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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프로듀서-177화 (178/601)

177화 손에 넣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아주 탐스럽게 (16)

“안녕하세요, 1번 안지웅입니다.”

180cm를 훌쩍 넘는 큰 키.

게다가 외모까지 꽤나 준수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프로필을 보니, HS엔터 소속이다.

본부장과 트러블이 있어서 다른 배우들은 넣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임은혜가 주연으로 들어왔다 보니, 어떻게든 자기네들 배우를 더 넣으려고 하는 모양.

하긴, 언론을 이용해서 싸우다가도 돈만 되면 서로 하하호호 웃으며 손을 잡는 게 방송계인데, 그 정도 트러블로 완전히 돌아설 리가 없지.

“1화 23신 갈게요.”

황이나 PD는 평소와 달리, 근엄한 목소리를 내며 눈을 빛냈다.

내가 이래서 황이나를 뽑았지.

평소엔 사근사근하니 친절하면서도.

일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프로페셔널하니까.

황이나 PD는 대본을 흘긋 보며 상대 배우역의 대사를 쳤다.

“내가 돈이 없는데 어떻게 갚아?”

“없으면 몸으로라도 갚든가.”

안지웅은 빠르게 배역에 몰입했다.

나쁘지 않은 발성.

표정 연기도 괜찮다.

3대 엔터 소속 배우답게 철저히 트레이닝을 받은 실력이 보인달까.

그러나 딱 그 정도였다.

정형화된 연기 스타일.

마스크는 괜찮았지만, 이 배역 특유의 치고 올라오는 송곳 같은 느낌이 살지 않았다.

“너희 부모님이 돈 먹고 도망갔으니, 네가 갚아야 할 것 아니야?”

그는 눈을 이글거리며 대사를 이었다.

“내가 자선 사업가인 줄 알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 아니야? 왜 내 돈 가져가서 너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데?”

황이나 PD는 대본을 넘기며 입을 열었다.

“예. 잘 봤습니다. 2화 45신 한 번 갈게요.”

오늘 오디션을 보는 배역은 악역이다.

‘오주당’에 등장하는 유일한 악역.

극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중간 중간 주인공들의 감정을 고조시키며 핵심 사건을 유발시켜 주는 역할이기에 작품 내에서 대사가 많지 않고 출연이 적음에도, 다른 조연들에 비해 비중은 훨씬 더 높은 배역.

그만큼 임팩트가 크기에 6개의 조연 배역 중에서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대본과 시놉시스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이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를 수가 없으니까.

물론, 그렇기에 우리의 기준도 굉장히 높이 잡아 뒀다.

그래서 오늘 오디션에서 보는 3개의 연기 장면도 철저한 계산을 통해 선정해 두었다.

먼저 첫 번째였던 1화의 23신.

기본적으로 작품과 배역을 이해했는지를 볼 수 있는 장면이고.

지금 안지웅이 연기하고 있는 2화 45신.

연예 기획사에 공개된 4화까지의 대본 중에서 가장 빡세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극 중 인물 ‘배상욱’이 임은혜가 맡은 ‘임시연’을 몰아붙이는 장면인데, 보는 이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몰입을 극대화시키면서 그녀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 주는 장면.

그럼에도 여기서 배상욱은 냉혈한의 모습을 연기하며 차갑게 굴어야 하기에 두 주인공으로 하여금 감정 표현의 끝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나 3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어. 부모님 얼굴도 몰라. 근데 내가 돈을 왜 갚냐고!”

“그건 네 사정이지. 어쨌든 네 피붙이잖아?”

임시연의 머리채를 잡고 냉혈하게 협박하며 돈을 뜯어내는 장면.

“너 찾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억울하면 부모님한테 갚아 달라고 하든가.”

그러나 안지웅의 목소리는 날카롭지 않았다.

나는 아쉽게 숨을 들이마시며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평가지에 X로 체크를 했다.

그 사이, 두 번째 연기가 끝나고 오디션의 마지막인 세 번째 연기.

마지막은 두 가지로 나눠진다.

첫 번째는 앞의 두 장면에서 연기를 잘했을 경우.

