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 6장. 그녀가 정말로 원했던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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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6장. 그녀가 정말로 원했던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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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6장. 그녀가 정말로 원했던 것 (2)
2023.04.14.
이세벨은 끝까지 여자를 내쫓지 않았다.
“저택에 온 손님이니 험하게 대하지 말렴. 좋은 옷을 입히고, 배가 고프다 하면 따듯한 음식을 내줘. 대신 그 여자의 행동을 늘 주시해야 한단다. 여자가 나가고 싶다고 하면 바로 나한테 얘기하고, 알겠지?”
“네, 마님.”
그녀는 하녀를 시켜 여자를 보살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저택 밖으로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정적이었던 저택에 새벽이 찾아왔다.
* * *
‘……아버지?’
잠이 오지 않아 창문 너머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다. 술에 취했는지 다리를 절뚝이며 저택 안으로 들어오는 아버지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있다.
‘뭐지?’
저택 안에 들어선 아버지는 의외로 조용했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누군가 계단 위로 올라왔다.
- 쾅!
내 방문이 덜컥 열렸다. 독한 알코올 냄새가 확 느껴져 방 안에 들어온 사람이 아버지임을 알 수 있었다. 인사 대신 자는 척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헉!’
아버지가 내 이불을 확 걷어냈다.
“너 때문에!”
그는 다짜고짜 나의 팔을 붙잡았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아서인지 아버지 얼굴이 마치 악마처럼 무섭게 느껴졌다.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만 번쩍였다.
“아, 아파요!”
“꺼져! 저 여자랑 꺼져! 꺼져!”
“놔주세요!”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기어코 내 팔을 붙잡고 복도로 나섰다. 가기 싫어 힘껏 저항해보았지만 술에 취한 다 큰 사내를 힘으로 이길 수 없었다. 거의 끌려가듯 질질 몸이 바닥에 쓸렸다.
힘없이 끌려간 다리가 벽 모서리나 가구에 부딪혔다. 아파 신음이 나왔다.
“아버지!”
“저 여자랑 같이 가버리란 말이야! 같이!”
‘제기랄!’
날 끌고 가는 곳은 여자가 있는 방이었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아버지는 앞뒤 가리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폭력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 가차 없이 날 잡았다. 내가 버티고 서 있으면 그는 나의 뺨을 칠 기세로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결국 밑에 있던 이세벨이 나타났다.
“뭐 하는 거예요?!”
내내 평온했던 이세벨이 처음으로 자신 앞에 있는 상황에 놀라 소리쳤다. 그는 아버지에게 다가와 날 붙잡고 있는 그의 손을 말렸다.
“망할! 저 여자 때문에 뭐든 게 다 엉망이야! 당장 내쫓아야 해. 당장!”
“그렇다고 애를 막 잡아끌어요?”
“애초에 당신이 저 여자를 여기에 두었잖아. 당신도 이걸 원한 거 아니었어? 리제를 저 여자에게 돌려보내는 걸 말이야.”
둘의 다툼에 잠에서 깬 아이들이 방문을 열었다. 그들은 쉽게 나서지 못하고 문틈 사이로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을 지켜보며 덜덜 떨었다. 이세벨은 아이들의 시선을 느끼곤 한숨을 내쉬었다.
“밤이 늦었어요. 그리고 백작님께선 많이 취했고요.”
“취했다고?”
“제정신이 아니세요.”
“제정신이 아니긴! 난…….”
아버지는 이세벨의 말을 무시하고 내 팔을 도로 끌어당겼다.
“악!”
얼마나 억세던지 참았던 비명이 크게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아버지가 그제야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당황한 아버지의 손에 힘이 약간 풀어지자 나는 그 손을 내리쳤다.
얼마나 세게 붙잡혔는지 내 손목이 붉게 물들어져 있다. 그 자국이 얼얼하고 따가워 쉽게 만지지도 못했다.
“아버지!”
“……얘, 얘들아.”
틈을 타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던 아이들이 아버지 쪽으로 달려들었다. 차남인 버나드를 비롯해 펠리시아, 쌍둥이까지 모두 울먹이며 아버지의 허리를 붙잡았다.
“리제를, 리제를 보내지 말아 주세요! 네?”
