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9화. Happy ending을 앞두고.
(95/97)
외전 9화. Happy ending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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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9화. Happy ending을 앞두고.
2023.05.28.
“서준 엄마. 서준이 평생 결혼 안 하고 살 것 같더니 결혼을 하네! 이렇게 빨리 갈 줄 누가 알았어.”
“그러게요. 이것도 서준이가 서두르고 서둘러서 하는 거예요.”
결혼식. 부모님 옆에 나란 서서 결혼식에 오신 손님분들께 인사를 드리는 중,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었다. 내가 평생 결혼 안 할 줄 알았다는 사람들은 연신 축하한다며 우리 부모님의 손을 잡았다.
“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올리비아와 성주 형이 있었다.
“어떡해! 오늘 너무 멋있다!”
올리비아는 성주 형의 팔을 주먹으로 마구 쳐대며 계속해서 감탄했다. 팔이 아픈지 형이 올리비아의 손을 잡아 내리곤 내게 악수했다.
“이제 유부남이네.”
나는 형의 오른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 드디어 유부남입니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요. 형.”
“당연히 와야지!”
형 대신 답한 올리비아는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율 씨한테 가보고 싶은데…….”
“가봐. 저쪽에 신부 대기실 있어.”
“가도 되나…….”
눈치 보는 올리비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성주 형과 올리비아가 사라진 자리는 우리 팀 팀원들이 채웠다.
“지 수석님!”
“Mr. JI!”
이경훈 연구원님은 얼마 전 새신랑이 되었고, 오늘 와이프와 함께 결혼식장을 찾았다. 존 팀장님과 막내도 자리했다.
“어떻게 다들 같이 와요?”
“주차장에서 만났어요.”
“그나저나 오늘 진짜 눈이 부시네요. 우와. 사람한테 후광이 비친다는 말 몰랐는데. 우와. 진짜 후광이…….”
오늘따라 우석 씨는 오버했으나 그것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나보다 먼저 결혼하니까, 행복합니까?”
팀장님이 진지하게 물었다.
“네.”
내 단호한 말에 충격받은 팀장님을 질질 끌고 가 사라지는 팀원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계속해서 손님들이 들이닥쳤고 나는 끝도 없이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인사를 해야 했다.
“신랑분, 신부 대기실에서 잠깐 사진 촬영할게요.”
정신없이 인사하다 끌려간 곳은 북적이는 신부 대기실이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오늘의 주인공. 신부 문다율이 보였다.
“괜찮아?”
“응? 으니?”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젓는 문다율이었다.
“뭐라도 좀 먹었어?”
“지금 허리 엄청나게 조여놔서 뭐 먹을 수도 없어.”
결혼을 준비하면서 문다율은 바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문다율이 이렇게 독했나 싶을 정도로 다이어트했던 문다율이었다.
그 좋아하던 맥주도 끊고, 치킨도 끊었다. 개미허리가 된 문다율이란 건 알았으나, 드레스로 꽉 조여놓은 문다율의 허리는 정말 한 줌이었다.
“과일이라도 먹지.”
“응. 이라가 좀 챙겨줬어. 근데 지금 배고픈 것보다 얼굴이 땅겨서 죽을 것 같아.”
하도 웃어서 부들부들 얼굴이 떨린다며 문다율이 얼굴을 가리켰다.
“신랑분! 신부님 쪽으로 더 바짝 붙으시겠어요?”
포토그래퍼의 요청으로 문다율 쪽으로 다 바짝 붙었다.
그때.
“다유리 고모! 왕자님이랑 겨론하네! 텅공했네! 텅공했어.”
문다율의 사촌 조카가 크게 외쳤다.
“다유리 고모! 왕쟈님은 어디서 만나는 거야? 왕쟈님!”
문다율의 사촌 조카의 외침에 신부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쟤는 저런 말을 어디서 배운 거야.”
문다율이 사진을 찍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을 만들었다.
“미안해! 다율아. 얘가 요즘 동영상 사이트에 자주 들어가더니…….”
다율이의 사촌 언니가 아이의 입을 막고는 서둘러 신부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자! 성공한 신부님, 조금만 더 활짝 웃어볼까요?”
포토그래퍼의 말에 다시 시작된 촬영. 문다율도 그랬지만, 나도 최선을 다해 웃어야겠다.
“자, 마지막입니다! 마지막! 오케이! 신랑, 신부님 수고하셨습니다.”
포토그래퍼는 신랑 신부가 예뻐서 사진 찍는데 신이 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일 년 치 다 웃은 것 같아.”
얼얼한 입꼬리를 붙잡자 내 말에 활짝 웃는 문다율이 보였다.
“오늘 엄청 예쁘네.”
이제야 내 눈에 문다율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화장이 짙기는 했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예뻤다.
온종일 들었을 말일 텐데도, 내 말에 수줍게 웃어 보인 문다율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신랑분, 이제 식 시작합니다. 가셔야 해요.”
웨딩홀 직원의 말에 잡았던 손을 놓아야 했다.
“조금 뒤에 보자.”
“응.”
문다율을 남기고 예식장으로 들어서는 길.
