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이야기의 시작 - 그놈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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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이야기의 시작 - 그놈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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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이야기의 시작 - 그놈이 돌아왔다.
2022.07.03.
[나 서울 간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어느 날. 그놈에게 온 메시지였다.
“엄마! 지서준 서울 온대!”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발을 벗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응, 그렇다더라, 서준이 엄마한테 들었어.”
“언제 들었어?”
“좀 됐지?”
“왜 말 안 했어!”
“얘가 어디서 큰소리야! 엄마가 너한테 다 말해야 해? 그럴 의무 없어!”
엄마는 내가 큰소리를 내자 눈을 흘겼다. 엄마에게 그럴 의무는 없지만 나와 그놈을 불알친구로 만들었으니 충분히 책임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을 입 밖으로는 내뱉을 수 없지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서울에는 왜 오는 거래?”
“안 물어봤어?”
나는 고작 다섯 글자의 충격에 허덕이다 답장을 보내는 것을 깜빡하고 퇴근한 길이었다.
“……회사 일이 바빴어.”
지서준에게 답장을 보내는 것을 깜빡했다고 하면 잔소리가 쏟아질 것이 분명해 나는 에둘러댔다.
“이번에 새로 회사를 옮겼는데 한국 지사로 발령 내달라고 했대.”
“아줌마 때문에?”
“그렇지…….”
지서준의 엄마, 윤희 아줌마는 6개월 전 위암 초기 진단을 받고 수술을 마쳤다.
다행히 초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던 윤희 아줌마.
미국에 있는 지서준에게 알리지 말라며 나에게 신신당부했고 나중에 알게 된 지서준은 새벽 3시에 전화해 난리를 요란스럽게 떨어댔다.
그날은 잠도 제대로 못 자 회사에서 실수를 연발해 팀장님에게 한 소리 들어야만 했다.
그때의 지서준만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몸이 부르르 떨렸다.
“빨리 씻고 나와. 엄마가 상을 두 번이나 차리면서 기다려야겠어?”
나는 엄마가 잔소리의 물꼬를 틀기 전에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지서준의 걱정은 한쪽으로 치워두고 재빨리 씻고 나와 식탁에 앉아 엄마표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입에 물었다.
“너. 요즘 남자친구 만나니?”
“남자친구가 있어야 만나지.”
엄마의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없는 사람을 어떻게 만난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 나는 숟가락에 밥을 더욱 크게 올렸다, 입에 가득히 밥을 넣고 어느 반찬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남자친구도 못 만들고 너 뭐 하고 사니?”
밥맛이 뚝 떨어질 것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밥맛은 좋았다.
“못 만드는 거 아니고, 안 만드는 거.”
볼 가득 들어 있던 밥을 야무지게 씹어 넘기고 엄마에게 말했다.
“왜?”
“바빠.”
“바쁘긴 개뿔.”
오늘따라 유달리 예민하신 우리 김 여사님.
“아빠랑 싸웠어?”
“네 아빠 말도 꺼내지 마!”
역시나.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놈의 집구석을 나가든가 해야지. 서울의 집값이 조금만 낮았어도, 내 월급이 조금만 더 높았어도, 내가 명품 가방을 좋아하지만 않았어도 당장 독립했을 것이다.
평소라면 “왜 또 싸웠어?”라고 물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꽤 지쳐 있었다.
식탁에서 어물쩍거리다가는 자정이 넘도록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평소라면 들어주겠다만, 오늘은 정신적 충격이 컸기에 더는 에너지 소비를 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밥을 먹었다.
방으로 돌아와 습관처럼 핸드폰을 들었다. SNS 앱 위에 작은 빨간색 동그라미 속 숫자 1.
불안한 마음에 확인할까 말까 망설였다.
[씹어?]
망설이다 확인한 메시지. 역시. 그놈이었다.
[오늘 너무 바빴어. 미안해. 서울에는 언제 오는데?]
간단하게 변명과 사과를 곁들이고 궁금한 점을 물었다.
시차가 달라 언제 답장이 올지 모르기에 기다리지 않고 곧장 핸드폰을 손에서 멀찌감치 치워버렸다. 그리고 바로 나의 침대로 몸을 내던졌다.
오래된 매트리스가 출렁이며 나를 감싸 안았다.
“천국이다. 천국이야. 이 천국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오래된 집 누렇게 변한 천장의 벽지를 씁쓸히 바라보았다. 그놈이 한국으로 오게 된다면 나는…… 나는!
이불을 쥐어뜯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놈의 생각에 허공에 주먹을 날렸다.
간단히 그놈을 소개하자면, 응애응애 울어대던 아기 때부터 그놈은 인기가 많았다.
