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0화. 나에게 찾아온 선물.
(96/97)
외전 10화. 나에게 찾아온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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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0화. 나에게 찾아온 선물.
2023.05.31.
“너 요즘 너무 먹는다.”
“개도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진짜 밥 먹을 때 그러면 나 너무 서운해.”
나는 한 손에 간장게장 다리를 들고 입을 삐쭉였다.
윤희 아줌마, 그러니까 이제 시어머니 표 간장게장은 짜지도 않고 비리지도 않고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떠 입에 넣자 엄마는 혀를 차면서도 먹기 좋게 간장게장을 잘라 내 앞접시에 올려뒀다.
“우리 지 서방은 그렇게 바빠서 어떡해. 몸 상하겠어. 보약을 해먹이던가 해야지.”
지서준이 출장을 가고 주말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엄마 집으로 달려왔다.
우리 엄마의 지서준 사랑은 결혼을 하고 나서 더 깊어졌다. 시어머니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마는 지서준을 챙겼다.
근데 왜 살이 찌는 건 나일까.
밥을 두 그릇이나 해치우고 아빠가 입이 심심할 때마다 먹는 강냉이를 집어 들자 엄마가 고무장갑을 들고는 내게 다가왔다.
“너…….”
“나 뭐?”
“임신한 거 아니야?”
“임신? 에이. 아니야……. 응…….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강냉이를 한주먹 집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저 큰길 사거리 약국 토요일도 열지? 가서 임신 테스트기 사 와. 아, 아니다. 네가 설거지 해. 엄마가 갔다 올게.”
“에이. 아니라니까.”
나는 엄마가 내게 넘긴 고무장갑을 옆으로 치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엄마는 이미 지갑을 챙겨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집안은 아빠가 회사에서 받아온 오래된 시계 소리와 내가 강냉이를 씹는 소리만 들려왔다.
나는 강냉이를 씹다가 살이 쪄 볼록하게 튀어나온 내 아랫배를 바라봤다.
“거기 누구 있니?”
역시, 대답은 없었다.
나는 아랫배를 쓱쓱 문지르며 몇 주 전 굉장히 뜨거웠던 어느 날 밤을 떠올렸다. 설마 그날……. 나는 강냉이 봉지를 여미고 핸드폰을 들었다.
[나는 지금 엄마 집이야. 내일 바로 집으로 올 거지?]
지금 지서준이 있는 나라는 밤이었으니, 깨어만 있다면 메시지가 금방 도착할 것이다. 그 사이 핸드폰으로 ‘임신 증상’을 찾아보는데 금방 지서준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어머니 힘드시게 왜 거기 가 있어. 내일 바로 집으로 갈 거야. 자지 말고 기다려. 사랑해.]
결혼을 하고 사랑이 더 깊어진 사람 여기 한 명 추가요.
나는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굳이 막지 않으며 하트 이모티콘을 찾아 하트 도배를 했다.
다음 주면 지서준과 결혼한 지 1주년이었다. 다행히 지서준은 기념일 전에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고, 우리는 함께 여행을 계획했다.
‘삐삐삐삑.’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가 들어왔다.
뛰어갔다 온 건지 엄마는 헐떡이며 내게 상자 3개를 내밀었다.
“자. 빨리 화장실로 들어가.”
“엄마…….”
나는 내 손에 쥐어진 3가지 테스트기를 들고 눈을 깜빡였다.
“나 화장실 안 가고 싶은데?”
“야!”
“아이! 깜짝이야! 애 떨어지겠네.”
나는 엄마의 고함에 내 아랫배를 손으로 포갰다.
“진작 말했으면 좀 천천히 갔다 왔을 거 아니야.”
엄마는 한층 목소리의 볼륨을 낮췄다. 나는 엄마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곤 부엌으로 향하며 말했다.
“엄마는 내 말도 안 들어보고 나갔으면서……. 물 마시면 되잖아. 물 마시면.”
그렇게 먹으면서 왜 화장실은 안 가냐며 투덜거리던 엄마는 설거짓거리가 그대로 싱크대에 있자 눈을 부릅떴다.
“엄마 사랑 지 서방이 식기세척기 사줬잖아. 그거 왜 안 써?”
