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남자가 되어버린 그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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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남자가 되어버린 그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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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남자가 되어버린 그놈 2.
2022.07.20.
그놈에게 도망가다시피 회사로 돌아왔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곧장 내 자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문 대리님. 갑자기 혼자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나와 함께 밥 먹으러 가기로 했던 백인하 씨가 내가 자리로 돌아오자 귀엽게 툴툴거렸다.
“응. 미안해요. 갑자기 친구가 회사 근처로 오는 바람에…….”
“그러셨구나. 맛있는 거 드셨어요? 오늘 구내식당 메뉴가 영 아니었거든요.”
한 끼라도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나, 문다율이었다. 이 문다율이 점심을 거르다니. 이게 다 그놈 때문이었다.
“그냥 뭐……. 하하하.”
나는 백인하 씨에게 대충 답한 후 오후 스케줄을 확인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야근을 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일이 몰려 있었다. 나는 점심시간이 채 끝나지도 않은 시각.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고 잡생각이 들지 않으니 슬슬 배가 고파 책상 서랍에 들어 있던 내 소중한 간식을 닥닥 긁어먹어야 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과자를 빤히 바라보다 또다시 어떤 기억이 휙 떠올랐다.
“과자 먹고 싶다.”
“과자? 갑자기?”
“응. 내가 자주 먹는 과자 있잖아. 그거.”
“가지가지 한다. 진짜. 참아.”
“과자 하나 사주면 안 잡아먹지.”
“그냥. 잡아먹어.”
대화만 들으면 큰 문제가 없을 대화 내용이었지만……. 대화 장소가 문제였다. 침대 위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냉큼 그놈을 잡아먹었지.
나는 과자를 다시 서랍에 넣어 쾅 닫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아아아.”
“대리님? 괜찮으세요?”
나의 통곡에 파티션 너머 빼꼼히 고개를 든 백인하 씨였다. 얼굴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요. 안 괜찮아요.”
“제가 뭐 도와드릴까요?”
백인하 씨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는 말만이라도 고맙다며 그녀에게 마지막 남은 과자 하나를 그녀에게 넘겼다.
**
어찌어찌 일을 끝냈다. 깊은 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그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았다.
저녁을 든든하게 먹어서인지 아직도 소화되지 않은 배를 잡고 습관처럼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주류 칸으로 가는 발을 멈췄다.
“네가 술을 먹고 이 지경이 되어서도 버릇을 못 고치는구나?”
나는 내 다리를 탓하며 간신히 몸을 돌려 이온 음료를 사서 편의점을 나왔다.
눈에 익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웃음을 참으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했고, 나는 “네. 안녕히 갈게요.”라고 답했다.
이온 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며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엄마와 아빠는 사이좋게 깔깔거리며 TV를 보고 있었다.
“둘이 화해했나 보네.”
“우리가 언제 싸웠니?”
엄마의 말에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와 방문을 닫았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누워 나의 애착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기억이 안 날 거면 끝까지 안 나야지. 뜨문뜨문 떠오르고 말이야. 사람을 괴롭혀도 분수가 있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꽤 억울한 상태였다.
그놈에게 평소와 같이 지내자 했다. 내가 내 무덤을 판 것이다. 애초에 다 기억이 났다면 그놈에게 평소와 같이 지내자 할 수 없었겠지.
다시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때 아직 가방 안에 들어 있는 핸드폰이 소리를 냈다.
침대에서 몸을 떼지 않고 간신히 가방을 끌어 침대 가까이 놓았다.
“이건 쓰레기고……. 이건 화장품…….”
가방 안은 보지도 않고 오로지 손끝의 촉감만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내일, 일 끝나고 뭐해.]
에잇!
나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핸드폰을 저만치 치워버렸다.
그놈이었다.
내일 또 뭘 시켜 먹으려고 나를 부르는 걸까. 그건 둘째치고 떠오르기 시작하는 기억들 때문에 도저히 그놈을 볼 자신이 없었다.
일단. 씻자. 씻고 생각하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씻고 나와 핸드폰을 확인하니 또 다른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내일 바쁘지 않으면 잠깐 나랑 어디 좀 가자.]
솔직히 어디를 데려가려는지 궁금했지만, 지금 상태로 그놈을 만나면 안 될 것 같았다.
[나 요즘 회사에 일이 많아. 야근해야 해.]
