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212화 (213/601)

212화 예능의 핵심은 캐릭터 (4)

“네, 강준수입니다.”

-아, 선배님. 통화 괜찮으세요?

통화를 걸어 온 인물은 이수정 PD.

“응. 말해.”

-지금 막 촬영 마무리하고 회식 장소로 이동 중입니다.

‘뉴 패밀리’의 개편 전 마지막 촬영.

일부러 그곳에 가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출연진들 섭외로 인해 바쁘기도 했고.

굳이 피한다기 보다는 개편 전까지 드라마로 인해 촬영에 제대로 참가를 못 해 놓고 이제 와서 가기는 조금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개편에 총대를 멘 것이 나였기에 하차하는 출연진들을 만나기엔 민망하기도 했으니까.

“녹화는 별 탈 없이 잘 끝났고?”

-네. 다들 김재원 씨 하차 소식을 알고 있어서 수긍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네.”

외부에서 볼 때는 개편을 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김재원일 확률이 컸다.

그가 먼저 하차 선언을 한 뒤에야 개편이 진행된 것이니까.

하차하게 된 출연진은 나보다도 그쪽으로 화살이 더 쏠릴 테지.

“출연진 정리는 잘 끝났고?”

-네. 저희 회의했던 내용과 같이 사전에 접촉해서 정리한 그대로 유한빛 씨랑 송석환 씨만 남고 나머지 분들은 전부 하차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잘 정리됐네.”

개편에서 새로 들어오는 두 명의 출연진은 모두 여자.

프로그램에서 남아 있는 두 인물은 모두 남자.

이 정도면 프로그램 진행에서 밸런스는 충분할 터.

-참, 석환 씨랑 한빛 씨가 혹시 개편 전에 선배님과 사전 미팅하냐고 물어보시던데 뭐라고 할까요?

“굳이 할 필요 있나? 석환 씨는 촬영장에서 몇 번 얼굴 봤고, 한빛 씨는 이 PD가 직접 캐스팅했을 정도로 잘 알잖아.”

송석환과 안면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를 포함해 유한빛도 캐릭터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 굳이 미팅까지 잡을 필요는 없어보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면 바로 촬영장에서 뵌다고 전달할게요.

“그래.”

-그리고 도새봄 씨는 섭외 완료됐나요?

“어. 안 그래도 조금 전에 마무리하고 나왔어. 출연하기로 했다.”

-역시 선배님이시네요. 섭외는 걱정할 것도 없다니까.

“도새봄이 거절할 거라고는 아무도 염려하지 않았잖아.”

-크크크. 그건 그렇죠.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무명 걸그룹에 대형 소속사도 아닌지라 당연히 OK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한 명 남았네요.

“응. 그 친구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섭외는 걱정하지 않는데…… 이렇게 되면 4명으로 인원수가 확 줄어 버리니까 색깔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괜찮아. 어차피 이번 개편을 통해서 옴니버스 형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될 거라 어느 정도 안정되면 매 회차 게스트로 채울 거야.”

-아, 그렇게 되는군요. 그러면 오히려 더 색깔은 다채로워지겠어요.

“그렇지. 걱정할 것 없어.”

-하하, 선배님이 오신 덕분에 마음이 아주 든든해요.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여하튼 오늘 하차 통보하느라 고생 많았어. 회식에서도 조금 힘들 거야.”

-괜찮습니다. 그 정도야, 뭐.

“내일은 푹 쉬고 모레 보자.”

모레는 일요일.

그러나 개편 촬영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는 주말을 따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수정을 비롯한 다른 스태프들도 그걸 알고 있고.

-알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고생해.”

전화를 끊자, 부재중 전화 알림과 문자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보낸 이: WG엔터테인먼트 하종원 실장

-PD님 죄송합니다. 사전 녹화 촬영 중이라 전화 온 걸 이제 확인했네요. 통화 중이셔서 문자 남깁니다. 편하실 때 언제든 전화 주세요!

나는 곧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채 울리기도 전에 바로 하종원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PD님! 안녕하세요!

활기찬 목소리.

역시나 신인 담당의 매니저답다.

“오랜만입니다, 실장님. 잘 지내셨죠?”

-그럼요. PD님은 어떠세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게 아니고 섭외 관련해서 전화 드렸어요.”

-아, 그게…….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저번 달부터 담당 연예인이 바뀌었거든요. 민재가 휴식 기간이 조금 길어져서요.

“알고 있습니다.”

-예?

“주예나 씨 섭외하려고 전화 드린 거예요.”

