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똥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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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똥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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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똥 냄새.
2023.02.08.
식당 앞. 언제 맡아도 유혹적인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배고픈데, 왜 들어가기 싫지?”
나는 고깃집 입구만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뒤따라오던 팀장님이 내 어깨를 툭 쳤다.
“왜 안 들어가요?”
“네? 아. 들어가야죠. 하하.”
팀장님의 뒤를 따라 들어가니 인사팀과 우리 팀 사람들이 섞여 벌써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어? 문 대리님!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세요.”
사실, 오고 싶지 않아 백인하 씨에게 할 일이 있으니 먼저 가라는 말로 그녀를 먼저 보냈다. 먼저 와 있었던 그녀가 뒤늦게 온 나를 발견하자 반갑게 맞이했다.
반갑게 맞이해 준 것은 좋은데, 너무 크게 불렀달까……. 고기를 열심히 굽던 이름 모를 사원까지 전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이 피곤한 유명인의 삶.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후, 입구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럼, 트래블 팀 팀장님과 문 대리님이 오셨으니, 다시 한번 건배할까요?”
유나라 씨가 나를 보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건배 제의를 했다. 옆에 있던 인사팀 막내가 나에게 소주를 따라줬다.
“그럼, 우리 문 대리님이 건배사 할까요?”
유나라 씨는 예쁜 눈을 찡긋하며 사람들에게 동조를 구했다.
제길.
유나라 씨의 말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몰렸다. 나는 애써 웃으며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어……. 제가 건배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먼저, 우리 트래블 팀을 초대해 주신 인사팀 팀장님께 감사드리고요.”
내 말에 우리 팀 팀장님 옆에 앉아 있던 인사팀 팀장님이 잔을 살짝 들어 올렸다 내렸다.
“올해 하반기에 접어들었네요. 다들, 잘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말에 군데군데 대답이 들려왔다.
“앞으로 조금 남은 올해, 모두 원하시는 바 이루시고, 길고 오래가는 게 요즘 대세인 거 아시죠? 모두 길게 오래갑시다! 건배!”
“건배!”
내 선창에 모두 후창하고, 소주잔, 맥주잔들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나는 자리에 앉아 소주를 홀짝였다. 주위를 살피며 분위기를 파악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소고기가 익기가 무섭게 집어먹기 시작했다. 오늘, 술은 조금만 마시기로 했다. 우리 팀만 있는 회식도 아닌데, 실수라도 할까 걱정됐다. 특히, 이 팀에는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여자도 있으니까.
회식 자리가 무르익어 갈 무렵.
눈치를 봐서 슬슬 일어날 타이밍을 잡고 있는데 유나라 씨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진실게임 할까요?”
그녀가 비어 있는 소주병을 들고 흔들며 말했다. 주위에 얼큰하게 취한 누군가 좋은 생각이라며 손뼉을 쳤다.
“흠, 누구를 위한 진실게임인가?”
우리 팀 팀장님이 턱을 괴고 유나라 씨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싱긋 웃어 보였다.
“재미요. 재미. 팀장님. 자! 그럼 해 볼까요?”
그녀의 의도가 꽤 의심됐지만, 나 혼자서 빠질 수 없는 상황. 그저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주시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소주병.
별 시답지 않은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가끔은 우스운 질문에 웃음이 터져 나왔고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갔다.
팽그르르.
열심히 돌아가던 소주병이 나를 가리키며 멈춰 섰다. 자의식 과잉일까. 사람들의 눈이 반짝거리며 나를 보았다. 그 모습이 꼭 먹이를 앞에 둔 맹수 같았다.
저절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질문은 하나. 이것만 잘 넘어가면 된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뭐,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온다면 술 한 잔 마시지 뭐.
“질문하시죠!”
내가 잔에 소주를 따르며 호기롭게 말했다. 서로 눈치만 보던 사람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역시, 유나라 씨였다.
“찬형 선배가 두 사람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 하던데, 문다율 대리님은 정말 요만큼도 관심이 없나요?”
