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스토커.
(41/97)
41화. 스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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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스토커.
2022.11.20.
나는 불안해하는 지서준을 데리고 곧장 오피스텔로 향했다.
오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지서준도 딱히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서둘렀더니 목이 바싹바싹 말라왔다. 오피스텔에 들어서자마자 컵을 꺼내 정수기 버튼을 눌렀다.
쪼르르 시원한 물이 담겼다. 컵을 들어 물을 마시며 지서준을 바라봤다.
지서준은 그저 무표정으로 조금 지친 듯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는 지서준의 옆으로 가 바짝 붙어 앉았다.
“요즘 똘이 장군님은 뭐 하고 계신다니.”
“…….”
“너무 뵙고 싶은데, 남준모는 보기 싫고, 에이. 아쉽네.”
“…….”
“남준모 어디 여행 안 가나? 그때 또 여기 데리고 오면 안 되나?”
지서준의 오피스텔에는 내 목소리만 계속해서 들렸다. 그러기를 10분. 입을 꾹 다물고 나만 보던 지서준이 입을 열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내가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했어? 나 지금 너무 많이 말해서 목마른데?”
내 말에 지서준이 천천히 일어나 시원한 물을 내 앞에 내밀었다. 나는 차가운 물을 조금 목으로 넘겼다.
“왜 안 물어보냐고.”
“……그냥 네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려고.”
내 말에 지서준이 나를 번쩍 들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품에 가두었다. 지서준의 심장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지서준의 목에 팔을 둘러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찬찬히 지서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물어보면 말해 줄래?”
내 목에 파묻고 있던 지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그 여자 뭐야?”
지서준이 마른침을 삼켰다.
“나도 잘 몰라. 회사 근처 카페 직원이라는데……. 사실 언제 처음 마주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지서준의 얘기를 듣자 떠올랐다. 그 여자를 내가 어디서 봤는지.
회사 근처 카페. 자주 가지 않았지만, 회사와 아주 가까워 몇 번 들렀던 기억이 있었다. 그곳에 있던 여자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상한 문자가 오기 시작했는데, 그냥 무시했어. 그러다가…….”
지서준이 잠깐 말을 멈추고는 나를 안은 팔에 힘을 더 주었다.
“너랑 만나기 시작하고 조금, 조금 이상한 문자가 오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쫓아다니는 것 같더라.”
나는 지서준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멈췄다. 몸을 떼 지서준의 얼굴을 보았다.
“뭐라고 문자 왔는데?”
“…….”
다시 입을 다물어버리려는 지서준.
“말해줘.”
내가 지서준의 어깨에 손을 짚고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시선을 피하곤 지서준이 입을 달싹이다 간신히 말을 뱉었다.
“협박이었어…….”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아까 낮에 본 이상한 여자가 나를 두고 지서준을 협박했구나.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던 지서준이 그녀를 보고 불안해했구나.
“언제, 언제부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얼마 안 됐어. 그리고 증거 모아서 경찰서에 신고하려고 했어.”
“그 문자, 나 보여줘,”
증거를 모으고 있다고 했으니, 아마 지우지 않고 갖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러지 마”
“볼래. 보여줘.”
나는 지서준의 허벅지에서 껑충 뛰어 내려와 지서준의 가방을 뒤졌다. 앞쪽에 있는 핸드폰을 막 발견해 꺼냈을 때, 지서준이 핸드폰을 휙 가져가 버렸다.
“보여달라니까?”
내가 지서준에게 막 달려들어 빼앗으려 하자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마구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야. 하하하. 하지 마. 이, 꺄하. 이건 반칙!”
겨드랑이에 매우 민감한 내가 마구 몸부림을 치며 미친 여자 같이 화냈다 웃기를 반복했다.
“내, 크흐흐. 내놔! 흐허헝.”
나는 지서준을 피해 거리를 벌려야 했다.
“빨리 보여줘.”
겨우 진정하고 얼굴에 웃음기를 지웠다.
“그냥, 그냥 그렇게 웃으면 안 돼?”
핸드폰을 꼭 쥐며 나를 보던 지서준이 말했다.
“너는 그런 미친 여자한테 괴롭힘당하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하하, 호호 웃으면서 지내고 싶지 않아. 그런 애인 갖고 싶은 거라면 다른 여자 찾아.”
나는 그렇게 말한 뒤 한 걸음 한 걸음 지서준과의 거리를 좁혔다. 지서준과 한 뼘 정도 되는 거리. 나는 손을 쭉 내밀었다.
