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67화 (68/601)

67화 컴백 프로젝트 (8)

단순히 축가만 부르는 것을 끝으로 결혼식에서 퇴장할 생각은 없었다.

이대로 떠나가면 오히려 식장의 분위기만 어수선해질 수 있기에 황정무는 사회자석에서 남은 식순을 포함해 신랑 신부의 행진까지 진행해 주었고 하민석은 식장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그 이후 하객들을 식장 뷔페로 안내한 뒤, 신랑 신부와 함께 기념사진까지 찍고 나서야 그들은 결혼식장에서 퇴장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리는 짧게 손뼉을 치며 성공적인 축가를 자축했다.

황정무는 하민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잘했어.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지?”

“예, 감사합니다.”

하민석은 흠뻑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끝나고 나서 신랑 신부가 따로 와서 다시 한번 고맙다고 하는데 진짜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그는 자연스레 내게 시선을 돌렸다.

“PD님 덕분에 이런 경험도 다 해 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오늘 안에 식장 두 개 더 돌아야 돼요. 인사는 그거까지 다 마무리하고 나서 하시죠.”

“알겠습니다.”

하민석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바로 이동할까요?”

“예, 그러시죠.”

* * *

첫 결혼식의 뒤를 이은 나머지 두 번의 결혼식에서도 하민석의 축가와 황정무의 사회는 성공적이었다.

하객들이 깜짝 놀라고 신랑 신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다 흐뭇해질 지경이었으니까.

게다가 방송으로 내보낼 만한 재미있는 상황도 더러 만들어졌다.

두 번째였던 20대 중반 커플의 결혼식에서는 신부가 하민석의 노래를 정말 좋아한다면서 듀엣을 부르자고 제안까지 했다.

하민석이 당황하면서도 받아들여 신부와 함께 축가를 부르는 진풍경도 벌어졌고.

마지막이었던 30대 후반 커플의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보다도 오히려 양측의 부모님들이 황정무를 보고 환호하셔서 하민석이 묻히기도 했다.

신부 측 어머니, 즉 신랑의 장모님이 워낙 흥이 많으신 분이라 황정무에게 트로트 한 곡 불러 달라고 부탁을 해서 그가 신나는 트로트를 한 곡 뽑아 버리는 진기한 장면도 연출되었다.

PD로서는 어느 것 하나 놓치기가 아쉬울 정도.

촬영하는 내내 느꼈다.

이번 편집 때는 분량이 너무 많아서 행복한 비명을 지를 것 같다고.

* * *

2021년 1월 25일, MBS의 한 스튜디오.

“컷! 오케이!”

나의 외침과 동시에 사람들은 손뼉 치며 노고를 치하하는 말을 외쳤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짝짝짝.

인사와 박수 소리를 마지막으로 ‘컴백 프로젝트’의 모든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정확히 따지면, 정식 스케줄의 마무리는 결혼식이었고.

오늘은 프로그램의 포스터 촬영과 내가 생각했던 엔딩 컷을 위한 추가 촬영이었다.

하민석은 좌우의 스태프들에게 인사하고는 재빠르게 내게 다가와 머리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PD님.”

“수고하셨어요, 민석 씨.”

분주하게 장비를 정리하는 스태프들을 뒤로하고 구석으로 그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이제 완전히 끝난 거죠?”

“예. 다 마무리됐습니다. 내일부터 제가 편집 들어갈 거고, 2월 초에 티저 영상으로 시작해서 설 전 날에 본방송이 올라갈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PD님.”

하민석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복귀한다고는 했어도 무척 걱정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PD님 덕분에 자신감을 찾은 것 같습니다. 감사해요.”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감사하다는 말이 너무 많으면 부담스러워요.”

“아, 죄송합니다.”

“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니고요.”

피식 미소를 짓고는.

“정 고마우면 이번에 촬영 잘 마무리되고 성공적으로 복귀하시면 술 한잔 사 주세요.”

“어유, 그럼요. 진짜 큰 은혜를 입었는걸요. 고급 양주로 쏘겠습니다.”

“소주면 충분해요.”

“아닙니다. 컴백 프로젝트에 소주로는 제가 죄송하죠.”

“아직 방송도 안 나갔는데요?”

“안 봐도 잘될 게 뻔합니다. 벌써부터 인터넷 반응 보면…….”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긴 했다.

