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화 시야를 넓히면 (1)
10,000,000명.
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대한민국의 국민 5명 중 1명은 봤다는 소리다.
말이 쉬워 5명 중 한 명이지, 아주 어린 아이들이나, 아예 나이가 든 노인들처럼 문화생활을 하지 않는 이들을 제외하면 절반은 봤다는 뜻이다.
이 말인즉슨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간 그 작품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는 소리다.
일개 영화가 그만한 파급력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단순히 잘 만들었다는 수준으로는 되지 않는다.
좋은 스토리와 더불어 충분한 자금력, 훌륭한 배우진, 어떤 경쟁작을 만날지 등 운까지 포함한 많은 요소가 영향을 끼치니까.
그리고 이번 작품 ‘숲 : 사각지대’는 지금까지의 강준수 작품 중 단연 최고의 흥행성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거 재미있음.
-예능, 드라마 하던 감독이 각 잡고 웰메이드 영화 만들면 이 정도가 가능하구나 싶을 정도로 감탄함.
-배우들 연기가 스토리에 잘 몰입되도록 도움을 줬네요.
-강준수 감독 작품 다 봤는데, 솔직히 이전까지는 한국식 신파 요소가 좀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제거해서 좋음.
-ㄴ 그거 소속 스튜디오 바뀌어서 그런 듯. 원래 다른 곳들은 억지로 슬픈 내용 혹은 로맨스 끼워 넣는데 이번 작품엔 없었잖슴.
-ㄴ 맞네요. 그래서 재미있었던 듯.
-솔직히 킬링 타임용은 넘어선 듯.
-故 지현욱 배우의 유작이라는 게 안타까움. 영화판에서 처음으로 보는 신인이었지만, 그가 살아서 다른 작품도 찍었으면 어떨까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
-재미있네요. *^^*
“반응이 꽤 좋네.”
어윤중 본부장은 마음에 드는 듯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태블릿 PC를 덮었다.
“은근히 예전 작품을 까면서 칭찬이라는 게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어쨌든 팩트이기도 하고 칭찬은 칭찬이니 좋아하려고요.”
“그래. 별점도 이 정도면 훌륭하지.”
10점 만점에 관람객 평점 8.3
학교 다닐 때의 시험점수로 치면 높은 게 아니지만, 영화에서는 굉장히 높은 점수라고 볼 수 있다.
세계에서 호평을 받고 영화제를 쓸어먹는 작품들도 9점이 간당간당하니까.
“평가도 좋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평가하는 지표는 관객 수잖아. 그런 면에서는 아주 훌륭하지.”
눈앞에서 칭찬을 들으니 민망하긴 했지만, 기쁜 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숲 : 사각지대’는 개봉한 지 16일 만에 680만 관객을 기록하고 있었으니까.
경쟁작이었던 제임스 카터 감독의 ‘빨간 죽음’은 현재까지 270만 관객.
꽤나 크게 격차를 벌리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작품이 제임스 카터 감독의 작품보다 더 낫다고는 절대 말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말할 생각도 없었다.
‘빨간 죽음’이라는 작품은 ‘해외’ 작품이기에 국내 영화와 차이는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물론, 제임스 카터 감독 또한, 이번 작품으로 국내에 확실하게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꽤 흥행 중이라고 하니, 진짜 할리우드 감독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지.
나 또한, ‘빨간 죽음’은 극장에서 감상했다.
회귀 전에는 없던 영화.
그럼에도 제임스 카터 감독 특유의 색깔은 명확히 드러나 있었다.
아마 새로운 상황에 영향을 받아서 새롭게 쓴 시나리오일 테지.
덕분에 나도 그 작품을 보면서 자극을 받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다음에 할리우드 만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뭘 그렇게 자세히 보고 있어?”
“관객 수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휴대폰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본부장님이 보기엔 어때요? 16일 만에 680만이면, 제 작품 상영 내리기 전에 천만 찍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음 같아서는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솔직히는 조금 애매해.”