남들은 붉은 피부와 양수에 쭈글쭈글하게 불어 예쁜 못난이가 되어 태어날 때 그놈은 우유 같은 뽀얀 피부에 이미 완성된 이목구비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놈의 외모는 병원에 있던 간호사 언니들의 가슴을 꽤 설레게 했다고…….
4살 무렵, 너무나 예쁜 나머지 그놈은 납치될 뻔한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미수로 그쳤지만, 동네에서 꽤 유명했던 사건이었다.
나중에 잡힌 범인의 말로는 아이가 너무 예뻐 자기도 모르게 데려갔다고 진술했다고 했다.
그놈의 외모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할 때는 그놈을 두고 여자아이들의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그놈과 같은 책상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숟가락도 들지 않는 아이도 있었고, 소풍을 갈 때 그놈의 옆자리에 앉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다.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운 사건도 있었다.
그놈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매년 반장을 도맡아 했다.
워낙 눈에 띄는 외모의 소유자일뿐더러 공부도 잘하고 스포츠도 잘하는 이른바 완벽남의 시작이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고백편지는 물론이고 밸런타인데이에는 받은 초콜릿이 너무 많았다. 손이 모자라 나까지 들고 가야 할 정도였으니까.
그놈을 공공재로 남겨야 한다는 여론이 강력했다.
그래서 그놈에게 고백하는 여학생은 따돌림당하기 일쑤였다. 점점 그놈의 외모로 인한 사건이 발생하자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전학을 권유받기도 했다.
여자에게 넌덜머리가 난 그놈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남자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도 그놈은 인기가 많았다.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남자에게 고백받고 첫 키스까지 강제로 빼앗긴 그놈은 도중에 내가 다니는 남녀공학으로 전학했다. (사실 이때는 조금 불쌍했다.)
그 사건이 계기였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사춘기가 왔던 탓일까. 그놈은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다가왔다.
고등학교 때는 나를 방패 삼아 학교에 다녔다. 가끔 그 녀석은 내 뒤에 숨어 아주 편안하게 학교에 다녔다.
모든 여학생의 질투와 시기를 받아내며 나는 강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 과정이 절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사실, 끔찍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그놈과 함께 대학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됐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놈과 같은 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지만, 유달리 과학을 잘하고 좋아했던 그놈은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직장도 잡았다.
그래.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다 그놈이 갑자기 한국으로 귀국한단다.
같은 산부인과 출신, 같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함께 보낸 그놈.
지서준이 돌아온단다.
“망했어.”
더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렇게 소중한 내 양지에서의 하루가 저물었다.
**
어제 일찍 잠이 들어 9시간을 잤건만 왜 이리 피곤한지. 자도 자도 피곤한 비루한 몸뚱이를 들어 올려 욕실로 향했다.
결국, 버스를 놓쳤다. 나는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고 출근을 해야 했다.
반쯤 넝마가 된 몸으로 회사에 도착해 탕비실로 가 커피부터 진하게 내렸다.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한 몸을 추스르려면 카페인이 필요했다. 그 자리에서 한 입 먼저 마신 후 컵을 들고 내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좋은 아침입니다.”
출근하는데 좋은 아침은 없다. 하지만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는 한다. 사회생활 5년 차의 거짓부렁이었다.
“문 대리님. 좋은 아침이에요.”
내 후임인 백인하 씨가 해맑게 인사했다. 젊음의 발랄함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지어졌다. 그녀에게 눈인사한 후 내 자리의 의자에 앉았다.
앉자마자 컴퓨터를 켜 새로운 메일이 있는지 확인했다. 간단히 메일 확인만 마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지서준에게서 온 새로운 메시지가 있었다.
[내일 출발.]
“뭐?”
나는 그놈의 간략한 답장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아이. 깜짝이야. 문 대리님. 무슨 일 있으세요?”
눈이 똥그랗게 변한 백인하 씨가 나에게 물었다.
“아, 아니 미안해요. 깜짝 놀랐죠? 내가 못 볼 걸 본 것 같아서…….”
“문 대리님. 안색이 안 좋아 보이세요.”
나의 양지 라이프가 종지부를 찍었다는 메일이 도착했는데, 안색이 좋을 리 없었다. 나는 밀려오는 두통에 미간을 꾹꾹 눌렀다.
“대리님. 저 진통제 있는데 그거라도 하나 드릴까요?”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던 인하 씨가 가방을 뒤적거리며 진통제를 찾았다.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나는 애써 입꼬리를 올려 그녀에게 웃어 보인 후 자리에 앉았다. 이 두통은 진통제로 해결될 두통이 아니었다.
**
“엄마…… 나 배고파. 밥 줘.”
