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가장 선명한 발자국. (82/97)


82화. 가장 선명한 발자국.
2023.04.12.



 


"김윤희 환자분, 병실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얼마 전까지 질리도록 맡았던 병원 냄새. 공휴일 바로 다음 날이라서 그런지 유독 병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 아줌마가 다니던 병원이라 빠르게 입원 절차가 진행됐다.


“그냥 몇 가지 확인만 하면 된대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네?”

“그래. 아무 일도 아니겠지.”

아줌마가 병원복에 팔을 끼워 넣으며 말했다. 내 말에 대답하는 아줌마의 얼굴에는 근심이 서렸다. 윤희 아줌마가 옷을 다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를 둘러싼 커튼을 여니 바로 필요한 것을 사 들고 온 지서준이 들어왔다.


“옷 갈아입으셨네요.”

“응. 아버지 오시면 다율이 데리고 집으로 가.”

“네. 그럴게요. 아직도 배가 아프세요?”

“아니……. 이제 정말 괜찮아.”

침대에 누워 있는 아줌마의 모습을 바라보는 지서준의 표정이 어둡기만 했다.


“아줌마. 이거 보실래요?”

“응?”

힘없이 눈을 감고 있던 아줌마가 눈을 떴다. 나는 왼손을 들어 아줌마에게 가까이 들이밀었다.


“어머! 이게 뭐야!”

아줌마가 벌떡 일어나 내 왼손을 잡았다.


“빛이 참 영롱하죠?”

“이거, 설마…….”

아줌마가 나와 지서준을 번갈아 바라봤다. 나는 아줌마에게 해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설마 어제 그렇게 나가서?”

“네! 그러니까 지서준이 말이죠. 으읍.”

지서준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큼. 흠. 제가 프러포즈했어요.”

미주알고주알 읊어댈 내 입을 가로막고 지서준이 말했다. 그러자 아줌마의 표정이 더 맑게 피어났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어두운 기색은 언제 있었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 어쩜 좋아. 다른 사람들은? 다율이 엄마랑 네 아빠는 알고 있나?”

“아니요. 지금 아줌마한테 처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 그럼 이 사실을 빨리…….”

아줌마가 핸드폰을 찾기 위해 몸을 뒤척였다. 핸드폰을 찾자마자 제일 먼저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들 결혼한대!”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아줌마가 대뜸 우리의 상황을 알렸다.


“응! 아니……. 나는 괜찮아. 응응. 몇 가지 검사만 하면 된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다율이 왼손에…….”

아줌마는 신이 나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계속해서 아줌마를 걱정하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 들려왔지만, 아줌마는 그저 나와 지서준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길었던 전화가 끝날 무렵, 간호사가 채혈하기 위해 병실로 들어왔다.


“김윤희 환자분 피검사 해야 해서 채혈할게요.”

“김 간호사 오랜만이에요.”

“자주 보지 말자니까, 왜 오셨어요.”

“그러게…….”

잘 아는 간호사인지 아줌마가 살갑게 말을 붙였다.


“여기가 우리 아들!”

“아. 그 미국에 있다던 아드님이시구나. 정말로 미남이시네요! 그래서 8층 간호사 팀이 그렇게 술렁술렁했구나!”

지서준이 고개를 숙여 간호사분께 인사했다. 능숙하게 채혈을 마친 간호사가 지서준을 보더니, 보호자 중에 연예인이 온 것 같다며 호들갑 떨었던 실습생,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안 돼! 우리 아들 올해 결혼해. 여기, 예쁜 우리 다율이랑.”

“어머나. 축하해요! 결혼 준비하려면 바쁘시겠네. 빨리 회복해서 병원에서 나가셔야겠어요.”

“맞아요. 빨리 나가야지. 호호.”

그렇게 몇 마디 나누고 간호사가 나가자 아줌마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핸드폰을 들었다.


“아버지에게 전화하시려고요?”

“응. 네 아버지가 제일 좋아할 텐데.”

“금방 오실 텐데요. 지금 운전 중일지도 모르고.”

“그런가? 그럼 네 이모한테…….”

그렇게 아줌마는 지서준의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런 아줌마를 흐뭇하게 바라보다 옆에 있는 지서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가만히 지서준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가 병실로 들어오자마자 아줌마는 내 왼손을 잡아 아저씨에게 보였다. 그러자 아저씨는 들고 들어온 가방을 떨어트렸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둘이 정말 결혼하는 거야?”

