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277화 (278/601)

277화 드라마의 성적표는 시청률일지라도 (2)

-감독님 최종 의상 보내 뒀습니다. 컨펌 부탁드려요.

“어, 알았어. 언제까지 하면 돼?”

-내일 오전까지 부탁드려요.

“그래.”

의상팀의 전화를 끊기 무섭게 캐스팅 디렉터에게 또 연락이 왔다.

-강 감독님.

“예, 말씀하세요.”

-단역 배우들은 지난번 ‘오주당’과 마찬가지로 해피 픽처스에 전담하도록 하려는데 어떻습니까?

“네. 저번에도 꽤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진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비중이 있는 단역들은…….

드라마 ‘대조선의 부흥’의 정식 촬영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

크랭크인하기 직전 마지막 조율을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똑똑.

사무실에 노크 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강 PD.”

나는 눈인사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정리된 사항은 메일로 보내 주세요. 확인하고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환하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그럼, 당연하지.”

나는 웃으며 그를 소파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선배님.”

“너는 선배님이랑 형을 언제까지 섞어 쓸래?”

“하하하, 선배님한테는 섞어 쓰는 게 편해요.”

오늘 사무실을 찾아온 손님은 다름 아닌, 임성진.

나의 첫 예능, 블라인드 미션의 메인 PD였던 인물이자, 내가 제일 존경하고 따르는 선배 중 하나.

“주스랑 커피 있는데 뭐로 드릴까요?”

그는 소파에 앉으며 대답했다.

“아무거나 줘. 그나저나 내가 너무 바쁠 때 온 거 아니야?”

“아니에요. 다 마무리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와 달라고 졸랐는걸요.”

작품 진행과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었기에 짬을 내서 불렀다.

예능이긴 하지만, 나보다 경력도 훨씬 더 많고, 프로그램의 흥행 및 참패를 겪어 보는 등 온갖 산전수전을 넘어온 인물이니까.

정확히는 이성훈.

그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임성진은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등받이에서 몸을 떼어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굳이 빙빙 돌려 말하지 않을게요.”

“그래. 그게 편해.”

“배우 이성훈 아시죠?”

“알지. 이번에 네 작품 주연이라며.”

“네. 그분 때문에요.”

임성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담할 게 있다길래 이성훈 관련인 줄 알았다.”

“혹시 뭐 아시는 거 있어요?”

“대충 소문은 들었지. 일단 말해 봐.”

“예. 실은…….”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설명했다.

이성훈이 평소 나를 대하는 태도부터 시작해서 다른 스태프 및 조연들을 대하는 모습 그리고 대본 리딩에서 있었던 일까지.

“흐으음…….”

임성진은 낮게 탄식을 내뱉으며 턱을 매만졌다.

“어떤 상황인지 대충 알겠네.”

“까놓고 말해서 제가 여기서 가만히 있어도 저한테 큰 탈은 없어요.”

“그렇겠지. 한 번 선을 그은 이상, 이성훈 정도 되는 배우면 알아서 조심할 테니까.”

“맞아요. 다만,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막 대하는 모습을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촬영 분위기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거든요.”

임성진은 잠깐 고민하나 싶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정석준 알아?”

“알죠. 예전에 선배님이랑 같이 일했었잖아요. ‘매일 식사합니다.’였나?”

“그래, 맞아.”

‘매일 식사합니다.’

임성진의 대표 예능이자, 가장 흥행했던 프로그램.

그가 JBC로 이전하기 전에 지상파 KTS에서 했던 예능으로 시청률이 20%에 육박했던 프로그램.

“거기서 정석준이 매일같이 지각했어. 진짜 지각한 걸 출석표로 찍었다면, 개근했을 정도야.”

“아, 컨셉이 아니었어요?”

“응. 진짜로 지각했어. 30분 지각이면 양반이었고, 1시간은 기본이었지.”

촬영에서 1시간 딜레이되는 건 굉장히 크다.

일반 회사로 치면, 그 한 명 때문에 50여 명의 스태프들이 모두 1시간씩 야근을 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2시간 늦으면 2시간 야근이다.

스태프뿐만 아니라, 다른 연예인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더 심하다.

그날에 하나의 스케줄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닌 날도 있는 만큼, 촬영 중간에 급하게 마무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법이니까.

퇴근이 딜레이되기만 하면 양반이다.

스튜디오 촬영의 경우, 딜레이로 인해 촬영이 끝나기도 전에 대여 시간이 다 되면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되니까.

“그게 전부가 아니야. 그러다 가끔씩 제 시간에 맞춰서 오는 날이 있어. 그래 놓고 다른 연예인들이 한 5분만 늦어도 엄청 잔소리한다고. 출연진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으니까 또 다른 사람들은 뭐라 할 수가 없었지.”

“아…….”

들으면서도 탄식이 새어나왔다.

“거기다가 예능의 특성상 힘든 일이 있을 수도 있잖아?”

“당연하죠.”

시청자들이 그런 걸 좋아하니까.

예능에서는 게스트에 비해 고정으로 나오는 멤버들이 출연료를 압도적으로 많이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컨셉으로 진행하는 날이 있으면 촬영 내내 불만이야. 나한테만 투덜대면 몰라도, 막내 작가들, 막내 PD들한테 막 구박을 해. 그러면 애들이 뭐라고 하겠어? 죄송하다고 하면서 기죽고 벌칙 같은 걸 제대로 주지도 못하고. 자연스레 분량은 박살나고.”

예능 같은 경우 그렇게 되면 결국 다른 멤버들이 분량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 온다.

정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추가 촬영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이는 스태프들에겐 주말에 특근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며칠을 일했느냐가 아니라, 1회당 임금이 정해져 있으니까.

