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열여섯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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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열여섯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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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열여섯의 나는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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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여기 있었는데, 몰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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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디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로미의 반응에 설성이 손을 뻗었다.
유난히 하얀 손가락 끝에 붉은 핏자국처럼 찍힌 빨갛고 짧은 손톱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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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그 끝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몽마가 서 있었다.
로미의 눈이 커다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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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게…… 언제부터 있었지?”
딱 봐도 기세가 어마어마한데, 먼지만큼의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순간,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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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단순히 겁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한 놈의 기세에 온몸이 바위에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어서였다.
저 정도의 기척을 능숙하게 감춘 채, 이틀이나 수인의 눈을 가린 몽마라면 상급 중에서도 무리를 통솔할 정도의 실력자일 것임이 분명했다.
수장씩이나 되는 설성이 내려온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그때.
퍼엉!
응축된 기를 한번에 분출한 놈에게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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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폭풍이라도 덮쳐온 듯한 충격에 날아간 로미가 전봇대에 부딪친 뒤 바닥을 굴렀다.
설성은 멀쩡히 서 있긴 했지만, 엄청난 바람에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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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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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네, 네에……!”
설성이 묻는 말에 로미가 겨우 대답했다.
당장이라도 네 발이 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들어갈 것만 같아,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게 전부였다.
설성의 시선이 다시 몽마를 향했다.
로브에 가려진 얼굴이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녀석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걸 본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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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얘 좀 봐라?
놈은 범상치 않았던 천인의 등장에도 전혀 기가 눌리지 않은 듯 보였다.
오히려 맞불이라도 놓듯 순간적으로 자신의 기를 폭발시켜 방출했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둘 사이에 팽팽한 기 싸움이 오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섣불리 상대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니, 실은 그럴 명분이 없었다.
인간세계에 공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율 중 하나가 인간을 해하지 않는다는 거였는데, 몽마가 살상을 벌이지 않는 한, 천인 입장에서도 공격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설성이 이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일종의 메시지 같은 거였다.
언제 어디서든 너를 주시하고 있을 테니, 사고 치지 말라는 경고.
온 땅에 어둠이 고요히 내려앉았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던 탐색전은 설성과 대치하던 몽마가 먼저 모습을 감추며 일단락이 났다.
그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온몸을 압박해오던 구속감도 같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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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크게 숨을 몰아쉰 로미가 설성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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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물러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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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일단 오늘은 그런 것 같지? 당장 싸울 명분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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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니 준비 단단히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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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싸움이 시작되면 너도 언제든 이쪽에 힘을 보태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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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당연히……!”
대답을 잇던 로미가 말을 멈추었다.
사실 수인은 자신의 주인의 명에 따라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수인이 천인 외의 존재를 주인으로 삼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녀가 충성을 맹세한 이는 산이었다.
설령 그가 순혈이 아닌 혼혈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 말은 곧 언제든 산이 천인과 척을 지게 된다면, 눈앞에 있는 설성도 로미의 적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주인의 아군이 자신의 아군이듯, 주인의 적군 역시 자신의 적군이 되기 때문이다.
그녀가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하자 설성이 먼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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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주인 때문에 그래?”
뜨끔한 로미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천계의 상식대로라면 천인을 주인으로 섬기는 게 당연한 수인에게 그런 질문을 하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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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제 주인님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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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의 편에 서길 망설이는 수인이 모시는 주인이라면 하나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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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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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산이를 주인으로 모시는 수인이지?”
정곡을 찔러 온 그녀의 말에 화들짝 놀란 로미가 또 한번 펄쩍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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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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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의 모든 수장이 한산을 주시하고 있는데, 그를 모르는 천인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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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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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의 그가 인간을 죽이려다, 설국의 수장한테 붙들려온 일은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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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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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천계에서 그 애를 놓아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니?”
조곤조곤 물어오는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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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어요.”
로미를 가만히 바라보던 설성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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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단다.”
엄청난 에너지원이 될 부모의 혼.
산이 10년 동안 살인하지 않고, 온전히 그것을 천계로 인도하면 그때 그를 천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게 천계의 결론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로미는 조금 침묵하다 어렵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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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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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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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희 주인님이 혼을 천계로 인도하지 않으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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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천계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선전포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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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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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의 대가는 죽음뿐이야.”
웃음기가 걷힌 설성의 입매가 서늘하게 굳었다.
그 모습을 본 로미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굳은 그녀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하던 설성이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로미의 보드라운 털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달래듯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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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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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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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도 네 주인을 잘 설득하렴.”
그녀의 입가에 다시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설성은 여전히 굳어있는 로미의 귓가에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여전히 그녀의 턱을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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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적이 되는 일만큼은 어떻게든 피하는 게 좋지 않겠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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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산 역시 몽마가 폭발하듯 뿜어낸 기운을 고스란히 느꼈다.
명목이 없으면 싸우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저런 도발을 하는 놈인 걸 보니 보통은 아닌 녀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코니 너머를 응시하는 그에게 강이 다가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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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 누가 왔어?”
그녀는 이번에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물은 거였고, 그는 방금 벌어진 상황을 간략하게 그녀에게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강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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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내려온 천인이 그렇게 대단해? 어느 정돈데?”
