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열락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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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열락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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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열락의 밤
2023.01.29.
오늘만큼은 그 무엇도 우릴 방해할 수 없게.
그 누구도 우릴 훔쳐볼 수 없게.
아니.
훔쳐보려면 보라지.
이참에 네가 내 거라는 걸, 온 세상에 알려줄 테니까.
툭.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셔츠가 침대 아래로 떨어지고, 달빛을 받은 아름다운 몸이 관능적으로 빛났다.
그걸 보는 그녀의 심장이 터져나갈 듯 뛰어댔다.
산은 그대로 몸을 겹치며 단숨에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그러고는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숨결을 흘리듯 말했다.
“나는 이미 내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너를 안았어.”
“…….”
“수십, 수백 번 너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내가 얼마나 원했는지.”
피식.
“아마 넌 상상도 못 할걸.”
작게 웃던 그가 그대로 얼굴을 내렸다.
뺨을 스치고 내려간 손가락이 강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한번 쓸어내리고, 그대로 턱을 당겨 입구를 열었다.
촉촉하고 부드럽게 밀려 들어온 산이 영혼까지 앗아갈 듯 입안을 헤집었다.
상상 속에서만 채우던 욕망은 악몽을 원하던 허기만큼이나 몸집을 부풀린 채 당장이라도 터져나갈 듯 내재되어 있었다.
기꺼이 그 마음을 받아준 강에게 그는 오늘 마음껏 욕심을 풀어낼 작정이었다.
숨이 가빠진 그녀가 헐떡이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입맞춤에 정신마저 혼미해질 것 같았지만, 폭주 기관차처럼 변해버린 한산은 적당히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좀 진정…… 산아, 아!”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다물라는 듯 아랫입술을 물어버리는 그 때문에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찌릿한 통각과 섞인 묘한 쾌감이 태풍처럼 뒤섞여 강을 몰아붙였다.
이런 건 상상해본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감각이었다.
모든 게 버거워 어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살갗을 파고드는 손톱에 그가 잠시 입술을 떨어트렸다.
그러고는 흥건히 젖어 반질거리는 입술을 가볍게 한번 감아 물었다 빼며 말했다.
“강아.”
“……어?”
“턱에 힘 좀 빼봐.”
반쯤 풀린 눈으로 야하게 웃던 한산이 달래듯 엄지로 뺨을 쓸며 말했다.
“열어줘야 내가 들어가지.”
커다래진 눈과 함께 벌어진 입술 사이를 놓치지 않은 그가 뜨겁게 밀려들었다.
그러고는 놀란 마음을 달래주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던 몸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능숙한 움직임에 당혹감은 점차 황홀함으로 번졌고, 눈앞이 아득해질 때쯤 그는 속삭이듯 숨소리를 흘려 넣으며 이성을 깨웠다.
그때마다 심장이 그의 손 위에서 멋대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산이 감싸 쥔 턱과 그의 엄지가 닿아있는 귓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래, 이게 너지.’
천천히 다가와 저도 모르게 스며드는 가랑비보단 폭우처럼 쏟아져 상대를 흠뻑 적시는 게 한산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마음을 내려놓는 편이 빠르다는 걸 현명한 그녀는 인정했다.
강은 두 팔을 뻗어 그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입맞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난폭했다가,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부드럽게 이어지길 반복했다.
도톰한 입술이 부어오를 만큼 욕심껏 취하던 산이 그녀의 턱을 지나 목덜미로 자잘한 키스를 퍼부었다.
살에서 나는 단내만큼이나 혀끝에 닿는 감각이 황홀했다.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그녀는 악몽만 훌륭한 게 아니었다.
산은 어렵게 허물어낸 벽의 안쪽을 밤새 오래도록 탐색할 생각이었다.
“강아.”
“응?”
“나 오늘 굶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불안을 감지한 강이 되묻자, 그가 입술을 꾹 눌렀다가 붙인 그대로의 상태로 말했다.
“너 오늘 못 잔다고.”
“뭐……?”
“미리 알려줘야, 마음 단단히 먹을 것 같아서.”
쪽.
입술을 붙였다 뗀 사이로 바람 같은 웃음이 흩어졌다.
그의 달콤살벌한 경고에 강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약간의 두려움과 기대와 흥분이 뒤섞인 묘한 감정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였다.
“표정이 왜 그래.”
“그게…….”
“무서워?”
그렇게 묻는 산의 목소리는 대답에 따라 당장이라도 행동을 멈출 듯 다정했지만, 그의 손은 그다지 신사적이지 못했다.
보란 듯이 본능에 충실하겠다는 듯 종아리를 마음껏 주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릎 뒤까지 올라온 손이 허벅지를 살살 문지르며 거침없이 치마 속을 파고들었다.
강이 그런 산의 손목을 얼른 잡았다.
“무, 무섭냐고 물어봐 놓고, 왜 대답을 안 기다려?”
“그러게. 손이 말을 안 듣네.”
그가 뻔뻔하게 대꾸했다.
그러고는 대답은 한번 들어보겠다는 듯 한쪽 눈썹을 슬쩍 올렸다 내리며 웃었다.
그녀가 그의 눈을 빤히 올려다보며 물었다.
“무섭다고 하면 멈출 거야?”
그러자 산이 상냥히 대답했다.
“아니.”
“…….”
“고삐를 풀어준 건 너잖아.”
천사의 탈을 쓴 얼굴이었지만,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눈이 가늘어진 강이 체념하듯 혼잣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
“어쩜. 실망을 안 시키네.”
그렇게 대답한 그녀는 피식 웃으며 그의 목을 감아 당겼다. 그러고는 예쁘게 웃고 있는 입술을 머금었다.
