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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사랑의 모양 (27/110)


27. 사랑의 모양
2022.08.31.



“그래, 이 정도여야 말이 되지.”

“응. 앞으로는 늘 이 시간에 끝날 거래.”

“지금도 1시가 넘었는데, 어제 2시를 경험했더니만 행복하네.”

 
모든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봉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라디오 버튼을 눌렀다. 잔잔한 심야의 라디오. 큰 고저 없는 선율은 긴장을 이완시켜 많은 생각을 지워주기도, 또 오랜 생각을 풀어 놓기도 했다.

봉기와 말을 주고받던 지호는 잠시 핸드폰을 쥐었다. 새로운 메시지를 보는데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멋지게 흘려 쓴 영문의 상장과 트로피가 찍힌 사진 한 장. 그리고 신난 글자들.


[지호 오빠! 저 이번에 나간 콩쿠르에서 1등 했어요! 오빠한테 꼭 말해 주고 싶어서…… 일하느라 많이 바쁘죠?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요. (오후 8:05)]

 
여동생 새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상장에 적힌 날짜를 보니 지난주였다. 일주일 동안 보낼까, 말까 고민하며 피아노 주변을 서성였으려나.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기다릴 것 같아 손을 움직였다.


[축하해, 새별아. 고생했다. 너도 건강 잘 챙기고. (오전 1:20)]

 
전송된 메시지가 화면을 채운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리니 올해 주고받은 6번째 메시지였다. 하나같이 단정한 말투인 새별의 메시지들. 늘 한 문장씩 보낼 때마다 여러 번 고민했겠지 싶었다.

***



‘지호야, 고모 말 잘 듣고 있어. 얼른 나아서 데리러 갈게. 아빠가 우리 지호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그날 왜 고개만 끄덕였을까. 하긴 숨 쉬겠다고 말하고 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서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많이 사랑한다는 말. 너무 당연했으니까.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고래고래 소리쳤을 텐데. 하지만 확신한다. 말하지 않았지만 아빠도 분명 알았을 거라고. 내 사랑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아이고, 제 새끼라면 벌벌 떨던 놈이…… 눈이나 편히 감았겠어.’

 
장례식장엔 피부가 고동색인 아저씨들이 잔뜩이었다. 아빠와 함께 배를 타던 아저씨들이었다.

굳은살로 투박하고 딱딱해 보이는 손이, 눈가에 깊게 팬 주름 사이로 흐르는 눈물들을 닦아댔다. 하지만 애써 닦아놓은 눈들은 나를 보면 쉬이 다시금 젖었다.

나는 그들의 눈물을 멍하니 봤던 것 같다. 저 눈물도 바다만큼 짜겠지? 아닌가? 아저씨들의 눈물이 바다를 만든 걸까? 우리 아빠의 눈물도 어느 바다를 만들었겠지? 12살의 나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라도 해야 조금 덜 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지호야, 지호 엄마가 지호 동생을 낳았대. 그런데 아직 아기라서 지호까지는 돌보기 힘든가 봐. 그러니까 중학교는 고모들이랑 지내면서 다니자.’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원래부터 없었다고 생각했으니 서운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괜찮았는데 곧장 데려가지 못하는 마음은 편치 않았는지, 매달 생활비는 한 번도 빠짐없이 보내주셨다고 들었다.


‘내년엔 작은 고모네서 1년 지내자. 괜찮지?’

 
그렇게 1년씩 큰 고모와 작은 고모네 집에 번갈아 가며 얹혀살았다. 그래서 중학교 땐 1년마다 전학을 다녔는데, 이 부분이 고등학교 이전의 삶이 공개되지 않은데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다음 전학을 준비했던 아이. 목포 한구석, 전교생도 몇 없는 중학교. 그때의 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그리고 17살이 되던 해. 연락이 왔다. 엄마로부터.


‘지호야, 너무 잘 컸네. 엄마가…… 빨리 데려오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엄마와 아들의 대화라기엔 딱딱했지만 그래도 분명 느꼈을 거다. 감사하다는 내 말이 진심이란 걸. 왜냐하면 미안하다는 엄마의 말이 진심이란 걸 나도 느꼈으니.

