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위기는 언제나 기회와 함께 찾아온다 (2)
-[단독!] 아이돌 그룹 ‘소울코어’의 리더 잭슨 킴, 과거 학교 폭력 논란! 피해자의 고백으로 가면 벗겨지나…….
-인터넷의 한 커뮤니티에 잭슨 킴에게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글이 올라왔다. (본문 인용)
[안녕하세요, 저는 LA에 있는 Arthur International School(아서 국제학교)를 졸업한 한 학생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생 시절을 잭슨과 함께 보냈는데, 폭력은 물론이고 옷을 찢거나 지나가다가 일부러 부딪치며 넘어뜨리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실수인 척 음료수를 저에게 퍼붓거나 농구공으로 저를 맞히는 등의 일을 상습적으로 해 왔습니다.
……
이러한 일을 겪은 저에게는 잭슨이 한국에서 다른 팬들에게 추앙을 받으며 이미지 세탁을 하고 살아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스타1번가 이진용 기자
심지어 기사에는 실제 잭슨 킴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는 걸 인증이라도 하듯 잭슨 킴의 사진이 수록된 졸업 앨범까지 함께 올라와 있었다.
“소속사에서 연락 온 거 없어?”
“아직 없습니다.”
“잭슨 킴이랑 매니저는?”
“모두 휴대폰 꺼져 있습니다. 소속사에 걸어도 전부 통화 중이라고 연결이 안 돼요.”
“이런 젠장할!”
임성진 PD는 거칠게 화를 쏟아내며 책상을 쾅 내리쳤다.
“PD님!”
그때, 옆 사무실을 쓰는 조연출 하나가 황급히 달려왔다.
“국장님 호출입니다.”
“긴박한 상황에 왜 국장 놈까지 난리야!”
임성진은 짙은 한숨을 내쉬며 국장실로 향했다.
“네, 저희도 지금 사실 여부 확인 중이라서요. 네네. 시청자님께서 조금만 더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시면…….”
작가들은 물밀 듯이 걸려 오는 전화를 받기에도 정신이 없는 상태.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잭슨 킴이 학교 폭력이라니?
내가 아는 미래에서 그런 논란은 없다.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아예 없다.
연예계에 관련된 일이라면 내가 모를 수가 없으니까.
내가 회귀하면서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블라인드 미션이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리는 없다.
시기는 다를지 몰라도, 전생에서 잭슨 킴의 유명세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다.
터지려면 그때도 터졌어야 한다.
톱니바퀴가 엇돌고 있다.
아는 기자라도 있으면 연락해서 알아보겠다만, 회귀한 이후에는 프로그램을 살리느라 만들어 놓은 인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런 젠장.
일단 잭슨 킴부터 만나 봐야 될 것 같은데.
벌컥-.
그때, 문이 세차게 열리며 임성진 PD가 돌아왔다.
얼굴을 보니, 국장과 대판 붙고 온 모양.
둘이 사이가 안 좋은 건 알았다만, 이번에 아주 극에 달한 모양이다.
“신입!”
“예, 선배님.”
“너 운전할 줄 알지?”
그는 책상에 있던 키를 내게 던지며 말했다.
“밑에 가서 시동 걸고 있어. 내비에 WG엔터 찍어 두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민찬이 너는 여기서 기자들이랑 다른 출연자들한테 연락 오면 전부 확인중이라고 해. 애매한 건은 대답하지 말고. 적당히. 알지?”
“예. 걱정 마십시오.”
“그래.”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곧장 주차장으로 달려 내려갔다.
* * *
“아니, 국장님. 진짜 이게 말이 됩니까?”
조수석에 앉은 임성진 PD는 열을 내며 통화하고 있었다.
상대는 JBC의 예능국장.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야기를 다 끝내지 못하고 뛰쳐나온 듯했다.
다만, 임성진 PD의 얼굴이 시뻘게진 걸 보면, 아무래도 대화가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아직 제대로 확인도 안 됐다고요. 방금 논란 터졌는데 무슨……. 아니죠. 일단 촬영분은 그대로 내겠습니다. 어차피 저번 촬영분 2주치 남아 있으니까 이거 내보내고 그 이후에 추가 촬영을 안 나가는 정도면 몰라도…. 일단 도착했으니까 이따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한 20분은 더 가야되지만, 임성진 PD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런 망할 국장 새끼. 아무리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이게 말이 돼?”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국장님이 뭐라고 합니까?”
