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컴백 프로젝트 (1)
“어떻게 됐어요?”
“뭐래요?”
“잘 이야기하셨어요?”
사무실에 돌아가기 무섭게 작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어떨 것 같아요?”
나는 대답 대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작가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시금 물었다.
“헐, 온대요?”
“진짜 하민석 섭외하신 거예요?”
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출연하기로 했어요.”
“대박!”
“PD님 정말요?”
“미쳤다.”
“PD님 섭외력 뭐야!”
“어떻게 섭외한 거예요?”
“운이 좋았어요. 최대한 진심을 담아 말했더니 하민석 씨께도 마음이 전해진 모양이더라고요.”
홍사은 작가도 나직이 감탄을 뱉어냈다.
“어떻게 입봉 파일럿 섭외에서 2명 골라 놓고 그 두 명을 다 섭외한 거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정무에 하민석을 말이야.”
“그러니까 말이에요. 우리 PD님 보면 볼수록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홍사은 작가는 음료수 한 병을 건네며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저는 진짜 한동안 애 좀 먹을 줄 알았는데 가서 담판을 지으실 줄이야.”
“작가님들이 잘 준비해 준 덕분이죠.”
나는 음료수를 마시다가 문득 라벨을 살피고 물었다.
“그나저나 이거 못 보던 건데, 새로 사온 거예요?”
“아니요. 조금 전에 한시아 씨 오셨다 가셨어요.”
“한시아 씨요?”
연락도 안 하고 갑자기 무슨 일이람.
“네. 신작 드라마 대본 리딩 있어서 여의도 온 김에 잠깐 들렀다고 하더라고요.”
하필 자리를 비웠을 때 왔네.
괜히 미안하게.
“언제 왔어요?”
“두 시간 정도 지났나? 꽤 됐어요.”
나는 가방을 놓으며 말했다.
“저 통화 좀 하고 올게요. 다들 다시 회의 준비 좀 하고 계세요. 아까 못한 회의 이어서 해야죠.”
“네. 알겠습니다.”
나는 홍사은 작가를 뒤로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복도에서 음료수를 홀짝이며 한시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
아무래도 대본 리딩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NS미디어로 이직한 이후, 한 번도 얼굴을 못 봤다.
한시아도 그렇고 다른 멤버들도 전부.
따지고 보면 JBC에 있을 때도 얼굴을 보는 건 한 달에 한 번 있는 촬영 때가 전부였긴 하더라도 간혹 방송국에 찾아와서 만나기도 하고 같은 프로그램이라는 소속감에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는데 이직으로 인해 그런 유대감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블라인드 미션의 시청률이 오르며 다들 인기가 붙어 스케줄도 늘어났고, 나 또한 입봉 준비로 바쁜 탓에 연락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기도 했고.
괜히 미안한 마음에 장문으로 문자를 남겨 두었고,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안부를 묻는 문자를 추가로 보냈다.
파일럿 끝나고 시간 되면 한 번 촬영장에 놀러가 봐야 할 것 같은 걸.
* * *
“다행히 황정무 선생님과 하민석 씨 모두 섭외에 성공했으니까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가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2명으로 괜찮을까요?”
김시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아무리 1회 분량이라고 해도 예능인데 2명이면 조금 밋밋하지 않을까요?”
일반적인 예능에서는 최소 고정 멤버 4명에 게스트를 둘 둔다.
파일럿이라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두 자릿수 이상 출연자를 섭외해도 마다하지 않는 판국에 두 명은 굉장히 소소한 인원임이 틀림없는 사실.
그러나 출연진을 늘릴 생각은 없었다.
“갱생 예능이라는 걸 망각하면 안 돼요. 오히려 출연자가 많아서 화려하면 일반 세탁 예능과 달라질 게 없습니다.”
“아, 그러겠네요.”
“예. 그 대신 저희가 단조롭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 중간에 들어가는 코너들을 화려하게 제작해야 해요. 그쪽에서는 분명히 재미를 뽑아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촬영 순서는 방송에 내보내는 순서대로 ‘인터뷰’, ‘게릴라 콘서트’, ‘결혼식’으로 갈 겁니다.”
우리의 코너는 크게 3개다.
첫 번째인 인터뷰는 말 그대로 황정무가 하민석을 인터뷰하며 근황과 그의 오해에 대해 풀어가는 내용을 담을 것이고.
두 번째인 게릴라 콘서트는 인터넷에 따로 사전 고지를 하지 않고 홍대 길거리를 다니며 게릴라 콘서트를 홍보하고, 당일에 바로 소극장에서 하민석의 콘서트가 진행될 것이다.
