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사내체육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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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사내체육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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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사내체육대회.
2022.11.27.
“우리 S.T 임직원분들 다 모이신 것 같으니까, 간단히 몸풀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팀은 배정받은 천막에 앉아 있다가 체육대회를 시작한다는 사회자의 말에 앞으로 나갔다. 반듯하게 줄을 세운 사회자는 재밌는 농담을 섞어가며 사원들에게 몸풀기를 시켰다.
오늘 체육대회는 가족도 초대해서 함께 즐길 수 있게 했는데, 아이들도 신이 나는지 열심히 몸을 풀었다.
“저 아이들은 몸을 안 풀어도 될 정도로 아까 뛰어놀던데…….”
내 뒤에 백인하 씨가 중얼거렸다.
“우리는 제대로 풀어줘야 해요. 아니면, 내일 못 일어나요.”
“네.”
내가 대답하자 체육대회에 회의적이었던 그녀가 시무룩 답했다.
저 멀리, 내 남자친구 지서준이 한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설렁설렁 몸을 푸는 녀석. 저러고 펄펄 뛰어다닐 거면서.
몸풀기가 끝난 후, 아이들과 함께하는 경기가 먼저 시작했다.
“오늘, 이 과장님 오신대요?”
며칠 전, 육아 휴직을 냈던 과장님이 시간이 되면 구경하러 온다고 연락을 해 왔었다.
“오신다고는 했는데……. 어디쯤 오셨으려나.”
내가 막 핸드폰을 들어 과장님께 전화하려는 순간.
“문 대리!”
저 멀리 아이를 안고 오는 과장님이 보였다.
“과장님 여기요.”
내가 손을 흔들자 이 과장님이 사모님과 함께 웃으며 우리가 있는 천막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그래요. 오랜만이에요.”
먼저 팀장님과 인사한 과장님이 나와 백인하 씨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예전에 집들이 때 뵀었죠?”
내가 인사하자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모님과 인사를 끝내고 돌아보니 과장님 품 안에 꼬물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했다.
“안녕.”
내가 아기 손을 잡고 악수하자 호탕하게 웃던 과장님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루예요. 이하루.”
저 굵직한 목소리로 아기 목소리를 흉내 내자 나와 백인하 씨는 소름이 돋아 팔을 마구 쓸었다.
“문 대리랑 인하 씨는 여전하네.”
여전히 호탕한 과장님이 다시 호걸처럼 웃더니 천막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하루 흉내를 내며 하루 인사도 대신했다.
몇 가지 게임 후. 기진맥진해져 맥주 한 캔을 따 슬쩍 자리에 앉았다.
“문 대리. 죽지 않았네.”
“물론이죠. 아직은 20대라서 괜찮습니다.”
아이와 차에서 쉬겠다며 사모님이 하루를 데리고 가고 잠시 자유의 몸이 된 과장님도 맥주 한 캔을 가지고 내 옆에 앉았다.
“문 대리. 연애하지?”
“푸흐읍.”
나는 갑작스러운 과장님의 말에 마시던 맥주를 조금 뱉어야 했다.
“에잇. 뱉어도 왜 내 쪽으로 뱉는 거야!”
조금 뱉었다고 생각했는데 과장님의 바지가 짙게 물들어 있었다.
“크. 크흠. 아. 과장님이 갑자기 물어보시니까 그렇죠.”
두루마리 휴지를 마구 풀어 바지를 벅벅 문지르던 이 과장님이 눈을 이상하게 뜨고 나를 보았다.
나는 과장님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으나, 하필 돌린 곳이 지서준이 한참 활약을 하고 있는 농구장이 있는 곳이었다.
들킬 리도 없건만, 죄지은 사람처럼 서둘러 하늘을 바라보며 잘 불지도 못하는 휘파람을 불어댔다.
“뭐야. 우리 회사 사람이야?”
“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빽 하고 나갔다.
“쉬쉿. 비밀 연애하는 거 아니야? 그러다 다 들킬라.”
과장님이 자신의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내게 목소리를 낮추라며 뻔뻔한 얼굴로 호들갑을 떨었다.
“과장님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과장님을 보자 과장님이 피식 웃더니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문 대리 입사했을 때부터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야. 문 대리가 메일 하나 보내는 거로 어버버 거릴 때 옆에서 하나하나 스펠링 읊어줬던 사람이라고 내가. 그거 하나 눈치 못 챌까?”
“제가 언제 어버버 했다고…….”
