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286화 (287/601)

286화 성공할수록 적은 많아지는 법이기에 (1)

11.2%.

‘대조선의 부흥’이 기록한 첫 방송의 시청률이었다.

첫 방송에서 11.5%를 기록했던 ‘오주당’보다는 근소하게 낮은 수치지만, 나는 웃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는 우리의 ‘대조선의 부흥’을 비롯해 PBC와 KTS 지상파 3사가 모두 첫 드라마를 함께 시작했고.

그것도 모자라 JBC에서마저 드라마를 방영했다.

즉 4개의 드라마가 동시에 시작을 한 것이지.

또한, 10시 드라마인 지상파와 달리 9시 30분에 방영을 시작하는 종편의 특성상 JBC에서 30분 일찍 선점 효과를 가졌음에도 ‘대조선의 부흥’은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으니까.

PBC는 7%, KTS는 9.4%, JBC는 3.4%라는 수치를 기록했다.

임은혜가 출연한 드라마는 종편임에도 3.4%는 시청률을 기록한 건 굉장한 선방이었다.

물론, 이 4개의 방송사 중에서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건 오로지 MBS의 ‘대조선의 부흥’뿐.

애초에 11.2%라는 시청률 자체가 ‘대박’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꽤나 훌륭한 수치임에는 틀림없었기도 하고.

무엇보다 동시간대 1위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괜찮네요.”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황이나 PD의 말에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축하드려요, 선배님.”

“기뻐하긴 이르지. 다른 방송사에서 기분 나빠하거나 좌절하진 않을 거야.”

“그런가요?”

“애초에 시청률을 모두 나눠 먹기 한 거라, 우리가 1위긴 해도 극적인 차이가 있는 게 아니잖아.”

“하긴, 그렇긴 하네요. 이 정도 차이면, 다른 쪽에서는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도 정신 바짝 차리고 버텨야 돼. 1위 수성해야 되니까.”

“네.”

내가 만족스러운 건 단순히 시청률 때문만은 문제는 아니었다.

커뮤니티에서 시청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현대 작품들과 다르게 ‘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에서도 다른 작품들에 밀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긍정적인 소식이니까.

첫 방송에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한 건 비단 나에게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강 PD, 좋은 아침!”

스태프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카메라 감독은 여느 때보다도 밝은 목소리로 촬영장에 도착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감독님.”

“어제 새벽 2시까지 마셨는데도 멀쩡하네.”

그는 클클대며 카메라 장비를 꺼냈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그럴 겁니다. 하하핫.”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 스태프들에게도 좋은 일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사실, 드라마가 성공하면 배우들과 감독 및 작가에게 좋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몸값과 인지도가 올라가며 커리어도 성공적으로 쌓이게 되는 법이니까.

허나, 그와 달리 스태프들은 몸값이 올라간다거나 대우가 현저하게 좋아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보면 된다.

직접적으로 흥행의 효과가 드러나는 작감 및 스타들과 달리, 스태프들은 부수적인 요소들이 도움이 된다.

성공적인 드라마의 스태프로 일했다는 것이 경력이 되어 후일 이직을 할 때 포트폴리오에 쓸 만한 이력이 추가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좋은 건,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종영할 시에 그들에게 적지 않은 보너스가 지급이 되니까.

열 마디 좋은 말보다도 현금이 최고라는 건 모든 직장인들에게 통하는 말이지.

부가적으로 드라마가 히트를 친다면, 포상휴가로 해외여행까지 보내 주기도 한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올라가면, 일할 때의 보람도 생기는 법이기도 하고.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조연 배우들도 하나둘씩 촬영장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어, 왔어요?”

“시청률 1위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뭘 새삼스럽게. 여기 간식 있으니까 먹고 가요.”

다들 어제 술 한 잔씩 한 것치고는 얼굴이 밝다.

이게 다 시청률의 힘이겠지.

그래, 오늘도 어디 신나게 한 번 촬영해 볼까?

* * *

‘대조선의 부흥’ 방영 2주차.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성훈도 시청률의 효과인지, 나대지 않고 조용하게 촬영을 소화하고 있었고.

시청률 또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으니까.

어제 방영된 3화는 12.4%.

1화에 비해 1.2% 상승했고.

경쟁 시간대 드라마들은 여전히 두 자릿수에 진입하지 못한 상태.

애초에 시대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초반부터 폭발적인 시청률을 내지도 못하거니와 이번 드라마는 24화라는 긴 회차를 갖고 있기에 마음을 조급하게 가질 필요도 없었다.

사극은 슬로 스타터라는 말도 있으니까.

