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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내 손에서 냄새나? (28/97)


28화. 내 손에서 냄새나?
2022.10.05.



“너 때문에. 너 때문이라고. 들었어?”

분명 ‘너 때문에’라고 말했다. 그랬는데 대답도 없거니와, 영 시원찮은 반응에 한 글자씩 또박또박 재차 말해주었다. 그래도 지서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바보가 되어버린 지서준의 눈앞에 손가락 두 개를 펴 흔들었다.


“몇 개로 보이니?”

그러자 내 손가락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내 두 손가락을 양옆으로 벌렸다.


“아파!”

그러고는 내 손에 있는 자기 포크를 가져가 다시 떡볶이에 집중했다.


“뭐라고 말 좀 해보지?”

너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뭔가 해답을 줄 것 같았는데, 그것은 내 착각이었나. 나는 다시 포크를 들고 떡볶이 하나를 콕 찍었다.

떡볶이가 거의 사라졌을 때, 지서준이 나를 슬쩍 보았다.


“너는……. 너는 가고 싶어?”

“나? 나는 뭐……. 호주에서 일했을 때 재밌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가고 싶다고 생각해.”

“그런데 왜 팀장님한테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

“바로 정할 문제는 아니잖아. 그리고 너한테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고도 했으니까.”

소원권까지 써가며 나보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던 지서준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었다.

나는 다 먹은 떡볶이가 아쉬워 비어 있는 그릇 위 국물을 포크로 휘저었다.


“만약에……. 만약에 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호주로 갈 거야?”

“음. 그랬을 확률이 높지?”

미묘한 표정의 지서준이 계속 장난하던 내 손을 잡고 포크를 빼앗았다. 식탁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지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모, 여기 계산해주세요.”

우리는 분식집을 나와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지서준의 뒷모습에 괜히 말한 것은 아닐까 봐 조금은 후회가 됐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지서준의 바로 옆에서 걸었다.


“나, 그냥 호주 가지 말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저걸 그냥…….

나는 퉁퉁거리는 지서준의 말에 걸음을 멈추고 노려보았다.


“네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고!”

뒤통수에 대고 소리치자 그놈이 우뚝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나 가지 말까?”

지금 지서준이 엄청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오늘도 멋들어진 이놈의 미간이 애매하게 꼬깃꼬깃해져 있었다.

나무 어딘가 붙어 있는 매미가 그렇게 애타게 짝을 찾는지 아주 시끄럽게 울어댔다.

매미 소리가 크게 느껴질 만큼 아무 말 없이 나도, 지서준도 말하지 않고 서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준? Are you Jun?”

누군가 지서준을 부른 듯한데, 영어로 불렀다. 그것도 아주 유창한 발음으로.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아까 봤던 그 여자.

엄청나게 예뻐 내 심장까지 두근거리게 했던 그 여자가 지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여자가 부른 사람이 정말 지서준일까? 설마 하는 심정으로 나는 잽싸게 고개를 돌려 지서준을 바라보았다.

아니다 다를까. 지서준도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



“나왔어.”

적막하고 어두운 집이 나를 반겼다.


“맞다. 오늘 부부 모임 있다고 했지.”

오늘 아침, 부리나케 나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엄마가 모임이 있으니, 알아서 저녁을 해결하라던 목소리가 생각이 났다.

컴컴한 집안이 보기 싫어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환하게 불을 켰다.

그러고는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집었다.

평소에 보지도 않는 뉴스를 틀었다.

뉴스 앵커가 뭐라 말하고, 화면이 바뀌며 경찰서가 나오고 매우 급하게 움직이는 기자들의 모습이 TV 화면에 나왔다.


“세상 참 험하네.”

그 후, 다른 보도들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오늘의 8시 뉴스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빠르고 정확한 뉴스로 보답하겠습니다.

 
앵커의 마무리 멘트 후 익숙한 마무리 음악이 흘렀다. 시계를 보니 시곗바늘들은 벌써 9시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묵직한 몸을 겨우 일으켜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트니 따뜻한 물이 내 몸으로 쏟아졌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아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
.
.



“준.”

 
그녀가 멀뚱히 서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지서준을 보았다.

“오랜만이네.”

 
그녀가 아까 나에게도 보여준 예쁜 미소를 지서준에게도 지어 보였다.


“네가 여길…….”

 
지서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한국에 왔다가 옛날 생각나서 여기저기 둘러봤어.”


“아. 그래?”


“응.”