당연히 특근 수당도 없고.

“그렇게 태도가 불량하기만 하면 양반이지. 그러다가 한 번씩 출연료를 올려 달라고 협상을 시도해. 그런데 말이 좋아 협상이지, 까놓고 말하면 땡강이야. 안 올려주면 안 나간다. 난 못한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겠다.”

임성진은 말하면서도 그때 생각이 나는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어떡해? 결국 올려주는 거야. 출연료 협상만 분기별로 한 번씩 했다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러면 하차를 시키는 게 낫지 않았나요?”

내 기억이 맞다면, ‘매일 식사합니다.’가 막을 내리기 전까지 정석준은 하차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 그런 생각을 안 해 봤겠어? 종영 전까지 내내 작가들이랑 했다.”

임성진은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런데 알잖아. 예능 특성상 멤버가 한 번 고정되면 바뀌기 힘든 거.”

“그렇긴 하죠.”

“고정 멤버들이 각각의 팬층이 굳혀졌었어. 거기다가 땡강 부리고 나이 많아서 꼰대질하고 그런 게 방송 상에서 컨셉이 된 거야. 결국 우리 프로그램에서 하나의 요소를 맡게 되니까 하차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지.”

“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막무가내로 나와도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호응을 생각해서는 남겨 둬야 했던 거겠지.

“그래서 종영까지 그냥 참고 계셨던 겁니까?”

“아니, 나도 성격이 불같잖아.”

임성진은 허심탄회하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 몇 달은 조금 참았어도, 가다 보니까 너무 열 받아서 안 되겠더라고.”

“그러면 어떻게 하셨어요?”

“다른 출연진들이랑 이야기를 했어. 우리가 6명이었잖아?”

“네. 정석준까지 6명.”

“정석준을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을 각각 따로 만났어. 단 둘이 술 한잔하면서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우리 작가진들과 내가 과잉 반응을 하는 건지, 다른 출연진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대화를 나눠 봤거든.”

“어떻던가요?”

“다들 똑같더라. 사람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야. 정석준이 제일 연장자라서 말을 못 했을 뿐이지, 품속에 불만을 품고 있었더라고.”

“아, 그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한참 고민했지만 방송 외적으로 정석준에게 말해 봤자 앞에서만 알았다 하지, 결국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

임성진은 주스로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오히려 방송을 통해 까 보자는 거였어.”

“정석준 씨가 잘못한 것들을요?”

“그렇지. 우리가 매 끼니로 식사를 하는 프로그램이었잖아?”

“네.”

“원래는 촬영할 때 식당을 통째로 하루 종일 빌려서 진행을 한단 말이야. 그런데 그걸 바꾸고, 일부러 한정 시간 및 한정 메뉴가 있는 곳 위주로 식당을 잡았어.”

“아!”

“그래서 정석준이 늦은 과정을 모두 촬영하고 그로 인해 멤버들이 식사를 못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어. 그리고 정석준 때문에 식사 못 한 걸 질타하는 걸로 콘텐츠를 잡고 방송에 내보낸 거지.”

어쩐지 그 프로그램의 중반부터는 식사를 못하는 장면이 생기더니만, 이런 사정이 있었던 모양.

“그리고 서로에게 아쉬운 점을 롤링 페이퍼로 쓰는 특집을 통해서 대놓고 까발렸지. 웃음으로 승화시키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불만 있다는 걸 본인도 깨닫게 만든 거지.”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예능이기에 가능한 방법이기에 드라마에서는 쓸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다양한 루트가 있다는 걸 들으니 머리가 조금은 트이는 기분.

“그래서 효과가 좀 있었나요?”

“아니.”

임성진은 조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쉽게 안 바뀌더라고.”

“아…….”

“사람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이 왜 있겠어? 옛날 조상님들께서 하신 말씀 중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니까.”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임성진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 심하면 너도 조치를 취해야겠지만, 어지간하면 적당히 눈감으면서 넘어가.”

탐탁지 않은 결론이지만, 이게 현실적인 답이겠지.

“네가 몇 달 만에 실체를 알게 되었다고 했지?”

“서너 달 정도 알고 지냈습니다.”

“이성훈은 드라마판에서 20년 가까이 살아남았어. 그냥 버틴 것도 아니고 TOP급 배우로 잘 살고 있다는 거야. 그 실체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모르겠어? 아니야. 다 알아. 아는데도 이성훈은 멀쩡하게 버티는 거야. 그런 사람들은 이유가 있어.”

나는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이나 언론을 다루거나, 드라마 판에서 살아남는 건 너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사람일 거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맞는 말이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그에게 밀리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조심해. 정 안 되겠으면 몰라도, 버틸 때까지는 버텨 봐. 예능과 달리, 드라마는 끝나는 회차가 정해져 있잖아? 눈 감고 꾹 버텨. 그러면 어쨌든 그 인간 연기력이랑 인기 때문에 드라마 흥행은 보장될 테니까.”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리가 아니야. 그게 전부야. PD에게는 더욱더.”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조금 더 생각을 해 봐야겠어요.”

“일단 너는 감독의 권위를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해. 이게 현실적인 거고, 어쨌든 그 인간이 버티고 있으면 시청률은 올라갈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똑똑똑.

다급한 노크 소리와 함께 조연출 하나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선배님!”

“왜, 무슨 일 있어?”

“지금 이거 보셔야 될 것 같거든요.”

김경호 AD는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내게 건넸다.

화면에는 대문짝만 한 글귀와 함께 하나의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단독! 배우 이성훈, 전직 아나운서 유부녀와 불륜……?]

제목만 보고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이건 갑자기 또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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