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네 머리를 잘라 내겠다> (7/15)


7화 <네 머리를 잘라 내겠다>
2023.06.07.


이드리쉬는 우악스러운 손길로 날 붙잡아 곧장 방으로 향했다.

그는 나를 새장으로 던지듯 집어넣었다. 나는 공 모양이 되어 데구루루 새장을 굴렀다. 나는 얼른 팔다리를 빼 네발로 섰다. 닫힌 철장 너머로 분노에 찬 이드리쉬의 얼굴이 보였다.

잡아먹을 듯 바라보는 노란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나는 또다시 오줌을 지리거나, 기절을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몸을 가장 구석으로 숨기고,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 그래도 여기 가둔 거 보면 당장 죽이려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정말이지 새장 속이 안전하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심이 무색하게, 이드리쉬는 작고 날카로운 단도를 꺼냈다. 검은 날을 가진 단도를 휙휙 돌리다가, 내가 있는 새장의 철장을 툭툭 쳤다.

철에 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소름 끼쳤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네가 수를 쓴 거겠지.”

내가 무슨 수를……. 어느 정도 유도하긴 했지만…….

이런 내 마음을 읽는 듯, 그의 눈이 마른하늘에 떨어지는 뇌편같이 번쩍였다. 변명 따위 통하긴커녕 금방이라도 나를 푹 찌를 거 같았다. 그걸 방증하듯 칼날이 철장을 타고 점점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벌벌 떨며 칼날이 닿지 않을 곳으로 엉금엉금 기었다.

“내 말이 우스운 모양이지.”

나는 소심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오히려 무서워서 졸도하기 직전인데요…….

“이번이 관용을 베푸는 마지막이다. 한 번 더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그 자리에서 네 머리를 잘라 내겠다.”

히익. 안 돼. 내 머리. 작지만 없으면 안 된다고.

나는 반항 같아 보이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근신이다.”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철장이 닫혔다. 새장 위로 두꺼운 검은 천이 덮였다. 노란 눈 한 쌍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 일단 살긴 살았는데 나 이제 진짜 어떡하지?

도망 안 가면 악역의 불구덩이 인생에 장작 1이 될 거고. 도망치다가 걸리면 바로 목 뎅강인데.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정말.

* * *

이드리쉬는, 의외로 정해진 근신 기간이 끝나자 우리를 풀어 주었다.

나는 이드리쉬의 침대로 돌아왔다.

돌아온 첫날엔 정말 잠자는 이드리쉬의 귀를 콱 깨물어 뜯어 버리고 이대로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 커다란 인간의 귀 좀 뜯는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참았다.

분명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 탈출할 수 있는 기회…….

그렇게 며칠, 나는 오로지 탈출만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벌컥, 방문이 열렸다.

배를 드러내고 낮잠을 자던 나는 얼른 제자리로 돌아누웠다. 절대 게으르게 놀고먹던 중은 아니고, 누워서 탈출 계획을 짜던 중이었다. 진짜다.

“가시 마왕!”

어, 꼬맹이 또 왔니?

로드리오는 종종 나를 보러 찾아왔는데, 이드리쉬가 허락해 주었다고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대신 이전처럼 밖으로는 절대 못 나가게 하는 조건이 붙었다고 한다.

꼭 내가 도망 계획을 세우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

“가시야, 네가 계속 보고 싶어 했던 그 친구 있잖아. 내가 드디어 데려왔어. 이제 외로워하지 마.”

눈이 번뜩 떠졌다.

로드리오가 그것을 꺼냈다.

기특한 놈! 드디어 탈출 계획 시작이다!

이 계획, 즉 ‘남자 친구 고슴도치 만들기’는 며칠 전 시작되었다.

그날은 이드리쉬가 대뜸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도착한 응접실엔 재단사와 제로스, 그리고 로드리오가 있었다. 옷을 주문할 거라고 했다.

