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 주고 또 주고 (55/110)


55. 주고 또 주고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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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의 발끝이 침대 밑에 닿으려 할 때 고사리 같은 손이 소매를 붙잡았다. 생떼를 쓰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감기는, 안 그래도 촉촉한 혜윤의 눈동자에 물빛을 더했다. 그래서 눈에 비치는 감정이 유독 더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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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방이잖아요.”

 
난처함이 어른대는 눈동자. 거기에 속삭이는 목소리까지 더해지자 지호의 볼이 실룩댔다.

오해 살 수 있으니까 본인이 나가야 한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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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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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호는 얄궂게도 상체를 세우려는 혜윤을 도리어 꾹 눌러 눕히고는 큰 보폭으로 문 앞까지 걸어갔다. 제 뒤통수를 향해 있을 눈과 입이 얼마나 동글동글 커져 있을지 안 봐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자 문고리를 돌리는 손이 가뿐해진다.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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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씨……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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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소리야. 사람 앞에 두고. 아,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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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 안녕하세요.”

 
문밖에는 여자 스태프 세 명이 제각기 놀란 표정으로 지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격한 감탄사였지만 어쨌든 만나서 반갑다는 것 같아 지호 역시 웃으며 인사했다. 거칠고 빠르게 튀어나오는 말일수록 진심인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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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 계신 줄 모르고…… 저, 저기 이거 주려고요! 혜윤 씨가 아픈 것 같아서…… 그래! 민주 씨가 없잖아요? 원래는 일찍 오는 줄 알았는데. 전에 회식 때 혜윤 씨가 말해 줬어요. 자기가 두 달 언니라고도 하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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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그만 말해요. 제발 입 좀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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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감사합니다. 잘 먹일게요.”

 
죽이 담긴 봉투를 건네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진정되지 않는 입이 사족을 늘어트리자 일행 중 한 명이 서둘러 팔을 툭툭 치기도 한다.

사실 지호를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본 건 하나같이 처음이었다. 그랬기에 얼마나 겉으로 드러났느냐의 차이일 뿐,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물기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과 깨끗한 얼굴. 어느 집에나 몇 개씩 있을 법한 무지 반팔과 바지. 익숙한 평범함으로 무장한 그를 보면서 한 생각 역시 모두 같았을 게 분명했다.

진짜 말도 안 되게 잘생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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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희는 갈게요. 수,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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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 쉬세요.”

 
돌아서는 순간까지 당황이 가라앉지 않은 스태프는 꾸벅 인사를 했다. 지호 역시 비슷하게 고개를 숙인 뒤 방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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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무슨 수고하세요야, 뜬금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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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그냥 머리가 하얘져서 무슨 말 했는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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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나 여기 손 좀 올려봐. 이 정도로 뛰는 건 문제 있는 거지?”

 
문밖의 웅성거림이 방 안으로 걸어가는 지호의 등 뒤로 흩어졌다.

지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혜윤이 손에 쥔 생수병을 빼앗았다. 열어보려 애쓴 흔적이 뚜껑을 감싼 손에 붉게 남아 있었다. 드르륵. 곧바로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린 새 생수병을 다시 쥐여주자 혜윤이 겸연쩍게 그를 올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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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원래는 힘 엄청 센데 감기 때문에 못 연 거잖아.”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이 세게 고개를 끄덕인다. 지호가 그 얼굴을 제법 비슷하게 따라 했다. 강한 척을 할수록 귀여움만 늘어날 뿐이었지만, 그래서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 계속 그렇게 귀여우라고.

죽과 반찬을 테이블에 펼칠 무렵, 문밖에서 또 한 번의 인기척이 들렸다. 민우 역시 여자 스태프들과 똑같은 선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지호를 보며 놀라고, 죽을 건네고. 두 사람은 더 이어갈 이야기가 남아 있었기에 한 시간 뒤를 기약했다.

뒤늦게 시작된 아침 식사. 적당한 온기의 죽을 삼키자마자 혜윤의 인상이 단숨에 울상이 됐다. 목이 따갑다 못해 욱신거렸다.

그러다 애틋한 시선을 마주했을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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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 왜 나보다 더 아파해요.”