그녀가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엄지와 검지로 아주 작음을 강조하는 제스처를 만들었다. 질문은 하나도 귀엽지 않은데 말이지.
“네. 요! 만큼도 관심이 없어요.”
나는 그녀를 흉내 내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
“어? 그럼 그 소문 가짜였어요?”
여기 또, 눈치 없는 막내가 하나 있었군. 내 옆에 있던 인사팀 막내가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진실게임 질문 끝났는데.”
내가 막내에게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주며 웃자, 이제야 조금 눈치를 챘는지 어색하게 웃던 그가 원샷을 했다.
나의 시시한 답변 뒤, 재미가 없어진 자리. 2차를 외쳐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슬슬 집으로 돌아가려 팀장님에게 인사를 하러 다가갔다.
“팀장님, 저 오늘은 일찍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내일 봐요.”
워낙 회식 자리 강요가 없는 분이라, 마음 놓고 말씀을 드렸는데, 옆에 있던 인사팀 팀장님이 나를 붙잡았다.
“벌써 가려고? 문 대리 가면 재미 없지.”
“왜, 우리 팀 직원을 자기가 관리해? 문 대리. 신경 쓰지 말아요. 어서 가요.”
난처해하는 나를 막아준 팀장님. 나는 지금을 기회 삼아 잽싸게 회식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이번 달 카드값이 생각나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정류장은 한가했다. 전광판에는 우리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오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다는 표시가 떠 있었다.
“문 대리?”
“아. 안녕하세요.”
“아. 2차 가기 싫어서 혼났네. 이렇게 재미없는 회식은 처음이에요.”
“아. 네…….”
“다행히 문 대리 빠져나가는 거 보고 나도 잽싸게 빠져나왔지.”
계속해서 주절주절 자기 할 말을 늘어놓았다. 그나저나 인사팀의 누구였더라…….
“혹시, 나 기억 못 하는 건 아니죠?”
얼마 전, 이직해 왔다는 과장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능글능글 웃으며 정말로 본인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시험해보는 듯 나를 떠봤다.
“뭐야. 정말 기억 못 하나 보네.”
“아. 죄송해요. 제가 술자리에서 소개받은 분은 잘 기억을 못 해서…….”
“잘생기지 않아서는 아니고?”
“네?”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너무나 무례한 질문에 내가 표정을 굳히고 그 사람을 바라보자 순식간에 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바꾸며 말했다.
“아니, 농담이야. 농담.”
그러더니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 했다.
“저기, 이곳은 금연인데요.”
“응? 에이 뭐. 아무도 없는데.”
아무도 없다니. 나는 사람이 아닌가? 그리고, 아무도 없으면 금연 장소에서 흡연해도 되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어 뭐라고 하려는 순간. 내 표정을 보더니, 인상을 구기고는 담배를 다시 넣었다.
“아. 알았어요. 엄청 팍팍하네. 소문이랑은 다르게.”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소문이요?”
내가 본격적으로 그 사람에게 따지려 들자 픽 웃더니 라이터를 딸깍딸깍 켜며 나를 보았다.
“기분 나빴어요? 미안해요. 사실, 그렇잖아요. 문 대리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문 대리도 그렇잖아. 소문은 그렇고. 그러니 첫인상이 그럴 수밖에. 어쨌든,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나는 사과를 받아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을 뿐. 아직 버스가 도착하려면 더 기다려야 했다. 카드값이고 뭐고 택시라도 잡아탈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는데, 택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정찬형 연구원이랑 사귀는 사이는 아니라고 했고, 그럼 지서준 연구원인가?”
앱으로 택시를 부르려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꺼내는데 다시 한번 무례한 질문이 들려왔다.
“저기요.”
“김 과장이요. 김형석 과장.”
“네. 김형석 과장님. 지금 굉장히 무례한 거 아시나요?”
“무례?”
“네. 소문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는데요. 정찬형 연구원과는 그냥 조금 아는 사이일 뿐이에요. 그리고 그 외적인 건 사적인 질문으로 제가 굳이 답할 이유 없고요.”
“아…….”
