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죽지 않을 용기
(60/118)
60. 죽지 않을 용기
(60/118)
#60. 죽지 않을 용기
2022.11.24.
“신휘 씨!”
“…….”
“양신휘!”
강이 그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르고 난 후에야, 비로소 텅 비어 있던 그의 눈동자에 빛이 스몄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저보다 더 절박하게 자신을 부르는 게 누굴까.
고개를 돌린 신휘는 제 눈을 의심했다.
“……선배님?”
제게로 달려오는 강의 모습이 슬로모션처럼 늘어졌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가 바람 같은 실소를 흘렸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환상을 보고 있는 건가 싶어서.
“하아, 하아…… 잡았다!”
허상이 아니었다는 걸, 옷깃이 붙들리고서야 알았다.
고개를 번쩍 든 강이 난간에 발을 걸치고 서 있던 그를 끌어내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기가 어딘 줄 알고 올라가 있어요! 당장 내려와요!”
끌려 내려온 신휘가 신기하다는 듯 되물었다.
“……전 줄 어떻게 아셨어요?”
“지금 그게 중요해요? 도대체 환자가 왜 병원에 안 있고,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선배님 눈에도 제가 환자처럼 보여요?”
“…….”
“아닌데. 나 완전 멀쩡한데.”
신휘가 양손을 들어 보란 듯이 제 몸을 훑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강이 곧장 반박했다.
“아프면 다 환자지.”
“…….”
“몸이 아니라 마음에 구멍이 나도 병원에 가는 거예요. 늦기 전에, 더 벌어져서 안에 있는 거 다 쏟아지기 전에 빨리 가서 꿰매야 하니까.”
“…….”
“아프지 않다고 버티니까, 다 새어나가 버리는 거잖아. 그래서 뭘 해도 채워지질 않는 거야.”
채우고, 채워도 깨진 독처럼 텅 비어버리는 것 같은 공허함을 그녀도 잘 알았다.
그런데 강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신휘가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 혹시 기사 난 거 그대로 믿는 건 아니죠?”
“…….”
“나 우울증 같은 거 없어요. 그런 거 뭔지도 모르고, 이제 뜰 일만 남았는데, 내가 미쳤다고 죽어요?”
황당하다는 듯 웃던 그가,
“그러니까.”
남아 있던 웃음기를 모두 지우며 말했다.
“오버하지 마세요.”
불쾌한 오지랖을 꼬집는 듯, 뼈가 있는 일침이었다.
강은 그런 신휘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시선이 버거워진 그가 다시 막 입을 열 때였다.
“아무튼 그만 가던 길, 가시고-”
“그럼 다행이고.”
“……?”
“내가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 거면,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요.”
쏟아져나오던 끔찍한 기사들이 전부 오보라서, 그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진실이길 바랐다.
그런데 강의 반응에 그는 어쩐지 더 복잡미묘한 얼굴이 되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 상태로 한동안 둘의 시선이 계속 맞닿아 있었지만, 누구도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건 삼영의 목소리였다.
“강아!”
뒤늦게 그녀를 따라 내린 그가 멀리서 강의 이름을 불렀다. 곁엔 산도 함께였다.
두 사람을 본 신휘가 미간을 구겼고, 그녀가 외쳤다.
“오지 마!”
손을 뻗어 멈춰달라고 신호했다.
대화를 마칠 때까지 그냥 거기서 기다려달라고.
다가오려던 두 남자의 걸음이 멈추었다.
삼영은 퍽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 했고, 산은 가만히 두 사람의 상황을 주시했다.
그걸 본 신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은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시네요.”
“…….”
“구경났나 싶어서, 기분 엿 같아질 뻔했는데.”
그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촬영장에서 보던 양신휘가 맞나 싶을 만큼 지금 그의 모습은 무척 낯설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넉살 좋던 신휘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언젠가 반이 그를 보며 웃는 얼굴 뒤에 엄청난 그늘과 우울감이 있을 것 같다고 했던 걸 떠올렸다.
강이 주변을 살폈다.
