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 반가워요 (42/110)


42. 반가워요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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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진행된 세트 촬영의 마지막 날. 혜윤은 그동안의 일들이 모래알처럼 발아래에 가득했음에도 시간이 빠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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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개봉일이면 영화관에 사람들 많을 텐데…… 가도 괜찮아요?”

 
소품을 정리하던 스태프 한 명마저 빠져나가자 혜윤의 눈이 옆에 서 있는 지호를 향했다. 개봉 당일, 그것도 금요일 저녁.

더군다나 이날은 올해 기대작으로 연초부터 주목받던 영화 3개가 동시에 개봉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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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럴 것 같아서 관 하나 대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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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제 그녀도 슬슬 익숙해져야 했다. 무엇이든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는 지호에게. 아직은 적응이 덜 됐는지 혜윤이 입을 다물지 못하자 지호가 살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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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관 아니라서 많이 비싸지도 않아요.”

 
영화관을 통째로 빌리는 엄청난 상상을 하는 것 같기에 친절히도 싹둑 잘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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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예요? 나랑 반씩 나눠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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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 돈 꽤 버는 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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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름 벌어요.”

 
올려보는 눈이 제법 진지했다. 어련하실까. 조그만 몸으로 그렇게나 다양한 일을 하는데. 어쩐지 혀끝에 지난번 혜윤이 만들어준 유자차의 맛이 감돌았다.
 
‘그냥 다음에는 내가 받는 걸로.’라는 식의 대답으로 이 주제를 멀리 던져버리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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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스케줄 때문에 시간이 애매해서. 저녁 먹고 있어요. 8시쯤 데리러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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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호 씨는요? 저녁은 차에서 대충 때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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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간단히.”

 
애절한 눈으로 걱정을 보내는 혜윤과는 달리 그는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였다. 사실이 그랬다. 항상 이동하는 차 안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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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잘됐다!”

 
그리고 그 담백한 끄덕임에 혜윤이 손뼉을 치며 그의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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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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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을 만한 거 조금 만들어 갈게요. 받기만 하는 거 싫으니까.”

 
맨날 주기만 하면서, 뭐 이렇게 작은 것 하나 받는 것도 힘들어하는 건지.

지호가 혜윤을 애정 있게 봤다. 하지만 거절하긴 힘들었다. 벌써 의지가 가득 고여서 눈가에 총기가 번뜩였으니까. 그래서 거절 말고 북돋우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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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기대할게요. 와, 얼마나 맛있을까?”

 
그리고 배려인 척, 얄궂게도 폭탄을 던졌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표정을 보일지 이젠 잘 알아서.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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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작게 벌어진 입 위로 당황한 시선이 갈팡질팡한다. 혜윤의 머릿속에 잠시 쉬고 있던 아이가 기지개를 켠 모양이었다. 요리 준비로 바쁜 하루를 시작하려고.

지호는 그날 틈틈이 다섯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혜윤을 지켜봤다. 항상 뭘 하나 보면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보고 있었다. 자신이 다가가면 빠르게 화면을 껐지만 그렇다고 못 보진 않았다.

김밥, 스프링롤, 유부초밥, 샌드위치. 하나같이 사진이 알록달록해서 대충 봐도 뭘 걱정하는지 훤히 보였다. 그럴 필요 없다고 달래줄 수도 있었는데.

미안하지만 그냥 지켜봤다.

그리고 지호가 몰래 혜윤을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를 보고 있었다. 당연히 같은 감정으로 보았던 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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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배우는 눈빛이 다 하는구나.”

 
조연출이 세트장 안에 서 있는 지호를 보며 혼잣말 같은 감동을 입 밖에 냈다. 그 낯간지러운 표현에 카메라 앞에 앉아 있던 민우가 그의 시선의 끝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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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씨?”

