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261화 (262/601)

261화 로테르담 (1)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영화제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영화제 중 하나.

선댄스 영화제가 미국을 대표하는 독립 영화의 축제였다면.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는 유럽을 대표하는 독립 영화의 축제.

“그러니까 제가 아는 그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가 맞는 거죠?”

“그렇다니까!”

어윤중 팀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기쁜 것보다도 얼떨떨한 감상이 더 컸다.

처음 어윤중 팀장이 영화제에 심사를 넣겠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괜히 돈 낭비, 시간 낭비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막상 이렇게 초청을 받게 되니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진짜 되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어떤 부문에서 초청받은 거죠?”

“타이거 부문이던데?”

“……예?”

내 귀를 의심하다가 메일로 시선을 돌렸다.

네덜란드어와 영어로 함께 쓰여진 메일을 보다 보니, ‘Tiger’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눈에 들어왔다.

“타이거 상 부문이면 꽤 좋은 거라고 봤던 것 같거든?”

“아니, 팀장님. 좋은 정도가 아니에요.”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의 최고 상이 타이거상이잖아요. 경쟁이고.”

“오, 그래?”

“네. 모르셨어요?”

“나는 비경쟁 영화제인 줄 알고 있었지.”

틀린 말은 아니다.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는 비경쟁 영화제로 이름을 알려졌으니까.

그러나 이 영화제에서의 최고상은 경쟁 부분인 타이거상.

까놓고 말해서 타이거상은 수상 후보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다.

후보에 오르는 조건부터가 장난 아니니까.

지금까지 틀에 갇힌 세상에서 관습을 깨뜨리고 독립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방향을 제시한 영화이면서도.

그 영화가 첫 번째 작품이나 두 번째 작품인 신인 감독들만이 수상할 수 있다.

즉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정도라는 것이지.

“나는 그냥 신인 감독이 들어갈 만한 부분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넣은 거거든.”

“……진짜요?”

“응.”

이거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다.

어윤중 팀장은 씨익 웃더니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게 바로 초심자의 행운 아니겠냐?”

“진짜 행운은 행운이네요.”

자꾸만 입가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비경쟁 부문도 아니고, 무려 타이거상 후보라니.

“어쨌든 초청장 보내라고 답장하면 되지?”

“아, 잠시만요.”

그제야 나는 머리를 식히고 캘린더를 확인했다.

시상식도 시상식이지만, 현재 준비 중인 드라마의 일정과 겹치면 안 되는 법이니까.

“대충 9박 10일 일정인데 그쪽에서는 전부 참석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 여기 체크된 날짜만 오면 된대.”

“지금 확인했는데 두어 개 스케줄이 겹치긴 하지만, 이건 충분히 조절 가능한 일정이라 9박 10일 풀로 가도 될 것 같아요.”

“그래?”

“네.”

“그러면 일정 모두 가능하다고 메일 보낼게. 비행기랑 숙소는 그쪽에서 제공할 거야.”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네가 잘 만들었으니 된 거지.”

“팀장님 아니었으면 제대로 빛도 못 봤을 거예요.”

그는 피식 웃으며 내 팔을 툭 쳤다.

“밥이나 한 끼 사.”

“좋죠. 거하게 한 턱 쏘겠습니다.”

“좋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며 물었다.

“이 소식 다른 사람한테 알려 줘도 돼요?”

“우선 메일은 받았어도, 정식으로 초청장이 오고 나서 외부에 알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누구 말해 줄 사람이라도 있어?”

“아니, 그건 아닌데 입이 근질근질해서요.”

“조금만 참아. 초청장은 금방 올 거야. 그 다음에 보도 자료 뿌릴 때 내가 말해 줄게.”

“알겠습니다.”

“그래. 새로운 소식 들어오면 알려 줄게.”

* * *

[단독! 강준수 감독 영화 데뷔작 ‘뜨거운 태양은 지고’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 초청!]

초청장이 도착하기 무섭게 CN미디어에서 대대적인 보도를 뿌리기 시작했다.

