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 자꾸 날 쳐다보는 것 같지 않아? (20/110)


20. 자꾸 날 쳐다보는 것 같지 않아?
2022.08.07.



 


“이런 데서 드라마를 찍는다는 거지? 신기하다.”

“그렇지? 나랑 혜윤이도 첫날 와서 구경하기 바빴어.”

 
우준은 평생 본 적 없는 촬영장의 모습에 호기심이 바싹 일어났다. 처음 보는 스태프들과 눈이 마주치면 스스럼없이 눈인사를 하기도 했다. 특유의 쾌활한 성격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티가 났다.


“민주 씨, 주말 잘 쉬셨어요?”

“……아, PD님.”

 
신기해 보이면 일단 손을 뻗고 보는 우준을 잡아당기느라, 민주는 민우가 근방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누구? 남자친구?”

“에이, 아니요. 혜윤이까지 셋 다 친구요. 오늘 이 친구가 기사 역할 하기로 해서.”

“오, 친구분이 운전 잘하시나 보다. 평소보다 더 빨리 온 것 같은데요?”

“네. 같은 길인데도 다르더라고요. 우준아, 인사드려. <23센티미터> PD님이셔.”

 
민우는 칭찬을 건네며 우준을 가볍게 살폈다. 얼핏 옷태만 봐도 운동하는 사람이었다. 키는 적당했지만 몸매는 적당함을 한참 넘었고, 외모도 무난하게 멀끔했지만 웃음기가 돌면 완벽히 호감형인 남자.


“안녕하세요. 혜윤이 친구 김우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딱 그 체격에 어울릴법한 목소리까지 더해져, 어딜 가도 환영받는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오, 목소리 정말 시원시원하시다. 반갑습니다.”

“네. 혜윤이한테 PD님 말씀 많이 들었어요. 덕분에 드라마도 써보게 됐다고 아주 고마워하더라고요.”

“그래요? 좋은 작품 함께 하게 된 거니까 서로 고맙죠.”

 
곳곳에서 우준의 굵은 목청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물론 다들 잠시 힐금대다 제 일을 하기 바빴다. 한 사람만 빼고.


“지호야, 미간에 주름.”

“……미안.”

 
세트장 안에서 지호의 머리를 빗겨주는 스타일리스트가 손등으로 그의 미간을 살짝 누른다.


“메이크업 안 하면 피부톤 붉어지는 거 더 쉽게 보이니까 조심해. 찡그리지 말고.”

“응.”

 
충분히 신경 쓰일 인물이 저렇게 이목까지 끌어주니, 지호의 시선이 우준의 온몸에 달라붙었다. 지호 역시 민우와 크게 다르지 않게 우준을 평가했다.

남자답고 넉살 좋은, 혜윤의 최측근.

자신이 얼마나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는지 깨달은 건, 저 멀리 혜윤이 걸어오면서부터다.


“와…… 장혜윤. 교복 뭐냐.”

“응? 이상하다는 거야?”

 
교복 차림의 혜윤이 꾸물거리며 다가가자 그가 노골적으로 그녀를 훑는 게 보였다. 시선이 머리부터 느리게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게, 그의 입꼬리는 천천히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이건 뭐, 어제 졸업한 수준인데? 우리 혜윤이가 교복이 받네.”

“오, 김우준이 웬일로 내 칭찬을 해?”

“여기선 여배우라며. 기 좀 살려줘야지.”

 
혜윤의 작은 주먹이 그것보다 몇 배는 두꺼워 보이는 그의 팔뚝을 쳤다. 진짜 제대로 치는 게 맞냐며 혜윤을 쳐다보는 그의 눈이 보기 좋게 접힌다.


“……아이고, 지호야.”

“어. 미안.”

 
스타일리스트의 반복되는 다그침에 지호는 어렵게 얼굴을 풀고 시선을 거뒀다. 작아진 혜윤의 목소리는 이곳에서 들리지 않았지만, 남자의 큰 목소리가 ‘알았어, 알았어.’라며 그녀를 달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분 뒤, 지호의 귓가에 콩콩거리는 소리가 흘러들었다. 조막만 한 발이 바닥을 디딜 때마다 내는 소리 역시 주인을 닮은 것 같았다. 조금씩 선명해지는 발소리에 지호가 감았던 눈에 약한 힘을 실었다.