“그릇 많이 나올 때나 쓰는 거지. 전기세 많이 나가게.”
“요즘 거는 전기세 많이 안 나가거든? 아끼면 똥 돼. 그냥 써.”
나는 물 한 컵을 원샷하고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차곡차곡 넣기 시작했다. 그릇을 넣고 몇 번 버튼을 누르니 식기세척기가 시원하게 물을 뿌리며 그릇을 씻기 시작했다.
“이렇게 좋은 걸 안 쓰고……. 엄마가 이거 안 쓰는 거 알면 서준이가 서운해할걸?”
“안 쓰는 거 아니고 아껴 쓰는 거지.”
“그게 그거지.”
나는 착실히 닦이고 있는 접시를 멍하니 보다 아랫배에서 조여오는 감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엄마가 물었다.
“나, 이제 신호 온다.”
“가! 어, 어서 가 봐.”
나는 그렇게 엄마가 사 온 테스트기 3개를 들고 비장하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테스트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정말 임신이면 어쩌지, 어쩌긴 어째 낳아야지. 아들일까? 딸? 근데 내가 엄마가 돼? 그래도 되는 건가?
오만가지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결과 나왔어?”
화장실 문밖 엄마가 소리쳤다.
“기다려! 아직 3분 안 지났거든?”
“무슨 3분이 그렇게 오래 걸려! 나와! 나와서 기다려!”
“싫어. 내가 제일 먼저 볼 거야.”
나보다 더 초조해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애타는 3분이 흐르고 3가지 테스트기 모두 2줄이 떴다.
“어, 엄마…….”
나는 3개의 테스트기를 들고 화장실 문을 나섰다. 내 표정을 보고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입을 가렸다.
이 사실을 윤희 아줌마에게 알려야 한다며 핸드폰을 찾기 시작한 우리 엄마.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손에 든 임신 테스트기를 내려다봤다.
여전히 줄은 2개.
나와 지서준에게 선물이 찾아왔다.
**
“언제 오냐. 진짜.”
신혼집 베란다 창에 고개를 박고 밖을 내다보며 지서준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택시를 타고 온다고 했으니,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올 일은 없고, 분명 공동 현관을 통해서 들어올 그였다. 그러나 이렇게 서서 기다리기를 30분. 여전히 지서준의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가 연착되면서 조금 늦어진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애가 타는 마음에 잠자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유리에 코와 입술을 비비며 지서준이 좋아하는 조각 케이크를 다시 냉장고에 넣어야 하나 고민하는데 저만치에서 캐리어를 끌고 오는 지서준이 보였다.
멀리서도 잘생김이 뿜어져 나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서둘러 조각 케이크에 꽂힌 초에 불을 붙이고 집 안의 모든 불을 껐다.
“문문. 남편 왔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센서 등이 켜졌다. 나는 불 켜진 조각 케이크를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Home sweet home.”
케이크를 들고 가면서 촛불이 꺼질 위험도 있었지만, 나는 불을 지켜냈고 환하게 웃으며 지서준에게 다가갔다.
“뭐야.”
내가 케이크를 들고 나타나자 환하게 웃는 지서준. 촛불 빛이 은은하게 지서준의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누구 남편인지 잘생겼네!
“자. 빨리 초 불어.”
내가 지서준에게 케이크를 들이밀었다. 지서준이 기분 좋게 웃고는 내가 좋아하는 입술을 쭉 내밀고 ‘후’ 하고 불었다.
촛불이 꺼지자 캄캄해진 거실. 지서준이 서둘러 거실 불을 켜곤 내게 다가왔다. 그러곤 나를 덥석 안았다.
“케이크! 케이크 떨어져.”
“그깟 케이크 떨어지면 어때. 10일 만에 만나는 마누라 좀 안겠다는데.”
그깟 케이크라니! 내가 이 케이크를 사고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그걸 꾹 참고 여태까지 기다렸건만, 그깟 케이크라니.
“안 돼. 저리 비켜봐.”
나는 지서준을 매정하게 밀치고 케이크를 들고 부엌 식탁에 안전하게 올려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서준이 피식 웃고는 욕실로 향했다. 손을 씻으며 지서준이 물었다.
“장모님 댁에서 자고 왔어?”