우리가 기대감을 가진 만큼, 4화중에서 궁금한 신을 지정하고 참가자는 그걸 연기한다.

이 배우가 그 장면을 하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에 대해 직접 보기 위함.

그러나 앞의 두 장면에서 연기를 못했을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기대감이 없기에 보고 싶은 장면도 없다.

따로 지정하지 않고, 배우 본인이 원하는 부분을 연기해 보도록 시킨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넘어간 자신만의 장점이 있을 수 있었기에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지.

물론, 대부분은 이 과정에서 걸러진다.

안지웅은 이 중에서.

“받으신 대본 중에서 본인이 원하는 부분 한 번 연기해 보세요.”

“자유 연기인가요?”

“예.”

“아…….”

공통 부분으로 1화 23신과, 2화 45신만 통보해 두었기에 자유 연기까지 따로 준비하지 않았는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대본 한 번 봐도 될까요?”

황이나 PD가 대본을 넘겨주려는 찰나.

“아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지웅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안 보고 해 보겠습니다!”

보나마나 뻔할 것 같지만…… 그래도 첫 번째 참가자인 만큼 기회는 줬다.

“해 보세요.”

“예.”

목울대를 가다듬고 3화에 있던 부분을 보여 주었지만.

“나에게 너는 아무 의미 없어. 그저 돈을 갚는…….”

형편없었다.

준비하지 않은 연기가 좋을 리가 없지.

“고생하셨습니다. 나가보시면 돼요. 다음 주중으로 소속사 통해서 연락이 갈 겁니다.”

안지웅은 본인이 망쳤다는 걸 알았는지.

“……감사합니다.”

힘없이 인사를 하며 오디션장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힌 뒤,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황이나 PD가 먼저 물어왔다.

“별로죠?”

“응. 마스크는 좋은데 아직 연기가 많이 부족해.”

캐스팅 디렉터도 공감하며 끄덕였다.

“딱 HS의 정석 코스를 밟고 있는 신인 느낌이에요.”

신율희 작가도 메시지를 통해 같은 의견을 보내왔다.

미안하지만, 안지웅은 탈락이다.

“두 번째 볼까?”

“예. 성준아 다음 분 들어오라고 해.”

“네, 선배님.”

* * *

“잠깐 쉬었다 할까?”

“예. 그러시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켰다.

“으아아아-.”

황이나 PD는 펜을 내려놓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내게 얼굴을 돌렸다.

“힘드시죠?”

“오디션 자체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잘하는 친구가 없어서 지루하네.”

입구를 지키고 있던 AD 박성준이 내게 물었다.

“마실 거라도 하나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친구들한테 박카스라도 하나씩 돌려줘. 한 15분 쉬었다 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캐스팅 디렉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밖을 가리켰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응.”

나는 스트레칭을 하며 황이나 PD에게 말했다.

“벌써 30명 봤는데 괜찮은 친구가 없네?”

그녀도 아쉬운 듯 혀를 찼다.

“예. A등급은커녕, B등급도 거의 없네요.”

오늘 오디션 결과를 통해 자체적으로 매긴 등급 기준이다.

A등급은 ‘배상욱’ 역을 소화할 수 있을 만한 후보군.

그리고 B등급은 오늘 오디션 대상인 배상욱 역까지는 불가능해도, 비중 낮은 조연 혹은 단역 자리가 생기면 부를 만한 배우들.

30명 중 B등급만 1명이고, 나머지는 전부 탈락이었다.

나는 뒤에 있던 후배들을 보며 물었다.

“지금 방송 송출 중이지?”

“예. 쉬는 시간이라 잠깐 VCR로 넘겨 뒀습니다.”

“채팅 반응은 어때?”

“그렇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들 연기가 어떤지 보다는 오디션 자체가 신기해서 보는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이네.”

“선배님 모니터에만 보이게 할 수 있는데 채팅창 띄워 둘까요?”

“구석에 작게 띄워 줘. 내가 굳이 고개를 돌려야 볼 수 있게.”

“알겠습니다.”

