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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상습범. (42/97)


42화. 상습범.
2022.11.23.



“스토킹에 관한 문제로 마찰이 있었던 겁니까?”

담당 경찰관이 날 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한숨을 푹 내쉬던 경찰이 서류를 ‘탕’ 소리가 날 만큼 크게 테이블에 내리쳤다.


“이봐요. 한두 번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네?”

한두 번도 아니라니, 나는 경찰의 말에 그 여자와 경찰만 멍해진 표정으로 번갈아 바라봤다.


“아주 상습범이네.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으로 갈아탄 모양인데, 지금 이거 쉽게 넘길 일 아닙니다. 알아요?”

상습범? 다른 사람으로 갈아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그 여자는 고개만 푹 수그린 채 엄지의 거스러미를 뜯으며 손등에 피가 날 정도로 벅벅 긁어대고 있었다.


“그럼,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내가 말하자 잔뜩 인상을 찌푸려 그 여자를 보던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이 사람이 스토킹한 증거자료 있습니까?”

“네. 하지만 아직 스토커 법안 발의가 안 돼서 좀 더 기다렸다 신고하려고 했어요.”

“그러시구나. 이 사람 상습범이에요. 아직 시행 전이지만 스토킹 처벌 법말고도 협박죄,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도 가능합니다.”

“저희는 더 무거운 처벌을 원합니다.”

나와 경찰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여자가 이제는 몸을 벌벌 떨기 시작하더니 알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혹시, 스토킹 피해 당사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네?”

나는 경찰의 말에 흠칫했다. 피해 당사자를 만나야 한다는 것은 지서준을 불러야 한다는 말인데…….

내가 이 여자를 찾아가 한바탕 난리를 친 것도 모자라 이렇게 경찰서까지 와 있는 상황을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아, 그……. 꼭 지금 와야 하나요?”

“이런 일은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퇴근 시간이 5시 반인데, 그 후에 와도 될까요?”

“네. 됩니다. 그렇게 하시죠.”

흘끔 시간을 보니 벌써 시계는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나는 결국 지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기……. 바빠?”

-아니, 괜찮아.

“퇴근 후에 잠깐 나 좀 볼래?”

-그래. 어디서 볼까?

“여기가…… 어디냐면…… 경찰서?”

 

**

전화를 끊고 얼마 후, 지서준이 도착했다.

헐레벌떡 들어오는 지서준은 경찰서 구석에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디,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어? 왜 경찰서에…….”

그러다 내 왼쪽, 조금 떨어진 곳에 아직도 훌쩍이는 그 여자를 보자 그 여자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아 올렸다.


“야. 너 뭐 해!”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와 옆에 있던 경찰들이 깜짝 놀라 지서준을 말렸지만, 뭔 놈의 힘이 이리도 센지, 그 여자에게 떼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지서준의 기세에 화들짝 놀란 그 여자는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던 경찰 몇 명이 달라붙어서 겨우 그 여자에게 지서준을 떨어트려 놓을 수 있었다.


“스토킹 피해자 됩니까?”

지서준이 조금 진정하는 기미를 보이자 경찰이 다가와 신원을 확인하고 이것저것 물으며 조사가 진행되었다.

어느 정도 조사가 끝나고 나는 훈방 조치, 그 여자는 좀 더 조사해야 한다며 그곳에 남았다.

어느새 퉁퉁 부어 울먹이던 그 여자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선처를 바랐지만, 지서준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나와 경찰서를 나섰다.


“문다율 씨, 화가 나는 건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찾아가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저 여자가 해코지할 배짱도 없는 사람이니까 망정이지……. 정말로 위험합니다. 네?”

“네. 죄송합니다.”

나와 지서준을 따라 나온 담당 경찰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저 잘못했다 용서를 빌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아마 저 여자가 더 이상 지서준 씨나 문다율 씨 앞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경찰서 한 번 다녀가면 잠잠하다가 다른 타깃을 잡는 것 같더라고요. 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혼자 해결할 생각 마시고 경찰에 바로 신고하세요.”