아저씨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내가 수줍게 그렇다 대답하자 아저씨는 꼭 복권 당첨된 것처럼 좋아했다.


“우리 지승호 씨 소원 풀었네.”

그런 아저씨를 보며 아줌마가 호호 웃었다.


“어, 언제 할 거야? 응? 그래. 봄이 좋겠지? 그럼 3월이면 되려나?”

“네? 그렇게 빨리요?”

“걱정하지 마. 이 아저씨가 다 준비하마. 응? 너희는 준비할 것 없어.”

“3월은 너무 빨라요. 여보.”

“빠르긴. 내가 다 알아봤어요. 지금 자료가 집에 있는 컴퓨터에…….”

지서준은 한숨을 내쉬며 아저씨가 떨어트린 가방을 주워들었다.


“결혼 날짜는 나중에 다율이 부모님이랑 같이 상의해봐요. 지금 당장 정할 수 있는 문제 아니잖아요.”

“아. 그래! 그래야지. 하하하.”

아저씨의 웃음소리가 작은 1인실 병실에 울려 퍼졌다.

아줌마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며 나와 지서준의 등을 떠밀었다. 아줌마의 성화에 나와 지서준은 병실을 나와야만 했다.


“고마워.”

“뭐가.”

집으로 향하는 차 안. 꽉 막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도로에 갇혀 버리고 만 우리였다.


“너 때문에 엄마가 기분이 많이 풀리셨어.”

“나 때문이 아니지. 우리 결혼한다는 소식 듣고 그러신걸.”

“그러니까. 네가 내 프러포즈를 받아줬으니까……. 내가 준 반지를 엄마 앞에서 예쁘게 자랑해줘서 고마워.”

“고맙냐.”

“응.”

“많이 고마워?”

“응.”

“그럼, 내 부탁 들어줄래?”

“부탁?”

지서준은 꽤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니 마음이 울컥했다.


“나쁜 생각하지 말기. 아줌마 결과 나올 때까지 나쁜 생각하지 말기.”

내 말에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지서준이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돼.”

 

**



“다녀왔습니다.”

“왔어?”

내가 들어가자 엄마가 안방에서 뛰어나오다시피 튀어나왔다.


“윤희는……. 윤희는 어때?”

걱정이 많았을 엄마였다. 화장실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아빠가 급하게 바지를 추켜 올리며 나왔다.


“그래. 서준이 엄마는 어때? 응? 결과는 나왔니?”

엄마 아빠의 모습에 미리 전화라도 줄 걸 후회가 됐다.


“응급실에서 채혈이랑 CT 찍어봤는데, 조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입원해서 정밀검사 받자고 했나 봐.”

“어디가 의심스러운데?”

“그건 나도 잘 몰라.”

“요즘 잘 먹는다 싶었는데, 갑자기 왜 그런다니.”

“그러게……. 아줌마가 겁이 나나 봐.”

“당연하지! 수술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내일 아줌마 병원 갈 거지? 병원 가서 엄마가 많이 달래드려.”

“그래도 너희 결혼 소식에 목소리가 괜찮……. 그래! 너희 결혼하니?”

아줌마 걱정을 늘어놓던 엄마가 무심코 흘러나온 나와 지서준의 결혼 소식에 눈을 커다랗게 뜨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다율이 결혼해? 서준이랑 결혼하는 거야?”

아무래도 아빠는 소식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응. 서준이가 프러포즈했고, 나는 수락했고.”

 

 
엄마와 아빠는 손을 부여잡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

“그럼. 서준이가 우리 사위가 된다는데! 좋고말고!”

“너 결혼 못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경사 났네!”

나는 여전히 서로를 부둥켜안고 폴짝거리는 두 사람을 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



“엄마, 회사 다녀올게요.”

“그래! 퇴근하고 병원으로 갈 거지?”

“네.”

올해 처음으로 회사에 출근하는 길. 유독 추운 이번 겨울, 나는 손으로 입김을 불어가며 지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언제 퇴근해?]

어제 어둡기만 했던 지서준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내일이나 되어야 윤희 아줌마의 모든 검사 결과가 나온다. 오늘 급한 회의만 마치고 내일까지 연차를 쓴 지서준이었다.