물론, 시청자들의 의견은 의견일 뿐, 캐스팅에 영향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의견은 참고용이지,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으니까.

시청자들에게 그 권한을 넘긴다면, 연기력보다는 인지도나 특정 팬덤에게 캐스팅이 좌지우지될 수도 있기 때문.

황이나 PD는 내게 커피를 한 잔 건네며 말했다.

“다행히 오후에는 괜찮은 배우들 몇 명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

“네. 아무래도 처음부터 오디션 신청한 배우들보다는 주연 라인업이 다 뜨고 나서 기회라고 생각해 오디션에 참가한 배우들이 뒤쪽에 몰려있으니까요.”

“하긴, 그건 그렇겠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잡담을 나누는 사이, 캐스팅 디렉터가 돌아왔고.

쉬는 시간 15분은 빠르게 돌아갔다.

“다시 시작해 볼까요?”

“네. 가시죠.”

캐스팅 디렉터도 의자를 끌어당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성준아, 다음 배우 들어오라고 해.”

“예.”

그때, 프로필을 보던 황이나 PD가 반가운 목소리를 냈다.

“어, 다음 참가자는 좀 괜찮을 것 같은데요?”

“왜. 아는 친구야?”

“예. 저 PBC에 있을 때 조연으로 몇 번 나왔던 친구예요. 인지도도 나름 괜찮고요. 굳이 오디션을 볼 만한 급은 아닌데…….”

“누군데?”

내가 프로필을 확인하려는 찰나.

“안녕하십니까, 우성택입니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등장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목소리.

충분히 그럴 만하다.

우성택은 지금까지 참가자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니까.

아마 오늘의 모든 후보를 통틀어도 이만한 인기를 가진 사람은 없을 터.

3대 엔터인 더블제이 소속.

지상파 연속극과 미니시리즈에서 몇 번 조연으로 출연한 적이 있을 만큼, 나름대로 ‘급’이 있는 배우다.

팬이 많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팬덤이 형성되어 있고.

알아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실시간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1화 23신 가 볼게요.”

황이나 PD의 주도로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연기력은 좋았다.

발성이면 발성.

표정이면 표정.

연기가 베테랑 배우들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앞에 있던 30명의 참가자들의 연기가 빛바래게 만들어버리는 수준.

이 정도면 충분히 A등급을 받을 만하다.

신율희 작가도 ‘이 분, 진짜 괜찮은데요? 최종 후보군으로 올려도 좋을 것 같아요.’라는 의견을 보내오고 있었다.

캐스팅 디렉터는 슬쩍 내게 몸을 기울여 목소리를 낮췄다.

“PD님,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웬만해서는 나도 만족스럽게 바로 A등급을 던졌을 것이다.

이 정도 인지도와 실력을 가진 배우가 조연 역으로 오디션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니까.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우성택의 연기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사생활 때문.

전생에 2025년이었나.

한 병원과 연관된 스캔들이 터진다.

상습 프로포폴 투약.

그때 잡혀 들어간 연예인이 대여섯 정도 되는데, 우성택은 그중 하나였다.

일명 우유주사라고 불리는 마약류인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라지만, 불법인 건 확실하니까.

아마 시기상 지금도 상습적으로 프로포폴을 투약하고 있을 터.

“그건 네 사정이지. 어쨌든 네 피붙이잖아?”

눈앞의 우성택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살벌한 목소리를 냈다.

“너 찾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억울하면 부모님한테 갚아 달라고 하든가.”

연기력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아니, 훌륭했다.

내가 생각했던 그 연기를 그대로 선보이고 있었다.

캐스팅 디렉터가 슬쩍 내게 물었다.

“제가 하나 지정해도 될까요?”

“예.”

“3화 17신 한번 해 보시겠어요?”

우성택은 지정 연기까지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고생하셨습니다. 소속사 통해서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허리를 숙이고 오디션장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진짜 괜찮지 않아요?”

황이나 PD가 내게 물어왔다.

“연기하는 것 보니까 캐릭터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것 같은데요.”

“맞아요.”

캐스팅 디렉터도 맞장구를 쳤다.

