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죄송합니다.”는 회사 생활의 필수인가요.
(23/97)
23화. “죄송합니다.”는 회사 생활의 필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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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죄송합니다.”는 회사 생활의 필수인가요.
2022.09.18.
“문 대리!”
삭막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금요일.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일하던 중, 급하게 나를 부르는 팀장님의 목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네. 팀장님.”
“이번에 독일 출장 건, 항공권 어떻게 된 겁니까?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요?”
“네?”
“테크 3팀 팀장님이랑 과장님 독일 출장 건 말이에요. 돌아오는 비행기가 최소가 되어있다고 전화가 왔어요.”
“네?”
“지금 ‘네’만 할 때가 아니지 않나? 제대로 확인하고 빨리 보고해요!”
나는 서둘러 자리에 돌아와 문서를 확인했다.
그때는 분명 항공권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분명 더블 체크까지 마치고 확인한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항공권은 취소되어 있었다. 문서로는 나와 있지 않은 다른 쪽에서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현재 독일에서 있는 직원들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
당연하겠지.
막상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에 왔는데, 취소되어 있으니…….
나는 원인을 파악하기 전, 일단 서둘러 비행기 발권부터 했다. 지금 독일 시각으로 한국으로 오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알아봤다.
“팀장님 일단, 비행기 발권했습니다. 그쪽 시간으로 5시간 뒤 출발입니다. 팀장님께는 제가 전화해서 사죄드리고 항공권 안내하겠습니다.”
“일단, 알겠어요.”
항공권 발권 실수는 우리 팀에서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꼭 가야 하는 행사나, 회의, 세미나에 항공권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늦는다면…….
하아. 생각하기도 싫었다.
비용 문제는 둘째였다.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독일에 있는 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다음 비행기 항공권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확인하시고 체크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팀장님.”
-에이. 그럴 수도 있죠. 한국에 못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너무 그렇게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문 대리.
“과장님께도 정말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한국에 오시면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몇 번이고 사과드리자, 다음에 회사 구내식당에서 밥 한 끼 사라며 팀장님이 껄껄 웃었다. 몇 번의 사과를 더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그 뒤 회의실에서 약 1시간의 우리 팀 팀장님의 개인 면담이 이어졌다.
자리로 돌아오자 긴장이 풀리며 진이 쭉 빠져버렸다.
멍하니 노트북에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고 있자, 옆에 있던 백인하 씨가 말을 걸어왔다.
“대리님……. 죄송해요.”
“제가 확인하라고 했을 때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도 모르게 백인하 씨에게 날카롭게 물었다.
“네. 어제까지 제가 확인했는걸요. 끝까지 체크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사실, 이번 건 서브 담당자가 백인하 씨였다.
항공권 발권도 백인하 씨 담당이었지만, 어쨌든 이 트래블 플랜의 메인 코디네이터는 나였다. 내가 책임질 일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백인하 씨를 보니 내가 처음 입사했던 때가 떠올랐다. 이런 실수를 나도 해봤기에 더 모질게 백인하 씨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꼭 끝까지 확인해줘요. 이런 건 예민한 문제니까.”
“팀장님께 제가 담당했다고 말씀하시죠.”
“음……. 그럴 걸 그랬나요?”
“네?”
내 장난에 백인하 씨의 눈이 커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 웃음이 나왔다.
“하하. 농담. 신경 쓰지 말아요. 어차피 끝난 일이니.”
나는 백인하 씨의 등을 토닥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잠깐의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았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옥상정원에 올라와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구석진 곳으로 갔다. 뿌연 미세먼지 사이로 빌딩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아냐. 잘했어.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어? 아닌가……. 내가 한 번 더 확인했어야 했나? 아닌데, 분명 이게 취소될 리가 없는데……. 아. 미치겠다.”
“여기서 뭐 해. 미친 사람처럼.”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 일부러 잘 안 보이는 쪽으로 왔건만, 지서준이 나를 보며 걸어왔다.
