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성공할수록 적은 많아지는 법이기에 (2)
이날 저녁, 나는 사무실에서 퇴근하기 직전에 개인 SNS를 통해 입장문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강준수입니다.
먼저 오늘 한정일보에 올라온 기사로 인해 많은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선, 기사는 제 의견과 전혀 무관합니다.
저는 한정일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며, 이태형 기자님을 뵌 적 또한 없습니다.
또한, 저는 CN미디어와 불화가 없다는 것도 알려드립니다.
CN미디어가 저를 통해서 영화계로 진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님을 말씀드리며, 애초에 제가 제작한 ‘뜨거운 태양은 지고’라는 영화는 CN미디어의 요청이 아닌, 제가 먼저 영화를 연출하고 싶다고 말하여 제작이 결정되었습니다.
게다가 ‘뜨거운 태양은 지고’라는 영화는 독립영화이기에 다른 상업영화와 달리 제작비를 마련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CN미디어에서 이 영화는 저와 함께 ‘오늘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닐지라도’를 제작했던 故 신율희 작가님의 추모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CN미디어에서는 본사와 함께 작업을 하셨던 故 신율희 작가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제작비를 지원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은 지고’는 독립영화이며 추모영화기에 CN미디어의 제작비 지원은 투자의 개념이 아닌, 후원에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당연히 수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며, 이번 영화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은 전부 故 신율희 작가님의 유가족의 의견에 따라 신인 작가들의 공모전을 위해 투자하는 것으로 이미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렇기에 CN미디어에서 이번 영화를 통해 수익을 내려는 것은 물론, 저를 이용해 영화계에 진입하려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또한, 저는 CN미디어에 갑질을 당한 적도 없으며 회사와 저는 중대사를 결정할 때 늘 상호간에 의견을 주고받으며 굉장히 원만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영화를 통해 순수하게 CN미디어의 작품을 집필했던 故 신율희 작가를 추모하려는 의도를 곡해하거나 왜곡하지 않아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대중분들께서도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CN미디어 강준수 올림.
앞선 기사로 인해 오해할 만한 내용을 전부 해명하면서도.
또 부담스럽지 않은 듯한 뉘앙스의 입장문.
내용을 확인한 CN미디어 측에서도 따로 터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윤중 팀장이 잘 써 줬다며 고맙다고 했을 지경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입장문을 올리기 무섭게 다른 기사를 통해 내 입장문이 퍼지고, 대중들이 커뮤니티에도 나르기 시작하며 오해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나겠지.
“고마워, 강 PD.”
“아닙니다. 이게 사실인걸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가방을 챙겼다.
“퇴근하겠습니다. 내일 뵐게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 고생했어.”
“안녕히 계세요.”
* * *
다음 날.
나는 CN미디어의 편집실에서 ‘대조선의 부흥’의 다음 방송분을 편집하고 있었다.
원래 드라마라는 게 단순히 촬영만 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편집까지 끝내야만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방송분이 완성되는 법이니까.
물론,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편집을 하는 건 아니었다.
이미 편집을 통해 방영분은 14화까지 완성되어 있다.
다만, 어제 방송된 4화의 시청자들 의견 및 후기를 본 뒤, 어느 정도의 복선을 더욱 공개해야 할지 판단하고 또 과한 정보는 차단하는 등 작품의 더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라고 봐야지.
물론, 일정에 여유가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고 대본을 조정할 수 있도록 일부러 반 사전 제작으로 진행을 했고.
또 시청자 게시판의 상황에 따라 이후 대본도 조금씩 조정해야 하기에 작가에게 조금 더 시간을 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여전히 B팀 황이나 감독은 현장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 상태기도 하다.
급할 건 없다는 뜻이지.
“후아아…….”
나는 기지개를 쭉 켜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어제는 분명 평소보다 훨씬 더 촬영이 일찍 끝났고, 오늘은 스케줄이 있을 때보다도 여유롭게 일어났는데도 눈꺼풀이 무거웠다.
쓸데없는 논란이 터지는 바람에 입장문을 쓰고, 그 이후에 대중들의 반응을 보느라 제대로 잠을 못 잔 탓이었다.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 되려나.