“허!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고 옛 어른들이 그랬는데. 쯧쯧.”
짧게 혀를 차며 캔에 남아 있는 맥주를 모조리 입에 털어놓는 과장님이 나를 다시 흘끔 봤다.
“그래서, 누구야. 응? 누구야. 우리 문 대리 마음을 훔쳐 간 사람이.”
맥주 캔을 찌그러트리며 목을 길게 빼고 주위를 마구 훑어봤다.
“과장님 때문에 들키겠어요.”
내가 투덜거리자 한껏 빼 올렸던 목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은 과장님이 재촉했다.
“그래서, 누구냐고. 어느 팀이야?”
목소리가 아주 작아진 이 과장님이 내게 귀를 가져다 댔다. 사내 비밀 연애는 복사기도 안다고 했다. 그래서 조심, 또 조심했건만. 역시 눈치 백단 이 과장님을 속일 수는 없었다.조
여기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면, 피곤해질 앞날에 눈앞이 캄캄했다.
“제일 잘생긴 사람이요.”
내 말에 인상을 팍 찌푸린 이 과장님이 말했다,
“잘생긴 사람이 왜?”
그 말을 끝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던 과장님이 마침 한참 농구를 하는 무리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지서준을 가리켰다,
“혹시, 저 사람이야?”
나는 단순히 잘생긴 사람이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지만, 한 번에 찾아내는 과장님이었다. 농구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는데, 여사원들은 지서준이 공만 잡았다고 하면 꺅꺅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 아니겠다. 잘생겨도 너무 잘생겼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과장님은 다른 맥주 캔을 집어 들었다.
“저 사람 맞는데요.”
“푸흐합. 커헉.”
이번에는 과장님이 마시던 맥주를 뱉어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휴지를 풀어 과장님께 건넸다.
“진짜야?”
작은 눈이 저렇게 커질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내가 준 휴지로 얼굴을 톡톡 두드리며 내게 연신 진짜냐고 묻는 과장님이었다.
“네. 진짜예요.”
“허…….”
나와 농구장을 연신 번갈아 보는 과장님이었다.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서준이랑은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고, 사귀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됐어요. 과장님이 눈치채셨다시피 저 인간은 엄청나게 잘생겼고 능력도 있어서 회사에서 꽤 유명 인사거든요. 그래서 비밀 연애를 하게 된 거고요.”
내 설명을 들으며 바보처럼 고개만 끄덕이던 과장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농구 경기 보러 안 갔어? 여기서 봐도 남자친구가 꽤 활약하는 모양인데. 보고 싶지 않아?”
나는 낮부터 맥주를 들이부으면 큰 사고를 칠 것 같아 이번에는 옆에 맥주 캔 옆 음료수 캔을 들었다.
“쟤 활약하는 거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요, 뭐. 알아서 잘하겠죠.”
“쿨하네…….”
“쿨하다기 보다, 저런 모습은 많이 봐서, 친구에서 연인 사이가 된 단점 중 하나랄까요. 저런 모습으로 심장이 쿵쿵하거나 그러지 않거든요.”
목을 쭉 빼고 농구장 쪽을 보던 과장님이 말했다.
“좀 피곤하긴 하겠다. 문 대리. 저 여자들이 다 라이벌 아니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것도 다 익숙해져서요. 하하.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준비된 여자친구 같네요.”
내가 헤실헤실 웃자 과장님이 껄껄 웃으며 내가 들고 있는 음료수 캔에 맥주 캔을 부딪쳤다.
“문 대리의 비밀 연애를 위하여.”
잔과 잔이 부딪치는 소리만큼 경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과장님의 경쾌함이 묻어나왔으니 말이다.
**
체육대회가 모두 끝이 나고, 나는 영 시원치 않은 경품에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역시, 나이가 드니 뒷심이 부족하네.”
처음에 열심히 날뛰던 나는 결국 뒤에 가서 힘을 못 쓰고 중요한 경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나는 뒤풀이가 시작되고 고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한가운데 내가 딴 경품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문 대리가 그런 소리 하면, 나는 앓아누워야겠네요.”
나와 같이 맥주를 마시고 있는 팀장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잇. 그런 의미로 한 말 아닌 거 아시면서.”
내가 방긋방긋 웃으며 팀장님에게 말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 않았나. 내 웃음에 풋 하고 웃던 팀장님이 조금 미끄러져 있는 안경을 고쳐 올렸다.
