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환기 (1)
3화의 시청률은 12.1%.
4화는 12.4% 그리고 5화는 12.6%를 기록했다.
11.5%였던 1화부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 속도는 굉장히 더뎠다.
사실, 이 정도 배우진으로 초반에 화제를 끌어 모으며 시청자들을 유입시키는 데 성공하면서도 그들을 이탈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하며 시청률을 높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문가들은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시청자들의 평가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고.
까놓고 말해서 드라마를 방영하기 전, 내가 세운 첫 목표는 방영 내내 시청률이 1화보다 떨어지지 않고, 10%가 넘는 시청률을 유지하며 종영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요즘 방영되는 미니시리즈들은 10%만 나와도 성공이라고 평가되며 꽤 커다란 파급력을 가지니까.
그러나 약간이나마 아쉬운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단순히 시청률의 절대적인 수치를 예능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오주당’도 충분히 더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보였으니까.
확 터져 주며 올라갈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
“흐으음…….”
뭔가 좋은 방법이 없으려나.
종이컵에 탄 커피 한 잔을 입에 대는 찰나.
“선배님, 안녕하세요!”
간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탕비실로 들어오며 인사했다.
“이나 씨, 오랜만이야.”
‘오주당’의 B팀 감독 황이나 PD.
“커피 한 잔 줄까?”
“제가 할게요.”
“괜찮아. 하던 중이니까. 블랙 아니면 밀크?”
“거기 있는 노란색이요. 왼쪽 꺼.”
“크림 골드?”
“네.”
나는 커피믹스 스틱 하나를 뜯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어제 편집하다가 늦게 간 거 아니야?”
새벽 3시쯤에 메일이 도착한 걸 보면, 4시 넘어서나 집에 도착했을 터.
“늦게 퇴근하면 오후에 출근해도 된다니까. 오늘은 B팀 촬영도 없잖아.”
“에이, 그래도 제 시간에는 와야죠.”
“됐어. 적당히 시간 때우면서 쉬다가 점심만 먹고 들어가. 감독 컨디션이 좋아야 촬영을 잘하지.”
“네, 감사합니다.”
황이나 PD는 씨익 웃으며 커피를 받아들었다.
“역시 제 생각 해 주시는 건 선배님밖에 없다니까요.”
“드라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드라마 생각해서.”
“알죠. 다 알죠.”
그녀는 흐흐 웃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참, 오늘 방송분에 한시아 씨 나오죠?”
“응. 시청자들도 기대하는 것 같더라.”
“맞아요. 카메오 출연 소식 나왔을 때 시아 씨 잘 좀 찍어 달라고 팬들한테 연락 왔더라고요.”
“이나 씨도?”
“선배님도 왔어요?”
“응. SNS 메시지로 한 20명 넘게 왔더라니까. ‘우리 시아 분량 좀 많이 챙겨 주세요’라고.”
“이번 영화 대박나면서 진짜 시아 씨 팬이 엄청 늘었어요.”
“그렇긴 하지. 극 중에서 엄청 매력적으로 나왔잖아.”
“여하튼 카메오 출연 반응은 잘 뽑혀서 괜찮을 것 같아요. 제가 봐도 재미있다니까요.”
“당연하지. 우리가 재밌게 봐야 팬들도 재밌게 볼 테니까.”
“맞아요.”
황이나 PD는 가볍게 웃음을 짓고는.
흘긋 탕비실 바깥의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췄다.
“그건 그렇고 요즘 작가님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신율희 작가님?”
“아니요. 우리 사무실 작가님들이요.”
사무실 작가라면, 강준수 사단에 소속된 예능 작가들을 일컫는 것일 터.
“작가님들이 왜. 무슨 일 있어?”
“특별한 건 아니고, 시청률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시청률이라면, 내가 이수정 PD와 공동 연출하는 ‘뉴 패밀리’를 말하는 걸 텐데.
“꽤 잘 나오지 않나? 내가 지지난주에 체크했는데 4.5% 정도였던 것 같은데.”
케이블치고 4.5%면 간판급은 아니더라도, 꽤 잘나가는 축에 속한다.
“네. 그때까지는 괜찮았는데…….”
황이나 PD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번 주에 훅 떨어졌더라고요.”
“몇 퍼센트였는데?”
“3.1%요.”
“그렇게나 많이?”
믿기지 않아, 휴대폰을 꺼내 직접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황이나 PD의 말은 사실이었다.
“뭐야, 왜 이렇게 된 거지?”
드라마에 치여서 ‘뉴 패밀리’에 예전보다는 신경을 덜 쓰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워낙 바빠져서 최근 들어서는 촬영 날에 참가도 못 할 지경이었지만, 최종 편집본은 직접 체크하고 있는 상태.
게다가 지난 주 방영분은 다름 아닌 블랙다이아가 게스트로 출연했던지라 내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절대 평소보다 부족하진 않았는데.
“아마 경쟁 프로그램 때문일 거예요.”
