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166화 (167/601)

166화 손에 넣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아주 탐스럽게 (5)

“잭슨 킴이라…….”

불길한 예감은 역시나 들어맞았다.

잭슨 킴을 주연으로 하는 조건으로 편당 1억 원.

16부작이니, 16억 원이다.

크라우드 펀딩과 앞서 논의한 판권 금액을 합친 것의 50%를 넘어가는 엄청난 액수.

잭슨 킴과 소울코어가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긴 하나, 드라마에서 그들의 몸값은 높지 않다.

즉 출연료를 주고도 엄청나게 남는 장사라는 것이지.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잭슨 킴의 연기 경력은 작년 말에 공개된 웹드라마 한 편.

거기서 주연을 맡았다고는 하나, 웹드라마는 아직까지 한계가 명확한 시장이다.

그의 연기력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이번 드라마의 콘셉트와 그는 맞지 않다는 것.

게다가 이미 주연들은 신율희 작가와 함께 논의하며 점찍어 둔 배우가 따로 있었다.

제작비 지원은 굉장히 메리트 있는 조건이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벌써부터 배역으로 휘둘리고 싶진 않았으니까.

PD로서의 권한만큼은 지켜내야 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저희 쪽에서 이미 주연 자리를 두고 논의되고 있는 배우가 있어서요.”

“아, 그런가요?”

정문후 팀장은 고집을 부리지 않고 바로 수긍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물론, 거절하긴 했어도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사실이었다.

“엘리샤가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괜찮습니다. 엘리샤 공주님께서 잭슨 킴을 좋아한다고는 하시지만, 그렇다고 아집을 부리시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공주라고는 해도, 재벌가 영애인지라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건 철저히 알고 있는 모양.

그렇다면 다행이다.

정문후 팀장은 스윽 목소리를 낮췄다.

“사실, 잭슨 킴이 오는 것보다는 다른 배우가 들어오는 게 흥행에도 더 도움이 되잖습니까?”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을 보탰다.

“그리고 드라마가 흥행을 해야, 저희 JM컬처에서도 이득이니까요.”

“하하하, 그건 그렇죠.”

“엘리샤 공주님의 변덕으로 투자 철회가 될 리는 없으니까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만 믿도록 하죠.”

“그러면 비즈니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었다.

“한 잔 할까요? 여기 청주에 딱새우 회 한 점하면, 정말 녹습니다.”

“좋지요.”

* * *

<‘오늘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닐지라도’ 크라우드 펀딩 성공…… 강준수 PD의 차기 행보는?>

<드라마에서 흔하지 않은 크라우드 펀딩, 그것에 대해 알아본다.>

<혜성 같이 등장한 ‘오늘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닐지라도’의 작가…… 알고 보니, PBC 공모전 출신?>

<크라우드 펀딩으로 벌써 10억! 안방극장에 톱스타 등장할 수 있을까?>

10억 원의 크라우드 펀딩이 성공하자, 인터넷엔 줄줄이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존에 식었던 대중들의 관심도 다시금 쏠리고 있는 상태.

이럴 때야말로 더 치고 나가야 한다.

“예, 최주호 기자님. 지금 기사 올려 주시면 됩니다.”

믿고 가는 영혼의 파트너, 최주호에게 단독 기사를 넘겼다.

지난번 홍보로 받은 답례.

팩트체커가 개국한 이후, 내가 처음으로 넘긴 단독 기사였다.

이 정도면 은혜는 갚았지?

<[단독!] 강준수 PD, ‘오늘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닐지라도’ JM컬처로부터 20억 원 투자 유치 성공!>

-‘오늘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닐지라도’(이하 오주당) 작품에 대하여 JM컬처가 2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JM컬처는 강준수 PD가 속한 CN미디어와 해외 판권 및 간접광고에 대한 비용으로 총 20억 원의 제작비를 지급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크라우드 펀딩까지 합치면 현재까지 제작비는 이미 30억 원에 달했다.

한 전문가는 공개되지 않은 계약 및 앞으로 추가될 투자비를 생각하면,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예상했다.

CN미디어는 예능에서 활약하던 강준수 PD가 드라마로의 화려한 신고식을 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오주당’이 방영될 채널은 CBN이 유력해 보이지만, 아직까지 방송국과 접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기에 더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예상되는 제작비를 생각하면 초호화 캐스팅이 예상되는 만큼, 많은 방송국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엄청난 제작비에 강준수 PD의 인맥과 성공 가도를 생각하면, 대중들은 ‘오주당’의 화려한 출연진 라인업을 기대하고 있다.

-팩트체커 최주호 기자

단위가 단위인지라, 기대감을 갖는 댓글들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와, 미친 크라우드 펀딩 대박 났네.

-30억이면 개쩌는 거 아님?

-└아님. 미니시리즈면 저 정도도 부족함. 최소 50억은 있어야 되고, 잘 나가는 건 80억 정도? 근데 100억 넘게 모을 듯.

-출연진 누구냐? 알려진 거 없냐?

-조연은 공개 오디션 한다고 하고, 주연은 이야기 없었음.

