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89화 (90/601)

89화 태풍이 몰아쳐도 흔들리지만 않으면 (3)

-해당 좌석은 이미 예약되었습니다.

“팔리는 속도가 장난이 아닌데요?”

우리는 모니터 앞에 모여앉아 티켓 예매 사이트를 확인하고 있었다.

페이지를 새로 고침 할 때마다 좌석 수가 줄어드는 게 실시간으로 보일 정도.

“이거 잘되고 있는 거 맞지?”

“그럼요. 지금 서버에 과부하까지 오는 것 같은데요?”

과장이 아니었다.

예매 사이트 자체에 렉이 엄청나게 걸리고 있는 수준.

막내 작가 하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이거 반짝이고 확 뒷심 빠지는 거 아니겠죠?”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죠.”

이수정 PD는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콘서트 티켓 예매라는 게 원래 기대하는 팬들이 쫙 몰려서 사는지라, 오픈하고 나서 30분이 피크거든요. 그 뒤로는 시들시들하고.”

맞는 말이다.

예매 시작부터 30분 간 팔린 티켓과 그 이후부터 콘서트 시작 전까지 팔린 티켓 양이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니까.

결국 앞으로의 30분이 승부처라는 것이지.

지금 당장은 사람이 몰릴 수도 있지만, 언제 썰물처럼 사람이 빠질지 모른다.

“30분 안에 4천 석만 팔리면, 매진도 가능할 수 있어요.”

“그것까진 바라지도 않아.”

나는 얼굴을 쓸며 어렵게 말했다.

“30분에 2,500석만 팔리면 돼. 그러면 만족이야.”

“하긴, 우리는 TV 효과로 더 팔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5천석에 집착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게 이번 콘서트에 대한 손익분기점이니까.

PPL과 광고로 충당하긴 했어도, 콘서트 규모를 너무 크게 잡은 바람에 쏟아 부은 제작비가 만만치 않았다.

시청률이 높은 만큼, 받는 기대도 크기에 무대 감독이나 연출, 특수 효과를 최고급으로 준비했고 그것도 모자라 깜짝 신곡까지 준비한 걸 생각하면 쓴 돈이 어마어마하니까.

물론, ‘컴백 프로젝트’의 시즌 전체인 12화를 놓고 생각하면, 콘서트의 예매율이 미진하여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그간 광고가 전부 완판이었기에 방송사에서는 크게 이득인 건 맞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콘서트까지 완벽하게 성공시키고 싶었다.

“지금 얼마나 팔렸어?”

“잠깐만요.”

마우스를 쥐고 있던 작가는 다시금 새로 고침을 했다.

“예매 가능한 좌석을 보면 될 거예요. 근데 렉이 조금 걸리네요.”

티켓 예매를 시작한 지 20분이 지났으면 풀릴 법도 한데,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는 건 청신호일 터.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바랐다.

잠시 후, 모니터에 티켓 예매창이 열렸고, 작가가 예매 버튼을 누르자 하나의 팝업창이 떠올랐다.

-예매 가능한 티켓이 없습니다.

일순 정적이 흘렀다.

오현민 PD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이거 다 팔린 거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쥐어졌다.

“강 작가님, 다시 눌러 봐요.”

그러나 또다시 떠오르는 똑같은 창.

-예매 가능한 티켓이 없습니다.

“우와앗!”

김시원 작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녀의 뒤를 이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매진이다!”

“매진이에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확실히 콘서트의 좌석은 모두 예매가 된 상태.

무려 20분 만에 매진이다.

“PD님 우리 대박 났는데요?”

“제작비를 걱정할 게 아니라, 축하 파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되겠어요!”

내 입가엔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이 정도 기세라면, 콘서트는 물론이고 콘서트를 촬영한 회차까지 흥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면 자연스레 ‘컴백 프로젝트’의 시청률도 절정으로 치솟는다.

정말 20%의 시청률이 가능할지도.

이거 진짜 대박 났는데?

***

“몇 명이라고?”

“8천 명입니다.”

“휘유!”

황정무는 크게 숨을 내쉬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건 진짜 오랜만인데?”

서울 올림픽공원의 콘서트홀 대기실.

나는 미리 도착한 출연진들과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황 선생님은 많은 수 앞에 서는 일이 드물겠어요.”