어윤중 본부장은 몸이 달았다는 듯 엉덩이를 들썩이며 말했다.
“우리 계산으로 치면 대략 900만 선에서 마무리가 될 것 같거든.”
“아, 그래요?”
“응. 어떤 식으로든 추가 펌핑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더 이상의 예능 출연을 통한 홍보는 큰 의미가 없다.
TV에서는 충분히 출연할 수 있을 만큼 출연했으니까.
“SNS처럼 무작위로 많은 이들에게 퍼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윤중 본부장의 말에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잠깐만요. 그거 방법이 하나 있을 것 같아요.”
“뭔데?”
“저희 이번 영화에선 공약이 없었잖아요.”
한창 홍보를 시작할 때 지현욱이 사망하면서 공약까지 걸 만한 정신이 없었으니까.
“천만 관객 돌파 시 무언가 하겠다, 그러면 여기저기 퍼지지 않을까요?”
“오, 그거 괜찮네!”
어윤중 본부장은 손뼉을 치며 더 세세하게 말했다.
“아예 천만이 아니라, 한 800만 정도로 하자.”
“그러면 오히려 적은 선에서 끊기는 거 아니에요? 900만은 찍을 것 같다면서요.”
“아니지.”
그는 씨익 입꼬리를 휘었다.
“800만 공약으로 사람들 앞에 나설 만한 무언가를 하는 거야.”
“……아!”
현재 예상되는 최종 관객 수는 900만 남짓.
800만은 당연히 돌파한다는 소리다.
그 말인즉슨, 공약은 무조건 이행할 수 있을 터.
자연스레 최대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약을 이행하게 되고, 일반인들은 당연히 찍을 테고, SNS로 퍼지는 건 시간문제가 될 테지.
“이해했어?”
“예.”
역시 어윤중이다.
본부장 자리에 앉은 이유가 다 있다니까.
“제가 선배님이랑 일하면 이래서 좋아요.”
“하하하, 됐으니까 얼른 공약 준비나 해.”
“알겠습니다!”
* * *
큐튜브 촬영 스튜디오.
어윤중 본부장과 공약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바로 다음 날에 한시아와의 촬영 일정을 잡았다.
마침 한시아도 바쁜 스케줄이 없었고 공약을 무엇으로 할지만 고민하면 되기에 오래 걸릴 게 없었으니까.
이행은 800만 관객을 돌파한 뒤에 해도 되기에 여유가 있는 상태.
“안녕하세요, 감독님!”
“시아 씨 왔어요?”
“네. 엇, 영석 씨도 벌써 오셨네요.”
원래 같았으면, 이런 공약은 ‘주연’들이 하는 게 맞다.
허나, 지현욱이 공약에 참가할 수는 없기에 주연을 제외하고 가장 비중이 높던 배우 ‘김영석’을 데려왔다.
다행히 그는 이 공약 참여에 흔쾌히 응해 주었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눈 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선 공약은 통화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홍대 길거리에서 게릴라 팬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800만 관객을 공약 목표로 잡는 이유는 그들의 매니저에게 충분히 설명했기에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800만을 돌파하는 건 아마 일주일 정도 걸릴 겁니다. 그래서 다음 주 목요일 정도에 공약을 이행할 예정이고요.”
“완전 속전속결이네요.”
“네, 어쩔 수 없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나면 수도권에서는 차츰 막이 내려가거든요. 40일 정도 되면 완전히 상영이 끝나고요.”
게다가 갈수록 관객 수는 줄기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지.
그때 김영석이 조심스레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런데 이 정도 되면 천만 관객은 무료 표 같은 거 뿌려서라도 달성할 수 있지 않나요?”
“물론, 가능한 말입니다.”
실제로 ‘천만 감독’, ‘천만 배우’등 영화에서 ‘천만’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효과가 굉장하기에 일부러 작은 동네 및 학교에 무료 표를 뿌리면서 관객을 모으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타이틀 하나를 갖기 위해서 내 영화를 비롯해 배우들 및 나의 가치를 깎는 법이니까.
