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컴백 프로젝트 (6)
오후 5시 30분.
“후우우.”
하민석의 짙은 숨소리가 대기실을 가득 채웠다.
게릴라 콘서트가 시작하기까지는 이제 겨우 30분 남았다.
그는 진정되지 않는지 한 곳에 앉아 있질 못하고 연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민석 씨, 많이 떨려요?”
“오늘은 조금 더하네요. 원래 이렇게 긴장하지 않는데…….”
“너무 떨지 마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하민석의 매니저는 영 걱정되는지 심려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청심환이라도 사다 줄까?”
“아니에요. 무대 오를 때 오히려 텐션 떨어져서 안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때,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오하나 작가: PD님, 이제 나오셔서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세팅은 다 해 두었다지만, 이제 슬슬 관객들의 입장이 시작되는 터라 나도 가 봐야 했다.
“민석 씨. 잠시 후에 저쪽에 있는 강단비 작가가 안내해 줄 거예요. 타이밍 맞춰서 올라오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나도 여기서 기다리면 되나?”
황정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선생님은 민석 씨보다 한 10분 정도 일찍 올라오실 거예요. 말씀드렸던 대로 기본적인 인사 멘트 후에 소개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래, 알았네.”
나는 빠르게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오하나 작가가 내게 다가왔다.
“PD님, 바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관객들 많이 왔어요?”
“보통 많은 수준이 아니에요.”
“어느 정도인데요?”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많아요.”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허어.”
나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기껏해야 관객석을 가득 채우는 정도일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을 훨씬 벗어났다.
입구에 칸막이로 만든 줄을 넘어서 도보를 따라 쭉 늘어선 줄은 끝을 보기 힘들 정도였다.
“대체 몇 명이에요?”
“구은희 작가가 대충 세어 봤는데, 최소 500명이랍니다.”
“아이고…….”
공연을 진행하는 알바트로스 메리홀 소극장의 관객석은 겨우 300석.
“아무래도 버스킹 영상이 SNS로 빠르게 퍼지면서 소식을 듣고 멀리서까지 팬들이 발 벗고 뛰어온 모양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빠르게 나와서 상황을 파악했어야 하는데.
워낙 하민석이 긴장을 해서, 진정시켜 주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겼다.
“극장 측에 추가 좌석 동원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셨어요?”
“네. 그런데 300석도 최대 동원한 거라 더 구해 오려면 최소 1시간은 걸린대요.”
그러면 너무 늦다.
극장의 구조를 천천히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빈공간이 아예 없진 않다.
“혹시 좌석 뒤쪽에서 스탠드로 관람을 하면 얼마나 들어올 수 있는지 한번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오하나 작가는 빠르게 뛰어 안으로 들어갔다.
잘 판단해야 한다.
자칫하다가 질서가 어긋나기라도 하면 사고가 나는 건 순식간이니까.
500명이 넘는다니.
안 올까 봐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다.
혹시나 너무 적으면 하민석이 민망하기도 할 테고, 방송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 방청 알바라도 써야하나 고민했는데 그랬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발신인: 김시원 작가
이럴 줄 알았으면 무전기를 준비하는 건데.
“네, 작가님.”
-오하나 작가가 극장 측에 문의해서 임시 스탠드석과 2층에 추가 좌석 확보하면 200명 정도 더 들어올 수 있다고 해서 바로 간이 펜스를 치고 있습니다.
“완료되면 바로 관객들 입장시키세요. 절대 포화되지 않도록 해 주세요. 너무 많으면 입장 컷시키고요.”
-예.
“그리고 경호원들 추가적으로 나눠서 사고 나지 않도록 관객들 쪽으로 인원 배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곧장 콘솔로 향했다.
카메라 각도와 전체적인 상황을 조율해야 하기에 무대에서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PD님!”
들어가자마자 콘솔을 지키고 있던 홍사은 작가가 내게 다가왔다.
“극장 측에 임시용 무전기가 있다고 해서 받아 왔습니다. 저랑 김시원 작가가 들고 있으니까 바로 연락하시면 돼요. 무전기 한 대가 남는데 어디로 넘길까요?”
“잘하셨습니다. 다른 한 대는 대기실에 있는 강단비 작가에게 전해 주세요. 그리고 홍 작가님은 무대 쪽으로 내려가셔서 상황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
“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김시원 작가로부터 무전이 울렸다.
-관객 받을 준비 되었습니다. 약속했던 입장 15분 전인데, 관객들 받을까요?
“네. 입장시켜 주세요.”
