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완전히 끊어내는 법.
(77/97)
77화. 완전히 끊어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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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완전히 끊어내는 법.
2023.03.26.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어디서 털을 이렇게 붙여 왔냐며 현관문 앞에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검은색 롱패딩을 입어서 그런지 유독 고양이 털들이 잘 보였다. 엄마는 안방에서 돌돌이를 찾아 나와 나를 세워놓고 긁어대기 시작했다.
“아픈 애가 이 추위에 나가서는 고양이 털이나 붙여서 들어오고 말이야.”
“지서준이 데리고 갔어. 고양이 카페.”
뒤에 있던 지서준이 흠칫거리며 몸을 굳혔다.
“서준이가 고생이 많았네. 다율이 기분 풀어주려고 거기까지 다녀왔어?”
바로 태도를 바꾸는 엄마를 보며 나는 입을 벌렸다.
“죄송합니다. 거기서 돌돌이로 밀고 나온 건데도 털이 많이 붙어 있네요.”
“아니야. 그럴 수 있지 뭐. 서준이는 털이 많이 안 붙었네.”
“고양이들이 나를 더 좋아했으니까.”
“좋겠네.”
엄마는 심드렁하니 말하고는 고양이 털이 덕지덕지 붙은 돌돌이 면을 뜯었다.
“서준아, 우린 집으로 가자. 다율이 이제 좀 쉬어야지.”
뒤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던 윤희 아줌마가 지서준의 팔을 붙잡았다.
“네. 다율이 침대에 눕는 것만 보고요.”
“아니야. 그냥. 가. 내일 또 출근해야 하잖아.”
“본가에서 자고 갈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저 고집을 알기에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 모습을 확인한 지서준이 집을 나섰다. 지서준이 윤희 아줌마와 우리 집을 나서는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누워 있는데 엄마가 들어왔다.
“기분은 좀 나아졌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내 침대에 전기장판을 만지던 엄마가 물었다.
“응. 근데 왜 안 물어봐? 무슨 말 했는지 궁금한 거 아니야?.”
“말하고 싶어?”
“아니.”
“그럼 말하지 마. 입 아프게 뭐 하러 말해.”
“엄마가 안 궁금한 건 아니고?”
“몸만 성했어도…….”
엄마는 내 말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음 주면 깁스 풀고 그다음 날부터 회사 나갈 거야.”
“뭐가 그렇게 급해.”
“빨리, 빨리 다 매듭짓고 싶다. 엄마.”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빨리 자라.”
“응. 엄마.”
엄마는 방문을 나가기 전 뒤를 돌아봐 나를 보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섰다.
**
“문 대리!”
내가 회사에 출근하자 육아 휴직을 끝내고 출근한 우리 팀 이 과장님이 나를 반겼다.
“괜찮은 거야? 어? 머리 다쳤다며. 나는 알아보겠어?”
“건강합니다. 저 깁스도 풀었다고요.”
내가 깁스했던 팔을 휘휘 돌렸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나저나 저 때문에 빨리 복귀해서 어째요?”
“어쩌긴 뭘 어째. 나중에 우리 새끼 까까나 사줘.”
“네. 과자 집이라도 만들어야겠네.”
사실, 조금 걱정됐다. 퇴원 후 처음 회사에 오면서 이런저런 걱정들로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사무실에서 만난 이 과장님 덕분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리에 앉자 처음 보는 사람이 인사를 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누구…….”
“아. 문 대리는 모르겠구나. 갑자기 인원을 충원해야 해서, 급하게 사람을 뽑았어요. 여기는 우리 신입사원 이정훈 씨. 이정훈 씨. 이쪽은 우리의 유능한 문다율 대리.”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이정훈 사원입니다.”
“아. 반가워요.”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팀장님이 들어왔다.
“서로 인사하고 있었네요. 하하. 문 대리 몸은 좀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팀장님.”
“그럼 다행이고.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바로 말해요. 알겠죠?”
“네.”
“자. 모두 모였으니 다들 회의실로 모입시다.”
“네!”
팀장님의 말에 이정훈 씨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러곤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내려놓고 회의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정훈 씨의 자리는 당연히 백인하 씨가 앉았던 그 자리였다.
회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내가 병원에 있었을 때도 회사는 열심히 굴러갔다. 열심히 굴러가니 연구원들의 출장 건도 많았다. 급하게 이 과장님이 복귀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팀장님과 신 과장님이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다.
“신입도 들어왔고, 문 대리도 복귀했으니 서서히 다시 원래 궤도로 올려놓읍시다. 문 대리가 조금 힘들지 모르겠지만, 이 과장이랑 정훈 씨 교육 좀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간단한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애써 내 옆자리에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내 모니터에 시선을 잡아두었다.
“문 대리. 뭐 먹고 싶나?”
“네?”
“벌써 점심시간 30분 전이라고. 미리미리 메뉴를 골라야지.”
육아 휴직 전에도 점심 메이트였던 과장님. 오랜만에 메뉴에 신중한 과장님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저도,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그럼! 우리 신입은 우리가 놀아줘야지!”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점심을 먹으러 회사를 나섰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다가와 몸은 괜찮냐며 물어봤다. 그때마다 나는 최대한 얼굴에 웃음을 띠고 괜찮다 대답해야 했다.
그들은 나의 몸 상태를 확인한 후 대부분은 백인하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순진한 얼굴을 하고 그런 무서운 일을 벌일 수 있느냐. 속았다. 또는 소름이 끼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을 물리쳐준 건 이 과장님이었다.
“밥 먹기 힘드네.”
“죄송해요.”
“문 대리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김치찌개를 덜며 나와 이 과장님의 눈치를 살피는 이정훈 씨. 다행히 눈치는 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식사만 했다.