완전히 거짓말도 아니었으므로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래? 알았어. 그럼 언제 시간 돼?]
“끈질기네…….”
나는 머리에 얹은 젖은 수건을 풀며 머리를 벅벅 문질렀다. 뭐라고 답해야 예민한 놈이 내가 피한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그놈에게 답장을 보냈다.
[글쎄……. 내일 회사에 가봐야 알 것 같은데?]
장고에 비해 형편없는 답이었다. 100점짜리 답변은 아니었지만, 일단 지금 상황이라도 모면해야 할 것 같았다.
[알았어. 연락 줘.]
다행히 한발 물러선 그놈이었다.
미래의 문다율. 수고해.
나는 그렇게 미래의 문다율에게 모든 책임을 넘겨버렸다.
**
“좋은 아침입니다.”
피곤했던 탓인지 어제는 잠을 푹 잤다. 제시간에 일어나 제시간에 회사에 도착했다. 여유 있는 아침이었다.
먼저 와 있던 회사 동료들이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는 싱긋 웃어 보이고 커피 한 잔을 들고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일에는 다 예열이 필요한 법.
연예 기사를 훑어보니 어떤 연예인의 결별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포털사이트에 걸렸다.
“대리님. 대박이죠? 두 사람은 안 헤어질 줄 알았는데……. 꽤 오래 사귀지 않았어요?”
“그러게요, 둘이 잘 어울렸는데……. 뭐 두 사람 사이는 두 사람만 아는 거겠죠?”
백인하 씨가 사무실에 도착해 내 컴퓨터 모니터를 확인하며 말을 걸어왔다. 꽤 유명한 연예인이었기에 백인하 씨가 관심이 많았다.
“그 남자 연예인, 완전 제 이상형이거든요……. 아. 사귀면 어떤 기분일까요?”
결별 기사에 덧붙여진 사진을 보았다.
음……. 생긴 것만 봐서는 지서준이 더 잘생겼는데…….
나는 내 생각에 화들짝 놀랐다. 지서준 생각하지 않기를 목표로 세웠건만, 그새를 못 참고 지서준을 떠올리다니.
나는 바보 같은 나를 자책하며 웹서핑 창을 신경질적으로 꺼버렸다. 잠시 뒤 팀장님이 도착하고 나서 어제 못다 한 일을 위해 문서창을 띄웠다.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되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대리님 오늘은 우리 밖에 나가서 먹을까요?”
잔뜩 신이 나 있는 백인하 씨의 얼굴이 보였다.
“그래요. 오늘은 나가서 먹죠. 뭐 먹을까요?”
“평양냉면 어떠세요?”
“좋죠!”
나와 백인하 씨는 지갑을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각자 점심시간을 즐기러 향하는 직원들 틈바구니에 껴 로비까지 내려왔다.
“어머! 대리님! 저 남자 보세요. 대박.”
그녀가 나의 팔을 끌어당기며 어딘가로 손짓했다. 그곳에 그놈이 있었다.
“으헙.”
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백인하 씨 뒤에 숨어버렸다.
“문 대리님?”
나보다 키가 작은 그녀의 뒤에 숨겨질 리가 없건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백인하 씨의 어깨를 잡고 내 몸을 가릴 수 있는 기둥으로 향했다.
“문 대리님 아는 분이에요?”
“아, 아니요?”
“그런데 왜…….”
나는 그녀가 뭐라고 하건 말건 그 녀석의 동태를 살피느라 분주했다.
다행히 그놈은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고,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무슨 일이에요? 네?”
여전히 나에게 어깨를 붙잡힌 그녀도 나와 함께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봐요. 하하하.”
“아……. 난 또……. 그런데 아까 그 사람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요? 나 그런 사람 처음 봐요.”
“그래요?”
나는 그녀의 호들갑에 대수롭지 않은 척 호응해 줬다.
“우리 회사 사람일까요? 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회사 다니는 게 즐거울 것 같은데…….”
그녀는 평양냉면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놈의 외모를 찬양했다. 내 반응이 시큰둥한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 조금의 웨이팅 후 자리에 앉았다.
“문 대리님은 잘생긴 사람 별로 안 좋아해요?”
“네?”
“연예인 얘기할 때도 그렇고, 조금 전에 그 사람 보고도 그렇고……. 대리님은 잘생긴 남자에게 딱히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요.”
“뭐……. 사람마다 다 취향이 다르니까요.”