“동시간대 예능 들어왔어?”
“네. 그것도 지상파에서요.”
케이블도 아니고, 지상파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담당 PD가 누군데?”
“PBC의 공호산 PD요.”
“잠깐만, 공호산?”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나는 곧장 프로그램을 검색했다.
-토요 예능: ‘좌충우돌 하루’
-담당 프로듀서: 공호산
-책임 프로듀서: 우형민
-메인 작가: 김인나
-서브 작가: 이호준, 김채연, 고은비…….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누군가 했더니, 우형민 CP 이 녀석 담당이다.
동시간대라면, 100% 일부러 노리고 이 시간대로 들어온 것이다.
“출연진도 화려하네.”
“네.
“반응은 어때?”
“꽤 좋은 것 같더라고요. 구성도 신선한데, 무엇보다 출연진 라인업이 매력적인 게 큰 것 같아요.”
‘뉴 패밀리’에 문제가 없었으니, 결국 우형민 CP의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을 뺏겼다는 소리다.
“그래도 1/3이 빠졌으면 굉장히 큰 수치인데.”
“네. 그래서 걱정이 크더라고요. 프로그램 포맷도 비슷한 느낌이고.”
“……그래?”
어쩐지 시청률이 과하게 빠졌더라니.
“예. 작정하고 들어온 것 같아요.”
“드라마 집중하느라고 프로그램 외부까지 신경을 못 썼네.”
애초에 내가 그 예능에 공동 연출로 이름을 올리는 조건이 프로그램의 내부에만 신경 쓰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힘들 때는 언제든 말하라고 했지만, 이수정 PD가 이런 걸로 힘든 소리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선배님이 나서시게요?”
“아니. 일단은 이 PD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도록 둬야지. 문제가 생겼다고 바로 도와주면 오히려 나중에 힘들 수가 있거든.”
무엇보다 내가 지금 드라마에 집중해야 할 때라서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기도 하고.
드라마는 오늘 6화가 방영되고, 내일 중으로 8화 편집이 마무리 된다.
즉, ‘오주당’의 방영 종료까지는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서도 이수정 PD가 폼을 회복하지 못하면 그때 본격적으로 합류해서 도와줘야겠는데.
“일단은 모른 척하고 있어. 우리는 드라마에 집중하자고.”
“알겠습니다.”
* * *
“괜찮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소파에 기댔다.
방금 막 ‘오주당’의 6회 차 방영이 종료되었다.
실시간 시청자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편.
한시아까지 깜짝 등장해서 극에 변화도 가져와줬고.
사소한 갈등들이 해소되고 커다란 기대감을 불어넣는 장면이어서 나름대로 시청자들이 만족스럽게 본 모양.
지이이이잉.
그때 휴대폰에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한시아.
이 시간에 전화 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거겠지?
“네, 강준수입니다.”
-PD니이이임!
휴대폰 너머로 활기찬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왜 이렇게 텐션이 높아요?”
-PD님이랑 통화하니까요.
한시아다운 답변이다.
나는 피식 웃음을 짓고는 물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저 방금 본방사수했거든요.
역시나 그 이유다.
-저 분량 완전 많던데요?
“네. 1박 2일로 촬영까지 했잖아요. 찍은 건 웬만해서 다 살렸어요.
-아항. 고마워요. 오랜만에 드라마 반응 실시간으로 보니까 완전 재미있어요.
“그러면 간만에 드라마로 한 번 돌아와요. 영화도 좋지만, 드라마도 나름의 맛이 있거든.”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요즘 드라마 엄청 들어와서 고민하고 있어요.
“참, 엊그제 영화 상영 종료했던데요?”
-네, 맞아요! 저 완전 대박 났어요! 무려 1,277만 관객이라니까요?
내가 회귀하기 전에는 최종 관객 수가 1,231만 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과거에 비해 더 늘었다.
“진짜 축하해요. 이제 시아 씨 보기 힘들어지겠는데?”
-맞아요. 당분간 PD님이 만나기 어려울 수도 있어.
“어,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저 프랑스 가거든요.
“프랑스는 왜요? 거기도 상영 끝나지 않았나?”
-그거 말고 영화제 하러 가요.
잠깐만.
프랑스에서 영화제라면…….
그것도 이 시기에 떠오르는 건…….
-흐흐흐흫.
“설마 칸 영화제예요?”
-빙고!
한시아는 기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 ‘타락한 천사의 밤’이 초청받았다고 방금 연락 왔거든요. 그래서 PD님한테 제일 먼저 연락했죠!
왜 이렇게 텐션이 높나 했더니, 이것 때문이었던 모양.
“와, 정말 축하해요. 대박이네.”
-축하하는 것보다는 놀란 목소린데?
어.
진짜로 놀랐다.
칸 영화제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혹시 오래 되어서 잊어버렸다거나 전생하며 기억이 혼동되었을까도 잠깐 고민해 봤다.