마지막까지 당부를 마친 경찰이 들어가고 나와 지서준만 남았다. 조사를 다 마치고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걷기 시작한 지서준.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 뒤를 따랐다. 큰 길가에 나와 택시를 탈 줄 알았지만, 계속 걷기만 하는 지서준.

그렇게 15분은 걸었을까.

기선을 제압하겠다고 신고 온 하이힐에 발가락뿐만 아니라 발목까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지서준.”

“…….”

돌아보기는커녕 대답도 없다.


“지서준, 나 아파.”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날 돌아봤다.

나는 잽싸게 발목을 쥐었다.


“오늘 하이힐 신었단 말이야. 지금 발가락도 아프고…… 발목도 아프고…….”

내 말에 하이힐을 흘끔 보던 지서준이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작은 카페를 발견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잠깐 저기 들어가자.”

나는 절뚝거리며 지서준을 따라갔다. 손이라도 잡아줬으면 좋겠지만, 차마 잡아 달라 말할 수 없었다.


“어서 오세요.”

작은 카페에는 우리 말고는 손님이 없었다.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따뜻한 차 두 잔을 주문한 지서준이 잠시 앉아 있으라고 말하고는 카페를 나갔다.


“어딜 간 거야…….”

나는 지서준이 나간 문을 보다 내 발을 꽉 죄고 있는 하이힐을 벗었다.


“으. 엄청 아프네.”

다행히 물집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발가락들이 잔뜩 빨갛게 변해 있었다.

주무르면 조금이라도 통증이 가실까 싶어 주무르려다, 그것까지 하면 민폐인 것 같아 꾹 참고 그저 발가락을 폈다 오므리기만을 반복했다.


“발이 많이 아프신가 봐요.”

카페 사장님이 내 상황을 눈치채고는 음료를 가져다주셨다.


“무리를 좀 했어요. 하하.”

내 말에 안타깝게 바라보다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는 사장님을 보는데 지서준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밖에 없어. 이거라도 신어.”

어디서 구해온 건지 삼선 슬리퍼가 내 앞에 놓였다.


“응. 고마워.”

 

 
지서준은 내가 슬리퍼에 발을 끼워 넣자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너.”

지서준이 한참 나를 노려보다 처음 내뱉은 말.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서준이 내뱉은 한 글자 한 글자에는 많은 기분이 뒤섞여 있었다.


“나 진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까 경찰 말 못 들었어? 상식적으로도 그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너 혼자 스토커를 찾아가? 어?”

“나는…….”

“너 가만 안 둔다고 협박했던 여자야. 그런 여자한테…….”

지서준은 한숨을 내쉬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았어.”

“…….”

“내가 너 그런 성격 알아서 말 안 하려고 했던 거야. 알아?”

“……알아.”

앞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내 머릿속에는 불안해하던 지서준의 얼굴만 떠올랐었다. 지서준을 괴롭히는 못된 스토커를 당장 찾아가 혼쭐낼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미안해. 정말 뒷생각 안 하고 무작정 찾아갔어. 근데 막 내가 질 것 같진 않달까? 폭력은 나쁜 거지만, 내가 또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성격은…….”

미안하다는 말에 눈에 힘을 풀던 지서준이 다시 눈에 힘을 주었다. 광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눈빛에 나는 곧장 자세를 낮췄다.


“아,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약속해.”

다시 죄인 모드로 돌아와 빌기 시작했다.


“내가 맹세한다. 어? 다시는 그러면 내가 문다율이 아니라 개다율이야. 멍멍.”

주먹을 살짝 쥔 후 턱 근처에 가져다 대며 강아지 흉내를 냈다. 그래도 내 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는 지서준.


“이보세요. 내 말 들리세요? 네?”

내가 손을 들어 지서준의 눈앞에서 마구 흔들었다.


“뭐야, 왜 손이 부었어?”

“어? 아, 이거? 내가 아까 그 여자 뺨을…….”