-재밌겠다ㅋㅋㅋ 제목부터 감성 미쳤잖아.

-└나도 제목보고 띠용했다. 진짜 벌써부터 달동네에서 별 쏟아지는 밤에 옥탑방 모습이 그려진다니까?

-‘오주당’ 어감 보소. 입에 딱 붙네ㅋㅋㅋㅋ

-혹시 한시아 나오는 거 아님? 강준수랑 친하잖아.

-아, 근데 한시아는 솔직히 ‘초호화’까지는 아니지.

-그건 그렇지.

-유나희 나오면 안 되나?

-└유나희는 제목부터 감성에서 에바요.

-└우리 여신님은 변신도 잘해서 나올 수 있거든요?

-아, 누가 나올지 열라 기대되네.

대중들의 관심이 쏠리는 데다가.

최근 가장 핫한 JM컬처에서 통 크게 20억 원을 투자했다는 기사가 뜨자, 각종 광고사와 기업에서 우리 CN미디어로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JM컬처가 시드 투자자로 들어오니, 다들 믿고 들어오고 싶어 하는 눈치.

“우선은 수락하지 말고 제안받은 내용들 전부 정리해 두세요.”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바로 수락하면 안 된다.

조금은 애를 태워야 더 맛있게 보이는 법이니까.

미안하지만, 한 발 늦으신 분들은 잠깐 기다리고 있으라고.

* * *

“일단 지금까지 들어온 PPL은 이 정도예요.”

“엄청 많은데요?”

신율희 작가는 리스트를 보고 연신 눈을 끔뻑거렸다.

“이걸 다 해야 돼요?”

“아니요. 빨간색 친 부분은 JM컬처와 이야기해서 확정 지은 부분이니까 넣어 주셔야 되는데, 그 외에는 아직 확정된 게 하나도 없어요. 리스트에서 대본에 잘 녹여서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싶은 것만 체크해서 알려 주시면 됩니다.”

“네. 그럴게요.”

“더 확정되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해 드린 사항들은 원고 쓰실 때 참고해 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PPL이란 게 그렇다.

보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없는 게 자연스럽고 좋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으면 제작비가 부족하기에 드라마 자체의 퀄리티가 떨어진다.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 적당한 수준으로 대본에 녹여낼 수 있는 정도의 PPL이라면, 시청자와 광고주 그리고 제작진까지 삼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기에 그런 광고들을 위주로 선정해야 했다.

그점에서 이런 조율 과정은 필수적이지.

“그리고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조연은 공개 오디션이라고 공고해 뒀어요. 대본은 2화까지 엔터에 쫙 돌렸고요.”

“와, 벌써부터 기대되는데요?”

신율희 작가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거죠? 막 테이블에 PD님, 캐스팅 감독님, 작가 앉아 있고 옆에 카메라 딱 있고, 정면에서는 참가자들 연기하고…….”

“예, 맞아요.”

“재미있겠다.”

오디션 자체는 문제될 게 없었다. 다만, 걱정되는 건.

“그런데 오실 수 있겠어요?”

신율희 작가의 몸 상태.

최근에 건강이 나빠져서 조만간 방사선 치료를 시작해야 할 정도라고 들었으니까.

“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여기서 원격으로 볼게요. 어차피 크라우드 펀딩 투자자들한테 실시간 스트리밍도 하잖아요? 그걸로 보면 되죠.”

“오디션 기대 많이 하셨는데 아쉽네요.”

“어쩔 수 없죠.”

신율희 작가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씩씩하게 말했다.

“그래도 대본 리딩할 때는 현장 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무리는 하지 마세요.”

“그럼요. 제 몸은 제가 제일 잘 알아요.”

나는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단역들은 캐스팅 디렉터님이 찾아 주고 계세요. 꽤 능력 있으신 분으로 골랐거든요. 잘하실 거예요. 그리고 B팀 감독이 촬영장 헌팅하고 있는데 괜찮은 장소가 있더라고요. 조만간 사진 찍어서 보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주연 배역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미니시리즈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주인공들이다.

“주연들은 그때 말하셨던 인물 그대로인 거죠?”

“맞아요. 처음부터 그분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썼거든요.”

‘오주당’에서 주연은 총 세 명.

남자 주연 하나와 여자 주연 둘이다.

하나는 서브 여주인공, 다른 하나는 메인 히로인.

신율희 작가가 메인 히로인으로 마음에 찍어 둔 배우는 다름 아닌, ‘한시아’.

대본에서 그녀가 맡을 역할 자체는 확실히 한시아의 이미지와 어울렸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녀가 현재 영화 촬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

다음 주 정도면 촬영이 끝난다고는 하나, 오랜 촬영으로 인해 휴식도 해야 하고 개봉 시기와 겹치면 영화 홍보도 나가야 하는 만큼, 스케줄이 녹록치 않을 터.

“그래도 한번 이야기는 해 볼게요.”

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수락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진 않았다.

다른 작품도 아니고, 내 드라마니까.