몇 명이나 올지, 어떤 이들이 올지는 우리도 모른다.
특정 팬들을 섭외하거나 데려올 생각 또한 없었다.
그를 찾아서 자발적으로 참가한 대중들의 앞에서 하민석에게 여전히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며 공연을 통해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함이니까.
나는 박민지 작가를 바라보며 물었다.
“박 작가님, 게릴라 콘서트 장소는 섭외됐죠?”
“예. 황정무 선생님과 스케줄도 같이 조율해서 말씀하셨던 날짜로 확정 받아 뒀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추가로 돌발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경호 업체도 같이 섭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자 이번 파일럿의 하이라이트인 결혼식.
하민석이나 그의 지인이 결혼하는 건 아니었다.
일반인들의 결혼식에 참가해 축가를 부르는 것이다.
정확히 따지면 신청자들 중 뽑아서 그들 몰래 찾아가 깜짝 손님으로 축가를 불러 주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무작위로 아무에게나 찾아가서 민폐를 끼칠 생각은 없었다.
우리의 목적은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결혼식을 주인공인 신랑 신부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겨주기 위함이니까.
“오하나 작가님. MBS에 확인하셨어요?”
“네. 두 시간 전에 연락 왔습니다. 저희 공식 페이지 열렸어요.”
“그러면 저번에 회의했던 대로 결혼식 참가자 신청 받기 시작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도 10지선다 정도로 넣어 주세요. 당연히 하민석 씨도 목록에 넣어 주시고요.”
“아!”
오하나는 손뼉을 쳤다.
“그러면 깜짝 등장해도 신랑 신부가 좋아할 수밖에 없겠네요.”
“네, 맞습니다.”
결혼식 축가를 부르기 위해 찾아갈 대상은 무작위로 선발하지 않을 것이다.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촬영에서 돌발 상황이 나오면 안 되니까.
“촬영 동의서랑 신랑 신부가 모두 좋아하는 가수 확인하시고요. 제작진이 들어갈 수 있는 결혼식 공간까지 전부 확인하고 나서 총체적 평가 후에 선발하셔야 됩니다. 강단비 작가님이랑 공주연 작가님이 같이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결혼식 전까지 밝히지 않는 거 꼭 명시해 두시고요.”
말 그대로 깜짝 이벤트가 될 예정이다.
축가 때 연예인이 등장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으면 촬영 리얼리티에 문제가 생기니까.
그렇기에 이러한 깜짝 등장 및 촬영에 대한 모든 동의를 한 사람들만으로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당첨자들도 당첨 사실을 모르는 것이지.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게 이러한 연출로 인해 돌아가는 곳이니까.
“결혼식 축가에 대한 신청서는 최종 완성된 후에 저한테 한 번 더 보여 주세요.”
결혼식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만 했다.
두 번째 순서인 게릴라 콘서트는 당일의 홍보를 통해서 ‘하민석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참가하는 이벤트다.
그에 반해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불특정 다수’다.
하민석을 좋아할지, 싫어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인 결혼식장이기에 충분히 도전해 봄직 했다.
누구보다도 그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좋아할 테니 하객들은 그들을 거스르지 않을 테니까.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불특정 다수 앞에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것으로서 하민석에게 다시금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게 최종 목표.
이후엔 추가 편집을 통해 조금 더 극적으로 표현할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핵심적인 건.
“저희 방송이 끝나는 시간대에 맞춰서 하민석 씨의 신곡 앨범을 발표하는 거로 조율하고 있어요.”
작가들은 낮게 감탄을 흘렸다.
“어그로 제대로 끌리겠네요.”
“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홀린 듯이 곡을 들어 볼 테니까요.”
내가 편집을 통해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러면 하민석 씨 컴백도 성공적이겠는데요?”
“그렇죠. 물론, 시청률이 어느 정도 나온다는 가정 하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든 시청률부터 잡아야 돼요.”
나는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르게 움직입시다.”
* * *
똑똑.
“네, 들어오세요.”
막내 작가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강 PD, 바빠?”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팀장님 오셨어요?”
어윤중 팀장.
나를 NS미디어로 스카우트해서 데려온 인물.
이곳에 오기 전에 MBS에서 CP로 일할 만큼 능력 있는 프로듀서였다.
지금은 나의 직속 상사로 촬영을 진행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업무를 봐주는 인물이었다.
예를 들어 조명팀이나 촬영팀, 오디오팀을 섭외해서 우리와 이어주는 역할.
