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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프로듀서-162화 (163/601)

162화 손에 넣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아주 탐스럽게 (1)

“……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 계획을 들은 신율희 작가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와,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네. 드라마에서 흔히 쓰는 방법은 아니지만, 영화 쪽에서는 이따금씩 사용되는 마케팅 방법이거든요.”

“그러면 저는 PD님만 믿고 있을게요.”

그녀는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계약서는 준비되는 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마 늦어도 모레까지는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신율희 작가는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러면 저는 그동안 어떤 걸 하면 될까요?”

“작가님께서는 원고 집필에만 힘써 주시면 충분합니다.”

“네. 저번에 보내 드린 원고는 확인하셨죠?”

“예. 이후 원고도 이제 쭉쭉 써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번에 말씀하시기로는, 지금은 뼈대만 잡아 두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고 집필 방향을 결정하자고 하시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CBN에서 방영을 하기로 생각했을 때는 그랬습니다만, CBN과 결렬된 이상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요.”

방송국의 영향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누군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작가와 PD의 재량껏 대본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

“드라마 자체를 사전 제작하는 건 아니더라도, 대본은 전부 나온 상태에서 크랭크인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작품을 진행하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크리티컬한 부분을 수정하고, PPL과 출연 배우에 따라 세부 내용만 조절하는 정도로요.”

“아, 그러면 저야 훨씬 좋죠.”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완결까지의 전체적인 플롯은 짜여 있으니, 대본으로 그려 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신율희 작가의 건강을 생각해서도 이 방법이 베스트다.

“그러면 원고는 완성되는 대로 저한테 보내 주시면 됩니다. 사소한 거라도 괜찮으니, 토의할 게 있으면 편하게 연락주세요.”

“알겠습니다, PD님!”

* * *

“진짜 괜찮겠어?”

어윤중 팀장은 걱정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편성도 받지 않고 제작 준비에 들어가면, 위험 부담이 진짜 커.”

그의 심려는 충분히 이해되었다.

유명 작가나 유명 PD라면 모를까, 신인 작가에 드라마에서는 첫 입봉 PD의 조합으로 방송국도 정해지지 않은 채 제작이 들어간다는 건, 도박 수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확고했다.

“어차피 CBN 끼고 극악의 조건을 받으면서 PD 수명까지 걸 바에는, 이게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CBN에서 내게 편성을 해 준다고는 말했어도, 조건을 살펴보면 CBN 드라마국 본부장이 말한 진의는 ‘엎어라’였으니까.

그런 환경에서 제작에 들어가 봤자, 온갖 요소에 태클이 걸릴 게 뻔했다.

제작비부터 시작해서 대본 관여, 출연진 캐스팅에 대한 간섭 등 말로 설명할 정도가 아니지.

그러나 CBN 편성이 아니라, CN엔터의 제작으로 바꾸게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같은 CN그룹 소속이라고는 하나, 회사 자체는 독립되어 돌아가는 만큼 PD인 내가 할 수 있는 권한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그게 외부 프로덕션의 가장 큰 장점이니까.

여차하는 경우엔 굳이 CBN에서 방송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럴 만한 명분은 이미 얻었기도 하다.

물론, ‘편성을 받지 못한 드라마’라는 단점이 생기지만, 어차피 내가 세운 계획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걸림돌도 아니다.

오히려 족쇄를 푸는 것이지.

“그래. 강 PD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팀장님.”

“감사는 무슨,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는데.”

그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하려고?”

어윤중 팀장은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CN엔터 제작으로 끌고 오더라도, 강 PD가 원하는 만큼까지는 힘들 텐데.”

우리의 전신이었던 NS미디어 자체가 드라마보다는 예능에 치중했던 프로덕션이었던 건 나 또한 알고 있는 사실.

드라마 미니시리즈를 제작할 수 있을 만한 제작비 조달이 불가능하다.

회사에서 제작비를 끌어오려면 본사 CN그룹에 요청해야 하는데, 그러면 투자사와 광고사를 데려오면 다시 CBN을 끼게 되니, 결국 원상복귀일 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말씀드리려고 했었는데.”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드라마와 관련된 전권을 제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예상치 못했는지, 그는 눈을 끔뻑였다.