로드리오는 이미 치수 재기가 끝났는지, 푹신한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렸다. 나를 보고 반가워 활짝 웃기까지 했다.

이드리쉬의 치수를 재고, 옷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드리쉬의 털도 채취했다. 들어 보니 옷감에 털을 섞어 넣으면 수인화할 때고 옷이 함께 변한다고 했다.

나는 왜 데려온 거지? 옷 해 줄 것도 아니면서.

한창 지루해하고 있을 때였다.

〈가시야, 이거 완전 너랑 똑같다.〉

로드리오가 나에게 바늘이 잔뜩 꽂힌 바늘꽂이를 내밀었다.

가시 있으면 다 닮은 줄 아나? 그럼 너는 대걸레랑 똑같이 생겼어. 하얀 머리털이 비슷하니까.

〈왜? 마음에 안 들어? 친구 하면 되잖아.〉

그때, 머리에 번개처럼 서른두 번째 탈출 계획이 생각났다.

탈출하려면 저 바늘꽂이가 필요한데. 저걸 어떻게 해야 내가 가질 수 있지?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좋아. 이 방법이 최선이야.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하곤, 그 바늘꽂이에 느물느물 다가섰다. 그러곤 바늘꽂이에 코를 비비적거렸다.

〈친구가 마음에 들어? 다행이다, 역시 닮아서…….〉

응응, 맞아. 완전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나 이거 줘.

나는 더욱더 격하게 그것에 몸을 비비다가 그것의 머리(로 추정되는)부분을 할짝할짝 핥았다.

어쩐지 로드리오의 눈이 점점 커졌다. 왜일까. 몹시 충격을 받은 듯 보이는 건.

나는 그의 표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열심히 바늘꽂이에 몸을 비비고 핥았다.

〈이, 이드리쉬! 이거 봐봐. 가시마왕이 이상해.〉

나? 나 왜.

이드리쉬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도 나를 보더니 인상을 구겼다.

이드리쉬가 내 옆에서 바늘꽂이를 휙 집어 들었다. 그것에 기대 있던 나는 옆으로 발라당 넘어지며 분홍의 말랑말랑한 배를 위로 드러내 보이고야 말았다. 보이면 안 될 것을 보인 것처럼 부끄러워 나는 얼른 다시 일어섰다.

나는 떨어진 바늘꽂이를 허망하게 바라보다가 이드리쉬를 째려보았다.

왜 또 심술이야?

〈문란한 밤송이. 이건 압수다.〉

내가? 나? 문란이라고?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내가 문란하다는 거지?

문란 송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지만, 나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우울한 척을 했다.

나는 개똥 도치. 친구가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특히 로드리오가 올 때마다 후다닥 일어나 벽을 보고 앉아 있거나, 책상 아래에 들어가 몸을 말고 있곤 했다.

〈가시 마왕. 왜 그래…….〉

꼬마는 순순히 내 마수에 걸려들었다.

〈친구가 보고 싶어서 그래? 하지만…….〉

이 자식. 바늘꽂이와 나 사이의 순수한 우정을 욕보이지 마. 어린 게 말이야.

〈……그때 그 친구는 아니지만 내가 비슷한 거라도 구해 줄까?〉

그렇게 며칠 후 바로 오늘, 로드리오가 새로운 바늘꽂이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드디어 구해 왔구나, 기특한 꼬맹이!

“이제 외로워하지 마.”

로드리오의 복잡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가짜 친구의 주변을 뽈뽈뽈 돌았다. 고맙다는 의미로 로드리오의 손등도 살짝 핥아 주었다. 로드리오는 움찔거렸지만 어쨌든 좋아하는 거 같아 보았다.

이제 탈출 준비는 거의 끝났다.

매일 내 식사를 가져다주는 주방장 비구스를 공략할 생각이었다.

비구스가 점심 식사를 가져다주는 시간마다 나는 창가 커튼 뒤에 머물렀다.