JBC에서 임성진 PD와 박현호 CP 같은 관계랄까?
물론, NS미디어가 외주업체라서 그는 팀장이고 MBS에는 나의 담당 CP가 따로 있는 복잡한 구조긴 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내 PD로서의 업무를 관할하는 첫 번째 상사라고 보면 된다.
“안 바쁘면 커피 한잔할까?”
“예.”
나는 그를 따라 테라스로 나와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빼 들었다.
“여전히 춥네요.”
“그러게 말이야. 이제 늦겨울인데 추위가 가실 생각을 안 하네.”
그는 커피를 홀짝이며 물었다.
“촬영 준비는 잘되어 가고?”
“예. 조금 전에 하민석까지 섭외 완료했습니다. 이제 일정 조율만 하면 바로 첫 촬영 들어갈 수 있어요.”
“고생했다. 어떻게 원하는 대로 잘 됐네.”
“그러게 말이에요. 이제 딱 시청률만 잘 나오면 되는데.”
어윤중 팀장은 피식 웃으며 난간에 몸을 기대고 날 돌아봤다.
“편성 확정됐다.”
그 말을 듣자, 시험 일자를 들은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예요?”
“2월 11일 오후 6시 30분. 네가 원했던 대로 1시간 30분 편성이야.”
“아주 좋네요.”
설 연휴가 시작되는 첫 날이 바로 2월 11일이다.
설을 하루 앞두고 가족들이 가장 많이 TV 앞에 둘러앉는 시간이고.
무엇보다 좋은 건, 첫 날 이후로는 마음 편하게 설을 보낼 수 있다는 점.
물론, 마감 일자는 제일 빠르기에 더 빡세게 일해야 할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인터뷰도 준비해야 돼.”
“인터뷰요?”
“응. 예전에 말했잖아. 너 JBC 시상식에서 잭슨 킴이랑 한시아가 언급했던 거 관련해서 한 번 할 거라고.”
“아, 기억났어요.”
“2월 초 정도에 인터뷰 내보내서 슬슬 시선 좀 끌어 보고 그 다음에 파일럿 가면 좋을 것 같아서.”
“그거 좋네요.”
인터뷰를 본다면, 최소한 파일럿 프로그램에 대해 관심은 가질 테니까.
특히 잭슨 킴과 한시아의 팬이라면 더욱더.
“사흘 뒤에 인터뷰 잡아 뒀으니까 준비해 둬.”
“알겠습니다.”
“아, 참.”
어윤중 팀장은 속주머니에서 짧은 글귀가 인쇄된 종이를 꺼내 들었다.
“이건 너만 봐 둬. 동시간대에 PBC랑 KTS에서 어떤 프로그램 하는지 몰래 구해 온 거니까.”
“감사합니다, 팀장님. 아직 일정 안 떴을 텐데.”
“다음 주면 뜨긴 할 텐데, 그래도 미리 알면 좋으니까.”
그는 피식 웃으며 내 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면 먼저 들어간다. 고생해.”
“예, 팀장님.”
- PBC: 동쪽에서 온 왕자 (송호영 PD)
- KTS: 행복 투어 (김난영 PD)
순간, 하나의 이름이 눈을 확 사로잡았다.
PBC의 송호영 PD?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나는 돌아가는 어윤중 팀장을 붙잡았다.
“팀장님.”
“응?”
“여기 PBC에 있는 송호영 PD, 이 친구 담당 CP가 혹시…….”
“우형민일걸?”
그는 확실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아마 맞을 거야. 내가 NS미디어 오기 전에 PBC 갈 뻔해서 잘 알거든.”
어윤중 팀장은 걱정스레 날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 있어?”
“아니요. 별거 아닙니다. 들어가세요.”
“어.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떠나갔다.
다시금 송호영 PD의 이름을 바라보자, 자연스레 입꼬리가 휘어졌다.
우형민 CP 이 자식.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잭슨 킴한테 그런 모함까지 벌이고 잘 살고 있으시겠다?
지난 추석에 진행한 파일럿은 말아먹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첫 번째였기에 큰 타격은 없었겠지.
하지만 설에 진행될 ‘동쪽에서 온 왕자’는 두 번째 파일럿.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분명 자존심이 꺾이는 건 물론이고 CP의 자리에도 영향이 생길 터.
경쟁자가 이 녀석이라서 더 활활 불타오르려고 한다.
이번 파일럿을 흥행시켜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내가 압도적으로 시청률을 따내서 아주 자근자근 밟아 주마.
이번엔 아마 CP 자리에 위협 좀 받으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