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낯선 이름으로부터 (1/110)


1. 낯선 이름으로부터
2022.06.01.


[단독] 안지호, 차기작 상대 배우 겸 작가 장혜윤과 열애
[……안지호 측은 “작품 준비를 하며 서로에 대한 호감이 생겼고, 이후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16583652467827.jpg

“연인…….”

혜윤은 이 모든 게 거짓인 걸 알면서도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와 만난 지 정확히 3일째 되는 날이었다.

***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음이 마치 감탄처럼 끊이지 않고 터졌다.

16583652467834.jpg

“와! 좋아요!”

사진작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아무 말이 없었다. 떠들어서는 안 되는 분위기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말문이 막혀서이기도 했다.

16583652467838.jpg

16583652467834.jpg

“이야, 지호 씨 지금 표정 너무 좋았거든요? 그 느낌으로 조금 더 가볼게요.”

지호는 감독을 힐긋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카메라를 응시했다. 짧은 디렉션이 끝나기 무섭게 눈빛에 퇴폐미가 끈적하게 흐른다.

데뷔 이래 줄곧 최정상인 이유가 단지 눈부신 외모 때문만이 아니라는 건, 바로 이럴 때 알 수 있었다. 그는 감독이 원하는 모호한 이미지를 완벽하게 조각해 건네주는 프로였다. 그게 연기든 오늘 같은 화보 촬영이든.

간간이 놓인 조명만큼이나 뜨거운 수십 개의 시선이 마치 손이 달린 듯 그의 곳곳을 주물러댔다. 톱스타 안지호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얼마나 된다고. 더군다나 직업정신이란 그럴싸한 포장까지 있었으니, 스태프들 모두가 그 호사를 누리기에 바빴다.


16583652467834.jpg

“너무 현실감이 없지 않아요?”

16583652467834.jpg

“뭐가? 안지호?”

16583652467834.jpg

“네. 잘생겼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그냥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저런 얼굴.”

16583652467834.jpg

“남자인 나도 설레는데 넌 오죽하겠냐.”

대화하는 와중에도 둘은 각기 지호에게 꽂힌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검은 머리카락이 물결치며 지호의 움직임에 맞춰 나풀거렸다. 힘을 빼고 슬쩍 턱을 치켜들자 그의 짙은 눈동자가 얇은 쌍꺼풀 라인 밑으로 반쯤 가려진다. 그 뇌쇄적인 눈빛에 여자들은 괜히 마른 입술을 혀로 훑기도 했다.

지호가 불쑥 상체를 카메라 쪽으로 당겨 앉아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소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 저도 모르게 한 발 가까이 다가갔다가 서둘러 물러서는 스태프도 보였다. 그중엔 남자도 있었으니 여자들은 더 강한 충동을 느꼈을 게 분명했다.

이를테면 아주 가까이에서 저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싶다는. 기왕이면 그의 탄탄한 허벅지 위에 앉아서.

16583652467834.jpg

“넌 이게 겨울 화보인 걸 감사히 여겨.”

16583652467834.jpg

“왜요?”

16583652467834.jpg

“안지호 보이는 피지컬도 예술인데 상의라도 벗으면 진짜 말도 안 나와. 저번에 하와이에서 화보 찍었던 거 생각하면……. 와, 이거 봐. 나 소름 돋은 거 보이지? 몸매가 아주…….”

그가 걷어 올린 티셔츠 소매 밑으로 드러난 자신의 팔을 들이밀었다. 돋아난 소름을 보자 다시금 그때의 감정이 떠올랐는지 몸을 살짝 떨었다.

16583652467834.jpg

“미쳤다. 그런데 왜 감사히 여기라고 해요? 아쉽지.”

16583652467834.jpg

“아니야. 진짜 감사해야 해. 너 그 몸 보면 한동안 일상생활 자체가 힘들어. 자꾸 생각난다니까? 그래서 나 그때 내가 게이인 줄 알았잖아. 진짜로.”

16583652467834.jpg

“하아……. 안지호 진짜 사람인 건 맞죠?”

그는 피식 웃으며 지호에게 꽂혀 있던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깨달았다. 굳이 제 팔에 돋아난 소름을 보이면서까지 안지호의 매력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음을.

어느 밤 놀이동산에서 불꽃놀이를 보는 아이들처럼 모두가 넋이 나가 있었다. 현실감 없는 황홀함에 취한 눈빛들. 곧 끝나고야 말 이 시간 안에 영원히 갇혔으면 하는 아쉬움까지 서려 있는 게 딱 그랬다.

16583652467834.jpg

“촬영 여기까지 할게요! 지호 씨 덕분에 한 시간이나 일찍 끝났네요. 고생하셨습니다!”