차기 예능계의 블루칩.

아직은 발굴되지 않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는 놀란 목소리로 바뀌었다.

-예나를요?

주예나는 이제 겨우 1집을 낸 신인이니까.

아이돌이 아닌, 발라드 가수라서 예능 섭외도 없었을 테고.

“네. 시간 되시면 한 번 미팅하고 싶은데 언제쯤 괜찮을까요?”

-저희야 얼마든지 시간 됩니다. 편하신 시간으로 말씀해 주세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내일 괜찮으세요?”

-당연하죠. 내일 오전에는 스케줄이 있어서 2시 이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내일 2시까지 WG로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 * *

“안녕하세요, PD님!”

WG엔터테인먼트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나를 반겼다.

“팀장님께서 나오실 줄은 몰랐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WG엔터 가수팀의 핵심인 김충만 팀장이 나를 맞이했다.

“어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 PD님이면 당연히 제가 나와야죠.”

그는 너스레를 떨며 손을 내밀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김충만 팀장과의 인연은 길다면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블라인드 미션’에서 잭슨 킴의 사건 때문에 가까워졌으니, 한 3년 정도 되었으니까.

우리는 악수를 하고서 로비로 들어섰다.

“여기 내부 오랜만이네요.”

“아, 그런가요?”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크게 변한 건 없을 겁니다.”

로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벽에 걸려있는 WG 대표 연예인 사진.

이전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나 유나희의 사진이 제일 앞에 걸려 있었다.

괜히 내가 뿌듯해지려고 한다니까.

“이쪽으로 오시죠.”

“예.”

그는 회의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로 나를 안내하며 자연스레 신변잡기를 했다.

“PD님 드라마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 저희 대표님도 정말 재미있게 봤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았다.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의실에 도착하자, 그는 미니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 건네며 말했다.

“드라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 측에서도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가요?”

“애초에 저희는 유나희가 그 드라마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도 못 했거든요.”

“아하하하핫.”

그럴 만하다.

나 또한 유나희의 출연이 결정되고 나서도 놀랐으니까.

아무리 주연이라고 해도, 그녀는 메인만 하던 사람이었기에 서브 주연을 선택하는 건 쉽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던 탓.

“사실, 라인업이 확정된 뒤에도 걱정을 많이 하긴 했어요. 예능 하시던 PD님이시라…… 그런데 보란 듯이 성공하셔서 저희 내부 분석팀에서도 정말 놀랐다니까요. 진짜 비즈니스를 넘어서 남자로 존경합니다.”

괜히 부끄러워서 손을 저었다.

“과찬이십니다.”

그렇게 한참동안 덕담이 이어졌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출연료 협상이나 추가 조건에 대해 논의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WG와 나는 오래전부터 함께 일하고 있었고 서로 짬까지 어느 정도 되는 데다가 신뢰 관계가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런 걸 논의하지 않아도 믿고 간다는 느낌은 있었으니까.

나중에 WG 쪽에서 필요한 게 생긴다면, 웬만해서는 작가진을 통해서 들어 줄 수 있는 것일 테고.

“참, 예나 씨는 지금 스케줄 소화하고 계시는 건가요?”

“예. 아마 녹음실에 있을 겁니다. 조금 전에 출발했다고 연락 왔으니 10분 안에 도착할 거예요.”

“아, 녹음실이 따로 있나요?”

“피처링 작업이라서 원곡 가수 녹음실에서 같이 진행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바쁠 때 온 건 아니겠죠?”

“어유, 아닙니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사래까지 치며 말했다.

“오늘 하는 건 정식 녹음도 아니고, 가녹음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김충만 팀장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슬쩍 주예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뉴 패밀리의 개편 컨셉은 어느 정도 전해 들었습니다. 프로그램은 참 재미있을 것 같은데 걱정되는 점이 하나 있어서요.”

“어떤 건가요?”

“내용상의 문제가 아니라, 예나가 잘 할 수 있을지를 모르겠어서요.”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애가 예능이 처음이기도 하고. 방송상으로는 굉장히 멀쩡하고 실은 애가 엄청 허당이거든요.”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점이 바로 주예나가 예능계의 블루칩으로 급부상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기억한다.

허나, 지금 상황에서는 모르는 척하는 게 좋을 터.

“아, 그런가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기에는 정말 차분하고 얌전하실 것 같은데.”

그는 허허 웃음을 지었다.

“어유, 아닙니다. 보면 아실 거예요.”

똑똑.

딱 맞춰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타이밍 좋게 주예나가 도착한 모양.