 
오물오물하던 입이 열리며 웃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지호는 자신보다 더 미간이 일그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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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안타까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다시 죽을 삼켰다. 여전히 목은 따끔따끔했지만 가슴은 간지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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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내 얼굴 좀 봐…….”

 
혜윤은 화장대 거울에 비친 얼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빨리 나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도 먹고 잤던 하루는 얼굴을 동글동글 부풀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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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같다.”

 
지호가 방을 떠난 사이 편안하게 씻고 마음껏 제 모습을 감상하는 시간. 잠시 자리를 비워주는 것조차 배려 같았건만 상대는 아니었나 보다.

고작 한 시간, 그것도 이 숙소 건물 안에 있을 거면서 어찌나 당부를 하고 가던지. 5분 거리에 있으니까 필요하면 꼭 연락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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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숟가락만 더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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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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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딱 한 입만 더. ……옳지, 착하다.’

 
아침 식사를 떠올리면 마음은 더욱 살랑였다. 꼭꼭 씹는 박자에 맞춰 그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마지막 한 입을 더 먹을 땐, 지호의 대견한 눈길에 마치 엄청 큰일을 해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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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건 확실한데…… 기분이 좋을 수도 있나?’

 
혜윤의 가슴 한가운데 행복한 의문이 파릇파릇 돋아났다.

달칵-

문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양손 가득 짐을 챙겨온 지호가 보였다. 제 관심에 찡긋거리는 눈썹 밑으로 서글서글 휘어지는 눈. 그 모습이 너무 근사해서, 혜윤은 조금 전 거울 속의 동글동글한 제 얼굴이 창피해졌다.

그래서 퍼뜩 고개를 숙이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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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살 많이 올라도 예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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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놀리려는 거 다 알아요. 빵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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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 모닝빵 같긴 해요.”

 
‘귀여워 죽겠네.’ 같은 낮은 혼잣말은 희한하게도 돋아난 행복에 물을 주고 있었다.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숙이면 저 멋진 얼굴을 못 보게 될 테니까. 혜윤은 조금 씩씩하게 굴기로 했다.

지호가 테이블에 가져온 짐을 올렸다. 새하얀 패딩 점퍼와 큰 종이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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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촬영할 때는 이 옷 입어요.”

 
혜윤이 굼뜬 걸음으로 옆에 다가서자 그가 가지고 온 긴 외투를 그녀의 옆에 살짝 맞대었다. 눈짐작으로 보아도 팔은 손끝을 넘어설 게 분명했고, 길이도 복숭아뼈에 닿을 만큼 커 보이는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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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옷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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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런데 의상 위에 걸치려면 훨씬 큰 옷이 편해요. 하얀 거라고 조심히 다루지 말고 막 입어요. 어차피 난 작아서 안 입는 옷이니까.”

 
이 분야에서는 당연히 지호가 전문가였기에, 혜윤은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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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이는 핫팩도 많이 가져왔으니까 꼭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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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한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운 줄 알았는데, 지호의 마음은 조금도 이 방을 못 벗어났었나 보다. 잔뜩인 짐 중에 그의 것이라고는 대본 하나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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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받는 거 그만하고 주는 거 하고 싶은데…….’

 
아쉬움으로 뚱해진 눈이 물끄러미 끔뻑끔뻑.

그 얼굴을 내려보던 지호의 손이 그녀의 이마 위로 올라가려던 때, 혜윤이 번쩍 떠오른 생각에 몸의 방향을 틀었다. 지호가 그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큰 캐리어 앞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은 몸은 유독 더 작아 보였다.

혜윤은 가져온 짐이 많이 빠진 캐리어를 세워둔 그대로 열었다. 지호는 침대에 걸터앉아 열심히 무언가를 찾는 뒷모습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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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넣어서 데려가고 싶네.’

 
손가락으로 어깨만 툭 쳐도 캐리어 안으로 꽈당 넘어질 것 같은 집중력이었다. 그러다 불쑥 몸을 돌려 제게 손을 쭉 뻗는다.

제법 묵직해 보이는 작은 종이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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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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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거.”

 
뿌듯해 보이는 얼굴을 조금 더 지켜보려 했지만 혜윤은 다시 캐리어 세상으로 폭 빠져들었다. 지호도 건네받은 봉투로 눈을 내렸다. 정확히는 봉투 안에 담긴 작은 병, 그 병에 붙은 더 작은 종이로.