SNS와 커뮤니티에 퍼져 나간 그의 버스킹과 결혼식에서의 축가는 이미 화제가 되며 대중들로 하여금 하민석의 복귀에 대한 긍정 여론을 형성하기 시작했으니까.

“잘되실 겁니다. 프로그램 성공 여부와 관련 없이 민석 씨는 성공적으로 복귀하실 거예요.”

“기왕이면 함께 성공하는 게 좋겠죠.”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음원 발표 시간 말씀드렸던 건 어떻게 되었어요?”

“아, 참.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원래 컴백 날짜보다 조금 더 당겨서 PD님이 말씀하신 대로 ‘컴백 프로젝트’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발표하기로 했어요. 2월 11일 오후 8시 맞죠?”

“네. 오후 6시 30분부터 1시간 30분 편성이니까 끝나고 딱 맞물리네요.”

“진짜 PD님 발상이 좋으신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대?”

음, 내가 생각해도 좋은 아이디어긴 했다.

회의에서 작가들도 감탄했으니까.

“PD가 원래 아이디어로 먹고 사는 직업 아니겠습니까?”

내가 능청스레 말하자, 하민석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역시 PD님 재미있으시다니까.”

그는 다시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PD님, 나중에라도 제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제가 있는 스케줄 빼서라도 달려오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진심이에요.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편집은 완벽하게 하겠습니다.”

“네. 그러면 나중에 봬요.”

하민석은 출구를 향해 몇 걸음 걸어가다가 돌아서서 손을 전화기 모양으로 하더니.

“진짜 연락 주세요. 안 주시면 제가 귀찮게 찾아올 겁니다.”

“예. 전화할게요.”

“들어가세요!”

힘찬 인사와 함께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후아.”

모든 촬영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남은 건 홀로 미친 듯이 편집을 해서 좋은 장면을 연출하는 것뿐.

이제부터가 진짜 프로듀서의 영역이다.

* * *

후루룩.

딸칵, 딸칵.

편집실에 울리는 건 짜장면 면발을 흡입하는 소리와 키보드 버튼을 누르는 소리뿐.

파일럿이 1시간 30분짜리 방송이라고 한들, 혼자 편집을 하고 자막을 입히는 것도 모자라 티저 영상까지 만들어야 되는 걸 생각하면 일정은 절대 넉넉지 않았다.

무엇보다 하민석의 연습 기간 동안에 VJ만 붙여 두며 담았던 영상이 촬영 시간이 굉장히 길기에 그걸 다 보고 편집하려면 소모되는 시간이 어마어마했으니까.

게다가 나의 입봉작이자, 홀로 제작하는 첫 프로그램이기에 메인 연출로서 나름대로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무게감도 적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나날이 사투였다.

홍사은을 포함한 작가진과 NS미디어의 담당 팀장이 언제나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고는 했지만, 내가 원하는 연출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직접 해야만 했으니 의지를 할 수도 없었고.

지이잉-.

한창 편집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 어윤중 팀장

편집하던 영상을 멈춰 두고 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네, 팀장님.”

-어, 강 PD. 밥 먹었어? 안 먹었으면 나랑 같이 먹지.

“죄송합니다. 지금 먹고 있습니다.”

-편집실에서?

“예. 짜장면 시켰습니다.”

-아이고, 편집실에서 먹으면 건강 상한다니까.

“괜찮습니다. 식사 때문에 전화하신 거예요?”

-그것도 그렇고 티저 일정 알려 주려고.

“아, 정해졌습니까?”

-어. 일단 MBS에서는 국룰대로 가 달라고 하더라.

국룰.

보편적인 규칙을 뜻하는 ‘국민 룰’의 줄임말.

파일럿의 본편이 방송되기 전에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티저 트레일러의 영상은 4일 전과 8일 전에 올리는 게 이 바닥의 국룰이다.

나름대로 공평한 홍보를 통해서 정당한 시청률 경쟁을 하자는 것이지.

“PBC랑 KTS는요?”

-그쪽도 다 4일 전, 8일 전으로 결정했다고 하네.

“다행이네요.”

티저 영상을 더 만들어야 했다면,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몰랐는데 천만다행이다.

“마감일은요?”

-티저 영상은 당일 오전 9시까지만 보내 주면 되고, 본편 마감일은 2월 9일.

“빡세네요.”

-설 연휴가 끼어 있으니까. 힘들면 내가 편집 좀 도와줘?