내가 때렸던 그 여자의 뺨이 빨갛게 부어올랐다가 시퍼렇게 멍들기 시작했다. 경찰서에서 그렇게 노려봤으면서 그건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뺨을 어떻게 때렸길래 손이 이렇게 부어?”

내 손을 가져가 살살 어루만지며 지서준이 말했다.


“아까 그 여자 뺨 못 봤어? 시퍼렇게 멍든 거, 그렇게 만들었는데 내 손은 말짱할까.”

“뺨은 왜 때려? 네 손만 아깝게.”

혼내려면 혼만 내지, 목소리에는 걱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자리에서 일어난 지서준이 카운터로 가더니 뭔가 주문했다.


“또 뭐 마시려고?”

“아니, 차가운 음료 시켰어. 손에서 열나잖아.”

차가운 음료가 나오자 내 손에 컵을 쥐여줬다. 경찰서에서는 그 여자가 상습범이라는 사실에 놀라 정신이 없었고, 지서준이 와서는 내내 눈치 보느라 손이 아픈 줄도 몰랐다.


“차가우니까 훨씬 낫다.”

“…….”

그저 내 손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지서준이 말했다.


“앞으로는 나 지켜줄 생각 하지 마. 나는 이제 놀이터에서 질질 짜던 중학생 지서준이 아니야.”

나는 컵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지서준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큰 중학생이 어디 있어.”

그 말에 걱정을 가득 담아 바라보던 내 손에서 시선을 거두고 나를 바라봤다.


“만약에 내가 그런 상황이었으면 너는 어떻게 했을 거야?”

내가 잡은 지서준의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마,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걸?”

차가운 음료가 담긴 컵을 쥐고 있던 손이 너무 차가워 잠시 손을 거뒀다. 금세 열감이 다시 오르는 걸 보니 아마 내일 멍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를 지킬 거야. 물론, 이렇게 무식하게 지키는 방법은 자제하도록 노력할게. 하지만 지키지 말라는 말에는 약속할 수 없어.”

나는 지서준의 손을 더 꼭 쥐었다.


“착해 빠져서는…….”

마지막으로 덧붙인 내 말에 ‘픽’ 하고 웃는 지서준.


“그 말 들으면 내 주위에 모든 사람이 비웃을걸?”

“그건 널 몰라서 그러는 거고, 네가 얼마나 착해빠졌는지 모르지. 하긴, 남들 탓할 일도 아니네. 좀 톡톡거려야지.”

퉁퉁 부은 손으로 적당하게 식어 먹기 좋은 차를 한입 호로록 마셨다.


“이거 다 마셔도 밥 먹을 수 있을까?”

내가 말하자 지서준이 내가 마시던 따뜻한 음료를 가져가 제 입에 다 털어 넣고는 차가운 음료를 들고 카운터로 가 테이크 아웃 잔에 다시 받아왔다.


“밥 먹으러 가자. 그렇게 힘썼으니 충천해야지.”

우리는 그렇게 카페를 나갔다. 지서준의 손에서 내 하이힐이 대롱거렸다.


“내가 든다니까.”

“됐어. 너는 그 차가운 음료나 잘 들고 있어.”

“이쪽 손도 있잖아.”

“그쪽 손은 내 손 잡고 있어야지.”

나는 지서준의 말에 씨익 웃으며 지서준 손을 꼭 잡았다.


“벌써 가을이 오는 것 같네.”

“응.”

“이러다가 금방 낙엽 지고 겨울 오겠지?”

“그렇겠지?”

“그럼 우리 20대도 끝나네.”

“…….”

“지서준의 20대는 어땠어? 올리브유랑 연애도 하고 좋았지?”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지서준이 이래서 과거는 숨겨두는 거냐며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그 모습에 크게 웃자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해사하게 웃는 지서준.


“내 20대는…….”

지서준이 나를 흘끔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내 20대의 끝이 너여서 좋다.”

지서준의 말이 여름 끝자락 밤바람에 휘날렸다. 그 바람이 내게 다가와 앞머리를 간지럽히고는 가슴마저 술렁이게 만들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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