“오늘 이 과장도 보고, 문 대리도 기분 좋아 보이네.”
“네. 오랜만에 사수님 보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애 때문에 일찍 가셔야 했지만, 이제 복귀할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
“네. 이 과장 복귀하면 저도 조금 여유로워지겠죠.”
나와 팀장님은 하루빨리 이 과장님이 복귀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팀장님과 나는 고기를 안주 삼아 맥주를 기울였다.
“그나저나, 백인하 씨는 어디 간 거예요?”
팀장님이 고개를 들어 백인하 씨를 찾았다.
“우리 팀 막내님은 굉장히 사교성이 높아서요. 아마 다른 팀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을 겁니다.”
내가 새로운 맥주를 꺼내며 말했다. 배가 불러 이제 다른 술로 갈아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님, 섞어?
“우리 팀 막내는 대단하군요.”
백인하 씨가 연구팀 직원들과 하하 호호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팀장님이 말했다.
“네. 팀장님, 소맥 드실래요?”
나는 심각하게 팀장님에게 물으며 소주를 꺼냈다. 그때 내 손에서 갑자기 소주병이 사라졌다.
“아까부터 마시더니, 섞어 마시면 너 죽어.”
지서준이었다.
나는 살짝 알딸딸했던 술기운이 싹 가시는 걸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몇몇이 우리를 주의 깊게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지서준의 소주를 빼앗아 거리를 벌렸다,
“내, 내가 알아서 할게, 요. 빨리 네 팀으로 돌아가, 세요.”
내 말에 역시나 지서준은 미간을 구기더니 다시 내 손에서 소주병을 빼앗아 가려 했다.
“안녕하세요?”
우리 팀장님이 지서준에게 말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제야 우리 팀장님을 발견했는지 지서준이 야구 모자를 벗어 인사를 했다.
“우리 팀 문 대리랑 많이 친한가 봐요.”
“아. 네. 꽤 오랫동안 친구였습니다.”
지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팀장님이 멀뚱히 서 있는 놈에게 자리를 권했다.
“문 대리랑 같이 술 한잔 마시고 있는데, 지 연구원도 같이 마실래요?”
팀장님이 말하자 나와 내 손에 든 소주병을 바라보던 지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응했다.
나는 계속해서 거절하라고 눈빛을 보냈지만, 지서준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지 내 옆에 털썩 앉아 술병을 들었다.
새로운 종이컵에 맥주와 소주를 섞는 지서준.
“그, 그렇게 비율을 개똥처럼, 아니, 엉망진창으로…….”
내가 옆에서 안타깝게 말하자 팀장님이 괜찮다며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내가 알아서 말아 먹겠다며, 지서준의 손에서 술을 빼앗았다.
“내가 건배사 하나 해도 될까요?”
팀장님이 말했다.
“평온한 회사 생활을 위하여.”
팀장님이 건배사를 말하며 나와 지서준의 잔에 차례로 건배했다. 왜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은지. 아무래도 취했나 보다. 나는 눈치 없이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눈에 힘을 꽉 주었다.
“크하. 맛 좋다.”
그때 내 머리 위로 커다란 손이 올라오더니 툭툭 건들고는 사라졌다.
“뭐, 뭐 하는 거야.”
내가 지서준이 건들고 간 머리를 정리하며 말하자 옆에 있던 팀장님이 말했다.
“회사 생활이 참 그래. 일만 잘하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더라고. 그래서 가끔은 두 사람이 안타까웠어요.”
팀장님이 아직도 지서준을 흘끔거리는 다른 직원들을 한 번씩 훑어봤다.
“한 잔 더할래요? 이번에는 제대로 좀 말아봐요.”
팀장님이 말하자 지서준이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맥주를 들었다. 그렇게, 한 잔, 두 잔을 마시다 어느 순간 술기운이 확 몰려왔다.
“저, 잠깐. 잠깐 화장실 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팀장님이 말했다.
“같이 갈까요?”
“네? 아뉘요? 부끄럽게……. 저 혼자. 혼자 갈 수 있슴돠.”
내 말에 지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앉아!”
나는 가끔 만나는 옆집 개, 복돌이에게 하듯 지서준에게 말했다.
“나 혼자 갈 수 있어. 그러니까 팀장님 우리 서준이 부탁 좀 합니다.”
나는 팀장님에게 90도로 인사한 후 화장실을 찾아 떠났다.
너무 술기운이 올라와 내 뒤에 누군가 따라오고 있는지는 생각도 못 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