“그렇지. 스튜디오 촬영해 봤자 방청객 100명, 200명 있으면 많은 거니까. 사람 많은 곳이라고 해 봐야 시상식 정도?”

“그래서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

“완전 좋지.”

그는 소파에 팔을 걸치며 편하게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날씨도 좋잖아? 어제까지만 해도 날씨가 꾸물꾸물거려서 비 올까 봐 걱정했는데 완전 화창하네.”

“예. 태풍이 중국 쪽으로 꺾었다고 하더라고요.”

황해로 진입하던 태풍이 새벽에 진로가 확 바뀌어 중국으로 향했다.

덕분에 살았지.

“하늘까지 우리 콘서트를 돕나 보네. 창식이 너도 편하게 여기 와서 앉아.”

“네, 선배님.”

황정무는 슬쩍 옆에 있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강 PD, 지금 메이킹 필름 돌아가고 있는 거지?”

“예.”

나는 씨익 웃으며 들고 온 홍삼 음료를 건넸다.

“이야기하시면서 자연스레 들이켜 주세요.”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라벨이 덕지덕지 붙은 유리병을 들어올렸다.

“이거 맛없지 않나?”

“에이, 선생님. 여기 콘서트홀 대관료 엄청 비싸요.”

“요즘 방송하기 힘들다니까.”

그는 장난스레 웃고는 능청스레 홍삼 음료를 들어 올리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시완이는 아까부터 휴대폰 보고 있네. 무슨 일 있어?”

앞부분은 잘리고 황정무가 음료를 마시는 부분만 자연스럽게 편집되어 나갈 것이다.

이게 PPL의 묘미지.

“아닙니다. 조금 이따가 동생이 오기로 했는데 서울에 처음 와 보거든요. 그래서 걱정이 되어가지고, 잘 오고 있나 해서요.”

최창식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에이, 요즘 애들 똑똑해. 요즘 어플도 잘되어 있어서 지하철도 알아서 잘 탄다니까. 우리보다 훨씬 더 나아.”

“하하, 그렇긴 한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다니까요.”

“아, 맞다. 시완이, 너 동생이랑 나이 차이 많이 난다고 했지?”

“예. 동생은 이제 19살이에요. 고3.”

“이야, 거의 딸뻘이네.”

김철승은 푸근하게 웃으며 박시완의 손목을 잡아 소파에 앉혔다.

“걱정하지 말고 쉬어. 어차피 6시 콘서트면 아직 서울도 안 왔을 거 아니야?”

“예. 학교 오전 수업만 들은 뒤에 조퇴하고 바로 버스 타서 올라오고 있답니다.”

“그래. 오면 연락하겠지. 정 안 되면 매니저 보내면 되고.”

박시완은 대답 대신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성격을 보면, 아무리 급해도 매니저한테 시키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더 걱정되는 거겠지.

“그나저나 강 PD.”

황정무는 홍삼 음료를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나를 불렀다.

“오늘 게스트로 누가 온다고?”

“하이걸즈입니다. 요즘 핫한 아이돌이에요.”

“오, 알지. 하이걸즈 그 친구들 얼마 전에 음원 차트 1위도 하지 않았나?”

“예, 맞습니다.”

작가들과의 오랜 고민 끝에 정한 게스트는 ‘하이걸즈’였다.

요새 한국에서 가장 핫한 아이돌이기도 하고, 해외에서도 한창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K-Pop 스타.

방송 초창기에 그녀들이 ‘컴백 프로젝트’의 곡을 커버한 영상이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그걸 계기로 섭외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아이돌들과 달리, 3040세대들에게 인기가 많기에 컴백 프로젝트의 시청자 층과 겹친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였고.

발표한 모든 곡을 직접 작사 작곡을 하는 등 여타 다른 아이돌보다도 훨씬 우월한 음악성을 갖고 있다는 게 프로그램과 잘 어울렸으니까.

그쪽에서는 당연히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기에 본인들도 ‘불후’ 밴드의 팬이라며 고민도 않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제 슬슬 연락 올 때가 됐는데.”

현재 시각은 오전 10시.

콘서트 시작은 오후 6시라지만, 리허설이나 준비 과정을 생각하면 넉넉하게 12시까지는 와야 한다.

나는 오현민 PD를 불렀다.

“현민아, 하이걸즈한테 연락 안 왔어?”

“비행기가 10시 25분 도착 예정이라서 아직 안 했습니다. 시간 되면 바로 전화해 볼게요.”