그리고 그 옆엔 멀끔한 얼굴의 아저씨가 서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카락, 그 밑에 하얀 얼굴. 키가 컸고 무엇보다 손이 고와 보였다. 다리 뒤로 조그마한 형상이 꼼지락대는데, 빼꼼 얼굴을 내밀며 나를 탐색했다.


‘오빠가…… 너무 왕자님 같다고 하네.’

 
부끄러움에 몸을 숨기는 아이를 바라봤다. 나중에 듣기론 이 아이 덕분에 내가 가족의 일원이 된 거란다. 큰 고모 말로는 적어도 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을 때 나를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고.

다행인지 아이는 좋아했다고 한다. 오빠가 생기는 게 설렌다면서.

그게 새별이다. 서울에 오자마자 갖게 된 여동생.


‘성을 ‘유’로 바꾸는 건 어떻겠니? 네가 편한 대로 해 주고 싶구나.’


‘괜찮습니다. 저는 안지호로 사는 게 좋아요.’

 
고등학교 입학 한 달 전, 새아버지가 내게 하신 말씀이었다. 외모만큼이나 단정한 말투였다. 만나서 함께 산 지 겨우 한 달. 친해질 틈도 없었기에 어색함은 서울의 건물들처럼 크고 높았다.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말하라고 했던 것 같다. 언제든, 언제라도. 너그러운 어른의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다.


‘일단 명함부터 줄게요. 마음이 급해서 손이 다 떨리네.’

 
그리고 그해 4월. 서울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돈을 벌 기회가 생겼다.

연기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이틀 걸러 한 번씩 받았던 명함 중에, 그때 제일 유명한 배우가 있던 회사와 손을 잡았다. 운이 좋았지. 6개월 뒤엔 소원대로 돈을 벌 수 있었다.

‘형, 나 수입이 좀 생긴 건가?’라는 질문에 봉기 형의 대답이 잊히지 않는다. ‘응. 평생 그만 벌어도 될 만큼.’ 거기에 뭐라고 했더라. ‘앞으로 뭐든 가격은 안 따져도 돼.’라고 했던가. 그 후로도 돈은 끊임없이, 더 많이 들어왔다.

오랜 연습 기간이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정산이 빨랐다. 데뷔하고 1년이 됐을 무렵 내 집을 살 수 있었고 그 길로 18살에 독립을 했다. 따로 나가서 살겠다는 내 말에, 강하게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독립을 한 뒤 2주마다 형을 통해 반찬을 보내주셨다. 간혹 입에 맞는 반찬을 몇 젓가락 더 비워 보내면 다음엔 그 반찬만 조금 더 큰 통에 담겨 왔다.

만드는 손끝이 들떴는지, 유독 잔뜩 뿌려진 참깨. 작은 알갱이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괜히 고프지도 않은 배를 채웠던 몇 번의 새벽.

계절에 한 번씩은 새아버지께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지호야, 늘 건강 챙기고. 항상 응원한다.] [네. 감사합니다.]

남들이 보면 너무 무정한 가족처럼 보이겠지만 꼭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꽉 찬 사랑은 아니어도 우리 사이에 자발적인 책임감은 있었으니. 책임감도 사랑의 한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컷! 지호 씨, 너무 감정이 없는데? 사랑한다는 말을 누가 그렇게 해.’

 
아, 이때 처음 알았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걸.

저 때가 겨울이었는데 긴팔을 입어서 참 다행이었지 싶었다. 상대 배우의 얼굴을 보며 사랑을 말하자마자 팔에 소름이 돋았으니까. 제일 사랑했던 사람에게도 해본 적 없는 말을, 내가 누군가에게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사랑하게 되면 할 수 있지?


‘저 정말 지호 씨를 사랑해요. 나랑 사귀어요.’

 
그래서 미안하지만, 지겹도록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좋고 싫음이 아니라 궁금증만 생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기했다. 대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저 말이 나만 어려운 말이었나?

