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프로듀서-404화 (405/601)

404화 숲 : 사각지대 (3)

이튿날 오후 11시.

툭. 투둑. 툭.

그제야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조심스레 창문을 열어보니, 빗방울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드디어.”

안도감에 서둘러 산장 밖으로 나와 보자, 하늘의 먹구름은 청명하게 개어 있었다.

그제야 가슴의 불안함이 쑥 가셨다.

어제 하루 정도야 푹 쉬었다고 했으나, 오늘도 워낙 비를 퍼붓기에 혹시나 비가 그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 일기예보가 맞아떨어졌다.

처음 올 때는 못 맞히더니만, 그치는 건 기가 막히게 맞힌다.

다행이다.

혼자 바람을 쐬고 있던 찰나.

“감독님.”

지현욱이 옆에서 튀어나왔다.

“현욱 씨?”

어디 있다가 나온 거지?

저기는 출구가 아닌데.

“어디서 나오신 거예요?”

“저 반대쪽 처마 밑에 있었어요.”

“아, 그래요?”

“네. 비가 그친 것 같길래 보러 나왔다가 인기척 들리길래 왔어요.”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촬영은 할 수 있겠네요.”

“네. 매니저님께 연락해 주세요. 오는 새벽 중에 촬영 시작해야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 짧게 전화를 마치고는.

“스으읍.”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비가 그치고 나면 이렇게 공기가 맑아져서 좋은 것 같아요.”

“맞아요. 안 그래도 산이라서 좋은데, 비 오고 나니까 흙내음도 나고 좋네요.”

“촬영은 몇 시쯤 시작하실 생각이세요?”

“한 3시, 4시 쯤에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정확한 시간은 스태프들이랑 조율해보고 1시간 내로 알려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오늘 신 굉장히 중요한 거 알죠?”

“그럼요.”

“잘 부탁할게요.”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 * *

새벽 4시.

아직 해가 밝아오기 전의 늦은 시간.

“촬영하기 딱 좋은데요?”

“그러게요. 음산하니 아주 훌륭하네요.”

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안개도 자욱하니 껴있고 여름임에도 새벽이슬이 짙게 깔려 있었다.

산장에서 촬영장까지 걸어오는 데만 해도 살짝 축축해질 지경이었으니까.

만으로 하루를 넘게 기다린 보람이 있을 정도.

“바로 슛 들어가겠습니다!”

내 신호에 스태프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배우들은 자리를 잡았다.

“첫 번째 테이크.”

슬레이트를 들고 있는 조연출의 신호와 동시에 내가 메가폰을 들고 외쳤다.

“레디, 액션!”

늦은 새벽.

살인범의 다음 타깃으로 예상되는 인물 후보군을 뽑아두고 현장에서 잠복하던 한시아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히는 걸 발견하고 빠르게 쫓아간다.

지현욱은 자신의 모습이 들키지 않았기에 서둘러 숲속으로 피신한다.

그는 익숙한 길이었기에 어둠속에서도 노련하게 모습을 숨겼고.

한시아는 이를 악물고 그 뒤를 쫓아 산장 근처까지 쫓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녀는 아직까진 산장의 존재도 모르는 상태.

“허억. 허억…….”

한시아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올랐다.

나는 옆에 있는 카메라 감독에게 수신호로 요청했다.

‘처음엔 Pan으로.’

Panorama의 준말로, 카메라 위치는 고정시킨 채 앵글을 돌리며 좌우로 찍는 기법.

뛰어올라오는 배우를 촬영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한시아는 예정된 스팟에서 나무를 잡고 멈춘 채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곧이어 촬영 감독에게 다음 신호를 보냈다.

‘Dolly in’

제자리에서 앵글을 확대하는 Zoom-in(줌인)과 달리, 카메라 감독이 ‘달리’라는 트레일러에 탑승해 직접 배우에게 다가가는 촬영 기법이다.

나는 제자리에 앉은 채 모니터를 통해 집중하고 있었다.

잠시 후, 카메라가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춰 섰을 즈음.

한시아는 대본에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총기까지 꺼내든 채로.

그리고 다음 수신호를 보냈다.

‘Zoom-in’

그대로 앉아 앵글을 당겼다.

그와 동시에 지현욱 또한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카메라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게 보이면 오히려 긴장감이 떨어지는 법이니까.

그는 망치를 하나 들고 있었다.

물론, 실제 소재는 고무에 가까운 가벼운 물건이었다.

안전하게 하려면 스티로폼이 제격이지만, 그러면 망치가 휘어지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에 일부러 무게감이 있는 소재로 잡았다.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겉은 따로 포장해 언뜻 보기에는 실제 쇠망치처럼 생겼다.

한시아가 좌측을 총기로 경계를 하며 나무 하나를 지나가던 순간.

휙.

순식간에 지현욱이 등장하며 망치를 휘둘렀다.

망치로 때리는 소리는 효과음으로 넣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퍽-!

둔탁한 소리와 동시에.

“꺄악!”

한시아가 소프라노의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기존 대본대로라면, 짧게 ‘윽!’ 하는 단말마의 비명을 질러야 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카메라의 앵글 상에서만 맞는 것처럼 보이게 빗겨 쳐야 하나, 실제로 맞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컷!”

허나, 한시아는 일어나지 않았다.

왠지 불길한 느낌에 그녀에게 뛰어가자.

“으으으…….”

