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 너는 늘 예상을 벗어났으니까 (51/118)


#51. 너는 늘 예상을 벗어났으니까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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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

조심스럽게 산을 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저 제 손을 끌어다 자신의 허리를 감싸게 해놓고, 조금 더 틈을 없애 안을 뿐이었다.

말 보단 몸으로 보여주는 게 늘 익숙했던 그라 이해했다.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던 자신의 진심을 잘 받아들였다는 뜻일 거다.

뒤늦게 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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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울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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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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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덕분에 원하는 걸 얻고 있으니까.”

그는 이런 순간에도 선을 지키기 위해 관계를 상기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잊지 말아야 할 건, 잊지 말자는 듯.

인간보다 이성과 본능의 경계가 현저히 흐릴 그가 현재가 아닌 미래를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우리는 때가 되면, 서로를 잊게 될 테니까.

그래서 강은 산의 이런 반응이 서운하지는 않았다.

단지 지금은 그저 고맙단 인사를 전하고, 그가 가진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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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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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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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위로라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그냥.”

그녀의 손가락이 감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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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들은 손가락에 입을 맞추는 걸로 인사를 대신한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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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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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나 위로도 이렇게 전하나?”

언젠가 강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며, 몽마들은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고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분명 장난이라고 밝혔고, 속았다는 사실에 눈에서 불을 켜던 게 그녀였는데.

제 손가락을 쥐며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장난이라고 했던 걸 잊은 건가 싶었다.

그래서 재차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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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내가 장난이라고…….”

촉.

하지만 강은 그의 손가락을 쥐곤 그대로 그의 중지와 약지 끝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가만히 산과 눈을 맞추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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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알아. 장난이었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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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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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냥 너에 대한 내 애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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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도망자 신세로 어떻게 여기까지 버텨왔을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남았을지가 눈에 훤했다.

자신을 만나러 오기까지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초라는 두려움.

또 유일이라는 외로움.

다는 몰라도 적어도 반 정도는 그의 고단했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

그저 그가 제게 그랬듯,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위로에 놀란 건 오히려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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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어?”

그렇게 묻는 강의 얼굴에 다분히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얼굴이라도 붉혔다간 두고두고 놀려먹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전혀 얄밉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라 문제라면 문제였다.

산은 뒤늦게 실소했다.

쉽게 가려고 다 털어놓은 거였는데, 어쩐지 상황이 더 복잡해진 느낌이라 그랬다.

아니. 복잡한 건 내 마음인가?

잠시 혼란에 빠졌던 그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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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랄 일도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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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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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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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예상을 벗어났으니까.”

 

.
.
.

강이 잠든 건 자정을 훌쩍 넘긴 후였다.

산은 여느 때처럼 그녀를 가까이서 지켜보다, 곁에 누웠다.

잠든 강을 평소보다 다정하게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서서히 자신의 모든 기척을 감추었다.

문밖에서 떠날 생각을 안 하고 있는 놈에게 섣불리 제 정체를 드러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발현된 악몽은 평소보다 아주 희미한 형태로 조금씩 그에게 흘러들고 있었다.

덕분에 평소보다 악몽을 흡수하는 시간이 배 이상으로 늘어났지만, 어차피 동이 틀 때까지 곁에 있을 예정이라 상관없었다.

물론 경계를 늦추는 일도 잊지 않았다.

혹시나 앞뒤 안 가리고 쳐들어올 만큼 대범하거나 막 나가는 놈이면 골치아파질 테니까.

하지만 밖에 있는 놈은 꽤 신중한 녀석인 것 같았다.

아니면 쳐들어올 수 없을 만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고.

근처에 수인이 로미 하나라거나, 또 천인이 있지 말란 법도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시간이 흐르고, 온전히 강의 꿈을 다 삼켰을 땐 멀리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끼익 -

발코니 창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흘러들었다.

산은 조용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자박자박.

익숙한 기운이 침대 근처로 조심스럽게 다가와 강의 등 뒤에 섰다.

은빛 늑대의 모습을 한 로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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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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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끌어안고 있는 둘을 본 그녀가 깜짝 놀라 소리를 냈지만, 산이 곧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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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깨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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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네.”

고개를 끄덕인 로미가 침대 시트에 두 앞발을 올리고 조심스럽게 강의 체향을 들이켰다.

킁킁.

까맣고 윤기 나는 코가 벌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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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깊이 잠든 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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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잠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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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촬영 일찍 시작할 텐데? 깨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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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 더 재우고.”

그의 말에 그녀도 조용히 시트에서 발을 내렸다.

침대를 벗어난 산이 창가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커튼을 한 뼘 정도 연 채, 놈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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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와는 어쩐지 밀도가 달라진 것 같은 공기가 내려앉았지만, 이곳을 내내 지켜보던 녀석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희미하게나마 녀석의 기척이 남아있는 걸 보니, 자리를 뜬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지 않았다.

아마 조만간, 어쩌면 오늘 밤에라도 당장 이곳을 다시 찾아오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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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주인님.”