그때, 백인하 씨를 담당하는 경찰에게 연락이 왔다. 회사가 끝나고 경찰서로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남자친구랑 같이 가는 게 어때?”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요.”
“그래.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옆에서 듣고 있던 과장님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식당에서 나와서 나는 이 과장님과 신입을 회사로 먼저 돌려보내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차가운 바람이 쉬러 나온 사람들을 내쫓았나 보다. 평소와는 다르게 한적한 공원이 쓸쓸함을 만들었다.
[오늘 경찰서에 같이 가 줄 수 있어?]
지서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멍하니 하늘을 보는데, 인사팀 팀장님이 말을 걸어왔다.
“문 대리. 괜찮아?”
“아. 안녕하세요. 팀장님.”
“걱정 많이 했는데,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
“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식적인 안부 인사였다. 그러나 인사가 끝나도 자리를 뜨지 않고 어색하게 코를 만지던 인사팀의 김 팀장님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 문 대리.”
“네?”
“내가……. 그때는 내 팀원만 생각한다고 문 대리에게 몹쓸 말을 많이 했어. 그런 놈인 줄 알았으면 그렇게 편들지도 않았을 텐데…….”
“…….”
“미안하다는 말 꼭 하고 싶었어. 정말 미안해.”
인사팀 김 팀장님이 내게 사과하곤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구겨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씁쓸한 웃음을 남기고 회사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가는 인사팀 팀장님의 모습에 마음속에 걸려 있던 어떤 덩어리 하나가 정리된 기분이 들었다.
**
퇴근한 지서준과 경찰서로 들어갔다. 어두운 저녁임에도 환하게 켜져 있는 불빛을 따라 형사과로 들어갔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이제 많이 나아졌어요. 회사에도 출근하고 있고요.”
“다행이네요.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백인하 씨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살인미수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검찰 쪽에서는 고의가 없는 과실치사상죄로 넘어갈 것 같습니다. 그동안 백인하 씨가 문다율 씨에게 했던 정황과 증거들은 문다율 씨가 다친 사건과는 무관하게 보는 것 같더라고요.”
옆에서 듣고 있던 지서준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여자는 충분히 다율이를 계획적으로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우발적인 사고였을지는 모르지만 분명 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네. 저희도 그렇게 판단했지만, 검찰 쪽 의견은 다르더군요. 죄송합니다.”
경찰이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백인하 씨 측에서 모든 죄를 인정하고 처벌받겠다는 태도를 내세우고 있는 겁니다. 처음에는 변호사도 선임하려 들지 않더군요.”
“변호사도요?”
“네. 그러다 부모님의 설득으로 겨우 변호사가 붙기는 했는데……. 형벌을 줄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반성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네.”
배 위에 손을 올려놓고 까닥이던 경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전할 소식은 김형석 씨에 관한 겁니다. 김형석 씨는 아마도 실형을 받을 것 같습니다.”
“네?”
자세를 고쳐 잡은 경찰이 앞에 있던 서류를 뒤적였다.
“그 사람에게 피해를 본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아마도 실형까지 갈 가능성이 큽니다.”
“실형까지요?”
“네. 생각보다 악질이더군요. 그전에 있던 회사에서도 피해 여성이 있었다고 해요. 워낙 폐쇄적인 회사 분위기라 그 여자분만 피해를 보고 끝났더랍니다.”
뒤적거리던 서류를 다시 덮고는 컴퓨터를 뒤적였다.
“여기저기 합의해 달라고 돌아다니나 본데, 절대 만나주지 마세요. 탄원서도 써주지 마시고요.”
나와 지서준은 서로 마주 보았다.
“알겠습니다.”
우린 몇 가지 사건 진행 상황을 듣고 경찰서를 나섰다. 밤의 초입, 많은 사람이 퇴근했을 시각, 경찰서는 여전히 분주하기만 했다.
“우리 조금만 걸을까?”
지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은 겨울이었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귀와 코가 시리기 시작했다. 지서준과 꼭 잡은 손은 따뜻했지만.
“무슨 생각해?”
같이 걷는 지서준은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달과 별이 자취를 감춘 겨울밤보다 눈빛이 어두웠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행이지. 내가 마지막으로 더 이상 피해 보는 여자들은 없을 거 아니야.”
“그게 어떻게 다행이야. 네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 말이 마음에 안드는지 지서준의 미간도 꼬깃꼬깃해져 있었다. 나는 손을 잡은 반대편 손을 들어 지서준의 미간을 꾹꾹 눌렀다.
“나는 네가 있었잖아. 누군가의 도움은 바라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몰라.”
“……”
“나는 네가 지켜준 거야.”
내 말에 지서준이 내 어깨로 고개를 묻었다.
“난, 널 지켜주지 못했어.”
지서준의 작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자신의 탓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지서준은 착해빠졌으니까.
나는 지서준의 손에 잡혀 있는 손을 풀어 지서준을 양손으로 안았다.
“네가 슈퍼맨도 아니고, 스파이더맨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사고에서 날 구해낼 수 있겠어.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
“백인하 씨, 벌 받는다잖아. 김 과장도 그렇고……. 그러니까 우리. 더 이상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서로 자책하지 말자.”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지서준은 허리춤으로 팔을 둘렀다.
“나는 백인하 씨가 날 보며 생긋 웃던 모습, 내가 난처하거나 힘들 때 걱정하던 모습, 그런 모습들 전부 잊을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너도 자책하지 마.”
그제야 고개를 든 지서준. 지서준의 눈가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없던 일이 될 순 없지만, 그 일로 불행해지지 말자.”
나는 웃었다. 최대한 밝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웃었다. 그러자 지서준도 웃었다. 그의 눈가에 있던 눈물 하나가 톡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