무전기를 내려놓고 바로 VJ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카메라 감독님들, 녹화 시작해 주세요. 메이킹 필름 카메라는 대기실로 가셔서 하민석 씨 무대 등장하는 장면 팔로잉하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이 질서정연하게 소극장 안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울리는 무전.
-PD님, 내부가 꽉 차서 관객 서른 분 정도는 못 들어갈 것 같은데요.
순간, 복도에 있던 모니터 한 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김시원 작가님, 잠깐만요. 홍사은 작가님 복도에 있던 모니터, 업체 홍보용이 아니라 극장 홍보용이라고 했죠?”
-아! 지금 바로 문의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1분도 채 되지 않아 돌아왔다.
-모니터에 다른 영상 송출 가능하답니다.
“그러면 저희 메인 카메라 연결해서 복도에서 볼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김시원 작가님은 관객분들께 양해 구하고 원하시는 분은 편하게 앉으실 수 있도록 자리 마련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거, 생방송보다 더 쫄깃쫄깃한 느낌.
이제 공연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나는 다시금 무전기를 들었다.
“강단비 작가님, 황정무 선생님 입장시켜 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콘솔에 있는 조명 감독에게 말했다.
“황 선생님 들어오면 바로 스포트라이트 밝혀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극장이 암전되었고 황정무의 입장 신호와 동시에 스포트라이트가 밝혀졌다.
“와아아아!”
황정무를 보며 환호하는 소리가 극장에 크게 울렸다.
그는 이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능숙하게 손을 흔들며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황정무입니다. 한창 바쁘신 평일 오후인데도 이렇게 많은 분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역시 국민 MC답게 그는 능숙하게 상황을 이끌었다.
“여러분, 하민석 씨가 무려 7년 만에 무대에 오른 거라고 하더라고요. 여러분이 7년 만에 하민석 씨의 첫 무대를 보는 겁니다.”
“와아!”
“정말요?”
“물론이죠. 그만큼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거라 긴장될 테니 여러분이 잘 호응해 주셔야 합니다.”
그 말에 응하듯.
“네에에에!”
관객들은 큰 소리로 화답했다.
“그런데, 여러분. 게릴라 콘서트는 그냥 입장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렇죠?”
황정무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하민석 씨는 안대로 눈을 가리고 무대 위로 올라올 겁니다. 몇 명인지 유추하지 못하도록 여러분은 숨죽이고 있다가 민석 씨가 안대를 벗으면 그때 마음껏 환호해 주시면 됩니다. 아셨죠?”
“네!”
“그러면 여러분, 이제부터 쉿!”
황정무는 관객들을 보며 검지를 입에 갖다 댔다.
그와 동시에 나는 강단비 작가에게 무전을 쳤고.
“하민석 씨 무대 위로 입장시켜 주세요. 안대 채우는 것 잊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황 선생님, 이제 하민석 씨 대기실 나왔습니다.
황정무에게는 인이어를 통해 신호를 전했다.
그사이, 황정무는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손짓만으로 관객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상태.
그리고 약 1분 정도가 지난 뒤, 하민석이 안대를 낀 채 스태프의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관객들은 미리 맞춰 놓은 대로 여전히 입을 굳게 닫고 있는 상태.
“안녕하세요, 하민석 씨. 오랜만이네요.”
“아, 네.”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
“이제 곧 콘서트를 시작하실 건데, 몇 분이나 와 주셨을 것 같아요?”
“글쎄요.”
하민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30분 정도?”
황정무는 관객석을 보며 능글맞게 입꼬리를 휘고는 다시금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여기 300석인데요?”
“어, 그러면…… 많이 와 주셔서 한 50분 정도?”
하민석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단 한 분만 와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한 분을 위해서 목청이 터져라 부를 생각입니다.”
그의 말에는 한 치의 떨림이 없었다.
그저 멀리서 듣는 것만으로도 진심이 전해질 정도.
나는 무전기를 내려놓고 콘솔에 준비된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슬슬 공개해 주세요.”
인이어를 통해 내 말을 전달받은 황정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진행했다.
“오래 기다리셨을 테니 바로 한번 확인해 볼까요?”
“아, 잠시만요.”
하민석은 가슴에 손을 얹고는.
“후우. 후우우.”
심호흡을 하더니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의 준비 됐습니다.”
“그러면 안대를…….”
그는 스윽 카메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벗어 주세요.”
하민석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안대를 천천히 벗었다.
여전히 눈은 질끈 감고 있는 상태.
하민석은 마치 어둠속에서 밝은 빛을 마주하듯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와아아아아아!”