“응! 가서 어머님이 해준 양념게장의 씨를 말리고 왔어.”
나는 바지 주머니 속 테스트기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욕실에서 손을 씻고 나온 지서준이 나를 향해 팔을 활짝 벌렸다. 나는 오도도 달려가 지서준의 품에 안겼다.
익숙한 냄새에 코를 가슴팍에 묻고 킁킁거리자 지서준의 손이 등에서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안 돼.”
“왜?”
안 된다고 말했는데도 지서준의 못된 손은 멈출 생각을 안았고, 나는 결국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안 된다고.”
“우리 열흘 만에 만나는 건데?”
“알지. 나도 하고 싶지. 근데 안 돼.”
나는 삐지기 일보 직전인 남편의 손을 끌어 소파에 앉혔다. 나는 지서준의 앞에 서서 잘생긴 얼굴을 양손으로 잡아끌었다.
‘쪽.’
지서준의 왼쪽 볼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내 뽀뽀에 지서준의 미간이 좁아졌다.
“다른 쪽도.”
왼쪽만 하면 오른쪽이 섭섭해지니 공평하게 오른쪽 볼에도 뽀뽀하자 지서준이 자신의 얼굴을 잡은 내 손을 잡았다.
“오늘 안된다면서 이건 뭐 하자는 거야. 신종 고문? 나 뭐 잘못 했나?”
나는 지서준의 말에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려 웃었다.
“진짜 오늘 왜 그래. 나 좀 불안하다.”
나는 눈물까지 찔끔 나올 정도로 웃었다. 웃음을 멈추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의문 가득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지서준. 나는 그런 지서준에게 내 주머니에 있던 물건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나는 턱으로 지서준 손에 있는 테스트기를 가리키며 자세히 보라고 말했다.
테스트기 한 번, 나 한 번. 그러곤 눈을 깜빡이더니 다시 테스트기를 한 번 보고 나를 올려다봤다.
“이거 누구 거야?”
“누구 거냐니. 내 거지, 누구 거야. 남의 임신 테스트기를 내가 왜 가지고 있어.”
정말 오랜만에 보는 바보 같은 지서준이었다.
“저, 정말 네 거야?”
“응. 내 거.”
내 대답을 듣자마자 지서준이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진짜야? 진짜?”
“어제 엄마 집에서 확인하고, 병원은 내일 반차 쓰고 가보려고.”
“내일? 나 내일 반차 안 되는데……. 화요일! 화요일에 가자.”
나는 여전히 내 허리를 꼭 안고 있는 지서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좋아?”
내가 묻자 지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좋아.”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잖아. 근데, 어? 이렇게 덜컥 아이 갖게 하면 어떡해? 나는 신혼을 좀 더 즐기고 싶다고 그랬잖아.”
내 말에 지서준이 내 배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그……때?”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는 듯 생각하던 지서준이 입을 열었다.
“그때 네가 괜찮다고…….”
“쉿! 아기가 들어. 네가 잘못한 걸로 해.”
피식 웃던 지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잘못했네.”
우리 모두 아이를 원했으나, 지서준은 좀 더 빨리 가지길 원했고, 나는 느긋하게 가지길 원했다.
내 의견을 존중한 지서준은 조심, 또 조심했다. 그러나 지서준이 조심하면 뭐 하나. 내가 문제였다. 그러나, 지서준이 잘못했다고 했으니, 이제는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금방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지서준이 좀 많이 귀여웠다. 지서준의 귀를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
“빨리 씻고 쉬어. 비행기도 오래 타고, 피곤하잖아.”
“응. 조금만, 조금만 더 안고 있자.”
지서준이 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오. 2명이 올라가 있으니 무겁네.”
“……진심이야?”
“아니. 엄청 가벼워.”
나와 지서준은 그렇게 한동안 그 자세로 수다를 떨었다. 밤은 깊어가고 내일은 출근해야 하지만, 열흘 만에 만난 신혼부부는 이 밤이 아쉽기만 했다.
그렇게 뜨겁진 않지만 따뜻한 밤이 지나갔다. 화요일이 다가오고 지서준과 나는 함께 월차를 내고 병원을 찾았다.
결혼하고 1년 뒤, 우리에게 선물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