일종의 홍보라고 볼 수 있었다.

회사의 이름과 내 이름을 동시에 알리면서 네임밸류도 올리고.

영화의 개봉에 대한 기대감도 품게 하는 효과.

그 덕분에 축하한다는 소식이 물밀 듯이 전해져 왔다.

그간 뜸했던 콜드레인부터 시작해 황정무, 하민석 등 온갖 연예인들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제일 먼저 연락이 온 건 전국 투어 콘서트로 한창 바쁜 누군가.

그녀에게는 짤막한 문자가 도착했다.

-뭐, 영화는 볼 만하더라……. 잘됐네요. 축하해요.

물론, 누가 봐도 유나희였다.

그녀 다음으로는 한시아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아니, PD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네?”

-첫 영화라면서 이렇게 대박이 나도 되는 거예요?

“어유, 무슨 대박이에요. 아직 수상도 안 했어요. 개봉도 안 했고.”

-첫 작품에서 영화제 최고상 부문에 초청되었으면 대박이죠! 진짜 축하해요.

“하핫, 고마워요. 저도 이렇게 영화제까지 갈 줄은 몰랐어요.”

-저한테는 아직 완성작 안 보여 줬잖아요. 언제 보여 줄 거예요?

“네덜란드 다녀와서 날 잡고 보여 줄게요.”

-약속한 거예요. 알았죠?

“당연하죠. 개봉하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그 전에 같이 한 번 봐요.”

-그래요. 로테르담은 언제 간다고 했죠?

“다음 주에 출국해요.”

-며칠이나 있는데요?

“영화제는 9박 10일 일정인데 앞뒤로 하루 더 껴서 12일 정도 다녀올 것 같아요.”

-헐, 큰일 났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PD님은 2주 동안 저 못 보면 상사병 걸릴 거 아니에요? 어떡하지, 내가 네덜란드 가야 되나?

“…….”

-사진이라도 보내 줄까요?

“됐거든요?”

-아, 이미 많으시구나. 그럴 수 있죠. 사랑하는 사람 사진 갖고 있는 게 죄는 아니니까.

“어떻게 시아 씨는 시간이 갈수록 더 뻔뻔해지는 것 같아요.”

-뻔뻔한 게 아니라, 솔직해지는 거죠.

“포장은 또 잘하네요.”

-그게 배우죠. 제가 괜히 명대사 많다고 소문났겠어요?

“그 사이에 어째 말발이 더 늘었어.”

-엇, 저 슛 들어가야 될 것 같아요.

“촬영 잘해요.”

-네. 나중에 또 전화할게요. 뿅!

그리고 임은혜는.

“감독님. 네덜란드 가신다면서요?”

사무실에 직접 찾아왔다.

그것도 양손에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그건 또 뭐예요?”

그녀는 대답도 않고 들고 온 에코백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번에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2주 가까이 머문다고 하던데.”

“네. 조금 오래 있긴 해요. 영화제 전후로 해서 12일 정도.”

“제가 해외 촬영 많이 해봤잖아요.”

임은혜는 무심한 얼굴로 눈을 끔뻑이더니.

“외국 가면 아픈 게 제일 서럽거든요. 말도 안 통하고 약국 찾기도 힘들고.”

그러고는 에코백에 넣어 두었던 미니 구급상자를 꺼내 펼치더니 주섬주섬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건 반창고예요. 감독님이랑 어울리도록 귀여운 캐릭터 붙은 걸로 샀어요. 그리고 이건 상처 나면 바르면 되고…… 요거는 배 아플 때 먹고, 저거는 머리 아플 때 먹으면 돼요. 또 이거는…….”

뭔가 했더니, 약국을 미니어처로 담아 통째로 옮겨 왔다.

“이걸 상자 째로 사온 거예요?”

“아니요. 제가 하나씩 사서 다 담았죠.”

이 정도면 보통 정성이 아닌데?

“완전 감동인데요.”

세트를 산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모두 손수 구입했다는 뜻이니까.

