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소문을 몰고 다니는 자.
(10/97)
10화. 소문을 몰고 다니는 자.
(10/97)
10화. 소문을 몰고 다니는 자.
2022.08.03.
“문다율? 너 거기서 뭐 해?”
나는 그놈의 목소리가 들리자 본능적으로 몸으로 팀장님의 사원증을 그놈이 보지 못하게 몸으로 가렸다.
“어? 벌써 와 있었네? 잠깐만?”
나는 그놈에게 고개만 돌려 대충 인사만 한 후, 다시 팀장님을 보았다.
“저 지금 친구랑 약속 있어서요, 다음에 같이하시죠. 팀장님.”
“그래요. 그럼 나중에 만나요.”
다행히 팀장님은 쉽게 돌아섰다. 나는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팀장님의 사원증 부분이 가려지도록 최선을 다했다.
팀장님이 시야에서 멀어지면서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지서준에게 몸을 돌렸다.
“누구야?”
“아. 같은 회사 다른 팀 팀장님. 우연히 여기서 만나네. 하하하.”
내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던 지서준이 서둘러 국밥집으로 안내하라고 재촉했다.
다행히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너, 진짜 점심 팀원들이랑 안 먹어도 되는 거야? 빨리 친해져야 일하는 데도 편하지.”
“일하면서 친해지면 되는 거지, 굳이 점심시간까지 회사 사람들이랑 보내야 하나?”
무표정으로 말하며 그놈은 나의 걸음에 맞춰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아메리칸 마인드야?”
“한국 마인드는 뭔데?”
지서준이 매섭게 바라봤다.
“그러게? 뭘까?”
생각해보니 그놈은 사회생활을 미국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그래?”
“점심시간이 짧기도 하고, 워낙 그런 거에 일일이 터치하진 않지.”
“부럽네. 나도 미국에서 회사 생활 한번 해보고 싶네.”
내 말에 곁눈질로 나를 흘끔 보더니 무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냥 한국에 있어라.”
“왜?”
“……그냥.”
시답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국밥집에 도착했다.
“잘생긴 총각 또 왔네.”
이사할 집을 본 날, 그놈을 데리고 온 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지서준의 말에 의하면 그 이후 처음 방문하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국밥집 이모가 지서준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이모님, 저는 여기 10번도 넘게 왔었는데요…….
목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고 씁쓸한 마음으로 국밥을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전히 맛있어 보이는 국밥 두 그릇이 나왔다.
“여기 맛있지?”
“응. 그러네.”
나는 대답하는 지서준을 보고 우쭐해졌다. 내가 아는 맛집을 남들도 알아주는 짜릿함이 있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밥공기를 흔들어 국밥에 퐁당 넣었다.
잠깐 불안했던 내 마음도 맛있는 국밥 앞에서는 모습을 감췄다.
**
“아. 배불러. 너무 배불러서 집에 가고 싶네.”
내 말에 피식 웃던 그놈이 커피를 권했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쪽쪽 빨아대며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가까워지며 어떻게 이놈을 먼저 보내고 나도 안전하게 사무실로 돌아갈까 고민했다.
“너, 먼저 들어가라. 나는 편의점에서 뭐 살 게 있어서.”
“뭐? 같이 가.”
“대단한 곳 가는 것도 아닌데 뭘 같이 가. 훠이훠이.”
나는 벌레 물리치듯 손을 팔랑거리며 그놈을 내쫓았다. 하지만 끈덕지게 같이 가겠다는 지서준.
“여성용품 살 건데, 뭘 같이 가!”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을 꺼냈고, 결국 그놈은 먼저 회사로 들어가 버렸다.
괜히 회사 앞에서 5분을 시간을 죽이고 회사로 올라갔다. 혹 그놈이 갑자기 나타날까 봐 로비와 엘리베이터에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아. 피곤하다. 나 왜 이러고 회사 다녀야 하니. 이직이라도 해야 하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잠깐 회사 생활에 회의를 느꼈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다시 이력서에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볼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도 했다.
그래, 지서준 때문에 회사를 옮긴다는 건 말이 안 되지.
터덜터덜 사무실로 들어오니 백인하 씨가 자리에서 웹서핑을 하다 쪼르르 달려왔다.
“대리님 지금 들어오세요?”
“네. 인하 씨는 점심 맛있게 먹었어요?”