“신랑 입장이라고 사회자분이 말하면 그때 걸어가시면 됩니다.”
직원의 안내에 고개를 끄덕이고 버진로드 끝에 섰다.
어머니들의 화촉점화 순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두 어머니는 사이좋게 손을 잡고 들어갔다. 환히 웃으며 화촉점화를 마친 어머니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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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준이 데리고 가줘서 고마워! 으흡.”
“그만 우세요.”
“내일 울지 안으려면 오늘 다 울어야 해.”
“아이참. 내일 예쁘게 한복도 입어야 하고 손님들도 많이 올 텐데 눈이 퉁퉁 부어 있으면 안 되잖아요.”
어제 엄마는 문다율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아주머니는 옆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문다율과 엄마를 바라봤지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솔직히……. 쟤가 얼굴이 잘나서 그런 건지, 애가 무뚝뚝하고 잘난 척도 심하고.”
“제가 언제 잘난 척을…….”
“똑똑하다고 맨날 어려운 말만 해대니까, 결혼은 할 수 있는지 걱정했는데…….”
여전히 울먹거리며 문다율을 붙잡고 있는 엄마는 눈가에 남아 있는 눈물을 콕콕 찍었다.
“다율이가 데리고 가줘서 얼마나 기쁜 줄 몰라. 아줌마가, 아니지! 이제 다율이 엄마지!”
엄마는 스스로 호칭을 정리하며 문다율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는 다율이 편이야! 저 자식이 속 썩이면 엄마한테 말해야 해. 알겠지?”
그렇게 문다율에게 확답을 여러 번 듣고 나서야 엄마는 활짝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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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어제 다 울었던 걸까. 엄마는 울음기 하나 없이 환히 웃고 계셨다.
“신랑 입장!”
사회를 맡은 남준모가 외쳤다. 나는 저벅저벅 버진로드를 걸었다. 박수 소리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위로 나는 위풍당당하게 걸어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버진로드의 끝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뒤로 돌았다.
내가 출발했던 곳. 그곳에 문다율이 아저씨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기 시작한 것은.
사실 이런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우리 둘, 가족,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해 간단하고 의미 있게 결혼식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혼식은 우리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었다.
부모님들에게는 외동아들, 외동딸이었기에 쉽게 스몰 웨딩을 하겠다 할 수 없었다.
정신없는 스케줄에 그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왔고, 웃으라면 웃었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앞에 내게 올 준비를 하는 문다율을 보니 정신이 번쩍 뜨였다.
“오늘의 주인공!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랑 입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박수 소리와 함성에 문다율이 수줍게 웃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문다율의 발걸음이 느리게만 느껴졌다.
이 길이 이렇게 길었던 걸까.
애가 타는 마음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그리고 드디어, 문다율이 내게로 왔다.
“우리 다율이 잘 부탁해.”
아저씨는 그 말을 남기고 나를 꽉 안아주셨다. 아저씨가 혼주 좌석으로 돌아간 후, 우리는 손을 잡고 나란히 섰다. 다른 것 다 넘겨버리고 이대로 다시 버진로드를 걸어 나가고 싶었으나 한 가닥 남아 있던 이성이 내 발길을 막아섰다.
결혼식 내내 이성과 충동이 날 괴롭혔다. 아는지 모르는지 문다율은 웃었다, 울었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결혼식에 몰입한 문다율을 바라보는데 문다율이 잡은 손을 살짝 흔들었다.
“왜.”
내가 작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하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가 결혼식을 참 많이 가봤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신랑이 결혼하는 내내 빤히 쳐다보는 거 처음 봤어요. 제 친구지만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신부만 보네요.”
남준모의 말에 하객들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내가 계속 문다율만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결혼식 얼마 안 남았습니다. 신랑. 결혼식에 집중해주세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축가만이 남아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한 도이라와 고주연. 저들에게 축가를 맡기고 싶지 않았건만, 저들은 축가를 하지 않으면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며 협박을 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신부 문다율의 친구, 도이라.”
“고주연입니다. 잘 살아라.”
“잘 살아라.”
간단한 축사와 함께 시작된 음악. 나는 알 수 없는 음악이었지만, 꽤 유명한 곡인지 하객들은 손뼉을 치고 좋아하거나, 종종 따라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빠른 박자에 흥이 나는 멜로디. 노래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추며 최선을 다하는 도이라와 고주연은 조금…… 아니 많이 우스웠다.
그러나 문다율이 울음을 터트렸다.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한 건지 모르겠는데 울음을 터트린 문다율은 애써 참으려 눈에 힘을 주고 입술을 앙다물었지만 차오르는 눈물은 문다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뚝뚝 떨어졌다.
“울면 안 되는데……. 화장 번지는데…….”
올리비아가 식에 들어가기 전 챙겨준 휴지가 주머니에 있던 것이 떠올랐다. 휴지를 꺼내 문다율이 눈가를 콕콕 찍었다.
“울지마.”
“너무……. 너무 슬퍼.”
아니, 그러니까 왜 저 음악과 저 동작과 저 노래 실력이 뭐가 슬픈 건지…….