게다가 사이즈도 크지 않아서 캐리어에 넣어 가기도 좋을 것 같고.

“고마워요.”

“그래요?”

임은혜는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걱정되지? 중국에서 아픈 걸 봐 버려서 그런가?”

“아, 그때만 특이하게 아팠던 거고, 평소엔 멀쩡해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너무 걱정되는데…….”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눈을 부릅뜨고는.

“차라리 제가 같이 갈까요? 그러면 걱정은 덜 것 같은데.”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가긴 어딜 가요. 은혜 씨 요즘 작품 들어가서 바쁘잖아요.”

“일정이야 조율하면 되지…….”

“조율은 무슨 조율이에요. 촬영에나 집중해요.”

나는 구급상자를 닫으며 한 쪽에 챙겼다.

“이건 잘 쓸게요. 진짜 고마워요.”

“가서 연락해요.”

“그럴게요.”

임은혜는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려고요? 밥이라도 먹고 가지.”

“네. 촬영 도중에 몰래 빠져나온 거라…….”

지이잉-.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그녀의 매니저 김학성 실장.

……진짜 몰래 도망 나왔나 본데?

임은혜는 서둘러 휴대폰을 숨기고는.

“저 갈게요. 출국 전에 연락해요!”

“네. 들어가요.”

손을 흔들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어…….

촬영에 문제는 없겠지?

* * *

“후아!”

로테르담에 도착하자, 상쾌한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로테르담으로 오는 직항이 없기에 영화제 측에서 제공해 준 비즈니스석을 타고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로테르담에 입성했다.

사실, 오는 내내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풍차의 나라’기에 오자마자 온 도시에 풍차가 깔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도시라서 그런지 예상과 달리 풍차는 드문드문 보이는 정도가 전부.

오는 길에 승무원의 말을 들어보니, 관광지로 가야 내가 생각하는 풍차 밭이 있다고 했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했던 돈키호테의 심정이 궁금하긴 했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뤄 두었다.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진 시간이 꽤나 많이 남았으니까.

첫날엔 호텔에 간단하게 짐만 풀어 두고 시차적응을 위해 푹 쉬었다.

그리고 맞이한 영화제의 첫날.

영화제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이미 미국에서 선댄스 영화제를 한 번 경험한 덕분에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고.

다만, 저번과 달리 이번엔 초청을 받아서 온 터라, 그때와는 꽤나 상황이 달랐다.

보고 싶은 영화를 다 볼 수 있고, 내가 참석해야 할 행사도 정해져 있으니까.

물론, 타이거상이 최고상인 만큼 그 행사들은 막바지에 집중되어 있으니 첫 며칠은 온전히 영화를 보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상영 중인 영화 목록 중에는 내가 아는 제목도 있지만, 모르는 제목도 적지 않게 보였다.

회귀를 했다고 하더라도, 국내 영화는 어느 정도 알지만, 세계의 모든 영화를 섭렵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이름을 아는 건 영화계에 획을 그었거나, 세계적으로 꽤나 흥행한 작품 목록일 터.

그렇다고 내가 모르는 작품이 형편없는 영화일 리는 없었다.

이 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것부터가 최소 수작이라는 뜻이니까.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는 ‘하늘빛 눈물’부터 시작해서 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영화 ‘물 마시는 사슴’ 등 첫날에만 3편의 영화를 내리 감상했다.

어차피 네덜란드에 아는 사람도 없고, 영화제 시간은 정해져 있기에 관광은 그 외 시간에 하면 충분하니까.

그렇게 영화 감상을 마치고 어떤 작품을 볼까, 고민하며 상영관을 둘러보던 그때.

“미스터 강?”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부르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이곳에 알 만한 사람은 없고…… 올해 이 영화제에 초청받은 한국인은 나뿐이었다.

영화제 관계자인가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어?”

나도 모르게 동공이 확장되었다.

“제임스?”

유나희의 우상이자, 별인 제임스 카터 감독이 나를 보며 반가운 얼굴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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