“네. 인사팀 동기랑 김치찌개 먹고 왔어요.”
백인하 씨와 짧은 담소를 주고받다 보니 점심시간은 끝이 났고, 습관성 춘곤증을 이겨내며 일을 해나갔다.
**
딱 1주일이었다.
바이러스 제1 연구팀 수석 연구원 지서준이 사내에서 유명해지는 기간이었다.
“대리님! 저 오늘도 지서준 연구원님 봤어요! 오늘도 어찌나 잘생겼는지.”
황홀한 표정으로 사무실로 등장한 백인하 씨였다. 아침 출근길부터 에너지를 받았다며, 콧노래를 부르며 탕비실로 향했다.
지서준은 어린 나이에 회사의 에이스 팀에서 수석 연구원으로 스카우트된 것도 화제가 되었지만, 그놈의 외모. 그 예쁜 얼굴이 크게 한몫했다.
여자 휴게실, 여자 화장실에서는 여지없이 그놈의 이야기가 대화의 주제였다. 여직원이 둘 이상 모이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지서준의 이야기를 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귀에 들어올 만큼 화제였다.
그러면서 점점 남자 사원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조금은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 한 번은 내가 들어도 너무하다 싶은 말도 안 되는 추측성 비난에 따져 물은 적도 있었다.
그 모습에 같이 있던 백인하 씨가 입을 벌리고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가하나? 한가하면 내 일 좀 도와주지. 출장 갔을 때 받은 영수증이나 똑바로 붙이지 말이야…….”
내가 씩씩거리자 백인하 씨가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회사에서 일찍 퇴근한 날, 아줌마의 호출에 지서준과 나는 오랜만에 아줌마의 식탁에 함께 앉았다.
회사 생활에 대해서 궁금했던 모양인지 아주머니는 이것저것 그놈에게 물었지만, 그저 심드렁히 대답한 그 녀석이었다.
나는 밥을 크게 입에 물고 오물거리며 그놈의 얼굴을 살폈다.
혹시, 본인의 소문이 회사에 어떻게 떠돌고 다니는지 알고 있는 걸까.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살폈지만, 도통 알 수 없는 그놈의 포커페이스였다.
밥 먹고,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한다며 그놈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도 아줌마에게 인사한 후 함께 집에서 나왔다.
그놈이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옆에서 보도블록이 툭 튀어나온 곳을 앞발로 톡톡 건드렸다.
“회사 생활은 어때? 적응할만해?”
“회사 생활이 다 그렇지 뭐.”
여전히 알 수 없는 대답만 하는 그놈이었다.
워낙 힘든 이야기를 하지 않는 지서준이었기 때문에 나는 직접적으로 묻기로 했다.
“회사에서 누가 너 괴롭히거나, 막 헛소리하는 사람들은 없고?”
내 말에 지서준이 고개를 왼쪽으로 꺾어 우두커니 바라봤다.
“왜, 왜?”
나는 괜히 찔리는 마음에 말을 더듬었다.
“갑자기 왜 그런 걱정을 하고 그래?”
“뭐가! 친군데, 당연하지!”
의외라는 그놈의 말에 나는 괜히 화가 났다. 회사에서 그놈의 편을 들었다가 미친 사람 보듯 바라보던 사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
“그래. 29년 친구!”
내가 흥분하며 씩씩거려도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다시 택시가 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지서준이 말했다.
“조금 귀찮은 일이 있긴 했는데……. 뭐. 별거 아니었어.”
“무슨 일?”
나는 혹여 해코지라도 당한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놈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귀찮다는 듯 날 보던 그놈이 내 손을 잡아떼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 별일 아니거든? 그냥 충분히 무시할 수 있는 일이었어. 야. 저기 택시 온다. 나 간다.”
택시가 오자 재빨리 차에 올라탄 지서준이 창문을 열어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건드린 거야?”
지서준이 어디 가서 괴롭힘당할 놈은 아니지만, 누군가 건드렸다고 하니 화가 났다.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내 동생은 나만 갈군다. 그런 마음이랄까.
아무래도 내일 당장 회사에 가서 은밀하게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다음 날, 나는 바이러스 제1 연구팀의 아는 연구원에게 사내 메신저로 연락했다.
[이경훈 연구원님.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조금 바쁜 일이 있는지 한참 뒤 답장이 도착했다.