16583652490241.jpg

“잘 찍어주셔서 그런 거죠. 스탭분들도 수고하셨습니다.”

박수 소리와 함께 촬영이 끝나자 지호는 특유의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꾸벅 큰 키를 접었다. 인사를 핑계로 그에게 말을 섞으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는 조금의 귀찮은 내색 없이 반듯하고 정중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모두가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만 친해지기 힘든 사람, 편안하게 웃어줬지만 절대 편해질 수는 없는 사람이 지호였다. 그의 외모에, 몸매에, 목소리에, 특정할 수 없는 모든 것에 취해 발을 떼고 다가가다가도 그 몇 걸음이 전부였다.

보이지 않는 벽 안에서 지호는 우아한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를 현혹하고는 절대 제 옆까진 다가올 수 없게 만드는 압도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랬기에 함께 일해본 사람들이 말하는 안지호와 대중이 알고 있는 안지호는 다른 게 하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인기 많은 배우. 잘생기고 연기 잘하는, 예의 바른 배우. 전 국민이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는 남자.

완벽하게 신비로운 사람.

***

16583652490246.jpg

“고생했다. 이번 주는 스케줄 없으니까 푹 쉬어.”

16583652490241.jpg

“고생은 무슨.”

16583652490246.jpg

“집으로 바로 갈 거지?”

뒷좌석에 앉은 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기대자 매니저 봉기가 부드럽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차에 타자마자 옅은 눈화장부터 지워냈을 텐데. 그조차도 못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피곤한 모양이었다.

열흘 전, 6개월간 작업한 영화 촬영이 끝났다. 그간 미뤄놨던 수십 개의 광고와 화보, 각종 국내외 인터뷰들이 이번주 내내 이어졌기에, 하루에 3시간 이상 잠을 잔 날이 없었다. 그래도 올해 초에 촬영을 끝낸 영화가 다음 달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그전까지 한 달 정도는 여유가 생긴 셈이다.

봉기는 창문을 살짝 열었다. 지호의 부드러운 앞머리가 선선한 밤바람에 살랑이며 감은 두 속눈썹에 닿을 듯 아슬아슬하다. 창문 밖의 어둠 탓인지 살짝 기울어진 고개 탓인지 유독 그의 피부결과 턱선, 콧날이 그림처럼 빛나 보였다.

16583652490246.jpg

‘누가 보면 지금도 화보 찍는 줄 알겠네.’

룸미러로 보이는 지호의 얼굴에 새삼 ‘저 사람이 내 배우입니다!’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16583652490241.jpg

“그렇게 변태같이 쳐다보면 내가 잠들기 힘들지.”

16583652490246.jpg

“깜짝이야!”

우스운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지호가 제 옆자리에 수북이 놓인 시나리오 뭉치에 손을 댔다.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눈이 쉽게 감기지 않는 날이 있는데 지금이 그랬다.

16583652490241.jpg

“뭐가 이렇게 많아?”

16583652490246.jpg

“그냥 이래저래 주는 것들 다 받아온 거야. 이 바닥 한 큐잖아. 오늘의 신인이 내일의 신성이니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지.”

지호의 얼굴에 조소가 어렸다. 맞는 말이었다. 9년 전, 신인이 얼굴만 믿고 주연으로 캐스팅됐다며 자신을 비아냥거렸던 수군거림도 딱 두 달이 전부였다.

그 뒤엔 그들이 또 어떤 식으로 떠들었는지 알 수는 없다. 밑바닥에서 뒹구는 먼지 뭉치 소리가 꼭대기에선 들리지 않았으니까.

16583652490246.jpg

“……괜히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읽어 보면서 한 달은 푹 쉬어.”

손만 가져다 댈 뿐 시나리오 한 권도 잡아채지 않는 그를 보며 봉기가 뜸 들이듯 말을 얹었다.

16583652490241.jpg

‘형, 나 이번 작품까지만 하고 당분간은 쉴게.’

16583652490246.jpg

‘그래. 우리 정말 쉬지도 않고 달려왔다. 몇 달은 뺄 수 있어.’

16583652490241.jpg

‘아니. 좀…… 더 오래. 계약이 올해까지였지?’

봉기는 열흘 전 지호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사실 열흘 내내 한순간도 지울 수 없었다. 지호에게 어딘가 생기가 없어 보인다는 느낌은 몇 해 전부터 느끼긴 했었다. 그래도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정말 그렇다고 대답할까 봐.

제 예감이 맞다는 걸 알게 될까 봐.

둘은 데뷔 때부터 함께였다. 대형 기획사의 신인 배우와 신인 매니저로서. 데뷔 6년 차, 지호의 재계약 시즌이 얼마나 치열하고 살벌했는지 기억한다. 온갖 매니지먼트에서 평생 본 적도 없는 액수의 계약금을 제시하며 안달했으니.

