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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노지태 (61/118)


#61. 노지태
2022.11.27.



 
순식간에 신휘를 꿀꺽 삼켜버린 강물이 다시 잠잠해졌다.

황망한 얼굴로 난간 아래를 바라보던 그녀가 산에게 소리쳤다.


“너 미쳤어?!”

“놓친 거야.”

그가 뻔뻔하게 손목을 털며 대꾸했다.

놀라 자빠졌던 삼영도 얼른 난간 아래를 내려다봤지만, 신휘의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어, 어떡하지? 휴, 휴대폰! 119! 119!”

그가 신고를 위해 허겁지겁 차로 돌아갔고, 그제야 산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걱정 마.”

“…….”

“몽마라면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고, 알아서 기어 나올 테니까.”

강의 입이 스르륵 벌어졌다.

신휘를 놓아버린 게 단순히 그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이유였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였다.


“사람이면 어쩌려고!”

“사람이어도 쉽게 안 죽어.”

“뭐?”

“죽을 것 같으면, 그전에 건져오면 그만이고.”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흥분한 강이 뭐라고 더 쏘아붙이려 했지만, 싸늘해진 표정의 그가 말을 끊었다.


“나한텐 네가 제일 중요해.”

“…….”

“그런 나한테 지금 지켜야 할 건 너의 안전이고, 놈의 정체를 알아낼 수만 있다면 더한 거라도 했어.”

“…….”

“충분히 의심 가는 구석이 있어서 던진 거니까, 일단은 그냥 두고 봐.”

반은 진실이었지만, 사실 그게 다는 아니었다.

주변인과의 만남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할 시기인 건 맞지만, 제 목숨을 담보로 강을 뒤흔드는 놈의 모습이 꼴 보기 싫어 던져버린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잠잠하던 물결이 파동을 일으키며, 신휘가 떠올랐다.


“어푸!”

그는 살려달라고 외치진 않았지만, 가라앉았다 떠오르길 반복했다.

물을 뱉어내느라,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삼영 오빠!”

그걸 본 강이 밴을 향해 다급히 외쳤지만, 삼영은 아직 통화 중인 건지, 아니면 휴대전화를 찾고 있는 건지 도통 보이질 않았다.

다급해진 그녀가 산의 팔을 붙들며 외쳤다.


“도와줘! 얼른!”

“…….”

“죽기 전에 건져오겠다고, 네가 그랬잖아!”

그 말에 그가 느리게 시선을 돌려 강을 바라보았다.


“제발! 저대로 두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

“너도 살상하면 안 되잖아. 그러면 모든 게 물거품이라며. 그러니까 제발…… 제발, 산아……응?”

인간의 혼을 삼키기 위해 직접적인 살상을 한 건 아니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게다가 어차피 그가 인간이라도 죽지 못해 안달인 놈이었으니, 죽든 말든 제가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절박하게 외쳐대는 그녀의 모습은 계속 두고 보기가 쉽지 않았다.

신휘는 여전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그때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삼영이 외쳤다.


“강아! 지금 119에 신고했……!”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재킷을 벗은 산이 그대로 강물에 뛰어들었다.


“으악! 산아!”

놀란 삼영이 또 한 번 주저앉았다.

그러다 곧 벌떡 일어나 난간에 매달린 채 울부짖었다.


“산아!”

애타게 그의 이름만 외치던 삼영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굴렀다.

강이야 산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걸 알지만, 삼영은 충격이 컸을 것이다.

다행히 산은 빠르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고, 정신을 놓기 직전인 삼영에게 괜찮다고 손을 한번 흔들어주곤 신휘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곧 늘어진 그를 뒤에서 안은 채 물 밖으로 신속히 구조해냈다.

온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지려던 삼영을 강이 얼른 부축해냈다.


“……아아. 나한테 왜들 이러는 건데. 여기가 워터파크야, 뭐야……. 왜 다들 물 만난 물개 새끼마냥 너도나도 뛰어드는 거냐고오오…….”

그가 이마를 짚으며 울먹였다.

상황은 구조대가 채 도착하기도 전에 마무리됐다.

물을 잔뜩 마셔 기절한 상태로 올라온 신휘는 늑골이 골절된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했다.

병원의 입구에서 강이 조용히 산에게 말했다.


“몽마면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고 올라올 거라며.”

“몽마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회복할 거니까, 두고 봐.”

그가 만약 사람이더라도 죽음을 갈빗대 하나와 맞바꾼 셈이니, 싸게 먹힌 거다.

누구보다 사는 게 간절한 서강 앞에서 자살 쇼를 펼쳤으니, 그 정도 벌은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산은 실려 가는 신휘에게서 냉정히 시선을 거두었다.

.
.
.

VIP 병동에 딱 하나 마련된 1인 병실.

고요히 감겨있던 눈을 뜬 신휘가 곁에 있던 박선빈 실장을 불렀다.


“선빈이 형.”

“어, 어! 신휘야! 정신 좀 들어?”

하루 새 십 년은 늙은 것 같은 얼굴로 앉아있던 선빈이 후다닥 다가갔다.

신휘가 몸을 틀려고 하다가 옆구리에 통증을 느낀 듯 신음했다.


“윽…….”

“움직이지 마. 너 늑골 골절됐어.”

황급히 그를 잡아 누른 선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신휘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건네야 좋을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던 신휘가 피곤한 듯 눈을 감은 채 물었다.