 
그리고 민우는 곧장 그 끝을 계속 이었다. 그럼 지호의 시선의 끝은 어딘가하고. 다섯 걸음쯤 떨어져 있는 혜윤이었다. 한껏 핸드폰에 집중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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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분위기로 말하잖아요. 아, 나도 연애할 때 저런 눈빛이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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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안 생겼는데 저런 눈일 리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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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건 당연한데. 적어도 눈빛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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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 어떤?”

 
둘은 대화를 하면서 여전히 지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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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생판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봐도…… 아, 저 남자가 저 여자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싶은.”

 
민우는 세트 촬영 마지막 날이라 감성적인 거냐며 농담을 던지려다 접었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분위기에 취한 척, 간지러운 진담이 오가는 것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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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할 수가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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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습니다!”

 
여기저기 작은 박수 소리가 들렸다. 찌뿌듯한 몸을 쭉쭉 늘리는 스태프들도 여럿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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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월요일 오전부터 촬영 시작이니까 일요일에 미리 내려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숙소 주소는 메시지로 보냈으니까 확인해 주세요. 그럼 부산에서 뵙겠습니다! 3일 잘 쉬세요!”

 
크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가 세트장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기다렸던 끝인사에 하나둘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지호는 오늘마저도 야간촬영이 있었으니 그의 촬영팀들은 몇 시간 더 이곳에 남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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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어요. 다음 촬영부터는 부산에서 보겠다.”

 
말아 쥔 대본으로 목덜미를 툭툭 치던 그가 혜윤의 얼굴을 살피려는지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얼굴 같아서 조금 깊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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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겨울에 부산 처음 가봐서 기대돼요.”

 
먼 길이라 걱정스러웠지만 다행스럽게 진심이 보이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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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은 곳 있어요? 해보고 싶은 거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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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니요. 그냥 바닷가 보면서 맥주 한잔 마시기? 끝.”

 
그저 바다라면 다 좋은 모양이었다. 말하는 데 고민이 없는 걸 보니.

혜윤이 지호의 손에 잡힌 대본을 보며 자신도 비슷하게 대본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어른의 행동을 흉내 내듯, 조금 전 그의 행동을 곱씹으며 목을 툭툭 치자 지호가 살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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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못 마시는 것 치고는 참 좋아해.”

 
같은 해명을 또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목을 치던 손에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손만큼 눈 또한. 그녀의 눈동자에 작은 불씨가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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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진짜 진짜 오해예요. 언제 한번 제대로 보여줘야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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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부산에서 오해 잘 풀어줘 봐요. 나도 그땐 여유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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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진짜로.”

 
끄덕이는 고갯짓마저도 힘이 잔뜩 들어간 게 깜찍했다. 그 얼굴을 보던 지호가 잠시 세트장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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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참…… 재밌었다. 나중에 세트장 사라지면 많이 아쉬울 것 같네.”

 
그의 말끝에 벌써부터 아쉬움이 묻어났다. 9년 동안 많은 드라마와 영화작업을 했으면서도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이곳에서 경험했던 수백 가지의 감정을 재밌었다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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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너무 아쉬워하지 말아요.”

 
혜윤 역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얼핏 보아도 지호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생각이 아쉬움이라면 얼른 깨뜨려줘야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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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만날 때마다 종종 여기 이야기할 거잖아요. 그럼 사라지는 거 아니지. 계속 살아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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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지호가 혜윤에게 시선을 내린다. 그녀는 자신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 시간의 끝을 가져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말을 새겨듣기로 했다. 혜윤이 가려는 길로 함께 가야지 싶어서. 옆모습이 고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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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지금보다 더 예뻐질지도 몰라요. 원래 추억이 그렇잖아요. 오래되고 멀어질수록 더 귀하고…… 빛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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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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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다치지 않고.”

 
말하는 순간에도 귀하고 빛나는 것들을 상상하는 건지 표정이 반짝거렸다. 눈을 사로잡네 싶어 한참 더 보려는데 순간 홱 고개를 자신에게 돌리는 혜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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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방금 엄청 누나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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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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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뿌듯하다.”