다리 위라 차가 빠르게 지나갔지만,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언제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을 테고, 그러면 일만 더 커질 게 분명했다.
“일단 내 차로 가요. 가서 얘기해요.”
“싫은데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을 입에 올리던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선 당장 다리에서 뛰어내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묘한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직감하듯 불안함이 온몸을 점령한 것만 같아, 손이 떨렸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여길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강은 뒤늦게 자세히 들여다본 그의 얼굴이 엉망이라는 걸 깨달았다.
눈썹 위와 오른쪽 턱 끝에 반창고.
딱지가 앉은 아랫입술은 찢어졌던 게 분명했다.
“얼굴은 또 왜 이래요?”
“계단에서 굴렀어요.”
신휘는 묻기가 무섭게 마치 준비한 대답을 뱉듯 말했다.
그녀가 눈매를 날카롭게 늘이며 빤히 쳐다보자, 그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아. 대답이 너무 빨랐나?”
그렇게 말하는 신휘의 얼굴은 곧 수면제를 초콜릿이라 속이던 때와 같은 얼굴이 되었다.
이번엔 그녀의 시선이 그의 왼쪽 손목으로 향했다.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런데 안쪽 손목이 거즈와 반창고를 덧댄 것처럼 불룩했다.
차마 그 상처에 대해서는 물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에 쥐고 있는 옷깃만 바들거리며 간신히 고쳐 잡을 뿐이었다.
강의 시선을 따라 내려가던 신휘는 그녀가 제 손목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 이거요?”
가볍게 웃던 그가 제 손목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술 먹고 그었어요. 홧김에.”
“…….”
“어때요? 이번에도 거짓말 같나?”
신휘의 태도에 강이 채근하듯 말했다.
“기사 다 오보라며.”
“네. 오보 맞아요.”
“그럼 그 상처는 뭔데?”
“어, 이건…….”
말문이 막힌 듯 주저하던 그가 싱거운 농담을 던졌다.
“그냥 순간의 호기심이 불러온 작은 사고 정도?”
진실을 숨기고 싶은 건지.
아니면 본인도 뭐가 진실인지 몰라, 그저 되는 대로 말을 뱉는 건지.
신휘의 속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여전히 제 옷깃을 붙들고 있는 그녀의 손을 보며 말했다.
“근데 나 뛰어내릴까 봐 붙들고 있는 거예요?”
강은 대답 대신 더욱 신휘의 옷깃을 고쳐잡았다.
한강 다리를 벗어나기 전까진 놓아주지 않겠다는 의지라도 보이듯.
의아하다는 듯 살짝 고개를 꺾던 그는 그녀의 반응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확인해보고 싶었다.
“선배님.”
“말해요.”
“내가 지금 여기서 뛰어내리면.”
“……!”
“내 손 잡아주나?”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고 외치기도 전이었다.
신휘는 말을 뱉는 것과 거의 동시에 훌쩍 난간 위로 올라섰다.
그러고는 그녀를 향해 돌아앉았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강이 채 움직이기도 전이었다.
그는 시선을 맞춘 채, 씩 한번 웃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눕듯이 몸을 던졌다.
“안 돼!”
기겁한 강이 재빨리 손을 뻗었다.
터억!
무게감을 견디지 못한 몸이 난간에 부딪히고야 멈췄지만, 간신히 신휘의 한쪽 팔을 잡을 수 있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것만 같은 느낌과 함께 엄청난 긴장감이 척추를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보니 하필 자신이 잡은 곳이 그의 상처 난 왼쪽 손목이었다.
신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게 더 아프니까, 그만 놔주실래요.”
“안 돼. 제발…… 제발 이러지 마.”
할 수 있는 게 애원뿐이었다.
간신히 자리를 찾은 심장이 이번엔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온몸의 혈관이 바짝 수축해 몸을 옥죄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강은 간절히 부탁했다.
제발 부탁이니, 이러지 말라고.