온전히 10년이란 세월을 기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그러나 다시 머릿속을 헤집어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타락한 천사’는 전생에 칸 영화제에 입성을 하지 못했다.
만약에 영화제에 참가했다면, 내가 비슷한 기억 조각이라도 갖고 있어야 할 텐데, 전혀 없었으니까.
그저 관객 수만 늘어난 게 아니라,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도 달라진 모양.
아니, 단순히 한시아라는 사람 한 명만 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생에 이 영화를 찍을 때의 한시아와.
이번 생에서의 한시아는 전혀 다른 사람이니까.
각본이라는 전체적인 스토리는 같더라도 연기나 표현 등의 세세한 부분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작은 차이가 모여 칸 영화제 입성이라는 커다란 결과를 가져온 것이고.
“무슨 분야예요?”
-정확히는 못 들었는데 경쟁 분야라고 하더라고요.
“경쟁이면 진짜 대단한 건데.”
-수상 못 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칸에 입성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거예요.”
-그렇죠? 저 기뻐해도 되는 거죠?
“당연하죠.”
-아싸!
한시아는 아이처럼 밝은 목소리를 냈다.
“진짜 다시 한번 축하해요. 정말 시아 씨는 프랑스랑 인연이 깊다니까.”
-제가 프랑스 가더라도 ‘오주당’은 챙겨 볼게요.
“그때쯤이면 종영했을걸요?”
-아, 그러면 마지막 회까지 다 보고 갈 수 있겠네!
능청스럽기는.
“그나저나 시아 씨 요즘 완전 잘나가네요. 안 그래도 이번 카메오 때문에 시아 씨 응원하는 DM 엄청 왔다니까요? 예쁘게 잘 찍어 달라면서.”
출연 소식이 알려진 뒤부터 꾸준히 왔다.
-와, 진짜요?
“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본인이 시아 씨 아버지라면서 분량 좀 늘려 달라고 하더라고요.”
-하하하핫. 대박이다. 그 사람은 이름이 뭐였어요?
“잠깐만요…….”
나는 SNS를 들어가며 말했다.
“한중원이라고 써 있네요.”
순간, 휴대폰 너머로 침묵이 감돌았다.
-……한중원이요?
“네. 아는 사람이에요?”
-저희 아버지 성함인데요.
“……농담하지 마요.”
-아니, 진짜로.
나는 SNS의 메시지를 공유해 한시아에게 보여 주었다.
[한중원: 안녕하세요,,, PD님...^*^ 시아 아버지 입니다...!!^^ 우리 시아,,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잘 좀 부탁드리겠읍니다...~~!! 행복과~ 건승..! 기원합니다!!^^]
한시아는 3초 만에 웃음을 빵 터뜨렸다.
-크흐흐흐흐흐흫……. 이분, 우리 아빠 맞는데요?
아니, 이런 목소리면 장난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아빠 프로필 사진이랑 똑같아. 보여 줄까요?
“진심이에요?”
-네. 우와. 난 우리 아빠 SNS 하시는지도 몰랐어. 잠깐만. PD님 우리 아빠 메시지도 무시하면서 저한테 막 사칭이라고 하신 거예요?
“……지금 바로 답장할게요.”
-괜찮아요. 안 해도 돼요.
“그래도 아버진데…….”
-아니에요. 어차피 나중에 저랑 같이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갈 거잖아요. 그때 인사드리면 되죠.
어, 아니야.
나는 바로 휴대폰으로 공손하게 메시지를 입력했다.
[강준수: 안녕하세요, 아버님. 답장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말 예쁘게 찍었으니 봐 주세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덕분에 시아 씨가 참 예쁘고 밝게 자란 것 같아요. 아버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방금 답장 보냈어요.”
-에이, 아깝다.
한시아는 손가락 퉁기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뭐, 미리 안면 터 놓는 것도 나쁘지 않네. 사위랑 장인어른 사이는 좋아야 되니까요.
“됐거든요.”
대화만 하면 어째 말리는 느낌이다.
“저 내일 새벽 촬영이라 이제 자야겠어요. 시아 씨도 주무세요.”
-네. PD님 제 꿈 꿔요!
“얼른 자요.”
-넵. 저도 PD님 꿈 꿀게요!
그녀는 발랄하게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다시금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어느새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답장이 와 있었다.
[한중원: 엌ㅋㅋㅋㅋㅋㅋ PD님 죄송해요 ㅋㅋㅋㅋㅋㅋ 장난이었어요!! 저 가랑 초등학교 3학년 2반 다니는데 저희 반 애들 다 한시아 누나 완전 좋아해요! 오주당도 완전 재밌게 보고 있어요. PD님 파이팅! 드라마 잘 볼게요! ㅎㅎㅎㅎㅎ]
아…….
당했다.
나는 이마를 붙잡았다.
한시아 진짜 이 요망한…….
다음에 만나기만 해 봐.
한 대 쥐어박아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