“컷, 오케이!”

나는 힘차게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후 6시.

오늘은 일찍이 촬영을 마무리했다.

사전 제작을 통해 꽤나 많은 회차의 비축분을 쌓아 놓은 덕분에 촬영 일정에 여유가 있기도 했고, 오늘은 지방 촬영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가야 하기에 너무 늦지 않게 가는 게 모두의 가정에 더 좋을 테니까.

“오늘은 칼퇴근이네.”

조명 감독이 한껏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럼요. 이렇게 일찍 끝나는 날도 있어야죠.”

“고생했어, 강 감독.”

“예. 선배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오늘 본방 사수 아시죠?”

“아이, 그럼 알지.”

배우들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장비를 정리하고 있던 무렵.

“선배님!”

조연출, 김경호 AD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며 달려왔다.

“왜, 무슨 일 있어?”

“기사 보셨습니까?”

“무슨 기사?”

김경호 AD는 심각한 얼굴로 태블릿 PC를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최근 M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대조선의 부흥’의 메인 연출을 맡고 있는 강준수 PD가 속한 CN미디어에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하고 있다.

CN미디어의 모기업은 CN엔터테인먼트로, 방송사 CBN까지 소유한 거대 기업이다.

기존에 CN미디어에서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만 제작했지만, 최근 들어 ‘뜨거운 태양은 지고’를 통해 영화계로도 발을 뻗은 상황이다.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면, 미디어 업계에 좋은 소식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 특유의 갑질로 인해 영화인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많아지기 때문.

여타 필름사와 달리, 대기업은 중간에 수익을 가져가는 비율이 훨씬 더 크며 상업적인 자유로운 창작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 CN미디어의 문어발식 사업의 첫 피해자는 강준수 PD.

CN미디어는 영화계로의 사업 확장을 위해 인기 PD인 강준수를 이용해 영화계로 발을 뻗었다.

본지의 기자가 방송계의 관계자를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강준수 PD는 2년간의 전속 계약으로 회사에서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며 CN미디어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원하는 작품을 제작할 수 없다고 한다.

한편, 한국영화협회는 이러한 상황을 ‘굉장히 비상식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한정일보 이태형 기자.

기사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CN미디어를 ‘대기업’.

그리고 나를 ‘피해자’로 둔갑시켰다.

기사의 마지막 줄을 보면 알 수 있듯, 한국영화협회까지 나섰다.

간부진이 꼰대들인 걸로 유명하긴 하나, 그쪽도 영화계에서 나름대로 힘이 있는 협회.

그쪽에서 코멘트까지 따 온 걸 보면, 이거 작정하고 기사를 쓴 것 같은데.

“언제 뜬 거야?”

“한 시간 전에 올라왔습니다.”

“말도 안 되는 기사야. 내버려 둬.”

“그게…… 그러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왜?”

“지금 인터넷에 난리예요. 선배님이 피해자라고. 실검에도 올라왔어요.”

“……뭐?”

그 순간, 휴대폰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발신인은 어윤중 팀장.

“네, 강준수입니다.”

-강 PD. 혹시 촬영 중인가? 통화 괜찮아?

“방금 끝났습니다. 말씀하세요.”

-혹시 기사 봤어?

“안 그래도 막 봤습니다. 경호가 보여 줬어요.”

-이거 뭐 어떻게 된 거야? 당연히 네가 개입되었으리라고 생각은 안 한다만…….

“당연히 아니죠. 일단 촬영 마무리됐으니까 바로 회사로 갈게요.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올라왔을 정도니,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다.

“경호야. 스태프분들이랑 천천히 정리하고 올라와. 먼저 갈게.”

“예, 알겠습니다.”

나는 스태프들을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방 촬영인지라, 자차 대신 스태프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온 탓에 홀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스태프들을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

이제 장비를 막 치우고 있는데, 모두 정리하는 데까지 시간도 걸리고.

또 버스로 올라가야 하기에 한참 걸릴 테니까.

나는 주차장을 두리번거리다가 익숙한 차량 한 대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뭐예요?”

놀란 유나희를 외면하고 운전석에 있는 공재원 실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실장님. 이 차 서울 가죠?”

“예. 오늘 스케줄은 끝났습니다.”

나는 유나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좀 같이 타도 될까요?”

“감독님이 왜 타요?”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래요. 같이 좀 태워 줘요.”

“싫어요.”

응, 탈 거야.

“실장님. 저 타도 되죠?”

“그럼요.”

“아니, 오빠!”

눈을 번뜩이는 유나희를 보며 눈썹을 들썩이고는 차내로 몸을 들이밀었다.