종이에는 ‘생강청 맛있게 먹는 법’이 귀엽게 적혀 있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그녀를 바라보듯 따뜻하게 대했다. 어쩌면 글씨도 자기처럼 쓸까 싶은 생각이 스쳤지만 오래 머무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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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혜윤이 또 한 번 내민 손에는 의료 키트를 흉내 낸 두툼한 지퍼백이 들려 있었다. 그 속에 몇 가지의 비상약들과 소독약, 연고, 밴드, 거즈, 작은 체온계까지 보이자 살짝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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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준비 다 해놓고 감기 걸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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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멀뚱멀뚱 끄덕끄덕. 그녀는 민망한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지호는 여러 번 손을 내밀어야 했다.

사탕과 젤리를 주던 손이 금세 초콜릿 바 2개를 건네고, 생강청을 옆에 내려놓자마자 곧장 손바닥만 한 쿠키 3개가 또 주어졌다. 지호는 요술 주머니처럼 무언가 계속 나오는 혜윤의 캐리어를 잠시 곁눈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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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안에서 자꾸 주는 건가?’

 
황당한 의심은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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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별로죠?”

 
이전과는 달리 자신감을 잔뜩 잃은 손이 또다시 지호를 향했다. 작은 몸, 작은 목소리까지 더해지자 망설이는 그녀의 감정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계속 바라봐도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노란 통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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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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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토.”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는 건가 싶었지만 다시 뒤돌아선 뒤통수는 여전히 바빠 보였다. 그는 뚜껑을 열어보았다.

작은 통 안에는 형광색의 반죽이 들어 있었는데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건 같았다. 손가락으로 꾹 눌러보다가 그냥 꺼내서 조물조물했다.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난거지. 아니, 왜 가지고 다니는 거지.

계속 만지다 보니 촉감이 좋아서 가지고 온 것 같다는 결론에 닿았지만, 그녀 역시 어느 결론에 닿았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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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어떡하지…….”

 
가녀린 몸에서 나오는 깊은 한숨은 단번에 지호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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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어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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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줄 게 없어요, 나는.”

 
시무룩한 뒷모습. 지호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제 다리 옆으로 보이는 생강청과 비상약, 끝도 없는 간식들. 여전히 손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점토를 보니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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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더 받을 손도 없으니까 그만하고 와요.”

 
돌아선 얼굴 위에 축 처진 어깨와 비슷한 입꼬리를 보고 있자니, 지호가 결국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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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내일 하루 더 푹 쉬어요. 감독님이 촬영 일정 바꿔주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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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 선배가요?”

 
하지만 자신보다는 상대가 웃었으면 싶은 마음이 컸기에, 그럴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실은 조금 전 방에 들어오자마자 혜윤이 뭘 걱정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거울 앞에 서서 하는 걱정이야 하나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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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금요일에 하기로 했던 내 개인 촬영을 내일 하자고 하셔서. 대신 작가님은 내일 쉬고 금요일에 일하는 거니까 잊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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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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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좋으면 다행이고.”

 
이제야 두 사람 모두 같은 감정으로 웃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둘은 거의 침대 위에 있었다. 한낮이 천천히 기울어 갈 때까지 TV를 보고, 과자를 먹고. 혜윤은 약 기운에 취해 잠이 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얕은 잠이 깨는 몽롱한 순간마다 보이는 건 옆자리의 지호였다. 그는 침대 등받이에 기대앉아 조용히 대본을 보고 있었다.

신기했다. 눈만 스르륵 떴을 뿐인데도 어찌 알고 그때마다 눈을 맞추며 웃어주는지. 그리고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원하는 걸 딱딱 건네주는지.

아까는 물을 주더니, 이제는 젤리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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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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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먹을 건데.”

 
어떻게 맞히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어려워서 아닌 척도 해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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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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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 자꾸 어떻게 알아내요?”

 
상대가 너무 제 마음을 꿰뚫어서 그냥 행복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혜윤의 작은 입으로 곰돌이 젤리 하나가 쏘옥 들어왔다. 온몸에 말랑말랑한 달콤함이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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