“아닙니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래. 그러면 편집 잘하고.

“알겠습니다.”

* * *

2월 2일.

1차 티저가 올라가기 하루 전에 영상 제작을 마무리했다.

5분이 채 안 되는 짧은 플레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한 내용이었다.

최근 티저 트레일러 영상의 트렌드는 본편에서의 재미있는 핵심 부분을 빠른 템포로 넘어가며 살짝 살짝 보여 주고 궁금함을 자아내는 것.

그러나 대세를 따를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갱생 예능은 기존의 대세 프로그램들과 궤를 달리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컴백 프로젝트’에는 흔한 예능인이 아니라, 발라드의 황제 하민석이 있기도 했고.

그렇기에 남들과는 차이가 있는 티저 영상을 제작했다.

때로는 일부를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숨김없이 다 보여 주는 것으로 시선을 사로잡아 끝까지 따라오게 만들 수 있는 법.

그래서 1차 티저의 핵심 내용은 하민석의 게릴라 콘서트였다.

그중에서도 내 심장에 전율을 흐르게 했던 바로 그 장면.

신청곡을 받아서 무반주로 내질러 버리는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담아 버렸다.

화려한 편집 기법을 사용하거나 구태여 미사여구를 덧붙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건 사족이 될 테니까.

마음 같아서는 버스킹에서의 5단 고음을 넣고 싶었지만, 이미 인터넷에 퍼질 대로 퍼진 만큼 그건 티저로 쓸 수 없었다.

오히려 인터넷에 관심이 없는 시청자들을 위해 본편에서 넣기로 결정했으니까.

“어때요, 괜찮은 것 같아요?”

홍사은 작가는 티저 영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다시 봐도 전율이 흐르네요.”

NS미디어의 팀장 어윤중은 넋이 빠진 채로 보다가 문득 마이크가 잡고 싶어졌는지.

“……노래방 갈래?”

물론, 단박에 거절했다.

“싫어요.”

어윤중 팀장은 다시금 동영상을 재생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이거 보면 MBS에서도 자지러지겠는데?”

“괜찮죠?”

“괜찮은 수준이 아니야. 한 번 재생하면 생각 없이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티저라니까.”

그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새삼스럽게 말했다.

“내가 강 PD 데려온 게 신의 한 수라니까.”

“이제 아셨어요?”

내가 뻔뻔하게 답하자, 어윤중 팀장이 받아쳤다.

“실수인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끌끌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추가로 수정할 건 없죠?”

“어. 지금 이대로가 딱 좋아.”

“저도 동감이에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다른 작가들한테도 한번 돌려 볼게요.”

“제가 조금 전에 단톡방에 올렸었는데.”

홍사은 작가는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더니 말을 이었다.

“다른 작가들도 똑같은 의견인 것 같아요. 지금 감탄하고 난리 났어요.”

“그래요?”

메신저에서는 티저 영상에 대한 칭찬이 줄을 잇고 있었다.

“그러면 이대로 가는 걸로 하죠.”

“그래. 그러면 MBS에 파일 전송해.”

“알겠습니다.”

그때, 어윤중 팀장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잠깐만. 홍보팀이네.”

그는 멈춰 서서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순간, 어윤중 팀장의 미간이 세게 찌푸려졌다.

“뭐?”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은데.

“이런 양아치 새끼들이…… 일단 알았어. 끊어.”

그는 휴대폰을 내리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강 PD. 지금 PBC에서 뒤통수 쳤는데?”

“무슨 일입니까?”

“이 새끼들 벌써 티저 올렸대. 우리 조금 전에 기습적으로 공개했나 봐. KTS에서도 부랴부랴 따라서 티저 올렸다네.”

우형민 CP 이 자식.

티저 일정까지 같이 합의를 봐 놓고 뒤통수라니.

SNS에서 하민석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올라오다 보니, 똥줄이 탄 모양이다.

홍사은 작가도 개탄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제대로 승부 보려니까 쫄렸나 보네요.”

“오늘 올렸다는 건 페어플레이 안 하겠다는 소리지. 2차 티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분명 3차 혹은 4차 영상까지 올릴 거야.”

어윤중 팀장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조급하게 물었다.

“어떡할래, 강 PD. 우리도 따라 가?”

나는 냉정하게 머리를 가라앉혔다.

“일단 그놈들 티저 영상부터 확인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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