그녀는 짧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지현욱을 바라보자, 그도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죄,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어떻게 된 거냐고요!”

“제가 일부러 치려고 한 게 아닌데…….”

“때렸어요?”

“…….”

“맞았냐고!”

그는 대답을 못하겠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조감독! 훈철아! 119 불러!”

“예?”

저쪽도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당황한 모양.

“아니다. 119 올라오기 힘들 거야. 차 시동 걸어! 내가 직접 내려갈 테니까.”

나는 한시아를 들쳐 업고 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 * *

“괜찮아요?”

“네.”

한시아는 어설프게 몸을 일으켰다.

“누워 있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행히 한시아의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머리를 맞은 게 아니라, 어깻죽지를 맞았으니까.

그럼에도 병원에서는 최소 일주일 이상은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망치를 아무리 소품용으로 만들었다고는 해도,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무게감이 있는 소재를 쓴 탓에 타격이 적지 않았던 모양.

“상처 봤어요.”

어깨뼈에 아주 작은 실금이 가 있었다.

그렇다고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고, 사나흘만 푹 쉬면 활동은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안타까운 건 그 어깻죽지 근처에 새파랗게 멍이 들었다는 것.

“멍 빠지려면 꽤 걸릴 텐데 괜찮겠어요?”

“멍 자국까지 다 봤어요?”

“네. 최 실장님이랑 같이 의사분한테 설명 들었거든요.”

“헐. 어떡하지?”

한시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맨몸이 보였네. 저 시집 다갔어요. 이제 책임지셔야겠다.”

나는 바로 이마에 딱밤을 먹여 주었다.

“아, 저 환자예요.”

“이런 상황에서 농담하는 거 보니까 환자 아닌 줄 알았네요.”

“흐흐흫.”

한시아는 피식 미소를 흘렸다.

“저 괜찮아요. 그때는 놀랐는데…… 보니까 진짜 실금이던데요? 엄청 작아서 처음엔 X-ray 사진 보고도 못 알아챘다니까요.”

“그래도 몇 주 푹 쉬어요. 다른 촬영들 먼저 하면 되니까.”

“아니에요. 딱 일주일만 쉴래요. 더 쉬면 감 떨어져.”

눈빛을 보니 그녀의 의지는 완고했다.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을 기세.

나는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대신 일주일간은 무조건 입원해야 돼요.”

“그럴게요.”

그렇다고는 해도, 촬영은 열흘 후로 잡을 예정이다.

최소한의 휴식은 취해야만 하니까.

“그건 그렇고…….”

한시아는 조심스레 물었다.

“지현욱 씨는 어때요?”

“본인은 실수라고 하더라고요.”

한시아를 병원에 데려온 직후, 겨우 화를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물었다.

그 결과, 지현욱은 망치를 휘두르려다가 발에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워낙 비가 많이 온 탓에 땅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으니까.

질퍽질퍽해서 쭈욱 미끄러질 수도 있는 상태였다.

허나, 현장에서 내가 보았을 때는 그가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물론, 그를 직접 본 게 아니라, 모니터를 통해 카메라로 찍는 영상을 본 것이기에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카메라가 좋아졌다 하더라도, 앵글의 한계가 있어서 모든 걸 담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본 감상에 대해 한시아에게 전할 수는 없었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오히려 의심이나 불안을 증폭시킬 수도 있는 일이니까.

“실수면 어쩔 수 없죠.”

한시아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고 전해 주세요.”

“네.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직접 사과하고 싶다고 왔었는데, 실장님이 시아 씨 오늘은 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돌려보냈어요.”

“와도 괜찮은데.”

“오늘은 다른 사람 안 들인다고 했으니까 푹 쉬어요.”

“그럴게요.”

한시아는 숨을 깊게 내뱉더니 멈칫하며 물었다.

“참, 그러고 보니 촬영은 어떻게 해요? 산장은 빌리는 기간 제한 있지 않아요? 오늘 거 재촬영해야 될 것 같은데.”

“아니에요. 그대로 살리려고요.”

비명을 포함해 마지막 장면이 대본에 비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진짜 리얼이라서 그런지, 리얼리티가 살아있어서 그대로 살려도 괜찮을 것 같았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네요.”

“네. 당분간은 촬영 생각하지 마요. 푹 쉬어요.”

“알았어요.”

나는 그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려고요?”

“시아 씨 쉬어야죠.”

“저 괜찮은데.”

“곧 주사 맞을 시간이에요. 간호사 선생님도 오시고 정신없을 거예요.”

“알겠어요. 조심히 들어가요.”

“네.”

나는 돌아서려다가 문득 멈춰 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시아라 그런지 더 걱정이 되었다.

“시아 씨.”

“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다른 의미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혹시나 해서.”

“말해요.”

“현욱 씨랑 단 둘이 있지는 마세요.”

한시아도 내가 진지하게 말하는 걸 알았는지, 평소라면 ‘질투하는 거예요?’ 등의 농담을 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사과하러 올 때도 최형택 실장님이랑 같이 있으시고요.”

“알겠어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요.”

“네.”

한시아는 활짝 웃으며 깁스한 반대편 팔을 기역 자로 들어 보이지도 않는 알통을 과시했다.

“저 진짜 멀쩡해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예.”

“그래도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쉬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제야 나는 한시아를 안심하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허나, 주차장에 돌아와 차에 몸을 실었음에도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현욱.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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