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몸보신. (48/97)


48화. 몸보신.
2022.12.14.



“거, 거기서 뭐 해!”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소리를 질러 버리고 말았다. 엄마는 나를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다 오렌지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뭐? 왜?”

내 질문에는 답도 없이 고개를 한번 갸웃하더니 몸을 돌려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엄마를 쫓아갔다. 엄마는 부엌에 가 먹던 오렌지를 내려놓더니 지서준이 사 온 과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불안한데…….

뭘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엄마를 거들며 슬쩍슬쩍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에이. 아니겠지?”

갑자기 엄마가 정리하던 손을 멈추더니 허공에 대고 말했다.


“뭐가……. 뭐가 아니야?”

불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묻자 엄마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엄마의 시선이 나에게 오래 머물자 내 등에는 식은땀이 쪼르륵 흘러내렸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람. 호호.”

상당히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게 시선을 거두곤 다시 정리에 몰두하는 엄마였다.

무언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반응인데.

그러나 여기서 더 캐물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마저 정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



“좋은 아침입니다.”

아프고 이틀 만에 회사에 출근했다. 평소 건강하기만 했던 내가 이틀 동안 회사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앓았다는 것이 충격이었는지 백인하 씨가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대리님. 얼굴이 반쪽이 됐어요.”

“거짓말쟁이.”

“지, 진짜예요!”

“이걸 보고 말하라고요.”

나는 내 볼을 잡아 쭉쭉 늘이며 말했다.


“그건 젖살이…….”

“백인하 씨. 지금 본인이 말하고도 조금 어이가 없었죠?”

“……네. 그래도 진짜 얼굴이 많이 상했어요.”

“하. 네. 앓고 나니까 피부가 더 칙칙해지고 탄력도 없어지고……. 30대가 되면 노화가 더 빨라진다는데…….”

나는 책상 위 거울로 요리조리 내 얼굴을 살폈다.


“오늘, 몸보신해요. 문 대리님.”

무슨 몸보신까지. 내가 거절하려 막 입을 연 순간 팀장님이 사무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네요. 오늘 점심은 내가 냅니다. 같이 닭 한 마리씩 먹읍시다!”

“네! 팀장님!”

우렁찬 백인하 씨의 목소리에 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 팀 전체는 점심시간에 삼계탕집으로 향했다.

뽀얀 닭이 옷을 벗고 다리를 꼬아 나를 유혹했다. 딱히 몸보신이 필요 없을 것 같았지만, 막상 한약 냄새가 듬뿍 나는 삼계탕에 저절로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대리님. 저기 저 사람이 정찬형 연구원님이에요.”

나는 야무지게 닭 다리를 발라먹고 있는데 백인하 씨가 내게 말했다. 우리 테이블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찬형 연구원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으흥. 정찬형 연구원?”

백인하 씨의 말에 팀장님도 고개를 들어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좋아 보이지. 저 팀 팀장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 싹싹하고,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우연히 그 팀 팀장이랑 같이 잠깐 이야기한 적 있는데, 괜찮아 보이던데요?”

팀장님의 후한 칭찬에 사람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스캔들이 거짓일까. 아니면 그저 사생활이 문란한 능력 있는 사회인일까.

그러다 문득 지서준이 떠올랐다.

지서준도 꽤 많은 소문과 스캔들을 달고 사는 인간이었다. 그중 70%는 허무맹랑한 소문이었다. 그도 그런 걸까?

나는 젓가락으로 깍두기를 집어 입에 넣으며 다시 한번 흘깃 그를 봤다. 그는 동료들과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는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지서준이 얼굴만 믿고 까부는 사람이 아니듯, 잘난 얼굴 내세워 이 여자 저 여자 간 보는 남자가 아니듯.

저 사람도 누군가의 애인을 뺏었다는 누명을 쓴 것일지도 모른다. 정찬형 연구원을 보던 것을 그만두고 나는 다시 삼계탕에 집중했다.