몽마에 관한 이야기는 제법 들었지만, 천인에 관한 건 별로 들은 적이 없어 데이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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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아마 수장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최소 부수장은 될 거야.”
수장? 부수장? 그건 또 뭐야.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띠고 있는 그녀에게 산이 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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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에는 5국이 있어.”
인간의 긍정적 감정을 관장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꽃의 나라, 화국(華國).
인간의 꿈을 관장하는 새하얀 설원으로 이루어진 눈의 나라, 설국(雪國).
인간의 부정적 감정을 관장하고, 언제나 비가 내리는 무채색의 나라, 우국(雨國).
인간의 탄생을 관장하는 해의 나라, 일국(日國).
인간의 죽음을 관장하는 달의 나라, 월국(月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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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국은 인간의 긍정적 감정을 관장하는 곳이야. 네 어머니가 수장으로 있었던 곳이기도 하지.”
따뜻한 봄 날씨에 사방에 꽃과 나무가 널린 아름다운 나라인 화국은 천계에서도 그 풍경이 아름답기로 제일가는 곳이었다.
그곳의 천인들은 대부분 따뜻하고 밝은 성정을 지녔으며, 인간의 기쁨과 즐거움, 행복 등을 관장했다.
그리고 종종 인간들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선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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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은 인간의 꿈을 관장해. 전쟁 시엔 토벌대로 구성되는 조직이라 전투에 능한 인재들이 많고.”
온 땅이 새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설원.
그곳은 설성이 부수장으로 있던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설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산의 표정이 썩 좋지 않은 것 같아, 의아해진 강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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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안색이 왜 갑자기 어두워져?”
그녀가 걱정스러운 듯 얼굴을 살피자 그가 짧게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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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냥 좀……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산이 설국의 수장을 만난 건 그의 나이 열여섯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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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무슨 일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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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은 가본 적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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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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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수장한테 잡혀서 반항 한번 못 하고, 천계에 산 채로 끌려갔었거든.”
그렇게까지 제압당했던 건 처음이라 썩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부모님을 잃고 난 이후엔 매일이 전쟁이었다.
고작 일곱 살이었던 산은 밤마다 인간 세상에 내려가 악몽을 먹기 위해 떠돌았고, 자신을 찾는 몽마들과 천인들을 피해 우국으로 돌아가길 반복하며 살아야 했다.
성체가 되기 이전의 그는 포식자 앞에 놓인 어린 사냥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여섯이 됐고, 우울감에 빠져 죽어가던 한 인간 앞에서 처음으로 이성을 잃었었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있던 중년의 인간 남자는 매일 악몽을 꿨는데, 결국 스스로 삶의 끈을 놓으려 했었다.
그 피폐함과 무기력함, 그리고 처음 맡아보는 죽음의 냄새는 어린 그를 뒤흔들기 충분했다.
인간을 죽이는 건 몽마에게도 금지된 일이었지만, 인간의 혼은 어지간한 악몽을 먹어서는 채울 수 없는 에너지를 공급했기 때문에 자제력이 약한 몽마에게는 무척 이겨내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그때 산에게 남았던 건 살고자 하는 본능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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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금기는 이미 오래전에 깨진 거라, 천인들이 불을 켜고 단속에 나선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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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설국의 수장한테 잡히지 않았으면, 아마 난 살인을 저지르고 쭉 몽마로 살았을 거야.”
살생은 어떠한 이유로도 천계에서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땐 그저 재수가 없어 걸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때의 일이 다행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일로 인해 삶은 여전히 선택의 연속이었으니까.
산은 조용히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눈이 뒤집혀 인간을 죽일 뻔한 제 눈앞에 새하얀 제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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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금빛 섬광을 두르며 나타난 그는 곧바로 산을 제압하곤, 이렇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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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할 짓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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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윽! 이거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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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리석은 놈아! 어찌 살상을 하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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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뭔 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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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떽! 네 부모가 보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녀석아.’
어디 어른한테 너, 너 거리냐며 싸가지를 운운하던 그에게 주먹으로 머리통을 맞은 굴욕감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포박한 후 한참이나 잔소리를 쏟아냈었다.
네 어미는 천계에서도 호평이 자자한 이였는데, 어떻게 그런 천인한테 너 같은 종자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둥.
하는 짓을 보니 지 아빠를 닮은 게 분명하다는 둥.
천인의 피가 흐르는 게 수치라며, 이게 다 썩을 놈의 몽마가 착한 네 어미를 꼬셔대는 바람에 벌어진 참사라는 둥.
물 만난 물고기처럼 훈육을 가장한 분노를 쏟아내던 게 잊히질 않는다.
그런데 제일 억울한 건 그의 얼굴이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거였다.
비겁하게 뒤에서 기습이나 하고.
중얼대던 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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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얼굴을 봐둘 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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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강이 조심스럽게 묻자, 그의 눈에 불꽃이 이글이글 튀었다.
![16677866414098.jpg](https://newtoki13.org/data/file/novel/5871/6025688/16677866414098.jpg)
“마주치면 바로 죽여버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