그들의 축가가 끝이 나고, 부모님들과 인사를 하면서 부모님들, 문다율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누가 보면 내가 납치해가는 줄 알겠네.
퇴장만이 남은 식순. 신부가 너무 울어버린 탓에 잠시 화장 고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눈과 코가 빨개진 문다율은 그제야 웃음을 찾았다.
각자 걸어 들어왔던 길을 같이 퇴장하게 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 둘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길이며, 처음 함께 걷는 길이니 한 걸음 한 걸음 의미를 담아 걸으라고……. 지금 이 길과 잡은 손을 잊지 말라고 했다.
“신랑, 신부. 퇴장!”
나는 첫걸음에 의미를 담았다. 함께 행복하겠다.
두 번째 걸음에는 다른 의미를 담았다. 문다율이 슬플 때는 함께 슬퍼하겠다. 다른 걸음, 나 때문에 울게 하지 않겠다.
그리고 마지막 걸음은 이 손을 내가 먼저 놓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다짐으로 모든 걸음에 의미를 담았다.
그렇게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
“결혼은 두 번은 못 할 일이네.”
신혼여행을 가기 전, 공항 근처에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고 떠나기로 했다. 결혼식을 했던 모든 사람의 추천이었다. 왜 선배들의 충고를 들어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호텔에 들어온 그대로 뻗어버린 문다율의 눈이 감기고 있었다.
“씻고 자야지.”
“왜 씻겨주는 기계는 안 나오는 거야. 이공계. 왜 일을 하지 않는가.”
문다율은 눈을 감고 씻겨주는 기계의 필요성과 그 기계를 개발하는 사람은 떼부자가 될 거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화장 어떻게 지우는 건데?”
그제야 실눈을 뜬 문다율이 손가락으로 가방을 가리켰다.
“저기 가방에 있는 파우치 안에 클렌징 밤이랑, 오일이랑…….”
나는 파우치를 가져와 문다율이 말한 대로 가장 먼저 화장솜에 리무버를 적셔 두 눈 위에 올려주었다. 그러자 문다율은 꿈쩍꿈쩍 움직여 내 무릎을 베고 씩 웃었다.
“남편 있으니까 좋네.”
“화장 지워주니까?”
“응.”
“좋은 남편 되는 거 별것 없네.”
내 말에 나와 문다율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슬슬 문질러서 눈화장 지워주면 돼.”
나는 문다율의 지시대로 살며시 눈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조금씩 문다율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가면인데?”
“죽고 싶어?”
“결혼 첫날에 죽으면 안 되지.”
화장을 지우고 난 화장솜과 면봉, 티슈를 쓰레기통에 넣으며 간단히 주변을 정리했다. 여전히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누워 있는 문다율.
“안 씻을 거야? 빨리 씻고 빨리 쉬는 게 좋지 않겠어?”
내 말에 상체를 조금 들어 올리다 다시 누워버리는 문다율에게 다가갔다.
“씻겨줘?”
“변태.”
나를 흘기며 비척비척 일어난 문다율은 좀비와 같은 몰골로 욕실로 향했다. 조금 뒤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청 피곤했다. 피곤했는데 물소리를 들으니 아랫배에서부터 시작된 열기가 온몸을 뒤덮었다.
“안 될 것 같은데…….”
매우 희박한 문다율의 허락. 그래도 하나의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은 오늘이 첫날밤이었으니까.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나온 문다율을 지나쳐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어서 씻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다급한 손길로 샤워기를 끄고 가운만 걸친 채 욕실을 나섰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인 것은 어느새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서 깊게 잠들어버린 문다율이었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 도대체 뭐한 거냐.”
다시 욕실로 들어가 헤어드라이어를 집었다.
‘윙.’
드라이어 소리가 꼭 날 비웃는 것 같았다. 신경질적으로 드라이어를 끄고 욕실을 나왔다. 나는 불을 끄고 문다율의 옆에 누웠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곤히 잠든 문다율의 얼굴이 보였다.
작게 코까지 고는 문다율은 업혀 가도 모를 만큼 깊게 잠들어 있었다.
“그래. 오늘만 밤도 아니고……. 이제 평생 같이 옆에서 잠들 텐데.”
나는 문다율의 작은 코를 손가락으로 살짝 잡았다. 작은 복수였다.
코를 막자 인상을 와락 구긴 문다율이 끙끙거리더니 내 손을 신경질적으로 치웠다. 그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시 코를 막아볼까 하다 올렸던 손을 내렸다. 문다율은 고롱고롱 코를 골기 시작했다.
“문다율.”
깊이 잠든 문다율이 대답할 리도 없건만, 불러보고 싶었다.
“사랑한다.”
나직한 고백은 문다율의 코골이와 함께 어둠에 묻혀버렸다. 나는 괜스레 아쉬워 한 번 더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역시 듣는 사람이 잠들어 있으니 마음 가득 담은 사랑 고백은 너무나 쉽게 흩어져 버렸다.
그래.
내일 또 말해주지 뭐. 내일도 해주고, 내일모레도 해주고 그렇게 매일매일 해줘야지.
나는 씨익 웃고는 문다율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