“서강 선배 밖에 있어?”

“서강? 아, 으응. 너 깨는 거 보고 간다고, 밖에…….”

“좀 불러줘.”

“아…… 그래, 그래!”

그가 재빨리 병실을 벗어났다.

외부 보안이 철저한 특급 병동의 꼭대기 층.

1인실 옆에는 보호자와 방문객을 위해 따로 마련된 작은 룸이 있었다.

박 실장이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자, 안에 있던 강과 산, 삼영이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신휘 씨, 의식 돌아왔나요?”

삼영이 의자에 기대고 있던 등을 바로 세우며 급히 물었고, 박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덕분에요. 큰 신세 졌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그렇게 삼영과 주거니, 받거니 인사를 나누던 박 실장이 조심스럽게 강에게 다가갔다.


“저……, 신휘가 찾는데 잠깐 와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다른 분들은 말고, 서강 씨만 와달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요청에 그녀가 일행을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산은 말없이 그녀를 보내주면서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모든 감각을 기민하게 세웠다.

강이 떠난 자리엔 박 실장이 앉아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뭐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유난히 긴 하루를 보낸 듯한 그는 여전히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삼영과 산에게 재차 인사를 건넸다.

삼영도 손을 저으며 물었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회사에서는 별말 없습니까?”

“안 그래도 한바탕 난리 날까 봐, 초긴장 상태였는데…… 다행히 아직까진 수습할 수 있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대낮에 한강 다리 위에서 벌어진 투신 사건.

차를 세울 수 있는 구간은 아니었지만, 지나가며 상황을 목격했을 눈이 수백이었을 것이다.

물에 빠진 신휘가 그대로 병원까지 실려 왔으니, 어디서 제보가 들어가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모든 건 강이 달리던 밴을 멈춰 세우고, 양신휘를 향해 뛰어갈 때부터 산이 손을 써둔 탓이었다.

그는 사고가 벌어진 다리 위의 일정 구역에 일반인들의 눈을 가릴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장막을 쳤다.

구조의 순간부터 병원으로 이송된 이후에 만났던 모든 구조 요원들과 의료진들에게 최면을 걸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든 건 강을 위해서였다.

그 능력이 양신휘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까지 가능하게 했다면 일이 편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대상이 산 자신일 때만 효과를 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부디 양신휘가 강을 먹잇감으로 눈여겨 둔 게 아니길 바라는 거였지만, 그렇다고 그가 인간이길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른 의미로 거슬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냥 뒈지게 놔두는 건데.”

그가 나지막이 흘린 말에 곁에 있던 삼영과 박 실장이 움찔해서 쳐다보았다.


“산아……? 방금 뭐라고……?”

그러자 산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답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답답하네요.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잡을 새도 없이 룸을 빠져나간 산의 뒷모습을 두 남자가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삼영과 박 실장은 이내 서로의 고충을 나누며 이렇게나마 정리가 되어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밖으로 나온 산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옥상으로 올라갔다.

난간 위로 가볍게 뛰어오른 그는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풍경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바람의 기류가 변했다.

시선을 들어 올려다본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고, 그것은 이따금씩 누군가 손으로 휘저어놓은 것처럼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대기가 불안정하고, 날씨가 변덕스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건 모든 순리를 깨부술 변화가 가까워졌다는 의미였다.

고개를 내려보니, 병원 입구에 기자 몇 명이 관리인들과 대치를 벌이는 게 보였다.

투신 사건이 귀에 들어갔을 리는 없으니, 오전에 기사를 냈던 곳의 소속 기자들임이 분명했다.

아마도 양신휘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에 무리하게 취재를 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검은색 세단 하나가 도착했다.

운전석에서 내린 기사가 뒷문을 열자, 검은 슈트를 빼입은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느긋하게 매무새를 정돈한 그에게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문(Moon) 엔터, 노지태 이사님 맞으시죠?”

“한 말씀만 해주시죠. 양신휘 씨가 극단적 시도를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앞다퉈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도 남자는 한결같은 표정과 자세를 유지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낮은 목소리로 답변하던 그가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의 무분별한 억측과 기사는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양신휘 씨가 극도의 우울증을 앓고 있다던데, 사실입니까?”

한 기자의 질문에 노지태의 시선이 느리게 굴렀다.

그저 시선이 닿았을 뿐인데, 질문을 던진 기자는 물론 주변에 있던 이들도 순간적으로 흠칫 표정을 굳혔다.

그가 짧게 답했다.


“아닙니다.”

 

 
그렇게 말한 지태의 시선이 이번에는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기자들에게 향했다.


“혹시 윤미선 기자님 계십니까?”

그의 말에 다소 멀리 떨어져 있던 기자 하나가 뒤늦게 손을 들었다.

스스럼없이 다가간 노지태가 그녀의 앞에 가볍게 미소 지었다.


“기사 잘 봤습니다, 기자님.”

긴장이 역력한 기자의 얼굴을 느긋하게 훑던 그가 말을 이었다.


“아주 소설을 써놓으셨던데, 이참에 작가를 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

“그편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요.”

“지금 뭐 하자는…….”

“사람이 자고로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고, 상황을 관망하기만 했다.

살얼음판을 연상시키는 분위기 속.

고개를 숙인 지태가 윤미선에게 조용히 경고했다.


“기사 그딴 식으로 쓸 거면 때려치워요.”

“…….”

“사람 엿 먹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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