16583652490241.jpg

‘형이 새로 차리는 건 어때? 지금껏 해 온 거랑 다른 것도 없으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계약금도 대형 회사의 엄청난 지원도 다 필요 없단다. 그냥 지금처럼만 하면 되는 거라고. 자신을 두고 입맛을 다시는 그 많은 돈뭉치에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지호는 제게 손을 내밀었다.

16583652490241.jpg

‘형도 이제 나 데리고 돈 좀 벌어야지. 아, 너무 돈 많은 노인네 같은 말투였나? 큭큭.’

늘 그런 식이었다. 삼대를 우려먹어도 부족할 만큼 큰 걸 베풀면서도 별것 아닌 양 툭 건네곤 끝. 저 얼굴에 믿기지 않게 속까지 깊었다. 그리고 부드러웠지만 제 생각엔 고집이 있다.

그래서 더 묻지 않았던 거였다. 지호가 배우를 그만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16583652490246.jpg

“참, 거기 김민우 PD 새 드라마도 있는데 조금 독특해.”

16583652490241.jpg

“독특?”

16583652490246.jpg

“응. 생뚱맞게 4부작을 찍는다더라고. 어차피 저예산이라 신인 배우들 쓸 거긴 한데…… 그냥 시간 되면 봐 보래. 글이 엄청 좋다나.”

지호는 긴 손가락으로 시나리오 뭉치들을 얌전히 뒤적였다. 김 PD라면 자신과도 200억짜리 드라마로 초대박을 냈었고 무엇보다 안목이 좋았다. 스케일 큰 작품만 선호하는 줄 알았는데 저예산 드라마라니. 묘하게 흥미로웠다.

16583652490246.jpg

“그런데 김 PD가 연줄로 캐스팅할 사람은 아니지 않나? 그런 걸 보면 연기력이나 외모도 좀 되나 보네.”

16583652490241.jpg

“누가?”

16583652490246.jpg

“그 작가 말이야. 김 PD는 작가를 여주인공 시키고 싶어 하더라고. 아끼는 대학 후배라면서.”

‘JBC 드라마스페셜 : 23센티미터. 감독 김민우. 극본 장혜윤.’

독특한 제목과 처음 보는 작가의 이름. 거기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뒷이야기까지. 지호는 속으로 장혜윤이라는 이름을 곱씹어 본 뒤 표지를 넘겼다.

<씬 3. 종수네 집 부엌. 등교 전 아침.
종수. 식탁 위에 놓인 꽃게 라면과 김치를 바라보는. 라면 안에 다리가 8개인 꽃게.

아빠 : (의자에 앉으며. 웃으며.) 아침 먹자.
종수 : (N) 20살이 될 때까지 나는 게의 다리가 8개인 줄 알았다. 10개의 다리가 온전히 다 있는 게는 내 식탁에 올라올 일이 없던 것뿐이었는데.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나 보다. 순진했다.
종수 : (아빠 바라보며.) 응. (웃으며.) 맛있겠다.>

16583652490241.jpg

“하아…….”

지호는 저도 모르게 입술이 벌어졌다. 벌어진 틈으로 십여 년쯤은 더 삭힌 한숨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가슴속 어딘가가 잔잔히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금세 휘몰아쳐 온 마음을 헤집고 뒤집어놓는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나눈 대화와 여린 감정들이 그 얇은 시나리오에 적혀 있었다. 이젠 죽고 없는 아버지와의 추억, 그 시간들. 유일한 목격자처럼 홀로 남겨져 자신만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너무 담백하고 간결하게 글자로 인쇄되어 있었다.

몇 장을 더 보다 시나리오를 덮었다. 그리고 표지를 응시했다. 꽤 한참 동안.

16583652490241.jpg

“……장혜윤.”

16583652490246.jpg

“응?”

낯선 이름에 봉기가 즉각 반응했다.

16583652490241.jpg

“꼭 신인일 필요는 없는 거잖아. 몸값만 맞으면.”

16583652490246.jpg

“무슨 소리야, 갑자기.”

16583652490241.jpg

“김 PD님한테 전해줘. 내가 이 작품 출연하고 싶어 한다고.”

16583652490246.jpg

“뭐?!”

덤덤한 목소리에 담긴 엄청난 말들에 봉기는 차를 급히 세워야 했다.

16583652490241.jpg

“장혜윤이란 사람을 만나봐야겠어.”

몸을 잔뜩 틀어 자신을 쳐다보는 봉기는 안중에 없었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장혜윤이란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낯선 감정.

간절함.

지호의 엄지손가락이 시나리오에 적힌 혜윤의 이름을 쓰다듬듯 문질렀다.

16583652542025.jpg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