“……어? 혜윤 씨 오셨구나. 이틀 잘 쉬었어요?”

“네. 쉬신 거 맞죠?”

“우리는 어제 오후에 겨우.”

“아…….”

 
세트장 안으로 들어온 혜윤이 스타일리스트와 인사를 나눴다. 지호의 눈이 비로소 가까이 다가온 혜윤을 봤다. 이틀 동안 뭘 어떻게 쉰 건지, 말간 얼굴에 생기가 가득했다.

서로의 시선이 완벽히 얽혀드는 찰나에는 잠시 눈을 굴리다가 다시 저를 마주하는 얼굴. 그 잠깐의 수줍음을 이겨낸 씩씩함. 한결같이 예뻤다.


“얼굴 보니까 잘 쉰 것 맞나보네요.”

 
스타일리스트가 세트장을 빠져나가자 지호가 혜윤을 향해 웃었다. 온화한 눈빛과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녀에게 내린다.


“네…… 미안해요.”

“응? 뭐가?”

“나 혼자만 잘 쉬어서…….”

 
세트장의 조명들이 그녀만 비추나 싶을 정도로, 촉촉한 눈이 유독 그렁그렁해 보였다. 앙다문 입꼬리에 미안한 마음이 매달린 건지 축축 처지고 있었고.


“……미치겠다.”

 
울먹이는 표정의 혜윤이 딱 한 걸음 앞에 서 있다면, 제 감정을 쉽게 감추는 지호라도 참기 힘들었다. 입술을 맞물기도 전에 진심이 튀어나와 버린다. 그가 웃음이 스민 입매를 애써 진정시켰다.

지호의 말과 표정을 이해하기 힘든 혜윤이었지만, 그래도 웃는 지호는 근사했으니 끔벅이며 바라보았다.


“아, 맞다. 지호 씨.”

“네.”

“혹시요…… 매니저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갑자기 왜요?”

 
혜윤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이야기에, 대본에 가려던 그의 손이 멈췄다. 다시 본 그녀의 표정이 애매했다. 진짜로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애매함인 것 같았다.


“좀 전에 복도에서 뵀거든요. 그래서 인사를 했는데…….”

“응. 했는데?”

“저를 보는 표정이 좀…… 이상했어요.”

 
콕 집어 설명하기 힘들었는지 혜윤이 목덜미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다시 떠올려봐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신이 봉기의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한 건가 싶기도 했고, 잘 읽은 거라고 한다면 납득이 안 됐기에.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


‘……매니저님?’


‘아, 네. ……먼저 들어가세요.’

 
봉기가 자신의 인사를 못 들어서 대답을 안 한 게 아니었다.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그의 시선이 따가우리만큼 제게 꽂혔다. 그러고는 얼굴을 빤히 보다가, 전신을 쭉 더듬다가, 끝내 눈으로 고정.

10초쯤 되는 긴 시간 동안 봉기의 눈빛을 온몸으로 읽었는데, 그 결론이란 게 참.

그건 분명 ‘네가 감히?’였다.


 
머릿속에선 아직도 봉기의 시선이 요리조리 춤을 췄기에, 혜윤의 고개가 이리저리 기울었다. 그 모습에 지호의 눈동자가 허공에 본 적 없는 장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설명하지도 않은 상황을 빠르게 유추했다.


“혹시 뭐…… 애매하게 쳐다봤어요?”

“오! 네! 맞아요! 애매함!”

 
도통 생각나지 않았던 단어를 지호가 알려줬는지 혜윤이 상쾌하게 손뼉을 쳤다. 좋아하는 간식을 발견한 강아지의 애절함이랄까. 그런 절실한 표정이 자신을 올려보자 지호가 모두 파악해낸 듯 옅게 웃었다.


“인사는 제대로 안 받아주고 쭉 훑기만 했나 보네.”

“우와아아!”

“웃어주지도 않고?”

“대박!”

 
피식거리며 모든 걸 꿰뚫은 지호에게 혜윤이 격하게 반응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좀 더 진득히 바라보자, 반길 땐 언제고 허겁지겁 한 손으로 이마를 가리는 그녀였다.


“음, 뭐지 그건?”

“아무래도 제 머릿속이 다 보이는 것 같아요. 가려야겠어요.”

“큭큭. 그런 상상력은 뭘 먹고 자라났을까.”