“어떻게 알았어. 나 여기 있는 줄.”
“너 복도에서 중얼거리면서 어디 가길래. 또 뭔 일 있나 싶어 따라와 봤지.”
나는 실수하거나, 사고 쳤을 때 혼잣말을 많이 했고, 그 버릇을 잘 알고 있는 지서준이었다.
“뭐야. 무슨 사고 쳤어?”
평소에도 많이 듣는 말이지만, 지금은 정말 듣기 싫은 말이었다. 나는 옥상 난간에 팔을 올리고 머리를 묻었다.
“뭐야. 크게 친 거야?”
“묻지 마.”
“야. 말해봐. 그래야 도와주든 말든 할 것 아니야.”
지서준이 내가 사고 쳐서 난감해할 때마다 내게 와서 했던 말이다. 자주 듣던 말이었는데 오늘따라 왜 그 말에 울컥하는지. 나는 고개를 더 파묻었다.
“그냥 회사 일이야.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이나 봐.”
“네가 그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가……. 진짜 괜찮아.”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꾹 참고 있는데 그놈이 한숨을 푹 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 주말에 뭐 해.”
“왜.”
“차 태워 달라며.”
“갑자기?”
주머니에서 한 손을 빼 코를 긁적였다.
“응. 가까운 데 한번 나가보자.”
“……맛있는 거 사줄 거냐.”
나는 고개를 빼꼼히 들어 지서준을 바라봤다. 사고 친 후 의기소침해져 있는 날 먹을 것으로 달래곤 했다. 아마 이번에도 그러겠지.
“그래. 사줄게.”
역시나 내 앞에 멋들어지게 서 있는 놈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 콜. 가자.”
**
집 앞으로 9시까지 나와 있으라는 말에 서둘러 준비했다.
“어디가?”
주말인데도 아침 일찍 일어나 씻더니, 화장까지 곱게 하는 딸을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 엄마.
“어디 좀 가.”
“그러니까 어디 가느냐고.”
어떤 신발을 신어야 잘 신었다고 소문이 날까. 신발장을 뒤적이는데 엄마가 다시 물었다.
“서준이 만나. 지서준.”
“서준이? 서준이는 왜?”
오늘따라 끈질긴 우리 김 여사님.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적당한 신발을 찾아 발을 넣으며 말했다.
“서준이가 차 태워 준대.”
“서준이 차 샀다니?”
“응. 그래서 오늘 시승식 해준대.”
“어머. 그럼 진작 말하지 엄마도…….”
“나 나간다!”
나는 당장이라도 쫓아 나갈 듯 부릉부릉 시동을 거는 엄마의 모습에 서둘러 현관문을 열었다.
“문다율! 잠깐 기다리라니까!”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 재빨리 문을 닫고 나왔다.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엄마의 목소리도 끊어졌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막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공동현관문이 열리자 멋지게 뻗은 차 옆에 지서준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너지 효과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차도 번쩍번쩍, 지서준도 번쩍였다.
“차 엄청 멋있다.”
“빨리 타. 차 밀릴 거야.”
내 반응에 시크하게 대답한 지서준이 차 문을 열었다.
“우와! 이거 문이 어떻게 열린 거야? 자동이야?”
지서준이 뭔가 버튼을 누르자 자동으로 열린 차 문에 아이처럼 소리를 질렀다.
“빨리 타.”
“응!”
차를 타고 실내 여기저기 둘러보며 구경했다.
“엄청 좋네. 이거 비싸지?”
“싸지는 않지?”
“너, 미국에서 뭐 했어?”
“뭐?”
“뭘 했길래 돈이 이렇게 많아? 어? 혹시…….”
지서준이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야!”
“이상한 생각 하지 마. 대학교 때부터 돈 벌었으니까. 졸업하고도, 운 좋게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성과를 냈고, 친구 따라 투자도 했어. 그게 다야.”
도대체 투자를 얼마나 잘했길래, 오피스텔 전세에 이런 차라니…….