“잭슨 킴 하차시키라잖아. 아직 진위 여부 확인도 안 됐는데 무슨 소리냐고. 게다가 잭슨 킴 하차하면 3명 남아. 겨우 3명으로 무슨 방송을 해?”
그는 분을 꾹꾹 누르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방송도 이제 흐름타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멤버 교체하면 어떻게 되겠어?”
말하지 않아도 안다.
다시금 시청률이 떨어질 테고.
이는 곧 폐지로 연결되겠지.
“국장, 이 개자식. 이런 식으로 태클을 걸 줄이야.”
임성진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시트를 쿵 내리쳤다.
지금까지는 국장과의 안 좋은 관계를 중간에서 그나마 중재해 주던 박현호 CP가 있어서 버텼지만, 이런 논란이 터지면 아무리 박현호 CP가 우리 편을 들어도 국장의 권한을 따라야 한다.
국장이란 인간도 이때다 싶어서 확 물고 늘어지는 거고.
“WG쪽이랑은 아직도 연결 안 되고?”
“조금 전에 홍사은 작가한테 연락 왔는데, 저희 간다고 전달했답니다. 잭슨 킴이랑 WG 간부들 전부 모여 있다고 하고요.”
“그래. 빨리 가자고.”
* * *
“저 진짜 억울합니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 잭슨 킴은 열변을 토한 듯, 벌써 반쯤 목소리가 가 있었다.
가수에게 목이 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더욱 안쓰러울 정도.
“정확히 어떻게 된 건데?”
“저도 잘 모르죠. 제가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잭슨 킴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보다 못한 WG엔터테인먼트의 팀장이 직접 입을 열었다.
“PD님들도 촬영을 통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잭슨이 누구 때리거나 괴롭힐 만한 성격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사에는 졸업 앨범까지 나와 있는 상태라…….”
“그래서 저희도 어이가 없는 겁니다.”
잭슨 킴은 하소연하듯 말을 덧붙였다.
“실제로 제가 무언가를 했으면 반성을 하고 이걸 덮을 논의를 했겠죠. 근데 저 진짜 아니거든요. 흔히 말하는 싸움 한번 해 본 적 없다고요.”
그는 울컥했는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진짜예요, PD님. 믿어 주세요.”
임성진 PD는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야죠. 내 출연자인데 당연히 믿지.”
“잭슨.”
WG의 이사가 근엄한 말투로 딱딱하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야 돼. 그래야 우리가 도와줄 수 있어. 어설프게 거짓말했다가는 너뿐만이 아니라, 소울코어 멤버들, WG, 프로그램까지 전부 무너진다.”
“이사님도 저 안 믿으시는 거예요?”
잭슨 킴은 원통하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저 아니라고요. 진짜 아니라고요. 거짓말하면 뻔히 다 밝혀질 걸 아는데 왜 숨기겠어요? 정말 아니니까 아니라고 하는 거라고요. 제발 믿어 주세요.”
“잘 생각해 봐. 너는 장난이었어도…….”
“없다고요!”
잭슨 킴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없어요. 없어. 저 장난으로라도 누구 때리거나 싸운 적 없어요. 소울코어 멤버들한테 전부 물어봐도 돼요. 제가 말로 화낸 적은 있어도 애들 때린 적 한 번도 없어요.”
표정을 보니 진심이었다.
거짓말하는 말투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를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이건 전생에서 터지지 않은 논란이라는 것.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지.
결국 답은 하나.
누군가가 잭슨 킴을 음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누구 하나 섣불리 나서지 못해 회의실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이 사건이 왜 터졌을까.
대체 왜?
아니, 누가?
잭슨 킴의 안티팬?
그건 아니다.
일개 안티팬이 이렇게나 일을 크게 벌일 리가 없다.
특히나 악플에 대한 법적 대응이 강력한 WG엔터 소속 연예인을 상대로라면 더욱 사리겠지.
그러면 이 업계 사람으로 후보가 좁혀진다.
잭슨 킴이 논란에 휩싸이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사람이 누굴까.
WG?
아니, WG 같은 대기업은 잭슨 킴 한 명으로 흔들릴 리 없다.
기껏해야 잭슨 킴이 속한 소울코어 정도.