 
표정을 아무리 비장하게 지어 봤자 귀여움만 커질 뿐이란 걸, 왜 본인만 모를까. 지호는 꼭 상상력마저 외모를 닮았지 싶었다. 그리고 봉기가 혜윤에게 보인 눈빛이 어땠을지 다 알 것 같았다.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지도.


“그냥…… 작가님이 귀여워서 쳐다본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요.”

“아닌데. 오히려…… 그 반대 같았는데.”

“형은 내가 잘 알아요. 그러니까 고민하지 마요.”

 
혜윤의 모든 순간을 지호가 예뻐했다면, 지호의 모든 것을 혜윤은 믿을 수 있었다. 믿고 싶었고. 그래서 이번에도 지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영 풀리지 않던 문제 하나가 해결되자 곧 그녀가 짧게 앓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주먹으로 툭툭 때렸다.


“다쳤어요?”

“아니요. 오랜만에 운동해서 몸이 놀랐나 봐요.”

“아, 쉬는 날 운동도 했구나.”

“네. 친구가 끌고 가는 바람에.”

 
작은 주먹이 얇은 허리를 규칙적으로 끊어쳤다. 그 소리가 지호의 신경을 긁었다. 그의 시선이 세트장 밖으로 향한다.


“친구라면…… 오늘 같이 온?”

“으으, 네.”

 
입속의 혀끝이 볼을 꾹 찌르며 어떻게든 감정을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많이 친한가 봐요.”

 
지호의 말에 혜윤이 멀리 서 있는 우준을 봤다. 오랜 추억이 담긴 시선은 아마도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일 것 같았다. 쭉 꽂히지 않고 상대를 둥그렇게 감쌀 것 같은 눈길을 지호가 말없이 바라봤다.

말없이, 탐탁지 않게.

잠시 후 지호 역시 혜윤과 같은 사람을 바라봤지만, 그 온도는 정반대였다.


“네. 어릴 때부터 거의 붙어 다녔으니까요.”

“…….”

“똑같이 꼬맹이였는데 저렇게 남자답게 자란 걸 보면…… 정말 신기해요.”

 
그리고 그녀의 대답에 퍼렇게 날이 선 지호의 눈빛이 우준을 찔렀다. 섬뜩하리만큼 노려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또한 이쪽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지호는 자연스럽게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의아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우준도 멍하니 바라보다 어설프게나마 고개를 꾸벅한다.


“와, 씨…… 뭐 저렇게 생겼냐.”

 
멀리 지호의 시선이 사라지자 우준은 고개를 돌리며 감탄을 중얼거렸다.


“슬슬 촬영 들어갈게요! 모두 준비해 주세요!”

 
이틀의 휴식을 잘 누린 건 혜윤뿐만이 아니었다. 촬영 시작을 알리는 스태프의 목소리가 유달리 힘이 넘쳤다. 그 목소리 뒤로 분주한 움직임들과 함께 2주 차 촬영이 시작됐다.

첫 주엔 지호가 알려주는 대로 움직였던 혜윤이라면, 이젠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아쉬운 부분만 잡아주는 지호였다. 그만큼 혜윤은 잘 해내고 있었다.


“어때? 혜윤이 잘하지?”

“……그러게. 새롭네.”

 
카메라 밖에서 두 사람의 연기를 지켜보던 민주가 작게 속삭였다. 아침 내내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던 우준의 눈이, 오늘 중 제일 반짝거렸다. 자신은 발도 디뎌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을 누비는 혜윤이 대견했다.


“안지호 진짜 잘생겼지?”

“그냥 뭐…… 연예인 같구만. 키 크고.”

“남자들 자격지심이란.”

 
민주가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혀를 찼다. 우준은 남자가 남자의 얼굴과 몸매를 보고 놀란 게 민망했다. 하지만 대충 둘러댔을 뿐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기에 마음에 걸리진 않았다.

사실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기분 탓인가?”

“뭐가?”

 
아무리 소곤거리며 말한다 해도 우준의 말투가 평소답지 않게 시원찮았다. 그 은근한 차이를 잘 아는 민주가 그제야 그를 봤다.


“아니 그냥. 자꾸 날 쳐다보는 것 같지 않아?”

“누가?”

“……안지호.”

 
자신이 말해놓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우준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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