“그래서 다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구나? 지금이라도 미국 가야 하나? 응?”
지서준은 내 반짝이는 눈이 따가울 법도 한데 가뿐히 무시하곤 벨트를 맸다.
“안전벨트 해. 출발한다.”
“네!”
전기차라 그런지 소리도 없이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막 큰 길가로 접어들었을 때, 지서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서준아! 너 어디야?
윤희 아줌마였다.
“집 근처요.”
-잘됐다! 다율이 차 구경시켜준다고 했다며? 다시 아파트로 올래? 엄마랑 아줌마랑 나갈게.
“네?”
지서준이 고개를 돌려 나를 째려봤다. 설마 했는데, 아줌마들이 잽싸게 행동을 취했다.
‘내가 엄마들이 그럴 줄 알았나? 솔직한 게 죄는 아니잖아?’
나는 나름 억울한 마음에 소리를 죽이고 입만 벙긋거리며 말했다.
“하……. 네. 알겠어요.”
나를 있는 힘껏 노려보던 지서준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거칠게 U턴을 했다.
“나중에 보자.”
경고의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서준이 거칠게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아줌마한테 말한 거야?”
“응.”
“당당하네?”
“잘……못한 건 아니니까?”
내 말에 나를 노려보더니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조금 눈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차 문 한 번 기가 막히게 열리는구나. 나는 또 한 번 감탄했다.
“엄마들이 쫓아간다고 할 줄은 몰랐지.”
나는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그걸 왜 몰라? 너는 30년을 겪어보고도 몰라?”
“아이 진짜…… 같이 가면 또 뭐 어떠냐!”
내 말에 체념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지서준이었다.
20분 뒤, 꽃단장한 아줌마들이 차례로 나왔다.
“윤희! 오늘 너무 예쁜 거 아니야?”
“아니, 다율 엄마 살 빠졌어? 오늘따라 예뻐 보이네.”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칭찬 릴레이에 저것도 능력이다 싶었다.
“빨리 타요, 지금 가도 차 막혀.”
내가 끼어들고 나서야 그 릴레이는 겨우 멈췄고, 아줌마들은 차에 올라탔다.
“어머, 이거 너무 멋있다. 서준아. 너랑 너무 잘 어울리는 거 아니니?”
“차 샀다더니 이거구나?”
차를 대충 훑어보더니 훌쩍 올라타는 두 아줌마.
여기서 아줌마들의 의도가 아주 정확히 나왔다. 차 시승식은 핑계요, 예쁘게 차려입고 나들이가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아빠는? 아저씨는요?”
“네 아빠는 오늘 자전거 동호회 있어서 아침 일찍 나갔어.”
“아저씨는 오늘 결혼식장 가야 한대.”
엄마와 아줌마가 차례로 대답했다.
지서준이 엄마들이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짐을 트렁크에 싣고 차에 올라탔다.
“잠깐 사이에 뭘 저렇게 많이 챙겼어요?”
“그냥 냉장고에 있는 거 쓸어 담았어.”
“나도 그랬어. 휴. 아들아. 이 엄마는 오늘 너에게 조금 실망했다.”
윤희 아줌마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네?”
“차가 나왔으면 이 엄마들도 태워줘야지, 어떻게 다율이만 쏙 데리고 갈 수 있니?”
“그러게……. 서준아. 아줌마도 좀 섭섭했다.”
그 말에 지서준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모시고 가려고 했어요. 어제 문다율이 회사에서 사고 쳐서 기분이 안 좋길래 갑자기 정한 거예요.”
지서준이 말하자 엄마가 시트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소리쳤다.
“또?”
또라니요……. 제가 이래 봬도 회사에서는 나름 유능한 대리입니다.
나는 지서준이 본인 난처한 상황을 빠져나가고 입을 가볍게 놀린 것이 괘씸했다. 눈에 힘을 주자 지서준이 입을 벙끗거렸다.
‘솔직한 게 죄는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