그러나 소울코어가 목표였다면 잭슨 킴만 건드리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멤버들까지 같이 건드려야 그룹에 타격이 될 테니까.
그러면 잭슨 킴을 공격하는 것으로 타격을 받을 만한 그 외의 인물.
자연스레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답은 하나뿐이다.
블라인드 미션.
우리를 공격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논란이 점화되자마자 갑자기 국장이 임성진 PD를 불러 잭슨 킴을 하차시키라고 한 게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장 본인이 벌인 일은 아닐 터.
국장과 관련이 된 사람.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며칠 전의 한 기억의 조각이 떠올랐다.
-후회하게 해 드리죠.
우형민 CP.
노여움에 바들바들 떨었던 모습이 아직까지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일반인이었다면 ‘에이, CP나 된 사람이 굳이 나한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우형민의 속내를 알고 있다.
본인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뭐든 하는 인간.
그러나 그걸 갖지 못하면.
‘부숴 버리는 인간’이다.
게다가 그는 JBC 예능국장과 임성진 PD 사이를 이간질했던 인물.
블라인드 미션에 문제가 생기면 임성진과 나를 한 번에 물리치는 ‘일타 쌍피’가 된다.
게다가 예능국장과 연줄도 닿아 있지.
우형민 CP가 범인이라면 모든 게 이해가 된다.
미친 새끼.
고작 자기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만으로 신입 PD를 똥통에 빠뜨리려고 해?
이렇게 된 이상 답은 하나뿐이다.
쓰러지지 않은 채 이 상황을 타개하고 일어서는 일.
그게 우형민 CP에게 엿을 먹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잭슨.”
WG의 이사가 낮게 잭슨 킴을 불렀다.
“그걸 증명해 줄 만한 친구 없어? 네가 학창시절에 문제아가 아니었다고 말해 줄 만한 그런 친구들.”
“…….”
잭슨 킴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졸업하고 곧바로 한국으로 오면서 애들이랑 거의 다 연락이 끊겼어요.”
“하나도 없어?”
잭슨 킴의 매니저는 몸까지 돌린 채 말했다.
“너 고등학생 때 학생회장도 했다며.”
“연습생 때 휴대폰 못 썼잖아요. 데뷔하고는 회사에서 휴대폰 지급해 줬고. 번호도 없는데 어떻게 연락해요?”
연락이 끊길 수밖에 없다.
“애들은 분명 ‘저 자식, 연예계에서 떠가지고 성격 바뀌었네.’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그럴 것이다.
평소랑 똑같이 일상 이야기를 해도 질투심이 생기는 게 바로 연예인이라는 직업이니까.
잭슨 킴에게 잘못이 없다면 언젠간 무죄라는 게 증명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식으로 인터넷에 익명으로 글을 올리면, 쉽게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
오랜 시간 끝에 그를 찾아내 무죄가 증명되어도 그 때는 이미 대중들의 관심에서 잊혀 있을 수밖에 없다.
즉 무죄든 유죄든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
우형민 이 영악한 자식.
죽이려면 나만 죽여야지, 나랑 같은 프로그램을 한다고 애꿎은 잭슨 킴까지 죽여?
“이건 시간 싸움인데…….”
WG의 홍보팀장이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사는 다시금 잭슨 킴을 바라보며 물었다.
“잭슨, 네 이야기 일단 확실한 거지?”
“예. 저 진짜 결백해요.”
“그러면 일단 말도 안 되는 모함이라고 공식 입장 발표해. 기자들한테도 절대 사실무근이라고 말하고. 헛소문 퍼뜨리면 법적으로 강경 대응한다고 말도 덧붙이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임성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하아…….”
화면을 확인한 그는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죄송한데 저희 일단 방송국 복귀해 봐야 할 것 같거든요.”
“아, 네. 죄송합니다.”
WG엔터 사람들은 이해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오지 마세요. 결정하는 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 저희도 진행 방향 정해지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 곧장 회사를 빠져나오려던 그때.
잭슨 킴의 매니저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친구들이 한국에 산다면 우리가 직접 찾아가 보기라도 할 테지만, 전부 미국이라…….”
그 순간, 머릿속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잭슨 킴의 결백을 증명해 주는 건 물론이고.
블라인드 미션의 시청률까지 뽑아낼 만한 기똥찬 아이디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