다음 주에 크랭크업을 하게 되면, 한 번 만나서 슬쩍 이야기를 꺼내 볼 생각이다.

두 번째 히로인으로 찍어 둔 배우는 ‘유나희’.

드라마에서 그녀가 맡을 역할은 가수 지망생이었다.

실제로 가수인 그녀였기에 노래나 연기 모두 딱이었고.

남자 주인공의 마음을 훔치는 역할까지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녀가 ‘서브’라는 것.

“유나희가 찰떡이긴 한데, 서브 여주인공을 맡으려고 하진 않을 것 같아요.”

“그렇죠?”

신율희 작가는 울상을 지었다.

“맡아 주면 그림은 진짜 멋질 것 같은데.”

같은 주연이라고는 해도, 주인공과 이어지는 ‘메인’과 ‘서브’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

유나희 성격상, 메인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하는 건 당연지사.

게다가 최근 유나희가 출연했던 모든 작품에서 그녀는 모두 메인 여주인공이었던 걸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지.

굳이 유나희가 아니더라도, 그녀 급 정도 되는 인물들이면 서브는 당연히 고사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유나희는 어려울 것 같긴 해요.”

“다른 후보도 한번 고민해 볼게요.”

“네. 그래요.”

이러한 이유들로 한시아와 유나희의 섭외는 차치해 두고.

가장 중요한 건 다름 아닌, 남자 주인공이었다.

“박성현이면 진짜 어울릴 것 같긴 하네요.”

연기력과 대중성 그리고 해외 시장까지 모두 잡을 수 있는 배우다.

지금 대한민국 남배우 중 Top급 주가를 달리고 있는 인물.

2021년, MBS에서 방영했던 ‘사랑스런 그대의 밤’이 최고 시청률 18%로 대박을 내면서 국내에서도 그의 티어가 확 올랐고.

해당 드라마가 중국, 일본과 동남아에까지 수출되어 대박을 내면서 한류 스타덤에 올랐다.

덕분에 2022년 한 해 동안 해외에서 CF로 어마어마하게 외화를 쓸어 담았지.

게다가 그 기세를 몰아 작년 JBC 드라마에서 편당 1억 원의 출연료를 받으며 미니시리즈까지 했다.

시청률은 8.5%정도였지만, JBC가 종편이었기에 꽤나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지.

덕분에 그의 몸값은 지금 최고조를 달리고 있다.

이를 알기에 신율희 작가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박성현 감당 가능하시겠어요? 요즘 진짜 장난 아니라던데…….”

“대박 내려면 감당해 봐야죠.”

제작비가 어마어마하게 깨지긴 할 테지만, 연기력과 인기는 확실하기에 데려오기만 하면 후회는 없을 터.

“그리고 긍정적인 소식도 하나 접했어요.”

“오, 어떤 건데요?”

“최근 들어 박성현 씨가 차기 작품을 고른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요?”

“네. 그래서 저희 쪽 대본도 보내 뒀고, 미팅까지 잡아 뒀습니다.”

“대박!”

신율희 작가는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놀란 티를 냈다.

“물론, 아직까지는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했어요.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그래도 미팅을 잡았으면 가능성이 있다는 거잖아요. 언제 만나는 거예요?”

“다음 주입니다. 하지만 그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요.”

“해야 할 일이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성현 정도 되는 사람을 데려오려면.”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만나기 전에 총알부터 장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

“선배님, 지금까지 들어온 광고 문의 및 제안들 정리된 사항입니다.”

“나쁘지 않네.”

확실히 JM컬처가 물꼬를 터 놓은 덕분에 활로가 트였다.

국내 광고사들이 애타도록 결정을 미뤄 둔 덕분에 드라마의 주가는 점점 더 올라가고 있는 상태.

그래도 조금 더 무르익길 기다려야 했다.

자잘한 광고들에 눈이 멀다가는 큰 것을 놓칠 수 있으니까.

대어를 낚고 나면, 자연스레 나머지의 가치도 올라갈 터.

“수익 쉐어를 요하는 제안만 정리하면 얼마지?”

“총 13억입니다.”

특정 광고나 판권의 거래 없이 크라우드 펀딩과 같은 투자들.

“그 중에서 괜찮은 걸로 5억만 추려 둬.”

“알겠습니다.”

광고사가 제대로 붙으면, 수익 쉐어 투자는 더 받을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제작비는 총 35억.

하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박성현급의 배우는 편당 출연료가 1억을 넘어서니까.

그래도 일단 35억이면, 기본적으로 편당 2억 이상의 제작비는 확보된 상황.

미니시리즈 제작을 위한 최소한의 총알은 확보된 것이지.

다만, 이런 ‘최소’ 정도로 내가 만족할 사람은 아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쳤다.

“나 미팅 가야 되니까 시간 되면 알아서 퇴근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어디랑 미팅이셨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박성현을 아주 비싸게 사 줄 사람.”

우리 ‘오주당’의 판을 뻥튀기 시켜 줄 인물이다.

황이나 PD는 알아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투자자군요.”

“응.”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장사 잘하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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