은혜로운 주말의 늦은 아침. 일어나자마자 드는 허기에 거실로 나갔다. 하지만 인적 하나 느낄 수 없었다. 고요했다.
어디 간 거야.”
나는 잠옷을 들어 올려 배를 쓸며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만, 아빠도, 엄마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 찾기를 포기하고 뭐라도 먹을까 냉장고를 뒤지고 있는데 내 방에서 벨 소리가 들려왔다. 후다닥 달려가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니 엄마였다.
-일어났어?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의 나긋나긋한 음성이 들려왔다. 필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음이 분명했다.
“어디야?”
-엄마 서준이네 집에 왔어.
“거길? 이 아침에?”
고개를 들어 책상 위 작은 탁상시계를 확인했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이른 아침은 아니었지만, 남의 집에 방문하기에는 조금 일렀다.
-오늘 서준이 오는 날이잖아. 서준이 엄마가 음식 한다고 해서 도와주러 왔어.
애써 외면하고 잊고자 했건만, 엄마가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지서준이 오는 날. 바로 오늘이었다.
“엄마도 지극 정성이다. 친 딸내미는 굶고 있는데, 남의 아들내미 밥해주러 갔단 말이야?”
-너도 이쪽으로 건너와.
“싫어.”
-올 때 김치 좀 가져와. 엄마가 며칠 전에 담근 거 있지? 지금 맛있게 익었을 거야.
“싫다니까.”
-김칫국물 안 흐르게 잘해서 가져와야 해.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엄마는 본인이 할 말만 와다다 쏟아내고 전화를 끊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가지 않으면 닥쳐올 후환이 더 두려웠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해 몸을 부르르 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바나나로 요기했다. 주말 약속이 없다면 씻지 않는 것이 내 주말의 룰이었지만, 오늘은 씻어야 하기에 욕실로 가 머리를 감았다.
지서준의 집이 우리 집 바로 옆 동으로 이사 온 것은 내가 중학교 때였다. 그전 살던 집도 그리 멀지 않았지만, 윤희 아줌마는 더욱 가깝게 지내고 싶다며 굳이, 정말 굳이 우리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나는 머리를 감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춘 후 현관문을 나섰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엄마가 말했던 김치를 품에 안고 옆 동으로 향했다.
옆 동 12층.
“저 왔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다율아, 어서 와!”
윤희 아줌마가 반갑게 맞았다.
“안녕하세요. 요즘은 좀 어떠세요?”
내가 걱정스럽게 묻자 아줌마는 환히 웃으며 답했다.
“다율이가 걱정해 줘서 하나도 안 아파. 어쩜 이렇게 마음 씀씀이도 예쁠까.”
지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 즉 윤희 아줌마와 승호 아저씨는 나를 굉장히 예뻐하셨다.
특히 아저씨는 유달리 나를 예뻐하셨는데, 딸이 갖고 싶었지만, 얼굴만 예쁜 아들밖에 없어 그 한을 나에게 푸시는 듯했다.
예쁘다며 나를 칭찬해 주시는 두 분을 항상 코웃음으로 응수하던 그놈이었다.
“아저씨는요?”
“서준이 마중 나갔어. 공항까지 간다고 하니까 못 나오게 해서 공항버스 도착하는 곳까지 갔으니까 금방 올 거야. 다율이 오랜만에 본다고 엄청나게 좋아하겠네.”
“서준이 아빠는 얘가 뭐가 좋다고 그러는 줄 몰라.”
윤희 아줌마 옆에서 열심히 당근을 손질하던 엄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어머. 딸 가진 자의 여유야?”
“나는 서준이 엄마가 부러워. 그런 아들 있으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네.”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밥을 많이 먹는구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가 부탁했던 김치통을 내려놓았다.
그때 ‘삐삐삐삑’ 거리며 누군가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어머. 왔나 보네.”
윤희 아줌마는 가만히 있는데 우리 엄마가 호들갑을 떨며 장갑을 벗었다. 도대체 누가 친엄마인지.
“우리 왔어요.”
아저씨가 활기차게 존재를 알리며 들어왔다,
“어! 다율이 왔구나. 이게 얼마 만이야.”
저번 주에 봤는데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반가워하는 아저씨를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준이는요?”
뒤따라 들어올 녀석이 보이지 않자 엄마가 물었다. 지서준의 엄마가 아닌 우리 엄마가 물었다.
“차에서 핸드폰 두고 내려서 가지러 다시 내려갔어요. 바로 올라올 겁니다.”
아저씨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아저씨는 들고 온 캐리어를 깨끗이 씻어 지서준의 방에 굴려 넣었다.
삐삐삐삐삑.
다시 한번 디지털 도어록의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다녀왔습니다.”
그놈이다. 그놈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