“전권이라는 건…….”

“드라마 내부 및 외부 환경에 관한 모든 권한 말입니다.”

PPL부터 시작해서 가상 광고, 자막 바, 기업 프로모션과 같은 기본적인 광고.

저작권 사용 및 VOD, IP TV, 리메이크권 등의 사업권.

그리고 OST 제작, 투자 및 유통에 대한 독점권과 국내 방영권, 해외 전송권 등.

드라마와 관련된 모든 권리를 내가 갖겠다는 뜻이다.

사익을 추구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직접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해서는 저 정도 권한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투자사 및 광고사와 협상을 할 수 있을 테니까.

CBN에서 편성을 받았다면 절대 불가능할 테지만, 프로덕션인 CN엔터로 가져온다면 가능하다.

“흐으음…….”

어윤중 팀장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이사님과 이야기를 해 봐야 할 테지만, 강 PD가 직접 제작비를 조달할 생각이니 가능할 거야. 이건 내가 책임지고 이사님 설득하도록 해 볼게.”

예스!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일단 첫 단추는 잘 꿰어졌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쉽지 않을 거야. 알지?”

“예,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래. 강 PD라면 내가 굳이 조언하지 않아도 잘할 거라고 믿어.”

그는 신뢰감 짙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CBN에는 이야기했고?”

“아직입니다. 어차피 그쪽 본부장님이 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 둬서 오히려 반길 겁니다.”

애초에 그쪽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기에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니까.

“그래. 그러면 최문석 본부장한테는 내가 전달할게. 어차피 오늘 CBN 들어갈 일이 있거든.”

“예. 감사합니다.”

나는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에서 나가려는 찰나, 어윤중 팀장이 다시금 나를 불렀다.

“준수야.”

직급이 아닌, 이름으로.

“예, 팀장님.”

그는 인자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어디 한번 맘껏 날뛰어 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서포트해 줄 테니까.”

나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 * *

“오랜만이에요, 선배님.”

“어, 팀장 왔어?”

최문석 본부장은 반갑게 어윤중을 맞이했다.

대학교 선후배 시절부터 20년 넘게 알고 지낸 만큼, 둘은 꽤나 가까운 사이였다. 친하다기보다는 서슴없는 사이랄까.

“연락도 없이 웬 일이야?”

“선배님 보고 싶어서 왔죠.”

“말은 잘해.”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소파로 향했다.

“일은 잘되고?”

“늘 똑같죠, 뭐. 특별할 게 있나요.”

“그렇지.”

최문석 본부장은 블랙커피 한 잔을 건네며 물었다.

“참, 저번 달에 네 후배 녀석 드라마 한다고 왔었잖아. 그거 어떻게 됐어?”

“안 그래도 그 녀석 때문에 왔어요.”

어윤중 팀장은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강 PD한테 왜 이렇게 빡빡하게 구셨어요?”

“그 녀석이 그러디?”

“아니요. 좋게 말해 주셨다고는 하는데, 대충 상황 보면 알죠.”

최문석 본부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잖아. 팩트는 팩트니까. 업무에서 위험한 일은 지양해야지.”

“그렇긴 해도, 제 얼굴 봐서라도 잘해 주시면 좋은데. 강준수 PD 진짜 능력 있거든요.”

“그거야 예능 이야기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쪽에서는 몰라도 드라마는 어떻게 될지 몰라. 드라마는 작가놀음이라는 말도 있잖아.”

“에이, 그래도 PD 역할이 크죠.”

“그건 그렇고, 네가 직접 온 거 보면 그만둔다고 했나 보네?”

“예, 맞아요.”

“잘됐네. 어차피 작가가 많이 아프다며. 너무 위험하다니까. 잘 엎었어.”

“아니요. 자체 제작하기로 했어요.”

최문석 본부장은 놀란 듯이 눈썹을 들썩였다.

“CN엔터 제작하겠다고?”

“예.”

“그게 가능하겠어? 너도 알 거 아니야, 그 담당 작가 암센터에 입원 중인 거.”

“그래도 왠지 가능할 것 같아요.”