양쪽 눈썹을 올리며 어디 더 해 보라는 눈빛에 나는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아무도 없는데 한 대 칠까?
“지금 문다율 대리가 하는 행동은 무례한 게 아닌가?”
“네?”
이번에는 또 무슨 개소리람.
“나는 과장이고, 당신은 대리.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나이도 7살 정도 차이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따박 따박.”
“지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왜요? 한 대 치려고? 두 주먹을 아주 불끈 쥐었네.”
너무 화가 나니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자 김 과장이 피식 웃었다.
“아니다. 내가 좀 취한 것 같네. 미안해요. 문 대리. 기분 풀어요. 응?”
그러더니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고는 반대편으로 획 돌며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봐요.”
그러고는 비척비척 걷다가 택시를 잡아탔다.
“미친, 미친 거 아니야?”
나는 너무 화가 나 씩씩거리며 택시가 사라진 쪽을 죽어라 노려봤다. 오늘만큼은 눈에서 레이저빔이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
나는 택시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정류장 의자에 철퍼덕 앉았다.
“거지 같다, 정말.”
소문으로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조롱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기분이 더러웠다.
마침 버스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렀다.
힘이 풀린 다리에 간신히 힘을 줘 일어났다. 버스에 올라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아까 이렇게 받아칠 걸, 아니, 저렇게 받아칠 걸 그랬나. 몇 번이나 후회했다.
그러다 집에 다 왔을 무렵.
“신경 쓰지 말자. 그래.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에이. 지지다. 더러워.”
나는 몸에서 구린내는 나지 않는지 킁킁대며 냄새를 맡다가 조금씩 덜어서 갖고 다니는 휴대용 향수를 꺼내 몇 번이고 뿌린 후 집으로 들어갔다.
**
“좋은 아침입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백인하 씨가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어제 많이 마셨어요?”
“네……. 어제 저도 일찍 갈 걸 그랬나 봐요.”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와 있는 그녀였다.
“그래도, 어제 그 인사팀의 새로 온 사람 있잖아요. 김 과장님?”
“네? 아. 네.”
아침부터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짜증이 났지만, 백인하 씨에게 티 내고 싶지 않아 애써 표정 관리에 힘썼다.
“그 과장님이 없어서 많이 안 마신 거예요. 그분 계시면 엄청나게 먹이거든요.”
“그 사람이랑 같이 마신 적 있어요?”
“네? 네. 우연히 회사 근처 호프집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제 동기랑 그분이랑 있어서 같이 마신 적 있어요.”
나는 이 순진한 영혼을 그 더러운 물이 들기 전에 구해줘야겠다는 생각에 김 과장을 멀리하라고 말하려는 순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더러운 똥이 나타났다.
“어? 인사팀 김 과장이 무슨 일이야?”
우리 팀의 신 과장님이 그 똥에게 인사했다.
“아. 제가 어제 문다율 대리에게 실수한 게 있어서요.”
우리 팀 신 과장님이 나와 김 과장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두 사람 어제 2차 안 갔잖아?”
“네.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제가 술기운에 좀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그래서 사과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김 과장이 무례에 힘을 실어 이야기하며 나에게 숙취해소제를 건넸다.
“뭐 해요? 안 받고. 에이. 아직 기분 안 풀렸구나? 이거 받아요. 내가 오는 길에 일부러 편의점 들러서 사 왔는데.”
그러더니 억지로 내 손에 쥐여주었다.
“기분 풀어요. 응?”
그러더니 우리 팀 신 과장님과 백인하 씨에게 인사를 하고 휘파람을 불며 우리 사무실에서 나가버렸다.
“뭐예요? 무슨 일 있었어요?”
백인하 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물었다.
나는 백인하 씨 책상에 숙취 음료를 올려놓았다. 음료가 책상에 올려지는 소리가 ‘탁’ 하고 울려 퍼졌다.
“인하 씨. 인하 씨가 그거 마셔요. 나는 어제 술을 많이 안 마셔서.”
그러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가 물을 틀고 손을 닦기 시작했다.
“냄새나. 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