“나는 그렇게 아팠어도, 소화 기능이 죽지가 않아요. 고기도 다 먹고 국물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니까.”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쁜 지서준은 회사에서 마주치지도 못했다. 오늘도 늦어지는 지서준의 퇴근에 먼저 집으로 들어가며 전화를 걸었다.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주절주절 풀어놓으니 핸드폰 너머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봤으면 좋았을 텐데…….

통화하는 내내 아쉬워하는 지서준.


“주말에 보자며.”

-주말에는 다 같이 보는 거니까…….

“나도 아쉽긴 한데, 그래도. 아줌마가 나 끙끙 앓았다고 맛있는 거 해주신다고 그러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해.”

윤희 아줌마는 내가 아프다는 소식에 직접 죽까지 만들어오셨었다. 힘들게 뭐 그런 것까지 해오냐며 우리 엄마는 윤희 아줌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본인은 이제 괜찮다며 큰소리치던 아줌마는 이번 주말, 가족 모임까지 계획하셨다.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닌지 몰라.”

초기 암이었다고는 하나, 암은 암이었다. 암 수술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 아줌마가 무리할 때면 주변 사람들은 모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환자 취급하는 걸 끔찍이 싫어하시잖아. 그래서 더 그러시는 것 같고…….

지서준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벌써 집 앞에 도착했다.


“나 집 앞. 내가 일하는 애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다.”

-알긴 아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흘리며 지서준이 말했다.


“주말에 보자.”

나는 나쁘지 않은 아쉬움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



“어서 와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이 다가왔다. 아줌마의 요리 실력은 한마디로 ‘말해 뭐 해.’였다. 나름 업계에서 유명한 요리연구가 윤희 아줌마. 어제, 지서준을 불러 음식 재료를 잔뜩 산 걸 알고 있는 나는 더욱 기대하고 109동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침 넘어가는 냄새가 코로 훅 들어왔다.


“아니, 무슨 준비를 이렇게 많이 했어.”

“해신탕이랑 김치 조금. 정말 별거 없어.”

별거 없다니요.

나는 거실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그때, 지서준이 꽃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나왔다.


 


“오셨어요?”

“허허. 서준이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데?”

우리 아빠가 지서준의 앞치마를 보고는 크게 웃자 지서준이 나를 흘끔 보고는 귀 끝을 붉혔다.


“어제 마트에서 사 왔어요. 호호.”

역시. 윤희 아줌마의 작품이었다. 내가 아줌마에게 엄지를 추켜 올리자 진정한 미(美)를 아는 것은 나밖에 없다며 기뻐했다.


“이거, 받으세요.”

나는 미리 준비한 선물을 아줌마에게 건넸다.


“뭐야. 응? 다율이가 뭘 사 온 거야?”

옆에 있던 승호 아저씨가 목을 쭉 빼내고 내가 건넨 작은 쇼핑백을 바라보았다.


“입욕제예요. 제 거 사면서 하나 샀어요.”

“어머나.”

쇼핑백에 담긴 상자를 열자 향긋한 냄새가 훅 올라왔다.


“그거 좋더라고. 얘 거 하나 몰래 써봤는데 피부가 얼마나 보들보들해지는지. 냄새도 좋아.”

옆에서 우리 엄마가 입욕제의 정보를 늘어놓았다.


“네 것만 사지. 아줌마건 왜 샀어.”

윤희 아줌마는 입욕제를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으며 물었다.


“오늘 초대해 주셨잖아요. 엄마가 좋아했던 제품으로 샀어요. 냄새가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좋아. 엄청 좋아.”

아줌마가 기뻐하는 표정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거 남자도 써도 되는 건가?”

승호 아저씨의 말에 아줌마가 잽싸게 뚜껑을 닫아 방으로 쏙 들어갔다.


“하하. 나중에 아저씨 것도 좋은 것 있음 사 올게요.”

내 말에 아저씨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 다들 어서 식사합시다.”

지서준이 꽃무늬 앞치마를 벗으며 말했다.


“왜 벗어. 그냥 입고 있지.”

아직 사진도 못 찍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중얼거리자 지서준이 눈에 힘을 주며 어서 자리에 앉으라며 턱짓했다.


“아니, 한동안 환절기 때 잠잠하더니. 왜 또 아프기 시작하는 거야.”