 
말로 뱉어놓은 뿌듯함보다 더한 뿌듯함이 표정에 가득했다. 그 미소에 아쉬움 같은 서러운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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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촬영도 힘내요. 항상 먼저 가서 미안했는데…… 오늘 한 번만 더 미안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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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은 무슨. 얼른 가서 푹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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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호를 두고 뒤돌려는 혜윤의 어깨가 조금은 처져 있었다. 조금 전 그의 아쉬움이 몇 조각 옮겨간 모양이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 지호가 그녀의 어깨 위 조각들을 털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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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밖에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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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작은 목소리에 설렘이 담겨 있었다.

***

다음 날, 지호는 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배우들과 다 함께하는 무대인사도 있었고 지금처럼 동행이 어려울 경우엔 각자 지역을 나눠 진행하기도 했다.

띠리링-

대충 늦은 점심을 해결하던 때였다. 차를 나서려는 그에게 산뜻한 알림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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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씨, 스프링롤 만들 건데요. 혹시 오리고기 괜찮아요? 불고기도 좋고요. (오후 3:40)]

 
봉기와 스타일리스트 2명까지 바짝 붙어 있으니 최대한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해봤다. 아마 혜윤은 소꿉놀이에 한창인 것 같았다. 메시지를 찬찬히 한 번 더 읽다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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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고기가 좋을 듯. (오후 3:43)]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달라붙는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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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좋아요! 사실 난 그게 더 맛있음! (오후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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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런 것 같았어요. 그걸 먼저 말하길래. (오후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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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생각 좀 그만 읽어요! (오후 3:44)]

 
결국 지호가 피식 소리 내 웃자 모두 그를 쳐다봤다. 핸드폰을 보며 웃고 있으니 별일은 아닌 것 같아 세 사람은 다시 걸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호 일행은 영화관 측의 제안으로 관계자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용객이 거의 없는 엘리베이터는 비상구까지 쭉 걸어가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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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앞서 걷던 봉기가 조금 놀란 것처럼 걸음을 멈췄다. 그 멈춤을 스타일리스트 2명과 지호가 도미노처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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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지호 씨네요. 안녕하세요. ……시간이 겹쳤나 보다.”

 
작아 보이는 엘리베이터 앞에 도혁과 그의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2명이 서 있었다. 저쪽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도혁의 매니저가 굼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제야 지호와 도혁의 시선이 얽혔다. 3초의 시간 동안 소리 없이, 굳은 듯이.

갑작스러운 만남임에도 서로를 보는 눈 속엔 별다른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양쪽 다 본심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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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선배님, 안녕하세요.”

 
먼저 살짝 고개를 숙인 건 도혁이였다. 도혁이 감춘 본심은 당황스러움이었다. 그래도 배우답게 티가 나진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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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반가워요.”

 
반면 지호는 본심을 입 밖으로 내보냈다. 반가움. 어떤 이유로든 진짜 반가웠으니까. 그 말에 걸맞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붙었지만 눈빛은 꽤 서늘했다.

띵동-

잠시 후 빠르게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4명이 최대 정원인 것 같은 비좁은 엘리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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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올라가세요. 엘리베이터가 많이 작네요.”

 
봉기가 도혁 일행이 주춤거릴 틈을 주지 않고 한 손을 슥 뻗어 보였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니까 타라고. 오히려 빨리 좀 가라고. 같이 있어서 뭐 좋겠냐는 심정이었다.

도혁의 매니저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봉기의 선의를 곧장 낚아채려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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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지호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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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분들은 다음 거 타고 올라오셨으면 하는데.”

 
차분한 목소리에 7명 모두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중 지호와 시선을 마주한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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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죠?”

 
지호는 남겨질 스타일리스트들에게 할 말을 도혁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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