장내가 떠내려갈 듯이 울리는 함성.
황정무가 등장했을 때보다 몇 배나 더 큰 환호성이었다.
나는 조명 감독을 향해 지시했다.
“감독님, 무대에서도 관객석을 볼 수 있도록 살짝 불빛 비춰 주세요.”
하민석은 터지는 환호성에 깜짝 놀란 듯 움찔하더니 관객들의 수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쩍 벌렸다.
안면 전체가 확대되는 느낌.
그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아…….”
황정무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려 500분이 넘게 와 주셨어요. 심지어 자리가 없어서 몇몇 분들은 복도에서 모니터를 통해 보고 계시고요.”
“아…….”
하민석은 멍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손을 떨며 말했다.
“정말 아예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한 분만이라도 정말 감사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나 많이 와 주시다니…….”
그는 울컥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울지 마! 울지 마!”
관객들은 손뼉을 치며 하민석을 응원했다.
대한민국 발라드의 황제로 무려 2만 석 콘서트장을 수십 번이나 매진시켰던 그가 500명 관객에 울컥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내 가슴도 짠해졌다.
“진짜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황정무는 하민석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그러면 바로 한번 들어 볼까요?”
“네.”
하민석은 아주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를 만난 이후로 처음 보는 만개한 미소.
황정무는 자연스럽게 무대 뒤로 퇴장했고.
내 신호에 맞춰 음향 감독은 MR을 재생시켰다.
전주와 함께 하민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마주치게 되는 어느 소설과 같은 일들이-♬”
* * *
“감사합니다!”
노래를 완곡한 하민석은 허리를 90도로 접었다.
그는 쉬지 않고 무려 다섯 곡을 완창했다.
그럼에도 목이 쉬기는커녕 오히려 텐션이 더 오른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태.
사실, 이것 자체도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
나를 포함한 작가진이 준비한 건 3곡 정도.
그러나 세 곡을 부른 뒤, 하민석은.
“저 이제 목이 풀린 것 같은데, PD님 괜찮으시다면 저 조금만 더 불러도 될까요?”
하민석은 언제 긴장했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관객들을 선동했다.
“여러분 다 같이 외쳐요. PD님! PD님!”
“PD님! PD님!”
나는 못 이기겠다는 듯 인이어를 통해 그에게 말했다.
“MR 준비되어 있어요?”
“그럼요. 저희 매니저가 웬만한 곡은 다 준비해 왔으니까.”“딱 두 곡만 더 갑시다.”
“네. 여러분 PD님이 두 곡 더 괜찮대요!”
그래서 지금까지 5곡을 부른 것.
그러나 하민석은 영 아쉬운 감이 사라지지 않는 듯 콘솔을 보고 물었다.
“저 딱 1곡만 더 불러도 돼요?”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나만 역적이잖아.
“네, 그러세요.”
하민석은 관객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지막 곡은 신청곡으로 받을게요. 원하시는 노래 있으세요?”
“‘그 겨울날의 열병’!”
“‘행복하지 말아 주세요’!”
“‘너의 꿈 속에서’!”
“‘승리하리라’!”
그의 히트곡이 줄을 지어 나왔다.
안 되겠다는 듯 한 명을 지목했다.
“여기 제일 앞에 교복 입고 계신 친구. 뭐 듣고 싶어요?”
“저 ‘전화를 받지 않아도’ 완전 좋아해요!”
하민석은 다시금 콘솔을 보며 물었다.
“PD님 가능한가요?”
나는 음향 감독을 보며 물었다.
“이 감독님, MR 준비됐어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없는데?”
하민석의 매니저 이상훈 실장도 아차 싶었는지 머리를 긁었다.
“아, 그게 버전이 달라서 따로 챙겨 오려다가 둘 다 회사에 두고 온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나는 다시금 마이크의 버튼을 켰다.
“다른 곡으로 가시죠. MR 준비가 안 됐답니다.”
“아, 여러분. 그 곡은 MR이 없대요.”
관객들은 아쉬움의 목소리를 토로했다.
그러자 하민석은 순간 입꼬리를 씰룩이더니.
“그래도 괜찮아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우면 되죠.”
그는 장난기 넘치는 듯한 표정을 지워 내고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 새벽에 너에게 전화를 걸어-♩”
무반주로 그 자리에서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마치 홀린 듯이 얼어붙은 채 그의 열창을 듣기 시작했고.
“전화를 걸고 또 걸어도 번호를 지우고 지워 봐도 잊히지가 않아-♪”
내 몸엔 전율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