카페에 잠깐 다녀올까, 아니면 배달을 시킬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똑똑.
노크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문 앞에 어윤중 팀장이 찾아와 있었다.
“예, 팀장님.”
“어, 강 PD. 지금 바빠?”
“아니요. 여유 있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무언가 심상치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 있어요?”
“기사 봤어?”
“…….”
느낌이 좋지 않다.
“뭐 또 떴어요?”
“하아.”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단독!] 강준수의 입장문. 그 뒤에 숨겨진 비밀은……?>
-지난 밤, CN미디어 소속 강준수 PD의 개인 SNS에 입장문이 올라왔다.
본인은 CN미디어와 전혀 불화가 없으며 영화는 자신의 의지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CN미디어는 자신들과 함께 작품을 진행했던 故 신율희 작가에 대한 감사 및 조의를 표하기 위해 추모 영화에 후원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한정일보에서 확인한 바, 조금 의심되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사진 1]
(서울에 급하게 올라오자마자 CN미디어에 들른 강준수 PD)
본 기자가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어제 저녁, 기사가 업로드된 직후 강준수 PD는 지방 촬영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바로 서울에 있는 CN미디어 사무실에 방문했다.
그리고 약 두 시간 동안 긴 회의 직후, 그는 회사 내에서 본인의 SNS에 입장문을 올렸다.
-[사진 2]
(입장문을 올린 후, 퇴근하는 강준수 PD.)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강준수 PD의 입장문이지만, 본인이 직접 쓴 게 아니라, 회사의 의견이 피력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모 업계 종사자에 따르면, 강준수 PD는 CN미디어에 전속 계약이 되어 있는지라, 실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한들, 그걸 솔직히 말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한다.
영화계에서는 이러한 CN미디어의 갑질과 부당한 결과물인 ‘뜨거운 태양은 지고’의 개봉 및 상영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아무리 콘텐츠가 중요한 21세기라고 하나, 열악한 영화 제작자 및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약자들을 착취해서 나온 작품이 시장에 공개되기 시작한다면,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CN미디어 혹은 강준수가 표하는 ‘겉으로 드러나는 상황’이 아닌, ‘내부의 실제 상황’을 알고 싶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한정일보 이태형 기자.
기사를 읽자마자 육두문자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네, 진짜.”
이젠 어처구니가 없는 걸 넘어 열이 받으려 했다.
“너한테 따로 연락은 없었지?”
“전혀요.”
나는 애초에 이 한정일보라는 언론사를 이번 기사로 처음 접해 보았다.
“이 정도면 CN미디어가 아니라, 저를 엿 먹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우리가 느끼기에도 뭔가 범상치 않다.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날 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어윤중 팀장은 편집실 안으로 들어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방금 전에 시네마측에서 연락이 왔거든.”
“어느 영화관에서요?”
“전부.”
어윤중 팀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 기사 뜬 직후에 GCV, 롯성 시네마 포함해서 전부 다 연락이 왔어.”
느낌이 좋지 않다.
“뭐라던데요?”
“아무래도 논란이 심해지고 있어서 우리 작품을 못 받겠다고 하더라.”
“개봉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
“그래. 우리가 배급하기로 한 거 취소해야 될 것 같다고 말이야.”
그 순간, 바로 직감이 왔다.
일반적으로 이런 논란이 있다고 해서 영화관에서 상영을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 일과 비슷한 경우가 전혀 없지 않다.
그것들은 대부분 노이즈 마케팅을 벌인 결과물이었고, 오히려 그로 인해 티켓 파워가 올라갔던 전적이 있기에 더 환영을 하는 게 정상이고.
그러한 사건들에 비하면 이번 논란은 오히려 가벼운 수준이지.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지 채 24시간이 지나지도 않았고.
아직 마무리도 되기 전인데 갑자기 영화 상영을 취소시킨다?
이건 일반적인 대처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뒤에서 공작이 있었던 것.
누군가가 시네마측에 로비를 했거나 협박을 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리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타깃은 CN미디어가 아니라, 나라고 봐야 한다.