[3시나 되어야 회사에서 나갈 것 같아.]

만원 버스에 올라타 사람들 사이에 껴 메시지를 확인했다.


[같이 점심 먹을래?]

[그래.]

점심 약속을 잡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조금씩 보이는 창밖을 바라봤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건만 오늘따라 달라 보이는 이유는 뭘까.

달라진 나이. 친구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올해는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관계.

지서준의 프러포즈와 아줌마의 입원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30대가 됐다. 30대가 되면 무언가 굉장히 달라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29살 더하기 3일인 것 같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 이게 누구신가. 이제 30대 문다율 대리 아니신가.”

나보다 일찍 출근한 이 과장님이 격하게 나를 반겼다.


“앞에 30대는 빼 주시죠.”

“하하하.”

나의 뾰로통한 말에 크게 껄껄 웃던 대리님이 말했다.


“같은 30대끼리 모닝커피 한잔할까? 내가 살게!”

나는 이 과장님을 흘겨봤지만, 과장님은 그저 내 눈앞에서 법인카드를 흔들어댔다. 결국 나는 피식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과장님을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연휴에는 잘 지냈나?”

우린 사내 카페로 올라갔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과장님이 물었다.


“이런저런 많은 일이 있었죠.”

“응?”

나는 과장님에게 내 왼손을 보여줬다.


“문 대리!”

“쉬쉿! 과장님. 목소리가 너무 커요!”

나는 내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문 대리. 프러포즈 받았어?”

“네.”

“이제 문 대리도 유부 라인을 타는 건가! 응?”

우리 부모님만큼 좋아하는 이 과장님을 보자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 잠깐만 우리 커피 나왔다.”

마침 우리가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양손에 커피를 든 과장님이 내게 커피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이야. 새해 첫 출근부터 좋은 소식을 들으니까 기분이 좋네!”

“다른 팀원들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그럼, 그 반지는?”

“그냥, 커플링 했다고 하려고요.”

“왜 좋은 소식을 숨기려고 해.”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 호로록 마셨다.


“서준이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셨거든요. 원래 많이 아프셨는데 갑자기 응급실에 가셔서…….”

“아이쿠. 이런…….”

“새해부터 이런저런 일이 많았어요.”

“지서준 연구원이 마음이 복잡하겠네.”

“네. 만약, 아줌마 결과가 안 좋기라도 한다면…….”

사실, 지서준과 아줌마 앞이라서 크게 내색하지 못했다. 가족만큼 가까이 지낸 사이였다. 아줌마의 입원에 놀라고 불안했지만, 표현할 수 없었다.


“괜찮으실 거야! 아직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잖아.”

“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30대는 굉장히 어른처럼 느껴졌거든요. 근데 막상 제가 30대가 되니 내가 너무 철이 없는 건 아닐까……. 만약 제대로 어른이 됐다면 아줌마와 서준이에게 제대로 버팀목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조금 힘드네요.”

“나이 먹는다고 다 어른인가. 그리고 지금 문다율 대리가 어때서! 이렇게 멋있는 30살 본 적이 없어요!”

“주위에 30살은 저밖에 없는 거 아니고요?”

“응? 뭐. 그렇긴 하지만. 하하하.”

이 과장님이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흘끔거렸고, 나는 이 과장님과 조금 거리를 벌렸다.


“30대라고 뭐 별다르겠어? 아침에 힘겹게 일어나서 밥벌이하러 출근하고 더럽고 치사한 일 생기면 동료들, 친구들이랑 술 한잔 기울이며 훌훌 털어버리는 거지. 그러고 집에 가서 마누라랑 새끼들 보고 다시 힘 얻어서 출근하는 거지. 이크. 팀장님 출근하셨겠다.”

우리 두 사람은 우리 사무실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내가 얼마나 걸었는지는 보이지 않아. 뒤돌아보면 그 발자국으로 내가 얼마만큼 나아갔는지 보이는 거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우리 두 사람이 올라탔다. 우리 층으로 가는 버튼을 누르고 조금 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조급해하지 마. 문 대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문대리의 발자국은 문대리 생각보다 곧고 진해.”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느낀 걸 말해주는 것뿐인걸. 지서준 연구원 어머님도 분명히 괜찮으실 거야. 지금은 문 대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러포즈 받은 거에 충분히 취해 있으라고.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그 발자국만큼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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