주변엔 온통 인형 같은 여자들이 많았고 관심을 끄는 얼굴도 여럿 눈에 보였지만 꼭 마지막은 저랬다. 조금 지켜보려던 내게 금세 사랑을 말하고, 그럼 난 황당해하다가 식어버리고.

‘왜 나를 사랑해요?’ ‘잘생겼잖아요.’ ‘……그렇구나.’


‘자, 이 질문이 압도적으로 많네요. 바로 갈게요! 지호 씨의 이상형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게 만드는 여자요.’


‘네. 그 여자를 구체적으로! 그게 이상형이잖아요.’

 
솔직한 대답보다는 원하는 대답을 들려줘야 한다는 걸 그즈음에 배웠던 것 같다.

마땅한 답을 못 찾아 뜸을 들이던 때, 카메라 밖의 형과 눈이 마주쳤다. 먼 거리를 상쇄시킬 만큼 크고 또렷한 입 모양. ‘대충 말해.’ 이 네 글자는 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나네.

정말로 대충, 그렇지만 언제라도 거짓은 아닐 것 같은 대답을 나 역시 네 글자로 말했다. ‘예쁜 여자.’라고.

그 뒤 ‘안지호는 정말 예쁜 여자 아니면 쳐다도 안 본다더라.’로 덕지덕지 살이 붙은 소문은 의외로 고마웠다. 고백이 줄어야 거절도 줄어들 수 있는 거니까.


‘친구들한테 우리 오빠가 안지호라고 자랑했어요!’

 
아이들은 정말 금방 컸다. 9살 차이인 새별은 가끔씩 볼 때마다 키가 쑥쑥 자라 있었다.

몇 년 전엔 종이 뭉치를 주며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친구들에게 줄 거라면서. 성도 다른 나를 오빠라고 말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새별은 우리 오빠라고 자랑까지 하고 왔단다.

말은 우리 오빠라고 하면서 남의 오빠를 보듯 어찌나 부끄러워하는지. 눈만 마주치면 항상 얼굴이 새빨개졌다.


‘피아노가 너무 좋은데 배우는 건 무리 같아서…….’

 
새별의 책상 위에 있는 악보는 모서리가 잔뜩 해져 있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음날 피아노를 알아봤다. 그런데 피아노를 놓자니 방이 조금 작지 않나 싶어 결국엔 집도 사드렸지.

절대 안 받겠다며 몸서리를 치시는 두 분께 ‘가끔 집에 가면 새별이가 피아노 치는 걸 보고 싶어서요.’라는 말로 더 이상의 논쟁을 끊어냈다. 그 집엔 내 방도 하나 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가서 그런지 좀처럼 잠이 잘 오진 않았다.

새별은 생각보다 피아노를 잘 쳤다. 그래서 작년엔 그랜드피아노를 사주었는데, 그날 피아노를 보던 아이의 표정이 참 반짝였다. 간절히 찾던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나중에 비슷한 표정을 보았던 건 혜윤에게서였던 것 같다.


‘와, 여행 가려고요? 그거 좋다!’

 
피아노도 값비싼 물건도 아닌, 곧 다가올 나의 휴식을 말하던 그때. 그게 마치 그녀에겐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의 존재를 찾아낸 순간.’


‘…….’


‘사랑한 거죠.’

 
참 쉬운 말로 정의하던 나는 사랑을 잘 모르는 반면, 깊이 고민하던 혜윤은 누구보다 사랑을 가득 안은 채 살고 있었다. 여전히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아는 사랑이란 상대를 지켜주는 것, 불안에 떨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아빠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내게 보인 미소 같은 것.

그리고 어느 날. 도저히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곤 못 버틸 것 같은 순간이 온다면, 그때 내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이 혜윤이길.

욕심은 예상보다 크고 빠르게 자라난다.

***

어두운 창밖 풍경 속으로, 옛이야기들과 심연의 생각들이 할퀴듯이 지나간다. 화면을 끄려던 지호의 손이 잠시 주춤했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망설임 없이.

조금 전 보내 놓은 메시지 아래, 노란색의 말풍선 모양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별일 없어도 언제든지 연락해. (오전 1:40)]

 
지호가 여동생 새별에게 보내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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