“리제는 아무 잘못 없어요! 그러니……!”
“싸우지 마세요! 다 저 여자가 잘못한 거예요, 그러니 여자만. 여자만 내쫓아요!”
그 애원의 말이 통했을까. 아버지의 표정이 점차 풀어졌다.
“제기랄……. 내일 다시 얘기하지.”
아버지는 어깨를 굽히며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몸을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아버지의 몸뚱어리가 금방이라도 넘어질 거 같다. 이세벨은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보다가 뒤늦게 잠옷 차림으로 달려온 하녀들을 살폈다.
“밤이 늦었으니 우선 아이들부터 재우렴. 그리고 비티.”
“네, 마님.”
“리제를 맡기마. 손목이 꽤 아팠을 테니 치료해 주고.”
이세벨은 이 얘기뿐. 나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 * *
주말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여자가 온 이후로 가족들은 방 밖에 거의 나서지 않았다. 아버지 같은 경우는 식사를 거부한 채 서재에서 생활했다. 그 탓에 형제들은 처음으로 아버지나 어머니 없이 식탁에서 앉아 끼니를 챙겼다.
월요일 아침이 찾아왔고 버나드와 펠리시아는 침울한 얼굴로 학교로 향했다. 쌍둥이들은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는지 조용했다.
시간을 보니 아침 아홉 시가 지나 있었다. 그동안 저택 내에서 여자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여자가 일부러 방에 안 나오는지 아니면 이세벨이 통제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백작님의 바람대로 오늘은 그녀를 내보낼 생각이에요. 이제 저도 지쳤으니까요.”
빵이라도 가져다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는데 이세벨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틀자 벌어진 문틈 사이로 아버지 방이 보였다. 그곳에서 이세벨과 아버지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다 방 쪽으로 다가갔다.
“내보내면? 그녀가 다시 찾아오지 않으란 법 있소?”
“그럼 계속 이곳에 머물게 해요? 의외네요.”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버지는 흥분하다 말을 멈췄다.
“그녀가 또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거지. 저 여인은 보통 영악한 사람이 아니야. 십 년 전 그 일이 아직 생생한데, 당신은 벌써 잊은 거요?”
“물론 충격적이긴 했죠. 갑자기 갓난아이를 데려와 저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으니 말이에요.”
“그런데도 저 여인이 딱하게 보였다니. 사실대로 말해봐, 이세벨. 그때의 원망이 있던 거지?”
술을 마시지 않은 아버지 목소리는 평소처럼 말끔했다. 다만 아직 화가 나 있는지 이를 억누른 음이 새어 나왔다.
“어서 말해봐, 응?”
아버지가 이 모든 시발점이면서 단 하나의 뉘우침이 없었다. 처음부터 이런 사람임을 알았지만 실제로 목격하니 그 어떤 기대감도 남지 않았다.
‘……아직 손목이 얼얼해.’
피 하나 통하지 않은 이세벨은 끝까지 믿어도 피가 이어진 아버지는 믿지 못하는 것만 봐도 답이 나왔다.
“피하지 말고. 이세벨. 원망이 있던 거 맞지?”
“네.”
이세벨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뭐?”
먼저 물어봤음에도 아버지는 이세벨 대답에 충격을 받았는지 되물었다.
“있었어요. 없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겠어요?”
“이세벨…….”
“백작님께서 저에게 미안함을 느꼈으면 했어요. 그래서 저 여자를 통해 기회를 준 거였는데…….”
“저 여자를 통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이세벨도 이제 지쳤는지 입을 다물었다.
“이세벨, 말했잖아. 그때의 일은 단 하룻밤이었고, 단 한 번의 실수였어.”
“그 실수의 결과물을 십 년간 제가 제 손으로 키웠죠.”
“사람이 한 번 정도 실수를 할 수 있지 않잖소?”
“그 한 번의 실수가 참 무섭네요. 전 앞으로도 상처로 남을 텐데. 그렇죠? 백작님. 백작님께서 실수 한 번 더했다가 절 무덤으로 보내시겠어요.”
아버지는 끝까지 사과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이세벨이 어떤 말을 원하는지 나조차도 알 정도인데 아버지는 모른다니 답답했다.
아니, 정말로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걸까.
“이세벨. 우리 행복했잖소? 응?”