천만 관객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정정당당히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 않으려고요.”
“맞아요.”
한시아도 내 말에 동의했다.
“그렇게 해서 천만을 찍는다 한들, 그 의미가 퇴색될 거예요.”
“하긴, 그건 또 그렇네요.”
나는 손뼉을 치며 이야기를 정리했다.
“자, 일단 나눠드린 대본 한 번 살펴 주세요. 프롬프터로 상세 내용은 띄워 드릴 테니까 외우실 필요는 없고 이해만 해 주시면 돼요.”
***
촬영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공약을 선언하는 건 3분 남짓한 짧은 영상이라, 어려울 것도 없었으니까.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 생각해서 준비하고 있을게요.”
“예. 조심히 가세요.”
김영석이 먼저 촬영장을 떠났다.
주연까지는 아니어도, 작품 내에서 조연으로서 비중이 높았던 만큼, 그 또한 연예계에서 인지도가 가파르게 올라간 덕분에 스케줄이 바쁠 테니까.
“PD님!”
물론, 그 인지도가 더 올라갈 곳이 없어서 농땡이를 부리는 사람도 있긴 하다.
“네, 시아 씨.”
나는 하던 일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시아 씨는 안 들어가세요?”
“저도 이제 곧 가려고요. 실장님이 차 빼러 가셨어요.”
“아하.”
“뭐 하나 여쭤보려고요.”
“말씀하세요.”
“저희 해외 개봉도 진행은 되고 있는 건가요?”
“네. 조만간 일정 확정될 거예요. 나오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지난 작품과 달리, 이번엔 국내 개봉 전부터 준비는 해왔다.
동시 개봉까지는 아니어도, 해외에서 그리 늦지 않게 개봉하니 반응을 살피기 좋을 터.
“알겠어요. 그리고…….”
한시아는 슬쩍 내게 가까이 오더니 눈을 땡그랗게 뜨며 물었다.
“주말에 뭐 하세요?”
“딱히 일정은 없어요. 집에서 쉴 것 같은데…… 시아 씨는요?”
“저는 캠핑 용품 사러 가요.”
“아, 또 캠핑가시나 보네요. 요즘 SNS에 엄청 올리시던데.”
‘숲 : 사각지대’의 촬영이 끝난 직후부터, 어쩌다 캠핑에 맛이 들렸는지 쉬는 날만 되면 캠핑장에 가서 혼자 불멍하는 사진을 올리고는 한다.
“혼자 캠핑하는 거 재미있어 보이던데요.”
“그쵸?”
“근데 살 게 더 있어요? 용품 엄청 많은 것 같던데.”
“이번엔 제 물건이 아니라, 아는 분 캠핑용품 사신다고 해서 도와드리러 가요.”
“오, 그래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누군데요?”
“잭슨 씨요.”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잭슨 킴 말하는 거예요?”
“네. 저희 블라인드 미션 종방연에서 이야기했었거든요. 캠핑 다닌다고. 그랬더니 얼마 전에 저한테 연락 왔었거든요. 자기도 캠핑에 관심이 생겨서 좀 사보고 싶은데 전혀 모르겠다고. 그래서 사려는데 도와줄 수 있냐고요.”
“아, 그래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잭슨 킴이 한시아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기에 뭐라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그렇기에 굉장히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고.
“네. 제가 캠핑엔 완전 진심이잖아요.”
그녀는 코를 찡긋하더니.
스윽 내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PD님.”
“네?”
“주말에 할 거 없으면 같이 가실래요?”
“캠핑용품 보러요?”
“네. 쉬신다길래. 주말에 가만히 있으면 아깝잖아요.”
한시아는 머리를 배배꼬았다.
“그러니까 할 거 없으면 같이 쇼핑 가자고요. 쉬고 싶으면 말고.”
그녀는 히죽 입꼬리를 휘었다.