 
지서준이 답하자 그녀가 웃으며 지서준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렇게 우연히 만날 줄 몰랐는데, 너무 반갑다.”

 
그녀와 지서준의 거리는 어느새 나보다 더 가까워졌다. 그제야 날 발견한 그녀.


“어? 아까 낮에 봤던…….”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서둘러 다시 입꼬리를 내리긴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바보 문다율.


“아,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하자 그녀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나와 지서준을 번갈아 바라봤다.


“혹시, 준이 예전에 말했던 그 친구……. 맞지? 준?”


“응? 어. 응. 인사해. 내 친구 문다율.”


“안녕하세요. 저는 올리비아 리에요. 반가워요.”

 
어쩜. 이름도 예뻤다.


“네. 반가워요.”

 
그녀가 내민 손을 막 잡으려는 순간 지서준이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막 악수를 하려 들었던 내 손이 썰렁하게 공중에 남았다.


“문문 먼저 집으로 가. 나는 잠깐 얘기하다가 오피스텔로 갈게.”


“어? 그, 그래.”

 
나는 허공에 있던 내 손을 거두며 말했다.

.
.
.

그 후, 무슨 정신으로 집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샤워기 밑에 서 있었던 건지, 불어버린 손을 발견하고 샤워기를 껐다.

전 여자친구겠지?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익숙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아니, 전 남자친구 동네에서는 왜 기웃거리는데? 참나, 어이가 없네.”

왼쪽으로 돌아누우니 이번에는 익숙한 벽이 눈에 들어왔다.


“쭌? 주우운? 뭐야. 6월이야 뭐야. 지서준이라고 부모님이 번듯하게 지어주신 이름이 있건만. 어이가 없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돌아누워 내 애착 인형의 팔을 마구 잡아당겼다.


“제일 나쁜 건 지서준이야. 왜 악수도 못 하게 해? 어? 내 손에서 냄새나? 그래?”

나는 손을 코로 가져가 킁킁거렸다.


“좋은 냄새만 나네.”

다시 내 시야가 천장으로 돌아왔다.


“지서준 이 나쁜 놈.”

그러고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



“너 눈이 왜 그래?”

“뭐가.”

내가 출근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앉자 엄마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내가 네 얼굴 중에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건 눈밖에 없는데, 그걸 어쩌다 그 모양으로 만들어놨냐고.”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래…….”

한참을 뒤척이다 새벽에 나와 아빠 맥주를 몰래 마시고 잔 것이 원인이었다.


“어이구. 못살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 냉동실에 있는 아이스팩 두 개를 내게 주었다.


“고마워.”

나는 엄마가 준 아이스 팩을 눈두덩이에 살짝 올려놓았다.


‘킁킁.’

반찬에는 생선이 없건만 어디서 비린 냄새가 솔솔 풍겼다.


“엄마. 어디서 비린내 안 나?”

“비린내?”

엄마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말했다.


“그거 생선 박스에서 나온 거라서 그런가 봐.”

“아 진짜!”

내가 소리를 빽 지르자 엄마는 내 손에서 아이스팩을 빼앗아 다시 냉동고에 넣으며 말했다.


“줘도 난리야.”

 

 

**



“좋은 아침입니다.”

“어? 대리님!”

요즘 따라 일찍 출근하는 백인하 씨였다.


“대리님 얼굴이…….”

“네? 제 얼굴이 왜요.”

나는 아이스팩을 다시 냉동고에 집어넣고 바로 집을 나왔다. 그래서 내 얼굴을 확인을 못 했는데, 그렇게 심각한가.

자리에 앉아 책상에 있는 거울로 내 얼굴을 확인했다.


“어우. 야. 어우. 못 봐주겠네. 정말. 생선 아이스팩 더 올려둘 걸 그랬나…….”

“네? 생선 뭐요?”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길로 보고 있던 인하 씨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 웃는 모습에 흠칫 놀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곤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연락도 안 한다 이거지?”

새로 도착한 메시지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뒤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중얼거렸다.


“나 뒤끝 문다율이야.”

 

.
.
.

지서준에게 연락이 온 것은 오후,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됐을 무렵이었다.


[퇴근 언제 해?]

나는 새로운 메시지에 내가 화났음을 충분히 어필하기 위해 메시지를 작성했다. 하지만 완성된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잠깐 뜸을 들였다.

바로 보내면 없어 보이니까.


[나? 그건 왜 물어? 나 퇴근 안 하는데?]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흡족해하며 마지막 서류 작성까지 마쳤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네. 조심히 가세요. 팀장님.”