“어, 들어와.”

김충만 팀장의 목소리를 듣고 문이 열렸다.

주예나.

회귀한 뒤로는 처음 보는 얼굴이다.

밝은 갈색빛으로 물들인 귀밑 5cm 단발에 동글동글한 눈.

“안녕하세…… 엌!”

콰당-!

인사를 채 끝내기도 전에 주예나는 문턱에 걸려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김충만 팀장은 민망하다는 듯이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조금 전에 본인이 했던 말의 의미를 알겠냐는 눈빛.

음, 충분히 이해했다.

나는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예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괜찮으세요?”

“아, 네.”

그녀는 헤헤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쩡해요.”

그렇다기엔 부딪치는 소리가 굉장히 컸는데.

“……꽤 세게 넘어진 것 같은데.”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툭툭 털었다.

“워낙 잘 넘어져서 면역이 생겼어요.”

문득 치마 밑에 드러난 그녀의 무릎이 눈에 들어왔다.

멍자국이 한두 개가 아니다.

발라드 가수니 춤 연습을 하다가 생겼을 리는 없고.

……이거 다 넘어져서 생긴 거야?

알고는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허당인 것 같은데.

“일단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예.”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긴장했던 도새봄이 떠올라 주예나에게도 설명했다.

“면접 아니고, 간단한 미팅이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아, 그럼요!”

그녀는 능청스레 고개를 주억거렸다.

“편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죠?”

어…….

발라드 가수라서 조금 걱정했는데 이미지보다 훨씬 더 털털하네.

아무래도 내가 아는 허당 이미지가 예능을 통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원래 이런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고.

“우선 예능 컨셉은 들으셨죠?”

“네. 실장님한테 전해 들었어요.”

“그러면 설명은 생략하고…… 예능에서 제일 중요한 게 캐릭터잖아요?”

“그렇죠.”

“캐릭터를 좀 잡아야 되어서 몇 가지 물어볼게요.”

“넵.”

“혹시 잘하거나 유독 못 하는 게 있나요?”

“잘하는 건…….”

그녀는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저 노래 잘해요.”

“……예나 씨 가수잖아요.”

“그래서 잘하죠. 기가 막혀요.”

“…….”

이거 가면 갈수록…….

“몸으로 하는 건 잘 못 해요. 운동이나 이런 거 전부 다요.”

“그건 좋네요. 예능에서는 잘하면 또 재미없거든.”

“다행이다.”

나는 메모장에 체크를 하며 물었다.

“그러면 못 먹거나 좋아하는 음식은 있어요?”

“가리는 건 없이 잘 먹고요. 저 오징어 엄청 좋아해요.”

이건 좀 독특하네.

“오징어요?”

“네. 오징어나 문어 같은 순살 동물류 엄청 좋아해요.”

잠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잘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다.

“……연체동물 말하는 거죠?”

“으흫흐흫!”

그녀는 본인도 실수를 깨닫고는 독특한 웃음소리를 냈다.

“맞아요, 맞아. 연체동물.”

옆에 있던 하종원 실장은 부끄러운지 얼굴을 감쌌고.

김충만 팀장은 해탈한 표정으로 허허 웃었다.

그 상황에서도 주예나는 당당했다.

사람이 헷갈릴 수도 있지, 그게 잘못이냐는 표정.

그래, 이런 자신감 아주 좋아.

예능에서 굉장히 큰 장점이지.

“예나 씨.”

“네?”

“혹시 상식은 좀 알아요? 상식 퀴즈도 나올 거거든요.”

순간, 주예나가 움찔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

그녀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 조금 멍청한데…….”

음.

본인 입으로 멍청하다고 하는 발라드 가수는 처음 본다.

보면 볼수록 캐릭터 진짜 독특하네.

기대하던 것 이상인데.

아주 마음에 든다.

일단 첫 테스트.

“예나 씨, 미국 수도 알아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예나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아, PD님. 그 정도는 알죠. 저 고등학교는 졸업했어요.”

……왠지 모를 것 같은데.

“저 옛날에 백와대도 가봤다니까요?”

보다 못한 매니저가 옆에서 주예나를 툭 치며 말했다.

“백와대가 아니고 백악관.”

“아하하핫! 그거나 그거나!”

이거 아무래도 정답을 모를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예나 씨. 그래서 미국 수도는요?”

“에이, 진짜 모를 것 같아요?”

그녀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뉴욕이잖아요.”

회의실이 감동의 도가니로 물들었다.

“합격.”

나는 망설일 것 없이 입을 열었다.

“합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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