발소리를 죽여 다가온 로미가 산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고개를 내려 시선을 맞추자 그녀가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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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언니랑 사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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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사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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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어머나였다.

사귀지도 않으면서 왜 인간 여자를 끌어안고 있냐는 뜻이겠지.

아니, 애초에 인간과 사귀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 발상이 참 로미다웠다.

하지만 로미의 의중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종족을 떠나 남녀가 한 침대에서 끌어안고 있는 것도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상황이었지만, 강을 안고 있는 산의 손과 움직임이 너무나 귀한 것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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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눈빛으로 보고 있었으면서 사귀는 게 아니라고?’

강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걸 분명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산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본 탓에 분명 둘 사이에 무언가가 더 있을 거라고 여겼다.

고민하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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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요,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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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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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사귀어도 괜찮을 거 같아요.”

그가 고개를 내려 바라보자, 로미가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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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되게 잘 어울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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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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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꼭 일리 님이랑 모아 님 연애하던 시절 보는 거 같았어요.”

산이 대답 대신 조용히 웃었다.

그러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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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그리고 그거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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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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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은 가면 갈수록 일리 님이랑 정말 판박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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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아버지 닮는 건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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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웃을 때 보면 또 모아 님 얼굴이 보이기도 하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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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니까.”

당연한 소리를 세상 신기하게 늘어놓던 로미가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산은 그녀의 그런 엉뚱한 모습을 늘 귀엽게 봐주곤 했다.

로미의 머리를 가볍게 한번 쓰다듬어주던 그가 저 멀리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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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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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어요!”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아까 벌어졌던 일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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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 한 마리를 사냥해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는 거예요. 근데 알고 보니까 그게 비가 아니라 몽마 침이었던 거 있죠?”

으윽.

다시 생각해도 비위가 상한다는 듯 진저리를 치던 로미가 다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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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오십 마리는 됐을걸요? 하늘에 까마득하게 모여들다가 갑자기 뿔뿔이 흩어져 사라져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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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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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한테 잡혔으면 싹 다 국물도 없었는데.”

히히 웃던 그녀가 아마 자신의 기척을 눈치채고 도망친 거 같다며 어깨를 으쓱이곤 턱을 들었다.

쓰다듬어 달라는 뜻이었다.

산은 로미의 턱을 부드럽게 만져주며 웃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일부러 산통 깨는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그는 그녀가 충분히 뿌듯해하도록 두었다가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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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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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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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몽마들이 그 정도로 무리 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건, 곧 상급 몽마들이 움직일 거라는 전조(前兆) 현상이기도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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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 걱정해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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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네가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하니까.”

온화하고 아름다운 그의 미소를 본 로미의 눈에도 꿀이 뚝뚝 떨어졌다.

정말 차원이 다른 스윗함 아닌가.

죽을 때까지 그에게 열과 성을 바쳐 충성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게 됐다.

산은 시선을 돌려 조용히 잠든 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세상모르고 잠든 그녀의 얼굴이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강의 안정과 행복을 오래오래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당분간은 매일 붙어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사파로가 죽고 난 뒤부터,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로미에게 말했듯 ‘그놈’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
.
.

오늘 촬영은 야외촬영에 나설 B팀과 실내촬영을 진행하는 A팀으로 나뉘어 이루어졌다.

덕분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첫 테이크를 마친 이른 아침.

A팀에서 대본을 체크하던 강에게 조연출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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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매니저님은 어디 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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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화장실 갔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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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저희 정각에 촬영 시작할게요. 괜찮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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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

일정 전달을 마친 그가 저편에 앉아 있던 신휘에게 다가갔다.

늘 활력이 넘치던 평소와 달리 그가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게 보였다.

엄청난 연습 벌레라던데, 오늘 촬영할 분량을 앞두고 밤새 연습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조연출이 신휘를 조심히 흔들어 깨웠고, 그는 얕게 잠이 들었었는지 곧 일어나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조연출과 대화를 나누었다.

강은 물끄러미 신휘를 바라보았다.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간 후 조연출이 사라지자, 그의 얼굴에 피어 있던 웃음꽃도 함께 사그라졌다.

확실히 평소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던 신휘가 대본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의 재킷 주머니에서 떨어진 작은 플라스틱 통 하나가 바닥으로 툭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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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기!”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이 얼른 입을 열었지만, 신휘는 듣지 못했는지 그대로 자리를 떠버렸다.

나가는 방향을 보니 촬영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 다녀오려는 것 같았다.

그가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긴 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다가가 그것을 주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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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지?”

아무 라벨도 붙어 있지 않은 평범한 플라스틱 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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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은 아닌 것 같은데.”

살짝 흔들어보니 안에서 약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저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신휘의 매니저도 함께 자리를 비운 건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 다시 둘까 하는데, 스태프 하나가 다가와 의자를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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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합니다. 동선 때문에, 자리 정리 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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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어쩔 수 없이 물러난 강이 들고 있던 통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가 돌아오면 직접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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