[그럼요! 문 대리님이 물어보시는 거면 다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평소 싹싹한 성격의 이경훈 연구원은 회사에서 발이 넓었고, 그 넓은 발안에 나도 들어가 있었다.
이경훈 연구원과 점심을 함께하기로 했다.
둘 다 시간이 애매해 회사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
지서준이 올지도 몰라 구내식당에 발걸음을 끊었었는데, 혹시 몰라 연락해 보니 오늘은 다른 연구원과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맘 편히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문다율 대리님. 요즘 너무 바쁘신 것 아닙니까.”
“제가 바쁜 게 아니라 연구원님이 바쁘신 거겠죠.”
내 말에 이경훈 씨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허허 웃었다.
“그나저나 문 대리님이 궁금한 점이 뭘까요? 그게 궁금해서 혼났네.”
“아……. 그게요…….”
나는 주위를 잠깐 둘러보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지서준 연구원님이요…….”
“아. 역시. 문 대리님도 지서준 연구원님께 관심이 있는 거예요? 실망입니다.”
과장되게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밥을 한입 가득 넣는 이경훈 씨였다.
“그게 아니라……. 혹시 지서준 연구원님,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네?”
조금은 예상외의 질문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턱 운동을 하던 이경훈 씨가 꿀떡 밥을 삼켰다.
“뭐 들은 거라도 있으세요?”
“네?”
“사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지서준 씨가 좀……. 넥스트 레벨이잖아요.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솔직히 그 나이에 수석 연구원에, 연예인 뺨치는 외모에…… 다른 사람들한테 시기 질투 받을 만하죠.”
나는 저절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다른 팀 수석 연구원하고 한바탕 붙었죠.”
“네?”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흘러나왔고, 깜짝 놀라 양손으로 입을 꾹 막았다.
“쉬쉿. 목소리 너무 커요. 문 대리님.”
“아. 네. 죄송해요.”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내 몸도 조금 낮추었다.
“그 제3팀 시기원 수석 연구원 님 아시려나?”
“아.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아요. 저는 아직 같이 일해본 적이 없지만…….”
“그분이 지서준 씨한테 좀…… 막말을 했어요.”
“어떤 말이요?”
“자세히 말씀드리기 좀 그렇고…… 그냥 연구 논문 갖고 트집 잡고 그랬어요. 누가 봐도 시비 거는 거로 보였어요.”
이름이 시기원이라고 했던가. 정말 이름값 하는구나.
“그런데, 지서준 씨 성격 있더라고요. 바로 요목조목 반박하는데……. 시기원 연구원님 얼굴이 벌겋게 변해서 나갔다니까요.”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꽉 쥐어졌다.
“정말, 이상한 사람 많네요.”
“뭐. 그렇죠. 저는 어느 정도 이해는 가요. 시기원 님 수석 연구원 되는 데만 10년이 넘게 걸렸는데……. 지서준 씨는 29살에 덜컥 수석 연구원이잖아요. 그것도 우리 팀에서.”
이경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국을 떠 입에 넣었다.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시기원 님이 잘했다는 것 절. 대. 아니니까요.”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에 조용히 메모했다.
제3 연구팀 시기원 연구원.
**
이경훈 연구원과 헤어지고 사무실로 돌아와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사내 전산망을 뒤져 시기원 연구원의 사진을 확인했다.
얼굴을 익히는 중 백인하 씨가 헐레벌떡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발을 굴려 의자를 끌고 와 내 옆에 바짝 붙인 백인하 씨가 나를 불렀다.
“대리님.”
“네?”
“잠깐, 귀 좀…….”
사내 정보통 백인하 씨가 이번에는 어떤 소식을 물고 왔을까. 나는 속으로 웃으며 내 귀를 그녀에게 가져다 댔다.
“인사팀의 유느님 있잖아요. 유나라 씨. 그 유느님이 지서준 연구원님 좋아한대요!”
응?
우리 회사에 지서준이 나타나기 전 유명 인사가 있었다. 인사팀의 유느님, 유나라 씨가 그 주인공이었는데. 요즘 잘나가는 여자 아이돌의 친언니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그 아이돌과 굉장히 닮아 미인이었는데, 남자 직원들 사이에서 ‘유느님’이라 불렸다.
그 ‘유느님’이 지서준을 좋아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