정확히는 나의 영화 ‘뜨거운 태양은 지고’가 개봉할 수 없도록 막는 것이지.
“이거 작정하고 일을 벌이는 것 같은데요?”
어윤중 팀장도 동의한다는 듯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것 같다.”
굉장히 치밀하게 계략을 짜 뒀다.
하루 이틀 생각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판을 짜 둔 게 틀림없다.
기사를 올리고, 그에 따라 대중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어쩔 수 없이 영화 상영을 막은 것처럼 보이도록 수를 쓴 것만 봐도 간단한 과정은 아니니까.
내가 입장문을 내고, CN미디어에서 해명문을 낸 것까지 모두 예상하고 업체들과 접촉을 해 둔 것일 테지.
“혹시 예상 가는 사람은 있습니까?”
“아니, 전혀.”
어윤중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너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긴 했다.
이성훈.
허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이성훈이 대스타라고 한들, 이런 파워는 갖고 있지 않다.
그의 소속사도 대형 엔터테인먼트가 아니기에 CN엔터를 모기업으로 하는 CN미디어에 시비를 걸 리도 없으니까.
또한, 이성훈 자체가 워낙 유명한 인물이고, 이미 드라마 내 불화설로 인해 나와 엮여 있는 상태인 만큼, 이런 짓을 했다가는 정체가 바로 탄로 날 수밖에 없기에 그가 나섰을 리가 없다.
그러나 이성훈을 제외하면, 지금 나에게 해코지를 할 만한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나를 미워 하는 사람이 이성훈 외에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내가 유명세를 얻고 인기가 늘어갈수록,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사실.
괜히 ‘빠’가 생기면 ‘까’가 생긴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 상황을 보면, 순수한 질투심에 일을 벌인 것 같지는 않다.
굳이 이러한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고 나를 엿 먹일 만큼 내가 누군가에게 밉보인 적은 없으니까.
다시 정리하자면.
결국 이번 일을 벌인 건, 순수한 개인의 감정 때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런 짓을 해서 이득을 볼 만한 사람 혹은 단체가 벌인 일일 터.
“……잠깐만요.”
순간, 머릿속에 한 개의 협회 이름이 떠올랐다.
나는 어제 올라왔던 기사를 다시 한번 살폈다.
[한편, 한국영화협회는 이러한 상황을 ‘굉장히 비상식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어제의 기사 중 마지막 줄에 나온 내용이었다.
한국영화협회.
영화계에서도 꽤나 이름을 알린 인물들이 속해 있는 모임이다.
그래서 꽤나 힘이 있기도 하고 유명하긴 하나, ‘꼰대 협회’라고도 불릴 정도로 비상식적인 영화인들도 적지 않게 소속된 곳.
만에 하나, 그곳이 움직였다면 모든 게 설명이 된다.
지난 기사에서 볼 수 있듯, 이번 일을 통해 나를 본보기로 삼아 예능 혹은 드라마 PD가 영화계로 진입하는 걸 막을 수 있고, 이는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니까.
허나, 그렇다고 굳이 나를?
아직 시작도 안 한 거라면 모를까, 이미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에 초청까지 받았는데.
그게 한국 영화에 도움이 되면 됐지, 절대 마이너스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뭔가 더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팀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곧장 편집실에서 나와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PD님.
“오랜만입니다, 기자님.”
휴대폰 너머의 주인공은 팩트체커의 최주호 기자.
“혹시 통화 괜찮으세요?”
-예, 그럼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기사 보셨죠?”
-네, 봤습니다. 지금 읽고 있었어요.
“그거 관련해서 혹시 뭐 아시는 게 있나 여쭤보려고 하거든요. 한정일보라든지, 이태형 기자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그래서 안 그래도 저도 전화 드리려고 했거든요.
최주호 기자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한정일보가 조금 유명한 곳입니다.
“유명하다는 게 무슨 뜻이죠?”
그는 잠깐 망설이더니.
-돈 받고 기사를 써 주는 걸로요.
예상치 못한 말을 내뱉었다.
-거긴 정말 기레기들 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