“도치 씨는 창밖 구경을 좋아하는군요? 하긴, 여기에만 갇혀 있으려니 얼마나 답답해요. 이드리쉬 님도 참. 왜 도치님을 잡아 두는 걸까요? 사실 반려동물을 하나 키우고 싶으셨던 걸까요? 체면상 말은 못 했지만 그럴 수도 있잖아요.”

비구스는 언제나처럼 수다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중 단 한마디였다. ‘도치 씨는 창밖 구경을 좋아한다.’

그래. 그거면 돼!

결전의 날, 이드리쉬가 자리를 비웠다. 나는 끙끙거리며 내 가짜 친구를 창틀 위로 올렸다.

음, 가시가 영 빈약하긴 했지만, 커튼 너머로는 제법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괜찮아. 저택을 빠져나갈 때까지 잠시만 속이면 돼.

그렇게 준비를 겨우 마쳤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에 심장이 발랑발랑 뛰었다. 나는 재빨리 문 옆의 백호 장식 뒤에 숨었다.

문이 끼익 열렸다. 비구스가 접시를 달그락거리며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도치 씨, 또 창밖 구경하고 계세요?”

지금이야!

“도치 씨가 요즘 통 우울해 보여서 오늘은 레몬 파운드케이크를 좀 구워 봤어요…….”

나는 비구스가 창가의 바늘꽂이에게 수다를 늘어놓는 사이, 문이 닫히기 전 얼른 빠져나왔다.

탁.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비구스는 방 안에서 내 식사를 세팅했고,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주 자유였다.

뛰어!

나는 먼저 비구스와 제로스의 방으로 갔다. 재빨리 사람으로 변해 옷을 꺼내 바지런히 팔다리를 집어넣었다. 셔츠도 바지도 전부 헐렁했다. 너구리도 작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내가 더 작은 모양이다.

‘어휴, 그래도 멜빵이 있어서 다행이야 이것도 없었으면 삼보 일 팬티 자랑했을 텐데.’

나는 멜빵을 줄여 바지가 내려가지 않게 단단히 고정했다.

‘모자, 모자도 어디 있을 텐데.’

내 붉은 머리는 너무 눈에 띄었기 때문에, 모자가 꼭 필요했다.

마침 벽 한쪽, 거울의 위에 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집어 들기 전, 나는 그 앞의 거울 속에 시선을 먼저 빼앗겼다.

처음 마주하는 내 얼굴이었다.

쌍꺼풀과 풍성한 속눈썹이 진하게 드리운 아래, 짙은 밤색의 눈동자가 둥글고 따뜻한 빛을 냈다.

보드라운 피부는 생기가 넘쳤고, 붉고 통통한 입술은 한번 눌러 보고 싶은 충동을 들게 했다. 전체적으로 작고 둥그런 얼굴로 붉은 생머리가 매끈하게 타고 내려왔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사랑스러웠다.

게다가 어쩐지, 고슴도치일 때의 얼굴이 보이는 듯도 했다.

“예쁘다.”

스스로에게 하기엔 낯간지러운 말이었지만, 아직까진 남의 얼굴 같아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다가 번뜩 정신을 차리곤, 원래의 목적대로 갈색 모자를 꺼냈다.

긴 머리를 말아 올려 모자에 밀어 넣었다.

음, 너구리다운 패션이네.

위아래가 모두 커 옷에 잡아먹힌 듯했지만, 그래도 튀지는 않았다. 유심히 보지 않는 이상 평범한 촌스러운 패션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 같았다.

좋아. 가 볼까?

아니지, 가장 중요한 걸 빼먹을 뻔했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침대 옆 서랍장을 열었다.

분명 이쯤에 있을 거 같은데.

짤랑.

묵직한 주머니를 꺼냈다.

안엔 은화와 동화가 몇 개, 그리고 반짝거리는 단추와 장신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비구스, 제로스. 미안해요. 나 돈도 필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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