입욕제를 꼭꼭 숨기고 나온 아줌마가 국자로 해신탕을 저으며 말했다.


“늙어서 그렇지 뭐. 쟤도 내년에 이제 30살이야. 이제 몸 관리할 때 됐지.”

우리 엄마가 해신탕을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이번에도 열이 펄펄 끓고 끙끙거리면서도 병원에 안 가요. 참나. 누굴 닮아서 그런 건지.”

엄마의 말에 옆에서 있던 아빠가 작은 목소리로 ‘당신 닮았지.’라고 말했지만, 다행히 엄마는 듣지 못한 듯했다.


“병원이 당연히 싫지.”

아줌마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해신탕을 퍼 주며 말했다.


“그렇죠? 아줌마?”

내 말에 지서준이 눈을 흘겼다.


“너 기억 안 나? 10살인가, 11살인가. 병원 안 간다고 아프지 않다고 거짓말했다가 결국, 네 아빠가 엎고 응급실로 뛰어갔잖아.”

엄마의 말에 아빠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는 그때는 꽤 힘들었노라 말하며 승호 아저씨의 소주잔에 소주를 따랐다.


“맹장 터져서도 안 간다고 난리 부려서 결국, 119 불렀잖아요.”

나의 흑역사까지.


“그, 그만이요. 이번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아프지 않았다고요.”

“무슨 소리야. 아주 반쪽이 됐구먼. 자. 많이 먹어.”

승호 아저씨는 정말로 내가 반쪽이 된 것처럼 걱정하며 내 앞접시에 전복을 먹기 좋게 잘라 주었다.


“아줌마는 왜 다율이가 가기 싫어하는지 알 것 같아.”

윤희 아줌마의 말에 열 쌍의 눈이 아줌마에게로 향했다.


“아프고 나니까 알겠더라고. 병원이 얼마나 가기 싫은 곳인지.”

“아줌마…….”

“그래도, 아프면 꼭 가!”

나는 아줌마의 말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치고, 남자들은 정리하고, 나와 엄마, 그리고 아줌마는 후식을 준비했다. 참외를 먹기 좋게 자르며 나는 지서준과 아줌마를 번갈아 봤다.


“아줌마. 이번 정기검진은 언제예요?”

“추석 지나고? 그건 왜?”

“음……. 이번에도 서준이 안 데리고 가실 거예요?”

내 말에 아줌마가 서준이를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응. 아저씨랑 갈 거야.”

지서준은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아줌마를 바라보았다. 답답함과 억울함, 안타까움이 마구 뒤섞인 눈빛이었다.

행여 나쁜 소식이라도 듣게 된다면, 그 소식을 처음 듣는 사람이 아들이길 바라지 않는 아줌마. 그런 아줌마가 이해가 가면서도, 나는 여전히 내 남자친구가 안타까웠다.


“서준이가 조금 그렇죠? 잔소리가……. 어휴.”

나는 손짓을 더하며 더욱 과장된 목소리를 만들었다.


“그런데요……. 쟤가 아줌마가 병원 안 데리고 가면 엄청 시무룩하거든요. 얼마나 불쌍해 보이냐면요, 저 드넓은 어깨가 축 처져서는……. 오죽하면 제가 지서준 집에 가서 청소라도 해주고 싶더라고요.”

“누가 누구 집을 치우겠다고…….”

옆에서 엄마가 말을 붙였다. 나는 엄마에게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줬다. 옆에서 투덕거리는 모녀를 보던 아줌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줌마. 지서준이 그렇게 미덥지 않으면 저도 같이 갈까요?”

“다율이도?”

“네.”

내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줌마가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지서준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너는 왜 가고 싶은 건데.”

“걱정되잖아요. 아들인데. 수술할 때도 말도 없이…….”

지서준의 말에 다시 곰곰이 생각한 아줌마가 입을 열었다.


“……그래. 같이 가자.”

긴장감에 표정이 굳었던 지서준이 아줌마의 대답에 표정이 환해졌다.

나 문다율. 오늘 몸보신 값 제대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