“모든 탓을 저에게 떠넘기니 저도 이제 지쳤네요.”
“그래서 말인데 이세벨…….”
아버지가 운을 뗐다. 망설이는 투가 심상치 않았다.
“리제를 그 여자에게 보낼까 해.”
내가 예상했던 얘기가 드디어 아버지의 입을 통해 나왔다. 아버지의 한마디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온 감각과 신경이 아버지의 말에 집중되었다.
“……리제를요?”
“그래. 저 여자가 쉽게 저택에 나가겠어? 어림도 없지. 분명 버틸 거요. 그럴 바엔 그녀가 원하는 요구를 들어주고 내보내는 게 나아. 어차피 당신도 리제를 항상 싫어했잖아.”
아버지는 여태 준비해왔던 말처럼 술술 얘기했다.
“리제를 저 여인에게 돌려주면 저 여인이 쉽게 떠날 거 같아요?”
“그걸 몰라서 하는 말 같소? 이상한 짓을 하더라도 그건 그때 처리하면 되고. 우선 지금이 급해. 난 하루빨리 저 여인을 내보내고 싶단 말이야.”
“백작님.”
“리제를 저 여인에게 돌려주는 게 나을 거 같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이지.”
아버지의 말이 단호했다. 그는 이 기회로 나와 여자라는 골칫거리를 한 번에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허기졌던 배도 목이 말랐던 것도 싹 사라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비참한 인생이구나 싶었다. 가족으로 인해 죽어서 다시 태어난 곳이 이런 집안의 막내딸이었다. 첫 번째 마지못한 두 번째 삶으로 회의감이 몰려왔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게 아닐까.
“끝까지 백작님만 생각하시는군요.”
이세벨이 작게 중얼거렸다.
“방금 뭐라고 했소? 이세벨.”
“여자를 조사했어요. 배후가 있더군요. 아주 치밀하게 일을 꾸민 듯싶어요.”
이세벨은 말을 이었다.
“리제는 백작님이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아이예요. 마르센 가문에서 말이에요. 여자는 리제를 이용해 마르센 가문을 통째로 이용할 생각이죠. 단순히 돈이 목적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오. 난 그런 수법에 안 넘어가.”
“정말요? 그 여자가 리제를 통해 마르센 가의 소문과 여론을 좋지 않게 만든다고 해도요?”
“…….”
“백작님께서도 저 여자가 얼마나 영악한지 알고 계시잖아요? 마녀사냥이라든지 기억상실이라든지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 이 저택에 온 것만 해도 보통 사람은 아닌데 저 여자를 조종하는 뒷배가 있어요.”
“…….”
“리제를 저 여자에게 보내면 안 돼요.”
이세벨의 말이 끝나자 아버지는 욕을 내뱉었다. 화가 무척 난 건지 그는 좀처럼 진정하지 않고 꽤 오랫동안 입을 거칠게 놀려댔다. 이세벨은 잠자코 그 말들을 들었다.
“당신도 참 약았어. 그래놓고 저 여자를 저택에 들여보내고! 리제를 저 여자에게 보낼 것처럼 말하지 않았소?”
“앙갚음이었어요. 그리고 리제는…….”
이세벨이 잠시 말을 멈췄다.
“리제에게도 약간의 앙갚음을 했죠. 그 애는 모를 테지만 날 자극했거든요.”
무엇을?
짚이는 게 많았지만 고작 그것으로 이세벨을 자극했다고 하기엔 부족했다. 잠시 생각하려는데 누군가 내 입을 막았다.
“……!”
거세게 입을 막는 손길에 고개를 올리자 여자의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에 보았을 때 초점이 거의 없었던 여자의 눈에는 광기가 돌았다.
“조용히 있어. 응? 아가.”
그녀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뭐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다가 말을 더듬지 않고 입을 놀려대는 여자의 모습에 털이 곤두섰다.
‘제기랄!’
이세벨이 자신을 내쫓으려는 사실을 알고 날 억지로 잡아갈 생각이었다.
언제 왔을까. 왜 눈치 못 챘을까.
주위를 살폈지만 이상하게도 하녀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저 여자가 하녀의 발까지 다 묶어놓은 것일까.
설마…… 실케하고 스웰까지?
‘알려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