“같이 좀 가요. 나 탄다고 기름 더 많이 먹는 것도 아니고.”

“더 빨리 떨어지거든요?”

“에헤이.”

나는 너스레를 떨며 차에 올랐다.

나는 차문을 닫고는 가볍게 탁탁 두드렸다.

“자자, 오라이. 갑시다.”

* * *

“너도 전혀 모르는 이야기라는 거지?”

어윤중 팀장의 물음에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요. 애초에 제가 이런 일을 벌일 만한 이유가 없잖아요.”

물론, 그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엮여 있으니 확인 차 물어보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여기 전속 계약 기간이 2년 남아 있는 걸 누구한테 말한 적이 없거든요? 근데 기사에 나왔다는 게 어이가 없어요.”

어윤중 팀장도 심각한 얼굴로 숨을 내뱉었다.

“우리 측에서 샌 건가…….”

“그리고 기사 내용도 말이 안 돼요.”

기사에는 내가 회사에서 지시하는 작품만을 만들어야 한다고 나와 있다.

계약서상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쓰여 있으니까.

다만, 특약 사항에는 내가 원할 경우, 언제든 위약금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즉, 내가 원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이뿐만이 아니다.

“상업적인 영화에서 창작의 자유를 방해한다고 하는데, 상업 영화면 당연히 상업적인 면모를 추구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그리고 어이없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CN미디어가 CBN 채널을 갖고 있는 건 여기서 전혀 중요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일부러 기사 초반에 배치해서 ‘대기업’의 이미지를 세게 넣었어요. 게다가 이미 드라마와 예능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데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부분도 아니잖아요.”

“사실 그렇긴 해. 그렇긴 한데…….”

어윤중 팀장도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기사라는 게 어떤 식으로 프레임을 맞추냐에 따라서 풍기는 뉘앙스가 확 달라지니까 말이야.”

그는 잠깐 고민하나 싶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건 내 의견이 아니라, 윗선에서 걱정해 가지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회사에 불만이나 애로사항이 있니?”

“아니요, 팀장님. 저 만족해요. 지금 굉장히 만족하면서 회사 다니고 있어요. 그랬으니 제가 ‘오주당’ 끝나고 전속 계약 연장했죠. 그리고 애초에 다른 문제가 있었다면 제가 바로 말씀드렸을 겁니다. 제 성격 아시잖아요.”

“그렇긴 하지.”

내가 뒷공작을 펼치거나 불만이 있다고 다른 데서 하소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건 누구보다 어윤중 팀장이 잘 알고 있다.

내가 필요한 게 있다면 나는 즉시 요구하는 스타일이니까.

애초에 내가 원하는 조건이었던 강준수 사단 스태프들을 잘 챙겨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CN미디어에 감사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저는 굉장히 만족하는데 졸지에 대기업의 횡포에 당하고 있는 피해자로 둔갑했다니까요?”

어윤중 팀장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우선 입장문부터 내세요. 이거 이대로 있다가는 일 커지게 생겼어요.”

“내야지. 우선 너랑 이야기해 보고 내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보류하고 있었다.”

그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잠깐 고민하나 싶더니,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준수야.”

“예, 팀장님.”

“혹시 괜찮으면…… 네가 불편하지 않다면 직접 입장문 하나만 내 줄 수 있니? 그러면 우리 측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당연히 가능하죠. 아니, 해야죠. 가만히 있으면 저도 피해자처럼 보일 테니까요.”

어윤중 팀장은 안도감 섞인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당연한 걸요. 혹시나 필요한 문구 있으면 말씀하세요. 같이 참고해서 쓸 테니까.”

“아니야. 네 편한 대로 써. 우리도 우리대로 입장문 써서 올릴 테니까. 서로 문제가 없는 거잖아.”

“그렇죠.”

“입장문 올리기 전에 한 번만 보여 줘. 우리도 체크하고 올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작품 촬영하는 것만 해도 바쁠 텐데 괜히 고생이 많다.”

“아니에요. 지금 상황에선 CN미디어도 피해자인 걸요.”

어찌 되었건 간에 지금 상황에서 그는 대기업의 입장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

“우선 입장문부터 정리해 볼게요.”

일단, CN미디어와 나 사이에 불화는 없으니,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확률이 크다.

다만, 문제는 누가 이 기사를 기획했느냐는 것.

기사의 내용과 퍼지는 속도를 고려하면, 절대 일개 기자가 홀로 준비한 상황은 아니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쓰면, CN미디어로부터 법적 대응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분명 배후가 있는데…….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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