“게다가 연기력도 훌륭하고요.”

보아하니, 황이나 PD와 캐스팅 디렉터는 물론이고 신율희 작가까지 완벽하게 마음에 든 모양.

“연기는 확실히 좋아요. 좋은데…….”

머릿속에 고민이 깊어졌다.

프로포폴 스캔들은 2025년에 터진다.

다시 말해, 이 드라마가 제작되고 완결이 되고 나서 한참 후에나 알려진다는 것.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터지더라도 드라마에 영향은 없다.

재방송도 다 끝났을 시기고, 추가적인 판권도 진즉에 판매되어 해외 방영까지 마쳤을 시기니까.

“우성택 정도면 안 뽑을 이유가 없지 않나요?”

캐스팅 디렉터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인지도와 인기도 꽤 있어서 흥행에 더 도움이 될 텐데요.”

맞는 말이다.

그에 더불어 지금까지 오디션 참가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연기력까지 갖췄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눈 감은 채 우성택을 뽑을 수는 없었다.

마치 금단의 열매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프로필을 넘겼다.

“일단 다른 후보들도 더 봐 보죠.”

* * *

“아무래도 우성택만 한 배우가 없네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오후 6시가 지난 시간.

벌써 80명이 넘는 배우들의 오디션을 봤으나, 우성택 이후 눈을 확 끄는 배우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A등급도 한두 명 더 있었고, B등급도 꽤 있었으나, 우성택을 넘을 만한 배우는 전혀 없는 상태.

점점 머리가 아파 온다.

아무리 배역 캐스팅에서 나의 권한이 크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우성택과 비슷한 정도의 연기력을 갖춘 사람이 있으면 모를까, 이렇게 실력에서부터 차이가 크게 벌어져 버리면 선뜻 우성택을 넘겨버리기가 쉽지 않다.

마음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내가 밀어붙여서 다른 배우를 캐스팅을 시킨다?

실시간으로 함께 하고 있는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제작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 주겠다고 말했던 것과 달리, 이건 오히려 독선으로 보일 테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

눈감고 우성택을 뽑아?

아니다.

그건 안 된다.

성공을 위해 내 가치관을 외면하고 싶진 않다.

내 신념이 허락지 않는다.

그렇다고 오디션을 보고나서 전부 탈락시키고 새로 캐스팅을 할 수도 없고…….

남은 참가자들의 수가 줄어들수록 마음이 점점 더 초조해져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참가자분 들어오세요.”

배우치고 큰 키는 아니다.

173cm 정도 되려나?

사악한 역을 맡아야하는데, 외모나 의상은 꽤나 수수한 편이었다.

오디션에서도 배역에 맞춰 의상을 신경을 쓰고 오는 이들과 달리, 평상복을 입고 온 모양.

아무래도 기대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배역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니까.

프로필을 스윽 훑어보니, 영세한 소속사에 필모그래피도 몇몇 영화에서 단역을 맡은 게 전부다.

“안녕하세요, 배정우입니다.”

게다가 목소리가 너무 사근사근하다.

사악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

긴장한 모습까지 겹쳐진 탓에 오히려 순둥순둥한 스타일 같달까.

아무래도 이번 배우도 거르고 다음 배우를 찾아야겠는데.

그럼에도 물론 기본 절차는 밟아야 했다.

“1화 23신 가겠습니다.”

황이나 PD는 으레 그러듯 대사를 읊었다.

“내가 돈이 없는데 어떻게 갚아?”

그런데.

“없으면 몸으로라도 갚든가.”

순간, 차가운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네가 돈이 없든 말든 내가 뭔 상관이지?”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방금 전에 인사할 때와는 180도 다른 냉혈한 목소리.

그의 한쪽 입꼬리가 거칠게 휘어졌다.

“내가 너 찾으려고 전국을 얼마나 돌았는지 알아?”

그와 동시에 입가에서 터져 나오는 희미한 웃음소리.

“여기서 네 얼굴 보고 희열이 느껴졌다니까.”

순간, 배정우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널 만나서 너무 좋아. 행복해.”

……잠깐만.

얘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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