“빨리 보여줘.”
그러자 한숨을 푹 내쉰 지서준이 핸드폰 잠금화면을 풀고는 내게 건넸다.
“미친…….”
내 인생 29년 그동안 깨우친 모든 욕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올 뻔했다.
처음은 그저 만나자. 만나보고 싶다는 것에서 어느 순간 그 여자는 지서준의 여자친구가 되어 있었고 그녀의 사진도 보내왔다.
그러다 지서준이 반응이 없자 욕설이 섞인 문자메시지도 보내왔다.
“이 여자가 네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지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다시 그 여자가 보낸 문자를 훑어보았다.
나와 사귀게 된 이후, 그 여자의 문자는 굉장히 공격적으로 변했고, 헤어지지 않으면 나에게 위협을 가하겠다는 문자도 몇 건 있었다.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나는 지서준에게 핸드폰을 주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몇 번이나 크게 숨을 내쉬었다.
“내일 당장 경찰서 가자.”
“아직은 크게 처벌 안 돼……. 스토커 법안 실행되려면 아직 몇 개월 남았대.”
“……그럼 우리 변호사 선임하자.”
“그것도 생각해보고 있어. 그러니까, 너는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 응?”
지서준이 내 무릎에 있던 손을 가져가 꼭 쥐었다.
“걱정하지 마.”
나는 걱정스레 날 바라보는 지서준을 꼭 안아주었다.
**
회사에 출근해서 나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반차를 냈다.
회사를 나와 바로 그 카페로 향했다.
그 미친 스토커가 있는 곳.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손님을 상대하고 있는 여자였다. 그 모습에 기가 찼다.
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 그리고 저벅저벅 걸어 카운터로 향했다. 오늘을 위해 따로 챙겨 갈아신은 하이힐이 또각또각 소리를 냈다.
나를 발견한 여자는 살짝, 아주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아주 작은 변화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지만, 내 눈에는 아주 정확히 보였다.
“주문하시겠어요?”
“아니요.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요.”
“…….”
내 말에 같이 일하던 다른 직원이 흘끔거렸다. 그 여자는 다른 직원의 눈치를 보더니 내게 말했다.
“제가 지금 일하는 중이라서요. 지금은 곤란한데요.”
너무나 뻔뻔한 대답에 나는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저는 지금 아니면 곤란한데, 그럼, 여기서 바로 말할까요? 그럼 더 곤란하지 않으시겠어요?”
내 말에 이번에는 확연하게 티가 날 정도로 인상을 와락 구겼다.
“잠깐, 그럼 잠깐 기다리시겠어요?”
“그러죠. 여기서 기다리면 될까요?”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말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어준 뒤 그녀가 잘 보이는 자리에 가 앉아 다리를 꼬았다.
내가 팔짱을 끼고 꼰 다리를 까닥이며 그녀를 관찰했다.
다른 직원은 그녀와 나를 몰래 번갈아 보기 바빴고, 대놓고 그녀를 보고 있는 내 모습에 카페의 분위기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멀쩡하게 생겨서는, 어디서…….”
나는 중얼거리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 여자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운 건지, 아니면 의도치 않은 상황에 대한 당황인지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바쁜 일이 끝났는지, 같이 일하던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더니 카운터에서 나와 내게 다가왔다.
“나가서 얘기하시죠.”
“아니요. 저는 여기서 하고 싶은데요?”
내 말에 머리를 쓸어올린 여자가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내가 일하는 곳이에요. 다른 곳에서…….”
“내가 왜요? 나한테 해코지하겠다고 협박도 하셨던데, 정말로 저한테 위협이라도 가하면 안 되죠. 무서워서 제가 밖으로 나갈 수 있겠어요?”
뻔뻔한 그녀의 태도에 내 목소리가 커지자 카페 사람들이 나와 그 여자를 보기 시작했다.
카페 안을 살피며 눈치를 보던 그 여자는 내 앞에 앉았다.
“지금부터 저는 녹음을 할 겁니다. 그래도 되겠죠?”
나는 핸드폰 녹음 기능을 켜 그녀가 볼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지금 그쪽한테 아주 정중히 부탁할 거예요. 그쪽이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범죄자요?”
내 말에 기분이 나쁜지 날카롭게 노려보며 그 여자가 말했다.
“네. 지금 그쪽이 하는 행동이 범죄 아니면 뭐죠?”
“저는 지서준 씨를 사랑…….”