“그래.”

지이잉.

말을 마치기 무섭게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의 발신인.

나는 대기실을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예, 강준수입니다.”

-안녕하세요, PD님. 저 위스콘 크리에이티브의 엄태휘 팀장입니다.

위스콘이라면, 하이걸즈가 소속된 회사.

매니저도 아니고, 팀장급이 갑자기 전화를?

뭔가 이상하다.

“혹시 무슨 일 생겼습니까?”

-예,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한국으로 오던 태풍이 새벽에 갑자기 방향을 틀어 중국으로 갔잖습니까?

“설마 하이걸즈가…….”

중국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네. 이 친구들이 지금 상해에 있는데 그쪽에서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있답니다.

이런 젠장.

어쩐지 일이 잘 풀리나 싶더라니.

“그러면 진즉에 연락을 하셨어야죠.”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비행기 뜰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이렇게 늦게 연락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오늘 당장 콘서트 몇 시간도 안 남았는데!”

-이게 연착이 되는 정도로 생각을 했었는데, 아예 결항이 되어 버렸더라고요. 정말 죄송합니다.

머리가 지끈지끈거려 왔다.

“그래서 지금 하이걸즈가 상해에 묶여서 못 온다는 겁니까?”

-말씀드리기 죄송합니다만, 그럴 것 같습니다.

엄태휘 팀장은 송구스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최대한 빨리 오려고 해 볼 텐데, 아무래도 콘서트 시간 내로 도착하긴 힘들어 보여서…….

아무리 하이걸즈가 공연 경력이 많은 프로라고 해도, 대학교 행사 같은 곳이 아니라 무려 8천석의 콘서트다. 게다가 ‘컴백 프로젝트’의 녹화까지 병행될 예정이고.

어중간하게 도착해서 무대에 오르는 건, 아예 없느니만 못한다.

-다시 한번 죄송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PD님.

“지금 죄송하다는 말로 해결될 게 아닙니다. 당장 콘서트를 무를 수도 없잖아요.”

엄태휘 팀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 위스콘에서 다른 가수를 추천해 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누구요?”

-저희 이번에 한창 뜨고 있는 ‘프롬러브’라는 걸그룹이 있거든요? 이 친구들이 하이걸즈의 동생 그룹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력파거든요. 당연히 하이걸즈 출연료는 반납하고 이 친구들 페이는 무료로…….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됐습니다.”

급의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난다.

어떤 팀인지는 알지만, 그들의 음악성은 하이걸즈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혹시 유아이 못 주십니까?”

그녀라면 충분히 하이걸즈를 커버할 수 있다. 아니, 그 이상도 가능할 터.

“두어 곡만 불러도 됩니다. 페이는 평소보다 더 드릴 수 있고요.”

-페이는 저희 측에서 부담해서라도 보내드리고 싶은데 그 친구가 지금 뮤직비디오 찍는다고 해외에 나가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하이걸즈 비행 일정 변경되는 대로 연락 주세요.”

-예,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몇 번이고 사죄의 말을 더 건넨 뒤에야 통화를 종료했다.

열이 뻗쳤지만, 그렇다고 하이걸즈를 욕할 수는 없었다.

비행기 결항에 대한 소식을 늦게 전한 건 잘못되었지만, 태풍이 와서 비행기가 결항된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자연재해를 가지고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

일은 꼬여 가는데 누구를 탓할 수도 없으니 답답함과 화가 치솟았다.

나는 곧장 앞에 대기하고 있던 오현민 PD를 불렀다.

“오 PD.”

“예, 선배님.”

“콘서트 셋리스트 가져와 봐.”

그는 미리 준비해 있던 목록을 내게 건넸다.

내용을 확인하자 다시금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이번 공연에서 게스트의 역할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불후’ 밴드의 멤버들의 나이가 꽤 있는지라, 연속 공연이 불가능해서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잠깐의 쉬는 시간은 팬들과의 소통 혹은 미리 준비한 영상으로 때울 수 있지만, 환복을 하며 2부로 넘어가는 시간은 꽤 길다.

영상만으로 커버하기엔 너무나도 지루하고 길다는 것.

어지간해서는 게스트 없이 진행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콘서트에서는 게스트가 꼭 필요하다.

“젠장할.”

“혹시 무슨 일 생겼습니까?”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지금 작가들 전부 모이라고 해. 긴급회의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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