팀장님이 가장 먼저 퇴근을 하셨다. 그 후 나도 가방을 챙겨 막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지서준이 우리 사무실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는 주춤거리며 들어왔다.


“문다율.”

에잇.

당분간은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회사가 같으니 이렇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지서준은 다른 사람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나에게 다가왔다.


“왜 문자 메시지 안 봐?”

“보냈어? 몰랐네.”

핸드폰을 보자 지서준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모르는 척 대답했다.


“퇴근 안 한다며?”

내가 막 퇴근하려 가방을 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지서준이 삐딱하게 서서 물었다.


“갑자기 퇴근하게 됐어.”

나와 지서준이 날 선 대화를 주고받았다.

막 퇴근하려던 백인하 씨가 가방을 싸다 말고 어정쩡하게 서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래. 그럼 같이 퇴근하자.”

“애들 만나러 가야 해.”

“누구? 고주연, 도이라?”

“응.”

“……알았어. 그럼 이따 연락할게. 핸드폰 확인 좀 자주 해.”

“…….”

내가 대꾸도 없이 고개를 획 돌려버리자 한숨을 푹 내쉬고 지서준이 돌아갔다.


“대리님. 지서준 연구원님이랑 싸우셨어요?”

지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목을 빼며 보던 백인하 씨가 물었다.


“네? 아니요. 제가 왜요? 인하 씨. 내일 봐요.”

그런 인하 씨를 두고 나는 최대한 도도한 걸음으로 회사를 나왔다.

고주연이 일하는 회사 근처.


“아. 만나 달라고.”

나는 핸드폰을 붙들고 고주연에게 징징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해서는……. 나 남자친구 만난다니까?

같은 회사 상사와 연애 중인 고주연은 오늘 남자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다고 했다.


“매일 보잖아. 나 여기 너희 회사 근처라니까?”

-그대로 돌아가.

“야. 고주연. 내가 저녁 산다고.”

-너 때문에 못살아. 잠깐만 기다려. 남자 친구한테 말해볼게.

전화를 끊고 고주연의 남친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오늘 이대로 집에 가기는 죽어도 싫었다.

고주연의 회사 근처 카페에 앉아 기다리길 10분.


“야. 밥 먹으러 가자.”

고주연이 나타났다.

나는 발랄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고주연을 따라나섰다.


“남자친구한테도 내가 나중에 밥 살게. 오늘은 정말 친구가 필요했다고.”

“알았어. 뭐 먹을래?”

나와 고주연은 몇 가지 후보 중 고기를 골랐다. 도착한 곳은 회사 근처 삼겹살집. 삼겹살이 철판 위에서 익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고주연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지서준이 이제 그만하재?”

“야.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거든?”

“퍽이나.”

고주연이 콧방귀를 뀌며 고기를 뒤집었다. 익은 고기를 골라내 앞접시에 올려주는 고주연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주연아. 만약에 네 남자친구 전 여자친구가 나타나면 어떨 것 같아?”

“뭐 그런 거지 같은 상황이 다 있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건만 고주연의 집게 질은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근데 그 여자가 엄청나게 예뻐.”

“야. 그럴 일 없어.”

“그 자신감은 뭐야.”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거만하게 웃고 있는 고주연에게 소주 한 잔을 따라주었다.


“내가 알아. 그전 여자친구들,”

“어떻게?”

“일단, 몇 명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소주를 털어 넣고 고기 한 점을 집었다.


“미니홈피에서 사진 몇 장 발견했지 내가.”

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고기를 입에 넣지도 않고 경청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몰라. 내가 본 거.”

“뭐? 말 안 했어?.”

“응.”

쿨하게 답하며 열심히 고기를 굽던 고주연이 손을 들었다.


“여기 불판 갈아주세요.”

그러고는 불판에 남아 있는 고기들을 집게로 집어 내 앞에 듬뿍 올려주며 말했다.


“과거 굳이 꺼내고 싶지도 않고, 그 사진들이 거기 있었는지도 그 사람은 몰라. 그래서 그냥 묻기로 했어.”

나는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내 친구를 보았다.


“근데, 만약에……. 만약에 전 여자친구가 남자친구 사는 동네에서 기웃거리면 어떻게 할 거야.”

“뭐?”

다시 표정이 날카로워진 그녀가 소주를 단번에 마셨다.


“머리끄덩이를 잡아끌어서라도 떼어 놔야지.”

그녀가 입술에 묻은 소주를 거칠게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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