어윤중 팀장은 강준수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그 친구, 한번 한다면 어떻게든 성공시키거든요.”

“에이, 그거야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없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저는 한번 믿어 보려고요. 지금까지 늘 잘해 왔으니까.”

“그래서 네가 고생하는 거야.”

최문석 본부장은 혀를 끌끌 찼다.

“그런 리스크 부담하지 말고, 안전하게 갔으면 너도 지금 MBS에 남아서 한 자리 했을 거 아니야?”

어윤중 팀장은 대답 대신 씁쓸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최문석 본부장은 말해 놓고도 조금 미안함을 느꼈는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여하튼 이번 드라마는 너무 무리라니까.”

“일단 CBN 편성에서는 지워 주셔도 될 것 같아요.”

“그래. 알았다. 이래 놓고 나중에 다시 편성해 달라고 하지 마.”

“선배님이야 말로, 나중에 저희보고 아쉬운 소리 하시지 마세요.”

최문석 본부장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라니까요.”

“그래. 한번 지켜보자고.”

* * *

‘오늘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닐지라도’.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기로 확정을 짓긴 했지만, 지금 당장 투자사나 광고사 혹은 편성을 해 줄 방송사를 만날 생각은 없었다.

신율희 작가의 몸 상태와 드라마에서의 입봉 PD인 나의 조합을 보면,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기 힘드니까.

사실, 내가 반대의 입장이 되었어도 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사업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기에 내가 첫 번째 목표로 삼는 건 그들이 아니다.

대중.

국민들 그리고 시청자들이다.

사업가와 그들은 다르니까.

대중들이 우매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의 기준은 사업가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많은 잣대 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이름값’.

드라마의 제작비를 조달할 때 ‘강준수’라는 이름의 힘은 크지 않다.

그러나 대중들이 느끼는 강준수는 제작하는 족족 히트를 치는 ‘스타 PD’ 혹은 ‘히트 프로그램 메이커’다.

내 입으로 이야기하긴 부끄럽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런 내가 드라마를 제작한다고 말한다?

이는 대중들에게 ‘드라마 입봉 PD 강준수’가 아니라, ‘히트 프로그램 메이커의 신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즉 성공으로 이어질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계획에서 첫 순서를 바로 ‘크라우드 펀딩’으로 정했다.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

드라마보다는 영화에서 주로 사용된다.

실제로 ‘나는 고양이예요’,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귀향길’, ‘판도라의 상상’ 등의 영화가 펀딩을 통해 개봉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는 대부분의 영화는 실제로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해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내가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이유는 제작비 조달보다도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라는 것.

16부작 미니 시리즈의 제작 비용은 평균 80억 남짓.

이 엄청난 액수를 전부 펀딩을 통해 조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적당한 목표 금액을 잡고, 펀딩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게 주된 목표.

영화관에 봐야만 볼 수 있는 영화와 달리, 집에서 TV만 틀어도 볼 수 있는 드라마라는 콘텐츠는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 데다가.

그것도 대중들에게 스타 PD로 알려진 ‘강준수’가 펀딩을 공개적으로 시작한다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터.

물론, 전문가들이 보기엔 그 액수로 드라마를 제작하기엔 턱도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흐름’이라는 것의 영향력 또한 알고 있다.

대중들이 있는 곳에는 당연히 기업이 따라간다.

즉, 대중들이 내가 제작하는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면.

자연히 광고사들은 이쪽으로 시선을 돌릴 테고.

광고사가 붙으면 돈 냄새를 맡은 투자사들도 붙게 된다.

이는 다시금 방송국들이 나의 드라마에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

다시 말해 펀딩은 ‘기폭제’ 역할인 것이지.

단순히 이게 전부가 아니다.

펀딩 이후에 추가적으로 제작비를 모을 구체적인 계획도 완벽하게 짜 두었으니까.

안 되면 되게 한다는 내 신념대로.

방송국이 관심이 없다면, 손에 넣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아주 탐스러운 열매를 피워내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내게 관심이 생길 테니까.

강준수기에.

강준수만이 할 수 있는 계획.

나는 신율희 작가의 대본으로 꽃을 피워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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