“그런가요?”
나는 그저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동생같이 귀여운 그녀를 나직이 불렀다.
“인하 씨. 아까 그런 남자들은 얼굴값 해요.”
“네?”
백인하 씨가 냉면을 먹다 말고 토끼 눈을 하고 나를 보았다.
“얼굴값 한다는 말 있죠? 그런 남자는 한도 제한 없는 블랙카드로도 감당이 안 돼요. 얼굴값을 아주, 완벽히 제대로 하거든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는 그녀.
“그래서 저는 이런 가격도 적당하고 슴슴한 평양냉면 같은 남자가 좋아요.”
나와 평양냉면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막고 예쁘게 웃었다.
“대리님, 너무 재밌으세요!”
**
그놈에게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이틀 후였다. 일이 바빴던 탓도 있지만, 굳이 연락해야 하나 의문이 들기도 했다.
[바빠?]
그놈의 메시지 내용은 간결했다.
[바빠.]
나도 간결히 보냈다.
[그럼 주말에 봐.]
간단하게 메시지를 보내니 그놈이 간결히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나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약속을 하다니.
나는 분노를 손가락에 담아 답장을 보냈다.
[나는 주말에 약속도 없는 줄 알아? 못 만나! 약속 있어!]
그러고는 거짓말한 것이 들킬까 봐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주연과 이라에게 주말에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그놈보다 내 친구들의 답장이 더 빨랐다.
[나 본가에 가야 해. 무슨 일 있나? 친구? -고주연-]
[남자친구랑 약속 있는데? -도이라-]
되는 일이 없군.
혹시 또 다른 만날 사람들은 없나 핸드폰 연락처를 뒤적이는데 그놈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럼 오늘 저녁에 너희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고……. 아. 아니지. 애초에 호랑이 피하러 돌아가다 마주친 호랑이인가.
아무튼 그 잘생긴 호랑이가 집 앞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나쁜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호랑이 손바닥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따라 일찍 끝난 회사.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세월아 네월아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집에 가기 전 놀이터가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는지 한적한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어 있는 그네로 가 앉아 약하게 발을 굴렸다.
“걔는 할 일도 없나, 왜 기다리겠다는 거야.”
그네를 멈추고 움푹 패어 있는 땅을 발로 툭툭 걷어찼다.
그때.
“저기요.”
누군가 나를 불렀다.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보니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왜요?”
존댓말이 절로 나왔다.
“하하. 야. 왜요란다. 하하하.”
내 존댓말이 자기들도 웃긴지 큭큭, 낄낄. 호호호 웃어대고 난리도 아니었다.
“돈 있어요? 돈 좀 줘봐요.”
“하, 학생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어디 학교 다녀? 부모님들은 이러고 다니는 거 아시나?”
나는 내 가방을 꼭 끌어안고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어디 학교 다니는지는 알 것 없고, 남의 부모도 당신이 신경 쓸 것도 없고, 그냥 돈이나 줘요.”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돈……. 없어요. 요즘 누가 현금 가지고 다니나? 다 카드 쓰지.”
“그래요? 요즘 편의점에 다 ATM 있지 않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학생들을 노려봤다.
“거, 거기는 수수료 많이 붙어요!”
내 말이 웃긴지 몇몇 아이들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다치지 않게 집에 가고 싶으면 빨리 돈 주고 끝내지? 우리 시간도 없는데.”
그중에 제일 키가 커다란 놈이 반말을 찍찍 싸대며 나에게 다가왔다. 무서웠다. 나는 그네에서 내려 뒷걸음질 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아. 진짜. 개그 해?”
내가 엉덩방아를 찧자 더욱 크게 웃으며 자지러지는 학생들.
넘어지면서 떨어트린 가방을 커다란 놈이 가져가 탈탈 털었다.
쓰레기, 사원증, 사탕, 여성용품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홍색 내 지갑이 ‘툭’하고 떨어졌다.
내 지갑을 들어 올린 키가 큰 학생이 뒤적이며 얼마 없는 지폐 몇 장을 꺼냈다.
“돈 없다더니, 거짓말이었네.”
“도, 돌려줘!”
“시, 싫어!”
나를 따라 하며 웃어대던 놈이었다.
“문다율?”
학생들 너머 익숙한 목소리 나를 불렀다.
“지서준!”
놀이터 입구, 나를 기다리겠다던 호랑이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