“사랑? 웃기네.”
내가 대놓고 비웃자 그 여자는 더욱 인상을 구기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은 얼마나 힘을 줬는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지서준에게 했던 문자들, 협박, 스토킹. 모두 자료 모아놨어요. 조만간 변호사 찾아갈 생각이에요.”
내 말에 그 여자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직, 스토킹 법안이 발의가 안 됐더라고요? 아쉽게도. 그래서 저는 이 자료들을 고이고이 모아뒀다가 법안이 발의되자마자 경찰에 넘길 생각이에요. 물론 그전에도 스토킹을 멈추지 않는다면 접근금지 신청도 할 예정이고요.”
“지금 무슨!”
그 여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노려보았다.
“앉아요. 나 말 아직 다 안 끝났는데.”
“지서준은 내 남자야!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서는 가로챈 주제에 무슨.”
“지금 그쪽은 스토킹 중이죠. 나는 그 스토킹을 멈춰달라고 설득하러 온 거고요.”
“무슨 소리야.”
“나를 가만 안 두겠다고 여러 번 협박했던데…….”
“그, 그래. 당장 안 떨어져 나가면 내가 너 가만 안 둘 거야. 너만 가만 안 둘 것 같아? 내가 가지지 못하면 지서준도 철저하게 망가뜨려서…….”
그 여자의 표정이 한순간에 변했다. 악이 가득한 눈에는 기분 나쁜 집요함이 숨어 있었다.
‘짝.’
나는 그녀의 뺨을 세게 쳤다. 정말로 세게 쳤다. 내 풀스윙에 그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카페 안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맞은 게 분해? 그럼 신고해. 그런 각오도 없이 여기 온 거 아니야.”
내 손도 열기가 올라오며 후끈거렸다.
“정신 좀 차리라고 때린 건데, 정신은 좀 차렸니?”
내 말에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노려보는 여자였다. 내게 덤비려는 그 여자를 나는 손쉽게 제압했다.
싸우기 싫어서 안 싸웠을 뿐. 초등학교 시절부터 여자들에게 괴롭힘당하며 남몰래 쌓아온 내공이었다.
“딱 보니까 나보다 많이 어린 것 같아서 말하는 건데, 내가 뭐 하나 알려줄까? 너만 미친 게 아니야. 너보다 더 미친 사람 많아. 응? 그건 몰랐구나?”
나는 그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너, 너 그런 무식한 여자인 거 지서준 씨는 모르지?”
“지서준이? 걔가 모르겠니? 나랑 29년은 알고 지낸 사이인데.”
나는 그 여자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내가 지서준 때문에 참 여러 여자를 겪어 봤거든?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너한테 얘기하는 거야.”
나는 내 앞에 있는 그 여자를 보며 씩 웃었다.
“지서준 건들지 마.”
그때, 경찰 아저씨들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을 보니 아저씨는 아닌 것 같았지만, 어쨌든 경찰이 들어왔다.
“신고받고 왔습니다.”
**
“이름은요?”
“문다율이요.”
“옆에 분은?”
그 카페에서 일하던 다른 직원이 신고한 모양이었다.
“옆에 분 성함이요.”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 자리에서 훈방 조치하려던 경찰이었다. 한쪽 뺨이 많이 부어오른 그 여자가 한사코 아무 일 아니라며 괜찮다고 했기 때문에 출동했던 경찰들은 거기서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근데, 그 모습이 참 이상했다.
내게는 잘못한 것 없다는 듯이 뻔뻔스럽기를 넘어 표독스럽게 굴던 여자가 경찰이 나타나자마자 태도를 싹 바꿔 본인이 다 잘못해서 그런 거라며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잘못한 것이 있으면 당당히 벌을 받겠다. 그러니 경찰서에 가서 제대로 된 조사에 임하고 싶다고 우겼다. 그래서 여기 경찰서에 이렇게 앉아 있게 된 것이다.
“성함이요! 네? 이름을 말해봐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불안한 듯 손가락의 거스러미를 마구 뜯고 있었다.
“기……ㅅ영……이요.”
“네? 똑바로 말하세요.”
그러자 그 여자가 똑바로 본인의 이름을 말했다.
그때, 다른 쪽에서 자꾸 이쪽을 주의 깊게 보던 다른 경찰이 다가오더니 우리 담당 경찰에게 뭐라 귓속말했다. 우리 담당 경찰은 갑자기 한참을 노트북을 두드리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혹시, 스토킹 문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