지금 이렇게 그를 떠나보내면, 이 마지막 장면이 죽을 때까지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는 모습은, 영영 사라지는 모습 따위는 앞으로 남은 자신의 인생에서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신휘가 스스로 마음을 돌리기를 바랐다.
“나도 알아. 죽을 용기보다 죽지 않을 용기를 내는 게 백만 배는 더 어려운 일이라는걸.”
“…….”
“그래도 지금은 그 용기를 조금만……. 제발. 조금만 내줘. 부탁이야.”
강이 이를 악물며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손이 미끄러질까 봐, 그래서 신휘를 놓치게 될까 봐,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극도의 긴장과 공포로 차오른 눈물이 툭 하고 떨어져 그의 옷깃을 적셨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신휘는 다시 미묘한 얼굴이 됐다.
“복잡해지는 거 딱 질색인데.”
“제발…….”
“뒷감당 되겠어요?”
희미하게 웃던 그의 손목에 감긴 붕대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버티는 건 무리였다.
“안 돼. 더 이상은……!”
결국 붕대가 벗겨지면서 신휘의 팔을 놓쳐버렸다.
“아!”
저를 빤히 바라보는 상태로 그가 멀어졌다.
손을 뻗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옷깃만 스친 채로.
그대로.
그대로 그를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안 돼!”
그녀의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누군가가 달려들었고, 이내 거칠게 멱살이라도 틀어쥐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산이었다.
재빨리 달려든 그가 손을 뻗어 신휘를 붙든 게 아니었다면, 아마 신휘는 그대로 까만 강물 아래로 추락했을 것이다.
삼영도 돕기 위해 난간 위에 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신휘 씨! 이러지 마요! 그 창창한 나이에 뭐가 아쉬워서 이런 무모한 짓을 해요!”
그렇게 외치는 삼영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고, 강은 숨을 멈춘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반쯤 허공에 누운 상태로 매달려 있던 신휘가 뒤로 꺾여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제 멱살을 틀어쥔 산을 보며 한숨 쉬었다.
“아, 구해줬으면 했던 분은 따로 있는데, 눈치 없이 왜 끼어드세요.”
“…….”
“내가 물에 빠지면 선배님이 뛰어들지 궁금했는데, 형 때문에 망했잖아요.”
“서강이 물에 빠질 일은 없어. 내가 그렇게 안 둘 거니까.”
“와. 인정머리 대박.”
푸스스 웃어버리고 마는 그를 산이 끌어올렸다.
그 엄청난 힘에 신휘가 순식간에 끌려왔지만, 그는 이내 손바닥으로 난간을 짚어 제동을 걸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난간 끝에 발을 걸쳐 버텼다.
기겁한 삼영이 놓쳤던 바짓가랑이를 도로 붙들며 외쳤다.
“왜, 왜 이래요! 일단 내려와요! 내려와서 이야기해!”
하지만 그가 그러든 말든, 산이 제 멱살을 쥐고 있든 말든 신휘는 강을 보며 말했다.
“선배님.”
“……!”
하지만 그녀는 이 상황이 너무 무섭고 버거워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턱을 덜덜 떠는 강을 보며 그가 물었다.
“내가 죽으면 슬플 거 같아요?”
“……그걸 말이라고 해, 지금?”
“거짓말. 눈길도 안 줬으면서.”
“줄게! 눈길 주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주면 되잖아! 그러니까 당장 내려와! 너 진짜 내 말 안 들어?!”
그녀의 외침에 신휘가 벅찬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반응을 주시하던 산의 눈이 가늘어졌다.
미련 없이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아버린 것도 그때였다.
“……어?”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던 신휘가 그대로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
“엄마약!”
“꺄악!”
삼영과 강이 나란히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주저앉았고, 곧 커다란 마찰음이 들려왔다.
첨벙!
엄청난 물보라가 일었다.
벌떡 일어선 그녀가 난간 너머로 몸을 반쯤 내밀며 아래를 확인했다.
“양신휘!!”
고래고래 외쳐봤지만, 검은 강물은 원래의 흐름을 찾아 잠잠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