긴장됐던 건 사실이지만, 고작 이 정도로 끝내려고 어렵게 선을 넘은 건 아니었다.
마음을 누르고 눌러왔던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긴장을 풀고 다가오기 시작한 강을 산이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살짝 틀며 너그럽게 안을 열어주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준 그의 손길이 어깨와 옆구리를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동그랗게 드러난 어깨 위로 붉은 입술이 떨어졌다.
“……!”
예민하게 반응하는 강의 모습에 산의 눈이 가늘어졌다.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라 언제든 오늘을 떠올릴 수 있도록 가슴에 담았다.
닿으면 부서질까, 건들면 사라질까 바라보기도 아까웠던 작고 가냘픈 몸 위로 열꽃이 피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새하얀 설원에 핀 붉은 동백처럼 아름다웠다.
밤새도록 붙어 있어도 아쉬울 것만 같은 밤이 이어졌다.
부쩍 밀도가 높아진 공기의 흐름 속, 열기 어린 숨을 뱉은 그녀가 그와 코끝을 마주 대며 말했다.
“어떡하지?”
“뭐가?”
“너무 좋아서…….”
“…….”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던 게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좋아.”
그녀의 솔직한 감상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흐른 웃음이 달콤하게 뒤섞였다.
“더 해봐.”
기분이 좋아진 그의 속삭임이 가슴을 간지럽게 했다.
강은 긴장감에 자잘하게 떨리는 몸을 맡기며 기꺼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기로 했다.
“좋아해, 산아.”
“더.”
“아주 많이 좋아해.”
“조금만 더.”
그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잡은 그녀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진짜…… 사랑한다고.”
그 순간, 동시에 그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터져 나오려던 비명은 입술을 먹어버린 산의 입안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
꽉 감은 눈꼬리 끝에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그가 붉은 혀끝으로 물기를 훔쳤다.
설렘과 흥분이 뒤섞인 끝에 묻어난 약간의 두려움과 긴장. 그리고 몸의 떨림.
그녀가 느끼고 있는 모든 감정과 감각이 어지럽게 뒤섞인 한 방울이었다.
달콤한 쾌락이 목구멍 뒤로 녹아 삼켜졌다.
처음 강의 악몽을 맛보았을 때만큼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만족감이 전율처럼 흘렀다.
산이 움직일 때마다,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태산 아래 깔린 듯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열이 오르기 시작한 몸에선 흥건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그녀가 버거워하는 게 느껴졌지만, 이미 몸이 통제를 잃은 기분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간절히 원하게 되는 네 악몽처럼.
너는 가져도, 가져도 성에 차지 않았다.
머리가 쭈뼛 설 만큼, 미치도록 좋은데, 우는 너를 보고도 멈출 수가 없다.
내가 미쳤나 보다.
.
.
.
동이 틀 때쯤.
강은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었다.
예고했던 대로 단 한숨도 재우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그랬다가는 촬영할 때 쓰러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건 안 되지.”
한 시간을 재우더라도, 재우긴 해야 했다.
산은 턱을 괸 채 그녀의 고요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뺨을 쓰다듬고 입술을 만져도 도통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강의 몸에 무수히 새겨진 붉은 열꽃을 눈에 담는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허기가 진 건 산도 마찬가지였다.
강의 악몽이 흐려지는 건 융합과 별개로 그녀가 행복해지기 시작했다는 증거라는 설성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는 순우의 말도 믿어보기로 했다.
제가 다른 악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건 강도 원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얼마 뒤 그녀의 몸에서 옅은 보랏빛의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악몽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산은 지독한 갈증에 아주 오래 시달렸던 사람처럼 강의 악몽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은하수를 가루 내어 만든 것처럼 반짝이는 빛들이 그녀의 투명한 피부 위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강의 어깨와 손등, 팔에 차례로 입 맞추며 그녀의 악몽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잠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공포 어린 숨도, 입술을 벌려 삼킨 채 모조리 마셨다.
원 없이 욕구를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입술이 닿으니 지치지도 않고 몸이 반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울컥울컥 치솟는 욕망이 이성을 잡아먹을 듯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이 조금씩 내려와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쥐었다.
한 손에 전부 잡힐 만큼 여린 목에서 생생하게 펄떡이는 경동맥의 맥박이 느껴졌다.
밤의 호수 같았던 산의 짙푸른 눈이 서서히 감겼고, 두 눈이 다시 반쯤 뜨였을 땐 와인처럼 붉은빛으로 변해있었다.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윽.”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희미한 신음이 샜다.
순간 번쩍 정신이 든 산이 얼른 강에게서 떨어졌다.
“하아, 하아…….”
심장의 격동에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이 거칠게 터져 나오며, 흉곽이 눈에 띌 만큼 격하게 오르내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순간적으로 기억이 날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이성을 잃고, 행동이 통제를 벗어났다는 증거라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이마 위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가락 사이사이로 그의 붉은 눈이 더욱 강렬히 빛났다.
머릿속이 폭주하는데, 눈앞의 그녀는 무방비상태로 잠들어 있는 상황.
강이 제가 가진 걸 아낌없이 나누어 줄수록, 만족보다 갈증이 더 커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산은 자신이 툭하면 날아가는 이성의 자리에 본능만 남은 짐승에 불과하다고 느껴졌다.
만족을 모르는 놈처럼.
“이, 미친 X끼.”
그가 자괴감을 느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상태로 현실의 악몽을 먹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강을 위험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산은 잠든 그녀의 뺨을 떨리는 손으로 어루만지다, 조심스럽게 곁에 누웠다.
그러고는 마음을 다잡으며 눈을 감았다.
서둘러 강의 꿈에 침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