저걸 들이밀 작정인 거다.
“죄송하지만, 제 취향은 아닌 것 같아요.”
“취향은 바뀌기도 해.”
“아니요. 안 바뀔 거 같습니다.”
“바뀐다니까?”
“안 바뀝니다. 절대.”
먹이려는 자와 먹지 않으려는 자 사이에 팽팽한 기 싸움이 이어졌다.
가운데 앉은 강은 당근을 팝콘처럼 먹으며 두 남자의 신경전을 관망했다.
잠을 잘 자게 된 이후, 그녀에겐 최고로 맛있는 한 끼를 먹은 날이었다.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건 음식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에서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식사는 밤 9시가 거의 다 된 시간에 끝이 났다.
빈 막걸리 병이 다섯.
그중 네 병 반을 해치운 삼영이 평상 위에 불쌍하게 누워 중얼거렸다.
“애두라…….”
딸꾹.
“나도 겨론하고 싶다…….”
앙상한 팔을 모아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고 뒹굴던 그가 잠꼬대를 했다.
“내가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어도, 지금쯤 너네 같은 자식이…….”
딸꾹.
“나의 첫사랑 그녀는 꽃처럼 웃으며 내게 말했지…….”
딸꾹.
“삼영아. 나 아이를 가졌어…….”
청승맞게 중얼대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호두처럼 변한 턱을 발발 떨어대던 그가 코를 훌쩍이며 ‘어떻게 나한테 이뤌 수 이쒀…….’를 연발했다.
불쌍한 우리 오빠. 술만 취하면 저 얘기다.
미간을 좁힌 채 가만히 지켜보던 강은 이쯤에서 삼영의 존엄성을 지켜주기로 했다.
“내가 치울 테니까, 네가 오빠 이불에 좀 눕혀주고 와.”
강의 말에 산이 말없이 일어났다.
그는 새털같이 가벼운 삼영을 공주님처럼 안아 든 채 좁은 옥탑방 안으로 사라졌고, 그녀는 묵묵히 저녁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뒷정리를 마친 두 사람은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와 언덕 아래 세워둔 차로 향했다.
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헬스장 갈 건데.”
많이 먹진 않았지만, 무려 삼겹살을 먹었으니 먹은 만큼 소비해주는 게 맞다.
살이야 조금만 마음을 놓아도 찌기 마련이니.
그녀의 말에 산이 차 키를 꺼내 누르며 대답했다.
“태워다 줄게.”
“넌 집으로 갈 거야?”
“볼일 좀 보고.”
……아. 배 채우러 가는구나.
이제 굳이 묻지 않아도 으레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차는 아파트 근처에 있는 짐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린 강이 열린 조수석 창문으로 손을 흔들었다.
“좀 이따 봐.”
“올라가서 문자 하나 남겨.”
“왜?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지.”
웃자고 던진 말에 오싹한 답이 돌아왔다.
“어휴, 무슨 말을 못 해. 하여간.”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이름 불러.”
“알았어.”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려던 강이 무언가 생각난 듯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다시 몸을 돌린 뒤, 창문에 손을 짚은 채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있잖아.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또 뭐.”
“내가 부르면 어떻게 나타나는 거야?”
가능하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나타나려고 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문을 통하지 않는 경우엔 어떻게 나타나는 건지가 전부터 궁금했다.
산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림자.”
“그림자?”
“어. 나는 너한테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는 그림자를 통로로 이용해.”
그러니까 어디든.
어둠만 있다면 닿을 수 있다고.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알겠다며 살짝 웃어 보이곤 곧장 뒤돌아갔다.
산은 지하 주차장에서 강의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가, 그녀가 들어간 걸 확인한 후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온 길을 되돌아갔다.
바아앙-
속력이 급속도로 올라갔다.
강이 잠들기 전에 돌아오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목적지는,
“…….”
해성 보육원이었다.
.
.
.
스산한 밤.
빛이 사라진 밤의 숲은 찬란한 색을 모두 잃고 잠들어있었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는 도로를 지나고, 하늘이 가려질 만큼 빽빽이 우거진 숲을 지나면 익숙한 간판이 나온다.
산은 초입에 차를 세운 채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건물의 불이 꺼지고, 보육원의 모두가 잠들 시간을.
그러다 드디어 가장 밝게 빛나던 메인 등이 꺼졌다.
팟.
입구를 환하게 비추던 빛이 사라지고, 보육원은 짙은 회색빛에 잠겼다.
순식간에 찾아온 적요가 시공간을 뒤덮었다.
낯설지 않았다.
강의 꿈에서 본 그 장면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달칵.
차에서 내린 그의 구둣발이 자갈밭 위를 조용히 내디뎠다.
“…….”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자, 4층 복도에서만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동안 그곳을 응시하던 산이 이내 까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범인을 색출해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